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나의 진한 연애기
『달콤한 작업실』 펴낸 최예선 저자 바라보다, 어루만지다, 길을 걷다
요즘은 ‘함께’라는 단어를 고민합니다. 저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언제나 함께 일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장소, 즐겁게 링크되는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살아가면서 인간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더 자주 만나야 해요. 좋은 장소는 우리를 만나게 해줍니다.
사전에서 공간의 첫 번째 정의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에 있는 공간은 과연 ‘텅 빈 곳’일까? 공간에는 사람이 필요하고, 시간이 더해져야 한다. 그래야 공간은 공간으로서 생명력을 지닌다. 아무리 멋진 공간이라 할지라도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또 시간의 때가 묻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공간이라면 아직 그곳에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 아홉 평짜리 작업실에서 일곱 번째 여름을 지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라보다, 어루만지다, 길을 걷다”, 이 세 개의 동사로 삶을 이루고 오랫동안 이 세 동사로 글을 지은 최예선 작가. 그동안 미술, 건축, 여행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책을 출간한 그녀가 이번에는 자신의 작업실을 무대로 『달콤한 작업실』을 펴냈다.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해온 고군분투기
첫 책 『홍차 느리게 매혹되다』 이후 건축, 미술, 여행 등 작가님의 글쓰기는 삶에 다양하게 걸쳐 있습니다. 그런 반면, 이번 책 『달콤한 작업실』은 기존에 다루었던 주제에 비해 보다 사적이고, 공간을 통해 최예선이란 사람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7년이란 시간과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담은 이번 책에 대한 소감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달콤한 작업실』은 글 쓰는 사람이 작고 낡은 공간과 만나서 몸으로 부딪히며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노력해온 고군분투기라고 생각해요. 삶이 복작복작하고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가능하면 멋지고 우아하게 살아보려는 탐미주의자의 이야기랄까요. 어느 지인은 이 책을 공간과의 ‘연애기’라고 하더군요. 그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이 공간과 나는 아주 진하게 연애를 했구나!
오래 전이지만 아직도 작업실 공간을 처음 만났던 그날이 또렷하게 떠오릅니다. 좋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공간과도 교감이 필요합니다. ‘여기서라면 해볼 수 있겠어!’라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그 마음 덕분에, 비어있던 낡고 작은 사무실을 내게 맞는 장소로 완전히 바꿀 수 있었고 오랫동안 꿈꾸던 작업실 생활을 실현할 수 있었어요. 달콤한 작업실에서 보낸 7년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흘러갔습니다.
작업실은 작가님의 집필실이면서 동시에 ‘달콤한 아카데미’와 ‘소설클럽’ 등 다양한 일들이 복작복작 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작가님에게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낮 동안의 작업실은 일상적인 업무와 집필 공간이라면 밤의 작업실은 함께 모이는 살롱 같은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홍차 살롱이 되기도 하고 소설을 함께 읽기도 하고 미술 강좌, 근대사 강좌들도 열어서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하기도 했고요. 작업실은 교차로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고요히 글 쓰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을 구상하고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작업실이지요. 집필실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작업실이라 명명한 이유는 이 공간이 하나의 의미, 하나의 기능으로 규정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런 일들을 재밌게 가볍게 실험해보고 싶었죠. 그러니까 작업실은 내가 꿈꾸는 삶을 조심스럽게 연습해보는 곳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느슨하고 따뜻한 작업실 공동체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어요.
작업실의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서재가 인상적입니다. 서가에 꽂힌 책들에 대한 소개 꼭지도 있는데요. 작가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작가나 책을 꼽는다면요?
모험가들을 좋아합니다. 브루스 채트윈의 『송라인』과 같은 멋진 여행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과 아틀리에 사진이 가득 담긴 화집, 먼 곳에서 쓸쓸하면서도 열정이 담긴 글을 쓰는 허수경 시인의 시집과 소설, 스위스의 시골마을에서 노동하면서 살아가는 미술 철학자 존 버거의 따뜻한 책들……. 자신을 부르는 땅을 찾아 온 몸으로 이동해간 작가들의 뜨거운 시선을 자주 들춰봅니다. 저는 이 작업실에 있지만 그들의 책을 읽을 때면 광활한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듭니다. 그것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깊고 새롭고 변화하는 세계를 보여주는 책들을 발견하면 심장이 쿵쿵 뛰지요. ‘이런 책을 쓰고 싶다!’ 이런 욕구도 솟아오르고요.
베르나르 브네의 작업실과 코운, 벨빌, 서울오감도와 같은 친구들의 작업실 이야기 또한 흥미롭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이 작가님의 작업실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요? 혹은 타인의 작업실을 방문하며 느낀 이야기를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한때 건축 잡지 기자로 새로운 건축을 찾아다니기도 했고, 오랫동안 잡지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좋은 공간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외관이 화려한 공간보다는 사는 사람의 말과 삶이 그대로 묻어난 공간이 좋은 공간이고 좋은 건축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삶과 말, 공간과 행동이 일치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요. 제 공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 사람답다, 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요.
작업실이 위치한 연남동은 서울에서 변화가 큰 동네 중 하나입니다. 7년 동안 작업실 주변도 많은 변화를 겪었을 텐데요, 작업실 초창기와 지금 또 이웃들의 변화 등에 대해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요?
처음 연남동에 정착했을 때는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었어요. 능소화가 피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감이 열리던 오래된 이층집과 한옥들이 많았죠. 그땐 계절이 오가는 걸 몸으로 느끼며 걷는 게 참 좋았어요. 최근에는 동네 산책의 즐거움이 줄어들었어요. 변화의 속도가 빨라져 조용히 자신의 꿈을 이뤄가던 작업실 이웃들이 사라지는 일도 빈번하지요. 동네만 변하는 건 아니에요. 저도 변하고 제 작업실도 변하겠지요. 연남동 골목길을 곧 떠날 것이라 예감하고는 있지만, 이 골목의 정취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요.
“이 책은 ‘작업실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이야기다”라는 시작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작업실이 있고 보니 삶이 모양을 바꿨다”는 부분도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들고요. 작업실 이전과 이후,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려주세요. 또 이후의 작업실에 대해선 갖고 계신 계획이 있을까요?
공간은 힘이 세다!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거든요. 작업실은 글 쓰는 작가로서의 자성, 서른과 마흔 사이를 건너는 인간으로서의 고민 같은 내적으로도 단단해지는 시간을 주었어요.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욕구들도 걷어내었고 담담해지는 즐거움도 얻었고요. 만남의 기회를 많이 주었어요. 낯선 사람들도, 넌지시 알던 사람과도 작업실을 매개로 깊이 교류하게 되었거든요. 요즘은 ‘함께’라는 단어를 고민합니다. 저도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언제나 함께 일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장소, 즐겁게 링크되는 장소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합니다. 살아가면서 인간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가장 소중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더 자주 만나야 해요. 좋은 장소는 우리를 만나게 해줍니다.
작업실은 고정된 공간이지만, 그 안을 채우고 비우고 만들고 또 궁리하는 모습에서 끝없이 움직이는 세계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작업실에 대한 로망을 가진 독자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업실은 공사부터 운영까지 모든 것을 제 손(남편의 손도 함께)으로 했어요. 낡은 벽지와 장판을 떼어내고 페인트칠하고 가구를 만드는 일부터 홍차 살롱, 아카데미 수업까지 하나하나 직접 준비했어요. 내 공간을 내가 만들고 운영한다는 즐거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공간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력들은 잘 보려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연남동에 작업실이 있다고 하면 부러움의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소하지만 대응법을 몰라 허둥지둥하고 눈물 쏙 빼는 시행착오들도 많이 겪었답니다. 이 예쁜 작업실엔 벌레도 많고 조금만 청소를 게을리 해도 먼지가 쌓이죠. 이 작은 공간을 유지하는 데도 시간과 정성과 비용이 듭니다. 꾸준히 하려면 책임감과 노력이 필요해요. 하지만, 작업실은 당신의 삶과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거예요. 좋은 추억들을 갖게 될 거고, 내 손으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에요. 한번 작업실을 하게 되면 작업실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진짜 그래요
달콤한 작업실
최예선 저 | 앨리스
이 책은 ‘작업실 구경’의 화려함이라거나 ‘작업실 이렇게 시작해보세요’라는 제안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한 사람의 작업실이라는 공간을 매개 삼아 사람과 시간이 더해지는 모습을 넌지시 비출 뿐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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