은유 “책 만드는 사람도 발언했으면 좋겠어요”
『출판하는 마음』 펴내 편집자들이 진 빠져서 도망갈 때, 너무 안타까워요
책을 쓰면서 여러 마음이 있었는데요. 『출판하는 마음』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저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기도 해요. (2018. 04. 26)
2018년 3월 29일은 『출판하는 마음』 이 출간된 날이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뷰가 쏟아졌다. “아마 출판계 사람들이라면, 특히 마케터라면 이 책 다 읽고 있을 걸요? 서점 MD 마음 공약법으로요.”, “친구가 읽던 걸 뺏어 읽었는데, 두 장 읽고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야 나도 책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인터뷰를 청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출판인이 1만 명이라면, 1만 명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 발행 부수를 물었다. 2천 부라고 했다. 부수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출판계의 현실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은유 작가에게 말했다. “이 책은 적어도 올해 안에 1만 부는 팔렸으면 좋겠는데요.” 작가는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출판하는 마음』 은 은유 작가가 단독으로 쓴 여섯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 『올드걸의 시집』은 2012년에 나왔고 지금은 절판됐다. 이 책의 절반은 2016년에 출간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로 소개됐다. 『출판하는 마음』 은 출판사 제철소가 기획한 ‘마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은유 작가는 2년 전, 김태형 제철소 대표로부터 기획안을 받았다. “편집자, 마케터, 제작자 등 출판계 종사자들의 인터뷰집”이라는 말에 솔깃했고, 두 가지 기획의도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첫째,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쉽게 물어보지 못했던 직업에 관한 물음과 답을 통해 우리 시대 청춘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직업 가이드를 제공한다. 둘째, 노동과 삶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접근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작가 은유는 첫 책이 절판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2015년에 쓴 『글쓰기의 최전선』 으로 책 좀 읽는 독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이후 대한민국 편집자들이 꼭 한 번 일해보고 싶은 저자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도 하루가 멀게 청탁 메일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계약한 책은 단 두 권. 오래 전 눈밝은 편집자의 제안으로 쓰고 있는 독서 에세이와 청소년 노동 르포가 전부다. 왜 책을 더 계약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판하는 마음』 을 썼으니 작가 은유는 앞으로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은유 작가가 이 책을 쓴 건, “레드카펫 위 주인공보다는 그 레드카펫을 준비하고 갈고 치우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7쪽) 사람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6쪽)을 가진 작가 은유와 그가 인터뷰한 출판인 10명의 이야기. 책이라는 물성을 탐닉하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잘 가닿으면 좋겠다.
책은 공동의 산물이니까요
한동안 인터뷰 작업을 안 하셨는데요. 오랜만에 인터뷰어가 되어 책을 쓴 소감이 궁금합니다.
서문에도 썼지만 실용 정보서와 르포르타주 사이의 책이니까요. 정보적 가치와 인식적 가치를 동시에 잘 담아보고 싶었어요. 출판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위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너무 세게 드러나면 르포르타주가 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드러내면 미화할 수 있으니까요. 두 개의 긴장감을 어떻게 맞출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출판 노동 목소리』 , 『편집의 정석』 을 비롯해 책에 관한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균형을 맞췄는데, 평가는 독자 분들의 몫이니까요.
정보의 양이 많아 좀 놀랐어요. 인터뷰이들의 이력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서술했고요. 또 놀란 점은 생각보다 젊은 출판인들이 많이 소개됐다는 점이에요.
너무 베테랑인 사람은 일부러 뺐어요. 이 책이 직업 입문서로써의 역할도 갖고 있어서요. 경력이 많은 사람, 직책이 높은 사람들은 젊은 실무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잘 모르니까요. 본인도 잊어버리고요. 그래서 10년 안팎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찾았어요. 김민정 문학 편집자만 예외적으로 경력이 많고, 다른 분들은 대개 5년 안팎이에요. 『회사가 싫어서』 를 쓴 김경희(너구리) 저자를 인터뷰한 것도 젊은 목소리를 많이 담고 싶어서예요. 독립출판으로 진로를 개척한 분이잖아요. 독립출판을 시작으로 상업출판에서도 책을 내셨고요.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제목이 『출판하는 마음』 이었나요?
이 제목은 나중에 알게 됐어요. 사실 원고를 쓰면서 혼자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너무 세도 안 되고, 약하면 존재감이 없으니까. 적절한 제목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김태형 대표님이 제목은 『출판하는 마음』 이라는 거예요. 듣자마자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희곡 중에 <과학하는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대요. 대표님이 그 작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10명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편집자부터 시작해서 1인출판사 대표로 끝맺어요.
출판 작업 순서대로 넣은 거예요. 편집자가 기획하고 저자가 글을 쓰고 번역자가 번역하고, 디자이너가 책을 디자인하고, 제작자가 책을 만들고, 마케터와 MD, 서점인이 책을 팔잖아요. 이정규 코난북스 대표님은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개념으로 마지막에 넣었어요.
섭외는 직접 하셨나요?
출판사 대표님이 추천해주신 분도 있고 제가 먼저 제안한 분도 있어요.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님의 경우에는 저한테 첫 책방 지기 같은 느낌이 있었고요. 이환희 어크로스 편집자님은 앞으로 제 책을 만들어주실 분인데요. 아무래도 평소에 소통하는 관계였으니까 그 분의 책을 대하는 마음이나 태도 같은 걸 잘 알고 있었죠.
리뷰를 찾다가 블로그에서 인상적인 글을 한 편 읽었는데요. “코난북스 대표님의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허세롭지 않아서 좋았다. 너무 남루해보일까바 안 하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좋았다”는 이야기였어요. 제 느낌도 비슷해요. 굉장히 좋았고 인상적이었어요.
이정규 대표님이 말씀을 잘하세요. 대표님을 인터뷰했을 때가, 코난북스에서 ‘아무튼’ 시리즈가 나오기 전이었는데요. 책을 쓰는 와중에 ‘아무튼’이 나오면서 그 내용을 추가했죠.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볼만한 책이잖아요. 초보 편집자인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았고요. 마케터 분들은 편집자 이야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편집자가 SNS에 더 나은 표지를 골라달라며 시안 투표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북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미완의 시안이 공개되어 졸지에 익명의 대중에게 평가당하는 얄궂고 불쾌한 일이다.”(15쪽) 저도 이 시안 투표를 참 많이 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예요.
저도 그래요. 몰랐던 거죠. 작업에 대한 존중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잠깐 표지를 보고 나서 “폰트 좀 줄이고 색깔 좀 다르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평하잖아요. 책의 전체 조화를 생각해서 작업한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완전히 무시 당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죠. 며칠 전 제가 강연을 했는데, 어떤 분께서 저의 예전 책을 두고는 이런 말을 하셨어요. “이 책 디자인은 작가님이 하셨냐?”고요. 북디자이너가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출판하는 마음』 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모르는 분이 생각보다 많아요. 책 제목을 정하는 것도 편집자의 일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작가들이 직접 하는 줄 알아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잘 몰라요.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신 적이 있지만, 줄곧 출판계에서는 저자 입장이셨잖아요. 열 분을 인터뷰한 후, 저자로서 반성했거나 다시 생각한 부분이 있었나요?
가장 크게 배운 건 ‘책만 좋으면 알아서 팔린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점이에요. 그동안은 책을 상품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판매에 대해서는 한 발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가 자기가 쓴 책을 홍보한다는 게 참 어렵고 민망하고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출판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강매를 권하는 건 이상하겠지만 내가 써놓고 뒤로 빠지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들이 학교에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쓴 책을 사라고 하잖아요. 교재로 쓰기도 하고요. 저는 『올드걸의 시집』이 나왔을 때, 글쓰기 수업 교재로도 못 썼어요. 안 사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요. 그럴 것도 아니구나, 이젠 생각해요. (웃음)
출판 마케터 분들은 만나보면, 홍보에 적극적인 저자, 편집자를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문창운 푸른숲 마케터가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했잖아요. “100퍼센트 힘을 다 쓰지 말고 마케팅과 함께할 10퍼센트는 남겨주길 부탁합니다.”(233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을 통해 책에 대한 큰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 것 같아요. 그동안은 책을 작가의 생산물로 생각했다면, 공동의 생산물이라는 개념이 확고해졌어요. 우리 출판계는 너무 작가만 드러나잖아요. 외국의 경우 편집자가 교수만큼 존경받는 직업인데, 우리는 아직도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죠.
박흥기 사계절 출판제작자의 한 마디도 인상에 크게 남았어요. “직원들을 볼 때마다 지금처럼만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책 나오면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얘기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206쪽) 되게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요. 이런 평범한 말들이 요즘 세상에는 드문 일이 되었어요.
박흥기 제작자님을 인터뷰하면서 많이 감화 받았어요. 이 분은 거래처를 자주 돌아다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신대요. 요즘 그런 사람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야 제도적으로 고칠 수 있는 걸 파악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분은 말하지 않고 들어주는 게 몸에 배어 있었어요. 한 출판사 직원이 이 분을 두고 “사계절 출판사에 봄이 왔다”고 하셨대요. (웃음) 너무 기억에 남아요. 조직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게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출판하는 마음』 에 등장하는 출판인 10명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발로 많이 뛰는 사람, 지레 짐작하지 않고 현장을 중시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김민정 난다, 문학동네 편집자의 경우도 책은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고 하잖아요.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내부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편집자에게는 여러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저자를 섭외하는 일에서부터 책이 출발한다고 봐요. 섭외하기 위해서는 기획안을 써야 하고 저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할 텐데요. 저자들은 어떤 기획안을 받을 때,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나요?
저는 여성, 글쓰기, 청소년을 주제로 한 청탁이 많이 오는 편인데요. 대개 트렌디한 접근이 일반적이에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보면, 편집자로서의 자기 소신이 분명한 점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의 주관, 확신이 저의 관심사와 만나는 지점이 있었고 이걸 명확히 밝혀준 게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제 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감사하지만 약간은 부담스럽거든요. 저는 편집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요.
동료 관계로 일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이죠. “작가님, 좋은 글 써주세요”는 좀 이상해요. 저는 협업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힘들 때 토론도 하고 방향도 잡아갈 수 있어요. 저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보다 직업인, 편집자로서의 소신,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야 저도 존중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젊은 한 편집자와 책을 만들 때, 제가 의견을 자주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편집자 분이 하는 말이 자기한테 의견을 물어본 사람이 제가 처음이래요. 너무 충격 받았어요. 작가들이 얼마나 권위적이었나,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김민정 편집자의 이야기에서 “진심을 발견했다”(30쪽)라는 문장이 나와요.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출판하는 마음』 에서 느낀 것도 ‘진심’이에요. 저자나 출판계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삶을 깊이 보려고 노력하는 분이 많잖아요. 하지만 “대단한 악의와 의도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에 대한 무지와 알려고 하지 않는 습관적 게으름에서 오는 것들”(15쪽)을 목격할 때가 많습니다.
섬세함은 길러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사고의 폭을 넓힐 계기가 많이 없어요. 만나는 사람도 일정하니까요. 저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인들의 내밀한 글들을 계속 읽으니까요. 그게 직업이니까 저를 돌아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요. 하지만 의지가 있는 분들이더라도 일에 지치면 계기를 못 찾게 돼요. 그래서 제도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걸 배워야 해요. 교육 없이 자라면 알게 되기가 어려워요.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제공돼야 해요. 그런데 약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활자화 하기 어려워요. 전문가나 권위자에 의해 쉽게 대변되고 왜곡돼죠.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작가들을 너무 과도하게 대접하는 부분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실무를 하는 출판사 직원들의 처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책에서 김경희(너구리) 작가를 저자로 인터뷰한 것도 저자의 어떤 근엄한 이미지를 깨고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출판의 민주화가 이뤄졌잖아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각 잡고 있는 분들을 볼 때면 좀 씁쓸해요.
이 글귀가 생각나요. “상대방과 마음의 속도, 의욕의 강도를 맞추지 않는 일방적인 열심의 태도가 외려 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13쪽) 저 역시 일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입니다.
주변에 편집자들이 많은데요. 밤낮으로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저자들이 많대요. 자기 책이 너무 소중한 거죠. 물론 이해는 해요. 그렇지만 출판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열심은 상대를 너무 힘들게 하죠. 저도 이 책을 쓰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요. 『글쓰기의 최전선』 을 쓸 때 제목을 두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로서는 좀 더 추상적이고 예쁜 제목을 쓰고 싶었는데, 대표님이 “작가가 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의 목적성을 드러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셔서 따랐죠. 맞는 말씀이시니까요. 무지에서 오는 과한 개입은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저자들도 읽으면 좋겠어요. 판을 보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으니까요.
『출판하는 마음』 을 만들면서는 어떠셨나요? 저자와 편집자 간에 배려가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철소는 1인출판사이기 때문에 김태형 대표님이 편집을 직접 하셨어요. 원고를 3개 정도 보내드린 후에 미팅을 했는데요. 만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원고 피드백은 메일로 주셨어요. 뭐랄까,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핵심을 잘 집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방향 잡기가 수월했어요. 번역가 홍한별 선생님도 책에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편집자들의 빨간펜 지적을 받으면 빵점 맞은 기분이 든다.” 저도 글쓰기 수업할 때, 다른 사람의 문장에 빨간펜을 긋거나 그러지 않아요. 전체적인 느낌을 문장으로 써줘요. 빨간펜은 중요하지 않아요.
인터뷰가 굉장히 고된 작업이잖아요. 인터뷰한 걸로 끝이 아니고 녹취하고 내용을 선별하고 또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요.
박태근 알라딘 MD 인터뷰는 녹취를 풀어보니 200매가 넘었어요. 품이 정말 많이 들었죠. 그래도 책 보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을 쓰게 돼서 정말 뿌듯해요.
문창운 푸른숲 마케터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서울 서북부 감성(출판인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저자이고 글도 훌륭하고 콘셉트도 좋고 출판계에서는 대환영을 받고 있는 책인데, 막상 시장에서는 큰 성과를 못 내는 도서들이 갖고 있는 감성, 228쪽) 솔직히 말해서 『출판하는 마음』 도 서북부 감성인데요.
(웃음) 출판계 사람들이 다 읽는다면, 1쇄는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확장성이 생기면 사서 분들이나 일반인들도 읽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기대하는 독자는 자신의 직업 안에서 내부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이에요.
2018년이 ‘책의 해’입니다.
좋은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걸로 알아요. 항상 생각하는 문제인데요. 출판사의 분발로 독서 인구를 늘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캠페인이 아니라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문 도서도 예전에는 완만한 곡선으로 판매가 이뤄졌는데, 요즘은 절벽이라고 해요. 출간했을 때 반짝 팔리고 안 팔리는 거죠. 많이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요.
편집자들이 진 빠져서 도망갈 때, 너무 안타까워요
벌써 3년 전인데요. 『글쓰기의 최전선』 이 나왔을 때, 본인을 “무명 저자”라고 말하셨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요? 최근 배우 박보검이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쓰기의 말들』 을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저보고 자꾸 유명해졌다고들 하는데요. 제가 하는 일은 그 전과 똑같아요. 강연 의뢰가 좀 많이 오는 것, 추천사 부탁이 자주 오는 정도인데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예전과 다르지 않아요. 새로운 독자도 늘었지만 제 책을 사주는 분들은 여전히 평범한, 저랑 코드가 맞아서 자주 만나는 분들이세요. 주변에 그렇게 잘나가고 유명한 사람이 없어요. (웃음) 저를 잡아주는 건 저의 오래된 학인, 편집자, 친구들이에요.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으실 같아요.
많이 받는데 다 써 드리진 못해요. 『출판하는 마음』 을 준비할 때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짬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얼마 전 1인출판사 어떤책 대표님이 메일을 보내셨어요. 저자가 조손가정에서 자란 분이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 분을 정말 살뜰하게 키워주셨나봐요. 에세이스트로 첫 발자국을 떼는 사람이라서 제가 꼭 추천사를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원고를 읽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감동이 너무 커서 제가 울었어요. 삶에 대한 울림이 있는 글이었으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나의 두 사람> ) 꼭 해주고 싶어서 썼어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닌가 싶어요. 추천사는 정말 제안이 많이 오는데요. 저 말고도 써주실 분이 많을 것 같은 저자의 경우에는 거절해요. 이런 거절은 안 불편해요.
이번 책의 저자 소개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 글쓰기를 전파하러 다닌다”고 썼어요.
이오덕 선생님의 어떤 글에서 본 글귀예요. 학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해요. 누구로 하여금 대변하게 하지 말라고요.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글쓰기 수업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인데요. 사회적인 성취를 많이 했지만 너무 위축되어 있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거짓 자아로 활동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내 약점, 결핍을 숨겨야 하는 일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하면 당당해져요.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요.
이정규 코난북스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제가 만든 책으로 인해 저자에게 방송 출연이나 강연 섭외가 온다든지,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책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328쪽) 저는 『출판하는 마음』 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 소개된 10인이 만든 책들이 나올 때, 독자들이 판권을 보면서 ‘아, 이 분이 작업한 책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고요.
그러면 좋죠. 사람들은 큰 것에 대한 선호가 너무 크잖아요. 대기업 선호처럼요. 출판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작은 것들이 잘 공존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책의 정신 아닌가요?
이경란 북디자이너가 직접 카드뉴스도 제작해주셨다고요.
정말 감동했어요. 요즘 엄청 바쁘시거든요. 책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밥도 사주시고. (웃음)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만족과 신뢰, 이런 것들로 얻는 기쁨이 정말 크죠.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뭐 재밌어요.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출판계의 그늘 같은 면을 많이 다루지 못한 게 아쉽죠. 소규모 조직이라는 곳이 말이 좋아 가족적인 분위기지 내부 착취가 많이 이뤄지잖아요. 조직은 계속 커가는데 개인들은 과잉 소모되는 것들을 볼 때 많이 속상하고 그래요. 출판계 원로들이 출판이 호황일 때, 문제의식을 갖고 복지나 임금 문제를 잘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출판사도 이직률이 굉장히 높잖아요. 반성해야 할 부분이에요. 직업적인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데, 개인이 커 가기 너무 어려운 구조예요. 편집자들이 진 빠져서 도망갈 때, 너무 안타까워요.
만약 1인출판사를 연다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나요?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저는 르포르타주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학인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을 읽었어요. 이 감독이 TV 다큐를 찍다가 영화계로 갔는데,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한 선배의 책에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독자로서는 이런 점들이 굉장히 큰 정보거든요. 책으로 기록하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르포르타주 라고 하면,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만 여기잖아요. 나랑 상관 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미학적인 쾌감도 줄 수 있는 르포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장사는 못할 것 같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작은 기반이라도 닦아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것 역시 가정이지만, 서점을 연다면요?
아마도 글쓰기 수업의 거점이 되는 공간이지 않을까요? 읽고 쓰고 말하는 공간으로써의 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지 소비 행위 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곳이요.
아마 은유 작가에게 기획안을 보내고 싶은 편집자들이 이 인터뷰를 가장 많이 읽지 않을까 싶어요. 출판계에 막 들어온 신입이나 3년차 정도의 편집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편집자로서 자기 목소리, 자기 세계관을 만들면 좋겠어요. 전체를 보면서 자기 역할을 고민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편집자가 작가와 합심해 좋은 결과물을 내려면,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좋을 책을 만들 수 있어요. 또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목소리를 내면 좋겠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어요. 리베카 솔닛이 말했잖아요. “침묵도 용기도 전염된다.” 누군가 말하기 시작하면 옆에 있는 사람도 말할 수 있어요. 잘못 생각한 거라면 수정할 수도 있고요. 책이라는 게 곧 누군가에게 발언하는 거잖아요. 책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발언하면 좋겠어요.
책을 묶으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아요.
책을 쓸 때 고마운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편인데요. 너무 의례적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요. 그런데 『출판하는 마음』 을 쓰면서, 이 책을 내게 된 게 어쩌면 나랑 그동안 같이 일했던 편집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저의 첫 에세이 『올드걸의 시집』을 만들어준 정미진 편집자에게 보냈어요. 지금은 을유문화사에 있거든요. 정 편집자에게도 제 책이 직접 기획한 첫 책이었고, 저에게도 실질적인 첫 책이었어요. 그래서 두루두루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빠른 등기로 보냈죠.
출판하는 마음은유 저 | 제철소
읽고 쓰는 삶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에 관한 깊이 있는 글쓰기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 은유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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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저15,300원(10% + 5%)
“세상에 읽히기를 바란 거죠” 책을 짓고 펴내고 알리는 겹겹의 마음들에 관하여 『쓰기의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작가 은유의 인터뷰집. 열 명의 젊은 출판인을 직접 만나 묻고 듣고 기록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개인적으로는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털어버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