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바이버 최초 아시아계 우승자의 성공 스토리 - 권율『나는 매일 진화한다』
공황장애, 백인사회의 편견 극복 글로벌 리더가 전하는 도전의 메시지
인종의 용광로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무수한 갈등 속에서도 흑인 대통령까지 등장하며 평등을 기반으로 한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 앞에 온 몸으로 맞선 이가 바로 권율이다. 미국 최고의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서 그는 최초의 아시아계 우승자가 됐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종의 용광로라고 일컬어지는 미국……. 무수한 갈등 속에서도 흑인 대통령까지 등장하며 평등을 기반으로 한 많은 변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러한 편견 앞에 온 몸으로 맞선 이가 바로 권율이다. 미국 최고의 리얼리티 쇼 ‘서바이버’에서 그는 최초의 아시아계 우승자가 됐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항상 나의 가능성을 한가지에만 가두지 않았다”
2006년 ‘서바이버’ 우승 이후 책이 나오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네요.
저는 사실 책을 쓰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웃음). 책이라는 건 좀 더 살아보고 나이가 든 뒤에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죠. 하지만 서바이버 우승 이후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메일과 편지를 받으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특히 한국 사람들의 경우 정신적인 고통이나 심리적인 문제를 겪으면서도 누군가와 상의하거나 나누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특히 지난해 강연회를 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의 힘겨움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었죠. 한 친구는 만약 자신들이 어렸을 때, 고통을 겪을 당시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됐을 거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어요. 책을 쓴 것은 아직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나의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었죠.
책을 통해 성공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요. 드러내기 쉽지 않은 약점과 고통까지도 털어놓은 이유는 뭔가요.
제가 처음 우승한 이후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저 사람 처럼 되라’며 부담을 줬다고 들었어요. 저는 책을 통해 제가 그렇게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죠. 때론 약하고 힘들어 했던 기억도 많거든요. 그런 사실을 공개한다는 것이 물론 처음에는 두렵고 부끄러웠죠. 하지만 내가 극복한 과정을 나누지 않는다면 유명해진들 무슨 상관이냐 싶더군요.
서바이버 출연을 결정했을 당시 그리고 촬영에 임했을 때 기권하고 싶은 유혹은 없었나요.
사실 저는 진짜 하기 싫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았거든요(웃음). 게다가 TV에 나오고 24시간을 카메라에 찍힌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하늘이 준 기회인데, 또 내가 진화하고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인데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버린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졌죠. 프로그램 직전까지는 솔직히 고민했지만,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포기하는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도 싫었고 한국 사람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이 싫어 한 번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제작진은 출연자의 캐릭터를 정할 때 권율 씨에게 공부벌레 아시아인 이미지를 씌우려고 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이미지를 어떻게 바꾸셨나요.
전 이미 그 이전부터 그런 편견과 접해왔어요. 그래서 우선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죠. 그리고 아시아계도 사람들을 이끌 수 있고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줬어요. 서바이버 와중에는 우리 팀과 상대팀 출연자가 반반이 된 상황에서 우리 팀 출연자 2명이 배신을 하고 상대팀으로 가버렸죠. 불리한 순간이었지만 저는 팀원들을 추슬러서 결국 승리로 이끌었죠.
서바이버 우승 후 바뀌게 된 것은 무엇인가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단지 서바이버 우승은 제가 이제까지 해왔던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죠. 다른 점이라면, 피플지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50인’에 선정 된 정도에요(웃음). 또 한 가지는 변화라면, 제 우승이 미국 내 아시아계 사람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해요.
그는 “누구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나는 절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민 1세대 가정에서 겪어야 했던 갈등과 인종차별 등의 혼란은 어린 그를 항상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 것이다. 결국 그는 8세 무렵에 공황 장애와 강박증, 폐쇄 공포증 경향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바이버 우승자였던 그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는 대인 공포증까지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인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한두 살 위인 몇몇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괴롭혔어요. 제게는 ‘멍청한 동양인’이라며 소리를 질렀죠. 용변을 보고 있으면 문을 계속 발로 찬다던가 문 너머로 침을 뱉기도 했고요. 결국 한 친구가 선생님에게 알리기 전까지 전 그들의 제물이 돼야 했죠. 화장실 사건은 결국 끝났지만 전 이미 정신적인 충격을 제대로 받은 뒤였어요. 그 일로 저는 지금까지도 사실 친한 친구나 형이라도 옆에 누가 있으면 용변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됐죠.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극복하기 어려웠어요.
지금 미국 내에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변화가 있을 듯 한데요.
제 생각에는 꽤 많이 변한 것 같아요. 그러나 아직도 미국 백인 사회의 인식 중에는 아시아계는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은 할 수 있지만 리더는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유리천장’이라고 해서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제가 다시 TV쇼로 가게 된 것은 그런 인식을 깨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미국에서 자라며 한국 스타일의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던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분이셨어요. 서바이버에 출연하는 것이나 대학 때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는 것도 반대하셨죠. 저는 달랐어요. 공부만 해서는 안되고 운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여러 가지로 충돌이 많았어요(웃음). 물론 부모님을 존경해요. 하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산다면 정작 제가 행복하지지 않잖아요. 그렇게 되면 다시 부모님과 문제가 생길 거예요. 형의 경우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됐지만 원하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트러블이 좀 있었어요. 전 제가 하는 일에서 행복감을 느끼면 부모님도 자랑스러워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형과는 미국 내 한인 2세로서 살아가는 방식이 좀 달랐을 듯 한데요.
형은 첫째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기대가 더 컸어요. 아마 부담이 됐을 거예요. 반면 저는 조금 더 자유로웠죠. 하지만 형은 잘 해나갔어요. 제게는 어린 시절부터 롤모델이었죠. 항상 의지할 수 있는 존재랄까요. 재미있는 것은 형이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됐지만 지금은 의사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저 역시도 변호사 공부를 했지만 지금은 방송인이 됐어요. 우리 부모님은 저희를 보고 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요(웃음).
한국에서 부모님들은 대놓고 칭찬은 안하셔도 은근히 자녀 자랑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권율 씨 부모님은 어떠세요.
(웃음)우리 부모님은 미국 신문에 제가 나와도 별로 대단하게 생각안하세요. 그런데 한인 신문에 작게 나온 것은 정말 좋아하시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그러세요. 어려서부터 상 받은 것은 다 집에 장식해 놓기도 했고요. 제가 보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부모님이 저를 아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것은 알아요.
서바이버 출연에 대해서 반대 하신 부모님의 생각은 지금 많이 바뀌었을 듯 한데요.
부모님은 제가 이미 좋은 커리어가 있는데 굳이 나갈 이유가 있냐고 하셨어요. 다칠까봐 걱정하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서바이버를 보시고는 저한테 미안하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께 미안하다는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어요. “네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 이제 알겠다”하시며 자랑스럽다고 말씀해주셨죠. 돈이나 명예보다 아버지가 저를 알아주는 것이 가장 기뻤어요.
서바이버 출연은 아내 소피를 만나게도 했는데요. 부모님과 아내의 첫만남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우리 부모님은 제가 한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원하셨어요. 그것 때문에 부모님과 많이 다투기도 했죠. 그래서 예전에는 일부러 한국 사람과 데이트를 거의 안했어요(웃음). 그러다 부모님과 약속을 한 게 있어요. 어머니가 소개시켜준 한국계 여성을 한 번 만나겠지만, 대신 한국 사람과 결혼하지 않더라도 반대하지 마시라고 했죠.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 마음이잖아요. 소피는 마음도 착하고 한국 여성과 다름없이 부모님께 다가갔어요. 게다가 소피와 결혼 할 즈음에는 제 나이도 있고 해서 빨리 결혼하길 바라셨던 터라 큰 반대는 없었어요(웃음). 대신 손주를 더 바라셨죠. 반대로 소피의 부모님과의 관계가 좀 어려웠어요. 한국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막 대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있던 분들이라……. 그래도 지금은 아주 친해요(웃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을 해 오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권율 씨에게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어떻게 좋은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냐는 질문도 있었죠(웃음).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제 이야기를 듣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이었어요. 또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인종의 벽이 허물어지는 느낌을 받았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했는데요. 앞으로의 계획들은 무엇인가요.
제 친한 친구가 죽은 후에 계속 골수 기증운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또 한국계를 비롯해 아시아계 어린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링 강연회도 이어가고 있죠. 한국계로서 구상하고 있는 부분도 있어요. 같은 지역 내에 한인들 간에는 유대가 강하지만 다른 지역 간에는 서로 교류가 안되고있는 게 현실이거든요. 저는 각 지역 한인 조직 간에 교류를 하며 네크워크를 형성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요. 곧 한인 대표들과 백악관 사람들 간에 처음으로 대화를 하는 자리를 가질 예정이에요.
한국 청소년들 역시 상황은 틀리지만 시련 속에 고통 받는 이들이 있을 텐데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모두 어려운 시간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거죠. 저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바꾸려는 노력을 이어가길 바라요. 한국에서는 특히 심리적인 고민을 상담 받는 걸 꺼리는 인식이 있는데, 대화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받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국 또한 최근 국제결혼이 증가하면서 이민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 내에서도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 간에 차별 문제가 심화될 듯 한데요. 한국인들에게 차별 문제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피부색이나 출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보고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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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C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서바이버의 최초 아시아인 우승자이자 전방위적 커리어를 지닌 권율의 자기계발 에세이이다. 저자는 2006년 서바이버에서 우승한 후 대부분의 상금을 사회에 기부하고, 2년동안 봉사활동과 골수기능 캠페인을 벌였다. 하버드, 스탠퍼드, 골드먼삭스, IBM, 맥킨지 등 미국 최고의 대학과 기업을 대상으로 100여 곳에서 강연회를 열었으며, 위안부 결의안의 미국 의회 통과, 아시아 빈곤 퇴치 등 사회문제에도 적극적 참여하면서 미국의 차세대 오피니언 리더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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