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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아침고요수목원, 고생길 보였지만 싫지 않은 모험이었어요”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보며 맞는 일상 『아침고요 정원일기』 펴낸 이영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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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시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영자 원장을 질투할 것이다. 매일 아침, 5천여 종의 식물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는 일상을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여름날 무더위가 잠깐 쉬어가는 찰나, 경기도 가평 축령산 자락에 위치한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았다.

아침고요수목원은 지난해 최고 연관람객 95만 명을 찍었다. 하기야 데이트 코스로 수목원 만한 곳이 있으랴. 숨 막히는 도시의 공기를 피해 산과 나무, 꽃을 만나기 위해 수목원을 찾은 사람들. 역시 표정이 달랐다. 그렇다면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꽃, 나무 부자인 이영자 아침고요수목원장의 얼굴은 어떠할까. 최근 『아침고요 정원일기』를 펴낸 이영자 원장은 타고난 느긋함이랄까, 주변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시선이 상대의 바쁜 시선을 멈칫하게 만들었다. 아침고요수목원과 함께한 지 어느새 18년, 이영자 원장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마주하는 숲과 정원 속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꿈을 꾸고 나니 그 곳에 내가 있었다

“어릴 적, 방학숙제 외에는 일기라는 걸 써본 적이 없어요. 수년 전, 아침고요수목원을 처음 개장했을 때는 매표소에서 표도 받아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니, 좀처럼 쉬는 여유도 부릴 수 없었고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정원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아침고요에서 만나는 자연의 변화들을 눈으로만 보고 잊기는 너무 아쉽더라고요. 올 봄은 유난히 늦게 왔잖아요. 나무들이 힘이 없는 것 같아 안쓰러웠는데 어느새 새순이 나는 걸 볼 때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매일 아침, 꽃을 보며 눈을 뜨고 나무에게 인사를 건넨다는 이영자 원장. 식물들의 안부는 그에게 일기예보만큼이나 중요하다. 아침고요수목원의 태생은 20년 전 남편과 함께 방문한 캐나다 빅토리아 섬의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s)에서 시작된다. 당시 원예미학을 공부했던 남편은 대한민국에 제대로 조성된 정원이 없다는 것을 오랫동안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세계 유수의 정원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부차트 가든을 본 순간 막연히 아침고요수목원을 구상했다. 아침고요(Morning calm)는 두 부부가 일찍부터 지어놓았던 이름이다. 여유 자금 하나 없이 오로지 열의로 시작한 아침고요수목원. 하루 관람객이 단 100명이라도 채워진다면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정원이다.

잣나무_ⓒ아침고요수목원

“정말 막연한 꿈이었어요.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처음에는 농담처럼 수목원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죠. 그 때만해도 한국에 수목원이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은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이 바뀐 광릉수목원 정도나 있었을까요. 그런데 남편은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준비도 없이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엄청난 고생이 눈에 보였는데 이 모험이 싫지만은 않았어요. 남편의 의지가 워낙 강했으니까 적극적으로 반대는 안 하고,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고 했죠. 그러다 땅을 보러 축령산 자락에 왔다가,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한눈에 반해버렸죠. 꿈을 꾸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수목원 앞에 제가 서있더라고요.”

지금은 10만 평 부지이지만 개원 초창기에는 5만 평으로 시작했다. 설립자 한상경, 이영자 원장 부부는 화초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를 일곱 동을 짓고, 나무를 심는 일에서부터 청소, 매표까지 직원 4명과 함께 고요한 아침의 수목원을 만들어갔다.

“1996년 미완성의 상태로 개원을 했는데 정말 사람이 이렇게나 안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수목원 오는 길에 팻말 몇 개 붙인 것밖에 없으니 바깥 세상과는 동 떨어진 느낌이었죠. 정말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들어온 사람 몇 명이 전부였으니까요. 아무래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 남편이랑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신문사를 찾아가는 일이었어요. 나름의 보도자료를 만들어서 직접 기자들을 찾아갔죠. 자리에 없으면 자료랑 메모를 남겨 놓고, 꼭 한 번 방문해달라고 청을 했죠. 그런데 며칠 뒤, 조선일보 기자 한 분이 취재를 오셨어요. 사진도 찍고 갔는데 신문에 날 거라고는 기대를 안 했어요. 완성된 수목원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인적도 드물었거든요.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매표소에 앉아있는데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오는 거예요. 깜짝 놀라서 보니까 모두 신문 한 장을 오려서 들고 오더라고요. 기사가 났던 거죠.”

처음으로 관람객 100명을 넘은 날, 1996년 6월 6일 현충일이었고 총 관람객은 666명이었다. 이영자 원장에게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하루다. 이후 아침고요수목원은 점차 유명해졌고 영화 <편지>의 배경이 되면서 젊은 관람객들까지 줄지어 수목원을 찾았다. 2006년부터는 야간 조명 점등 행사 ‘오색별빛정원전’을 열어 겨울밤의 낭만을 선사하고 있다.


하경정원_ⓒ아침고요수목원

6월, 9월 수목원이 가장 아름다워요

매일 아침 일기예보를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영자 원장. 물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일기예보를 보는 일이다. “TV 프로그램 중에 가장 즐겨보는 게 일기예보에요. 식물들 건강을 챙기려면 부모로서 꼭 봐야지요. 날씨가 궂은 날에는 얼마나 신경이 많이 쓰이는지. 영어 단어 ‘care’라는 말은 돌봄도 되고 염려의 의미도 있잖아요. 딱 그런 것 같아요. 애정을 갖고 돌보는 대상인 만큼 염려도 큰 거죠.”

아침고요수목원에는 현재 자생식물, 외래식물을 포함해 총 5천여 종의 초본, 목본,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야생화 정원과 무궁화동산에는 우리나라 자생 야생화 1천여 종이 있고, 5월 말과 6월 초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품종인 독일계 아이리스 800여 종이 피어난다. 그 밖에도 백두산의 희귀 야생화 300여 종과 고산식물 230여 종, 무궁화 200여 종을 포함해 1천여 종의 다양한 수목들이 정원을 아우르고 있다.

“수목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6월 초, 실록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때에요. 늦게 나오는 잎도 피고 잔디도 풍성하고 나무들에 하얀 꽃이 피는 계절이 참 아름다운 것 같아요. 『아침고요 정원일기』에도 썼지만 정원에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걱정 거리가 있고 화가 날 때, 산책을 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걸 느끼죠. 때때마다 어울리는 식물들이 말을 걸어와요. 위로의 메시지를 주고 기운이 없을 때는 힘도 주고. 잔뜩 찌푸리는 일이 있어도 꽃이 나를 보고 웃어주니까 잊는 거죠(웃음).”


지금처럼 방문객이 많지 않은 시절, 이영자 원장은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말을 걸었다. 가끔 어두운 표정으로 수목원을 거니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특히나 미소로 화답했다. “초창기 때 정말 잊을 수 없는 분이 있었어요. 목사님이셨는데 이름은 잊어버렸네요. 교회에서 뭔가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운 일을 겪고 있었는데 일주일 넘게 여행을 하면서도 해결이 안 돼서 무거운 마음으로 수목원을 찾으셨대요. 힘 없이 터벅터벅 걷던 중에 성서산책로에서 십자가를 보는 순간, 그동안 마음 고생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녹아지고 용서가 되고 평안을 얻으셨다며, 눈물을 쏟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곳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면서 한 시간을 넘게 이야기했는데 이후에 지인들을 데리고 자주 오시곤 했어요. 이런 관람객들을 만날 때, 수목원을 하는 보람을 느껴요.”

치유의 장이 되는 곳. 아침고요수목원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비전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식물을 보러 오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안을 주기를, 이영자 원장을 바라고 있다.

“많은 분들이 아침고요수목원을 사랑하고 또 자주 찾아주시는 건, 이 정원이 품고 있는 또 다른 거대한 정원, 즉 자연의 울타리가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거대한 정원 속의 정원, 이게 아침고요수목원의 정의가 아닐까 싶어요. 어디를 봐도 그림이 되잖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경관 속에 수목원이 자리할 수 있었다는 게 저희에게는 큰 혜택이고 축복인 거죠.”

대학에서 교육심리를 전공하고 상담심리학을 강의한 이력이 있는 이영자 원장은 5년간 경기도 남양주시 청소년상담센터에서 소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상담을 전공한 탓인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어주는 능력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길_ⓒ아침고요수목원
 나의 꽃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향기로워서가 아니다

 네가 나의 꽃인 것은  이미 내 가슴속에
 피어 있기 때문이다
                                                                     아침고요수목원 설립자인 남편 한상경이 아내 이영자 원장에게 고백하는 시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남편을 따라 결혼해서 정원사가 되고 또 수목원장이 된 지도 이제 곧 20년이에요. 요즘은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이 많이 쓰여요. 이렇게 아름다운 수목원을 선물해준 남편인데, 회복되길 기도하고 있죠.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는 정원을 큰 그림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하나 식물을 찬찬히 보시라고 말씀해드리고 싶어요. 찬찬히 음미하고 관람하다 보면 식물의 아름다운 특성이 눈에 들어오고 알아져요. 식물들의 세밀한 목소리도 들을 수 있죠(웃음). 지금은 무덥지만 9월 중순쯤, 쑥부쟁이 같은 가을꽃이 피면 그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10월에는 사람이 많아서 구경을 잘 못하시거든요. 9월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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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고요 정원일기 이영자 저 | 샘터
1996년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 자락에 문을 연 아침고요수목원. 10만여 평의 대지에 약 5천여 종의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진 이 ‘낙원을 꿈꾸는 정원’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수목원이다. 아침고요수목원 이영자 원장이 출간한 《아침고요 정원일기》에는 20여 년 가까이 아침고요의 수많은 꽃과 나무들을 가꾸고 자연의 섭리에 따라 순응하며 울고 웃으며 함께한 소박한 일상이 담겨 있다. 아침고요수목원에 자리 잡은 20여 개의 정원과 그곳에 담긴 꽃에 대한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도시에서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에 진심이 담긴 생생한 자연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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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아침고요 정원일기

<이영자> 저12,420원(10% + 5%)

아침고요수목원의 365일, 정원의 일상을 기록하다 아침고요를 개원하고 난 후 나는 정원에서 김을 매다가 손님이 오면 매표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식당에서 밥도 만들어 팔기까지, 일인다역의 전천후 원장을 맡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은 두렵지만 가난한 심정을 안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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