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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선 치르던 전날 < PD수첩 >에 BBK고발 보도를 내보낸 연유는…”

조남주 『귀를 기울이면』- 방송국 그만두고 소설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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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진실이란 무엇이며, 언론이 진실을 왜곡할 때 우리는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이에 대해 10여 년간 MBC < PD수첩 > 등의 시사고발프로그램 작가를 맡아오며 진지하게 고민한 이가 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그녀는 소설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송작가 대신 소설가의 길을 택한다.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조남주 작가를 홍대의 카페에서 만났다.

MBC노조가 총파업에 돌입했다. MB정권이 들어서고 5번째 파업이다. MBC보도국 기자들에 의해서 시작된 이번 파업은 임금이나 복지에 관한 것이 아니다. 파업의 이유는 오직 하나. 공정하고 바른 뉴스를 내보내 달라는 것이다. “공영방송 ‘MBC’가 ‘MB씨’의 방송이 되었다”며 2월 1일, 영하 10도의 추운 날씨에 4백여 명의 노조원들은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과연 진실이란 무엇이며, 언론이 진실을 왜곡할 때 우리는 무엇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이에 대해 10여 년간 MBC < PD수첩 > 등의 시사고발프로그램 작가를 맡아오며 진지하게 고민한 이가 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그녀는 소설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리고, 방송작가 대신 소설가의 길을 택한다.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가의 길로 들어선 조남주 작가를 홍대의 카페에서 만났다.


BBK고발보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방송작가에서 소설가로 변신한 조남주 작가는 여리고 차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시사고발 프로들의 날카로운 내레이션이 쏟아져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말투 하나하나에 상냥함에 묻어났다. 하지만 그 상냥함 속에는 에두르지 않고 핵심으로 바로 돌진하는 과감성이 숨어 있었다. 그런 상냥함과 과감성의 변주가 만들어낸 그녀의 첫 소설 『귀를 기울이면』은 진짜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그녀의 열망이 그대로 묻어있다.

“그렇다고 논픽션이 진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에요. 시사고발프로그램도 나름의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하는 역할도 크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 저한테는 일상이 되고 밥벌이가 되다 보니 프로그램과 출연자를 대하는 저의 진실성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내가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고발하는 것인지, 단순히 일정에 쫓겨서 방송분을 채워나가는 것인지 모호할 때가 있었죠.”

조 작가와 인터뷰를 할 당시는 MBC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미 조 작가는 이러한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인터뷰 시에 MBC문제를 거론했었다. 이번 MBC 보도국의 진실 왜곡문제는 쉽게 진정이 안 될 것이라는 견해였다. 아니나 다를까, MBC노조의 파업이 보도국을 넘어 시사교양국과 예능국으로까지 번졌다. 그리고 현 정부가 언론탄압을 가하는 대표적인 프로로 꼽힌 것이 시사교양국에서 제작하는 < PD수첩 >이었다.

조 작가는 10년 전 MBC에 < PD수첩 > 자료조사 작가로 입사하여 2007년 대선 시엔 < PD수첩 >에서 대본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대선 바로 전날 < PD수첩 >에 BBK보도를 내보내는 간 큰 짓(?)을 저지른 것 역시 그녀의 의지에서 시작했다. 조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대선 전날 BBK보도를 내보내고자 한 것일까. 조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때 못다 나눈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대선이라는 중요한 선거에 앞서 국민이 후보들의 여러 가지 면모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랐어요. 제가 아이템을 제안하고 대본을 쓴 것은 맞지만, PD와 스태프들의 의지가 뭉쳤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BBK사건을 다루며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고자 한 건 아니었어요. 당연히 알려야 하는 일이기에 사건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종합해서 내보내는 데 주력했어요.”

그래서일까 MB정권이 들어서고 유난히 < PD수첩 >에 대한 검열은 강화되었다. < 시사IN >의 보도에 따르면 PD수첩의 팀장이 기자들의 수첩을 몰래 검열하는 사례까지 있었다고 한다. 조 작가는 MBC노조 총파업 사태에 대한 씁쓸함을 토로했다.

“시사고발프로그램 회의현장은 논쟁의 연속이에요. 하나의 아이템을 놓고 많은 의견이 엇갈려요.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좋은 보도가 탄생하는 거지요. 그런데 그런 논쟁을 막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탄압하는 거예요.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지와 소신이 관철되었으면 해요.”

조 작가는 MB정권이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의 출산과 함께 MBC를 나오게 된다. 그 이후 빠르게 변질되어가는 MBC의 보도행태를 보며 방송국으로 돌아가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굳힌다. 소설은 비록 허구일지언정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매체였다. 더불어 소설은 허구라는 비워진 공간을 통해 각자의 진실을 대입해볼 수 있는 마음의 통로와 같았다.


소비자고발프로그램에서 느낀 절망감


조 작가가 방송작가 시절에 구성한 프로그램 중에는 소비자고발 프로그램도 있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조 작가는 의욕에 넘쳤다. 명문여대의 사회학과를 졸업한 조 작가는 정의감에 불탔고 고발 프로는 그녀의 적성에도 잘 맞는듯했다. 그리고 그녀가 쓴 소비자고발 프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필치는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그녀의 펜이 스치고 간 업종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하지만 임신하고 아이 엄마가 되어갈 무렵 불현듯 자신의 일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제가 직접 취재를 따라가거나 사람을 대하기도 하지만, 촬영된 영상으로 내용을 전달받는 경우도 있었어요. 저는 제가 보고 전달받은 사실을 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고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사람들도 가족이 있고 사연이 있을 텐데, 그런 이면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잖아요. 그리고 제가 고발한 사람 중에는 악의적인 사람도 있지만,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라기 보다는 단순히 타성에 젖고 무감각해져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도 있었어요.”

갈등은 갈수록 심해졌다.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던 대본은 한 줄 써내려가기가 어려워졌고 내면적인 갈등은 심해져 갔다. 그리고 갈등은 누룽지탕 고발보도에서 더욱 심해졌다. 몰래 촬영된 영상으로 본 백반집은 깨끗해 보였고 주인집 아저씨의 인심도 후해 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서비스로 나온 누룽지탕이었다. 손님이 남긴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잘했다는 건 아니에요.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을 재활용하는 건 절대 잘한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몰래카메라로 찍히고 있다거나 조사당하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카메라와 단속반이 들이닥치는 건 평범한 사람에게는 굉장한 충격이에요. 물론 그 사람들이 잘못했고 개선해줘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일반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큰 고통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런 우유부단한 생각으로 방송일을 하는 건 힘들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서툴더라도 그 안에 숨겨진 사연과 관계를 보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에겐 그게 소설이었어요.”

조 작가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조 작가의 여리고 따듯한 심성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 많은 소비자프로그램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조 작가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자이크 처리되거나 가려진 얼굴 너머로 변명을 쏟아내는 악덕 업주를 보며 분개한 기억은 있어도, 그들이 방송이라는 권력 앞에 하잘것없는 소시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이 내뱉은 변명의 일부는 두려움과 공포의 주절거림이라는 것을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방송이 보여주는 것만을 믿고 따라왔던 것일까.


소설에서 진실을 찾다


물론 소비자고발프로그램에 나오는 많은 업주가 처벌이 필요한 파렴치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다. 쉽게 일반화하고 던져주는 대로 선악을 구별 지어버리는 몰지각함을 경계해야 한다. 그래서 소시민의 현실적인 비극을 다룬 조 작가의 『귀를 기울이면』은 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귀를 기울이면』은 서번트 증후군에 걸린 소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조리와 소외를 다루고 있다. 속물적인 욕망에 시달리는 세계에 가치의 잣대를 대기보다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 경청하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가 성숙하다.

조 작가는 고발하고 심판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청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경청한 것을 권력이 아닌 마음을 통해 걸러내서 글로 옮기게 되었다. 그렇기에 매주 쏟아내던 대본과는 달리, 소설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 작가는 2년간 『귀를 기울이면』에 매진했다.

“제 딸 도윤이가 올해로 네 살이 되었어요. 육아와 창작을 겸해야 해서 시간적인 어려움이 있었어요. 1년간은 아이가 잠든 밤에 한두 시간씩 글을 썼고, 이후 1년은 아이를 오전에 잠깐씩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글을 썼어요. 그런데 그런 어려움은 누구나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많은 작가분들이 다른 일을 겸하거나 강의를 하시면서 글을 쓰시잖아요.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흔히 창작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한다. 단편이 아닌 장편으로 신고식을 치른 조 작가는 그간 얼마나 큰 고통을 이겨냈을까.

“안 그래도 아기 엄마인 친구들이 자주 물어보더라고요. ‘사람들이 창작의 고통, 창작의 고통 그러는데 어땠느냐’고요. 그래서 ‘육아의 고통만 한 건 없다’고 말해줬어요(웃음).”


조 작가는 엄마이자 소설가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그녀가 귀를 기울였던 이야기에 이제는 우리가 귀를 기울여줄 차례다. 때로는 작은 속삭임이 거대한 웅변보다 힘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저는 글재주를 타고난 사람도 아니고, 소설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에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어요. 누군가 힘겹게 뱉은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을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작가소개




조남주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MBC시사교양국에서 불만제로, 피디수첩, 화제집중, 생방송오늘아침 등의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작가 일을 했다. 그러다 MB정권이 들어서고 방송국을 나와 소설에 매진하여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제17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현재 4살 난 딸을 키우며 차기작을 준비 중에 있다.


 

귀를 기울이면 글 조남주 | 문학동네

『귀를 기울이면』은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다. 모자라고 아둔한 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의 비범한 재능이 발견되는 순간, 고단한 삶을 겨우 이어가던 아이의 부모와, 전성기가 지나 폐업 직전의 프로덕션의 피디와, 고사 직전인 재래시장을 살려보려는 상인회의 총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한다. 속물적 욕망에 길들어 몸살을 앓는 세계, 그 속에서 펼쳐지는 소시민들의 이 따뜻하고 현실적인 비극은 우리로 하여금 이상한 뭉클함을 자아내게 한다. 시종일관 철저히 다큐적인 서술로 삶의 부조리와 소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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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석

http://blog.yes24.com/musician79

채널예스에서 작가와 독자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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