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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 - 『파씨의 입문』

“저는 제 소설 속 인물들이 특별히 선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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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는 본능적인 감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만약, 왜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섯 개의 옹기는 무슨 의미죠? 왜 옹기인가요? 묻는다면, 긁적이다가 "저도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해버린다는 거다.

어째서 파씨냐고 묻는다면, 파씨니까


황정은 작가는 본능적인 감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 만약, 왜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섯 개의 옹기는 무슨 의미죠? 왜 옹기인가요? 묻는다면, 긁적이다가 “저도 모르겠는데요.”라고 답해버린다는 거다. 배경과 인물을 설계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하나의 건축물처럼 세워진다고 생각했는데, 황정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는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인상, 이미지, 인물들을 스케치해내는 듯했다. “어떤 인물이나 사물을 보고 그게 움직이기를 지켜보는 편이에요.”

그가 삶 속에서 마주쳤던 존재들, 풍경들이 인식되고, 축적되다가 어느 순간 불쑥 그 존재를 드러내는 모양이었다. 황정은 작가가 말없이 그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표정이 상상이 되었다. 그 존재는 꿈틀꿈틀 움직여서 한밤중 삼촌 집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는 고씨가 되고(「야행」), 죽은 남편 몸에 붙어 다니는 원령이 되고(「대니 드비토」), 삼 년째 끝도 없이 낙하하는 존재가 되고(「낙하하다」), 옹기를 찾아 떠나는 꼬마(「옹기전」)가 됐다.

주자(走者)는 파씨. 파씨의 이름은 파씨. 어쨰서 파씨냐고 묻는다면, 파씨니까. 어째서 파씨고 모조고 맨이고 팽인가, 묻는다면 파씨는 파씨고 모조는 모조고 맨은 맨이고 팽은 팽이니까 파씨는 파씨,라는 대답이 가능할 뿐, 파씨는 파씨일 뿐, 파씨로서 발생하고 부단히 파씨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사라질 뿐, 그뿐입니다. - 『파씨의 입문』

어째서 이름이 파씨고, 어떻게 옹기가 말을 하고,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느냐고 채근해 물어보고 싶지만, 황정은 작가니까, 그래서 그럴 테니까, 대답은 이미 들은 거나 마찬가지므로, 그런 것들은 차치했다. 환상적인 설정이 종종 등장하는데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상황, 띄엄띄엄 쓰인 문장인데도, 꽉 차 있는 이야기. 낯선 이름에다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존재임에도 성큼 마음에 다가오는 인물들은 무엇 때문일까? 궁금했다. 『파씨의 입문』을 통한 황정은 세계의 입문은 매혹적이었다.




이 도시는 살아갈 만한 곳인가


『파씨의 입문』은 삼 년 동안 계간지에 발표했던 단편 소설 아홉 권을 묶은 소설집이다. 황정은 작가는 “각각의 소설을 쓰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고, 딱히 연관성을 생각지 않고 써왔는데 묶어놓으니 어딘지 어감이 비슷하네요”고 말했다. “이제까지는 안쪽만 바라보고 글을 써왔다면, 지금은 약간 방향을 틀어서 안쪽을 의식하면서도 바깥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백의 그림자』라는 경장편을 쓰면서, 바깥을 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고 할까요.”

2010년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은 『백의 그림자』는 40년 된 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연인 은교와 무재의 이야기다. 재개발로 상가가 철거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폭력적인 세계 속에서 선량한 인물들의 삶을 통해 이 세계가 살아갈 만한 곳인지 묻는 소설이다.

“이전엔 내면에 집중했어요. 내가 느끼는 것. 내가 쓰고자 하는 것.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내 안의 무언가를 다루는 데 굉장히 열중해 있었는데, 『백의 그림자』를 쓰면서 내가 갖고 있고, 체험했던 어떤 것들이 바깥과 연결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소설집에서 도시의 이미지는 여러 작품의 배경이 된다. “내가 사는 도시가 서울이니까요. 「양산 펴기」라는 단편은 <서울 도시를 말하다> 테마집 청탁을 받고 쓴 단편이었고, 이 도시가 어떤 곳인가 가장 고민을 했던 소설은 「옹기전」이었어요. 예전부터 세계가 그다지 완전한 체계로 굴러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제 생각보다도 훨씬 허술하고 많은 고통이 깔렸구나, 라는 걸 느꼈고요.”

「옹기전」의 다섯 개의 옹기를 두고 용산 희생자에 대한 알레고리가 아니냐는 추궁을 받기도 했다지만,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상관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반드시 그 얘기라고는 할 수 없어요. 글을 쓰는 데엔 여러 가지 동기가 있지만 ‘쓰고 싶다’라는 의지는 여전히 제게 일차적인 동기입니다. 소설 쓰기는 상당히 개인적인 작업이라서 쓰는 동안엔 독자를 생각할 수 없어요. 내가 작가라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다, 라거나 써야 한다, 라는 생각도 마찬가지고요. 옹기전의 경우, 저도 시민으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일들, 전체 속의 개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일들, 이런 것들이 반영된 단편이고요.”


소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나 목적


원령, 고양이, 곡씨 노인 등 소설 속 인물을 두고 ‘사회의 약자’라고 통칭하는 기존의 말들에도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존재들을 약자라고 호명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고요. 저는 그들이 간신히 존재한다고 생각지 않아요. 그 삶 자체도 나름의 입체감을 갖고 있고요. 제겐 상당히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화자를 모델 삼은 경우도 있고요.”

사건을 지켜보고 이야기하는 화자들은, 사건에 어떤 개입도 관여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미하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묻자 작가는 “내가 소설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이 아닐까”라고 답했다. “소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아주 미미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일단 그 정도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소설 쓰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어요.”

작년이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소설을 왜 쓰는가?’라는 고민이 어느 순간 ‘아, 나는 왜 쓰고 있지……’ 자조적인 고민으로 바뀌어 휘청거리기도 했다고. 황정은 작가는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세계가 이렇게 굴러가고 있는데, 그게 좀 달라졌으면 좋겠고, 그런데 제가 소설을 써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러던 중 『백의 그림자』를 읽은 분이 이런 소감을 전했다. “전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다니던 세운 상가를 지나가게 될 때, 한 번쯤 그 장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 장소에 있었던 것들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고요. 그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더러 들었는데 차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너 이것에 관해 생각해봐’ 라는 강요는 사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설이라는 간접 경험을 통해, 여태까지 생각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여태 이렇게 생각해 왔던 것을 저렇게 한 번 생각해보는 경우도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에 역할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것이 되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그걸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더 무기력하고 절망하게 되죠. 그렇다고 그 상태에 잠겨 있다가는 내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세계에 동참하고 있는 것 같고, 동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뭔가 발언하고 싶고, 그 발언의 형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건 의지라기보다는, 심정에 가깝기도 하고요.” 그래서 황정은 작가는 계속 쓸 생각이다.

“세계는 허망하고 대체로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백의 그림자』가 그 첫 번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요. 제 경우, 세계를 보는 시선이 밝지 않은 편인데, 그렇다고 우리 다 망해갈 거야, 다 같이 망해가자,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만지며 살아가면서 텍스트로는 우리 망해가자, 그럴 순 없잖아요. 실재 세계를 살아가는 제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필요하고요, 그걸 좀,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황정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마냥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짧은 대화에 인물들의 선하고 투명한 성품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계는 돈과 욕망으로 굴러감에도, 이 소설 속에는 이런 인물들이 있다.

“선하다고 하셨지만 저는 제 소설 속 인물들이 특별히 선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어디엔가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터프하게 살고 싶다


작가가 되어서, 그녀는 고양이었다가, 디디였다가 도도였다가 파씨가 된다. 작가이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황정은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서 굉장히 다양한 정서나 심정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거죠. 어떤 인물이 처한 상황을 쓰려면, 일단 그 인물이 그 상황 속에서 뭘 느꼈는지, 작품 속에 문장으로 언급이 안 돼도 제가 그걸 다 겪어야 하니까.”

황정은 작가는 『파씨의 입문』 마지막에 이런 작가의 말을 남겨두었다.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다’ “나름의 중심을 지키면서 휩쓸리거나 절망하고 싶지 않았고요. 생활도 문학도 꿋꿋하게 해내며 살고 싶다, 이런 의미랄까요.”

황정은 작가가 말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세계는 어깨에, 혹은 손등에 포개지는 손바닥 같은 느낌이다. 손바닥만큼의 온기가 사람들을 끓어오르게 하거나, 차가운 마음을 금세 녹이지는 못하겠지만, 그만큼의 온기라서 소중하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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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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