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뉴잭스윙, 기린의 마음가짐
진지하고 충실한 아티스트
초창기에 유브이(UV)와 활동기간, 음악 스타일이 어느 정도 겹치다보니 '너도 웃기려고 이런 음악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난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몸에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서부터는 스트레스로 고민이 왔다.
가치의 정도와 시류의 형태가 이루는 상관관계는 사실 헐겁다. 작품에 담긴 의미와 유행의 양상이 완벽하게 대응하고 비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와 거대한 부피를 안고 흐름을 연속해 밀어내는 트렌드의 안에서는 좀처럼 다양한 스타일들에 내재된 진가들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외로운 음악들이 있다. 뉴잭스윙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장르의 황금기는 일찍이 먼 과거에서 완료된 일로 취급받는데다, 옛 음악을 재조명하는 최근 레트로 실험들에서도 아직은 크게 다루고 있지 않다. 묘하게 설정된 이 사각지대 위에서 1990년대에 팝과 가요를 주름잡았던 뉴잭스윙은 현재 꽤나 촌스러운 음악으로도 치부된다.
기린은 뉴잭스윙을 주요 음악 테마로 잡은 아티스트다. 사운드와 패션, 영상 등에서 보이는 콘셉트들의 대다수가 뉴잭스윙이 큰 인기를 끌던 1990년대의 모드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시대감각에서 나온 '촌티'라는 통시적 효과 때문인지 유머와 웃음기, 패러디가 그의 주된 음악 코드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기린의 음악을 적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아티스트가 음악에 임하는 모습은 실로 진지하고 또 충실하다. 기린의 터치에는 유머보다는 오마주가 더 짙게 묻어난다.
콜래보레이션 음반 <The Funk Luv> 작업을 같이한 아티스트와 음반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서로 생각하는 게 많이 비슷한 젠라락(ZEN-LA-ROCK)이라는 일본 뮤지션이 있다. 그 뮤지션이랑 <The Funk Luv>라는 EP 앨범을 내기로 했고 한일 동시 발매를 앞둔 상태다. 음악적 공통분모가 뉴잭스윙이나 펑키한 음악이라 그러한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었고 전반적으로는 일본에서 진행을 많이 했다. 또 평소에 좋아하던 그루브맨 스팟(grooveman Spot)에게서 곡을 받게 돼 재밌게 작업하기도 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0년서부터 지금까지 오며 결과물이 많이 쌓였다. 작품을 낼 때마다 드는 감정이 궁금하다. 만족감도 느끼는 편인가.
매번 음악을 만들 때마다 많은 걸 배운다. 그리고 배운 것을 다음 차례에 어김없이 써먹곤 한다. 또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스타일적인 레퍼런스나 방향 같은 것도 많이 만나게 되면서 할 때마다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음반이나 음악을 다 만들고 나면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비슷한 걸 또 하기는 싫으니까. 이런 감정이 들 때에는 또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아무래도 스타일이 뚜렷한 음악을 지향하다보니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조금씩 고민을 한다. 처음에 1집을 발매한 뒤 리믹스 음반을 다시 낼 때에는 어느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렇게나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리믹스 앨범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뒤 2집을 만들 때에는 보다 편곡이나 보컬 부분을 탄탄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고민을 했다. 정작 그 무렵부터는 뉴잭스윙 자체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았다. 뭐랄까. 이렇게 얘기하면 내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웃음)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2집에서 다른 프로듀서를 기용한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나.
아니다. 1집과 2집 모두 여러 프로듀서들과 해왔다. 다만 프로듀싱의 비중을 나누는 비율의 측면에서 1집과 2집의 작업 방식이 다르다. 1집의 경우에는 디제이매직쿨제이 형이 리믹스와 편곡, 여러 작업들에 많은 도움을 줬다. 전반적인 작품의 방향성이나 완성도 설정에 형의 힘이 많이 실려 있었다. 반면 2집의 경우에는 프로듀싱을 내가 많이 주도했다. 본격적으로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보통 작곡은 어떻게 하나. 영감을 받는 방식이 따로 있나.
여러 가지다. 일단 멜로디나 가사를 쓸 때에 마음에 드는 코드웍이 떠오르면 곡을 좀 빨리 만드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편곡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영감이라 한다면, 특별하거나 대단하게 영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의 인간관계들이나 주위의 사소한 일들에서 주로 테마를 가져온다. 여러 평소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로 곡을 쓰는 게 좋다. 드라마나 시트콤도 결국 정말 사소한 사건들을 주제로 다룬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힙합 트렌드를 따라 신나는 파티나 스웩, 자랑 같은 것도 노래로 쓸 수는 있겠지만 내게 와닿는 주제는 아니라 잘하진 못 하겠다.
사운드 스타일링을 할 때 중점에 두거나 의도로 두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1집을 작업할 때엔 사운드에서 장르적인 특성을 잡아내려고 믹싱, 마스터링 할 때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2집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앞서 얘기했던 대로 더 좋게 들리자하는 의도를 갖고 작업했다. 예를 들어 1집은 사운드에서 좀 더 단단하고 살짝 먹먹한 부분도 있는데 2집은 사운드를 더 라이트하고 조금 펼쳐서 잘 다가가게끔 하려는 부분이 있다. 페스티벌 같은 큰 곳에서 틀거나 다른 트렌디한 가요들과 섞여있어도 특별히 무리가 없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사실 뉴잭스윙이 지금 들으면 소리나 음질 면에서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최고로 유행했던 장르라 당시의 최선으로 사운드를 뽑아내려 했을 테다.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의 대중들이 좋게 들리게끔 깔끔하게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믹스에 중점을 많이 두게 된다. 일부러 옛날 악기를 쓰고 그러진 않는다.
리듬파워나 던 밀스, 비프리 등 피쳐링으로 참여했던 래퍼들 모두 각자의 색이 뚜렷한데 기린의 음악에 들어오면 기린의 컬러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피쳐링에 가이드 같은 걸 하는 편인가.
나랑 나이가 비슷한 주변 친구들이 대체로 어렸을 때부터 이런 스타일을 들어왔던지라 내가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번씩은 해보고 싶은 욕구들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제안하면 다들 호감 있게 작업을 받아준다. 다만 내 색깔이 다소 튀는지라 자신들 각자의 앨범에서 내 스타일을 활용하기보다는, 내 앨범으로 들어와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가이드를 주거나 하진 않는다.
힙합 음악도 요즘 신을 보면 트렌드에 많이 맞춰가는 편이다. 그 가운데서 혼자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음악을 하고 있다. 외롭지 않나.
외롭다. 여름까지만 해도 혼자 여러 일 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여름에 'Summer holiday (‘97 in love)' 싱글 낼 때까지만 해도 홀로 고민하고 문제 있어도 딱히 얘기할 곳이 없었다. 일도 일일이 다 하고. 다행히 이번에 레이블 에잇볼타운(8Balltown)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랑 일을 같이 하게 됐다. 디지털 싱글로 단체곡이 곧 나오는데 멤버 각자 자기 일을 맡아 해오니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
(에잇볼타운의 싱글 '8BallTown (You are not alone)'은 12월 30일에 발매됐다.)
기린 ‘Summer holiday(’97 in love)’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예를 들어 편곡이 무너져서 다른 편곡을 해야 할 때나,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겼는데 일이 잘 안 됐거나, 문제가 생겨 일정이 늦어지거나 하는 문제들. 그리고 작곡에서부터 유통, 자료 제작, 자켓 제작 등 이런 일들을 다 혼자 해야 했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려면 쉽지 않다.
본토의 뉴잭스윙 뮤지션인 가이(Guy)나 키스 스웻(Keith Sweat), 테디 라일리(Teddy Riley) 같은 이들이 내는 사운드보다는 듀스 식의 한국적인 뉴잭스윙, 1990년대 댄스 사운드에 기린의 음악이 맞춰져있는 것 같다. 음악적 방향을 그렇게 설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방향을 일부러 맞췄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왔다. 물론 가이나 키스 스웻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많이 듣기도 하고 이들에게 많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막상 그 느낌을 받아 작업을 하면 조금 다르게 나온다. 습관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건지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경험이 있어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도 없이 자연스레 지금 내 음악들이 나오는 것 같다. 촌스럽게 하는 걸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촌스럽게 하고 있진 않지만 사람들은 1990년대 가요 풍의 이미지에서 오는 촌스러움을 기억하는데 이런 쪽에서 오는 갈등은 없나.
그런 쪽으로의 고민이나 갈등보다는 다른 종류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초창기에 유브이(UV)와 활동기간, 음악 스타일이 어느 정도 겹치다보니 '너도 웃기려고 이런 음악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나도 재밌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유브이가 그런 콘셉트를 갖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몸에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서부터는 스트레스로 고민이 왔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이런 고민을 잘 안한다. 또 내가 갑자기 멋있는 걸 한다고 해서 바뀔 문제도 아니고.
그러한 느낌 때문에 주변에서 “장난 식으로 음악 만드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을 것 같다. 2집 앨범 추천사에서도 이현도가 기린의 음악으로부터 '패러디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이)현도 형을 가끔 만나면 형이 그런 부분에 대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사실 당시 아티스트들은 최첨단을 따랐던 건데 요즘 후배들이 하는 걸 보면 조금 웃기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듯하다. 정작 현도 형이나 테디 라일리는 스스로 뉴잭스윙 같은 장르를 지금 와서 다시 만지지 않는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옛날 게 멋있고 좋아서 당시 사운드를 만들어보는 나와는 아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기린의 나이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을 놓고 보자면 음악에 일찍 빠진 편으로 보인다.
또래들 보다 조금 일찍 음악에 빠졌던 것 같다. 당시에 가요를 많이 들었다. 또 어머니께서 집에서 팝 음악을 많이 감상하셔서 깊게 듣지는 않았어도 팝 음악도 자주 접했다. 맨날 씨디 꺼내서 앨범 자켓 구경하고. 어렸을 때에는 뭐든 깊게 인식해 받아들이지 않나. 앨범 하나하나 열심히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 음악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을 듯하다. 2012년의 싱글 '뉴잭스윙 (Feat. 요요)'를 시작하는 '시대와 감성을 시간으로 비교하지마라'라는 가사도 같은 맥락에 있는 텍스트로 해석되고.
그 무렵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뉴잭스윙이 한창 유행했을 때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었던 애가 그런 것에 대해 왜 얘기하냐, 너보다 더 옛날에 나온 걸 왜 얘기하냐 그런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꼰대들 짜증나' 하면서 썼던 가사였던 거 같다. (웃음)
최근 <무한도전>의 '토토가'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이 복고에 테마를 둔 콘텐츠들이 유행을 이끌고 있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서 음악으로 복고풍의 작품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든 생각이 궁금하다.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끼리는 시기상 이 맘 때쯤 이런 유행이 오겠다고 계속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런 흐름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실제로 바뀐 것도 없었고. 옛날에는 유행의 파급력이 컸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커다란 흐름이라기보다는 잠깐잠깐 느끼는 감정의 움직임에 가깝다. 예를 들어 H.O.T. 장갑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막 팔고 많이들 샀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안 보인다. 소비하는 방법도 당시와 달라지고 무언가에 쉽게 매진하는 시대가 아니다보니 그런 것 같다.
협업 제의가 많이 오진 않았나.
피쳐링도 장르 상관없이 서너 번 정도 했던 것 같고. 다른 가수들 곡 작업도 했다.
중간에 잠시 언급했던 에잇볼타운(8BallTown) 레이블을 소개한다면.
여러 아티스트들이 소속돼있다. 싱어송라이터 재규어 중사, 프로듀싱 팀 위키즈(WEKEYZ), 디제이 플라스틱 키드(Plastic kid), 댄스팀이기도 한 요요(YOYO) 등이 있다.
향후 활동은 어떻게 계획돼있나.
재규어 중사도 EP나 미니 앨범을 낼 거 같고 플라스틱 키드랑 디제이 (김)윤우가 믹스셋을 만들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할 계획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여름에 하나, 가을에 하나 이렇게 두 번 앨범을 낼 거 같다.
끝으로 기린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들, 음악들에 대해 듣고 싶다.
일단 이현도의 1집 <Do It>을 가장 많이 들었고 듣고 있다. 팝쪽에서는 드루 힐(Dru Hill)의 1집 <Dru Hill>을 많이 들었고. 중고등학교 때 음반을 매일 들고 다녔다. 디제이 솔스케이프 형 음악도 자주 찾는다. 음악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해주는 이야기나 (솔스케이프) 형이 하는 행보, 행동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한다.
인터뷰 : 이수호 이택용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Dru Hill>28,900원(0%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