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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디자인? 일상 속 디자인의 비밀” - 『고마워 디자인』 김신

“서울을 디자인 하기 전에 시민부터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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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디자인이라고?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디자인, 고마운 이유 - 월간 디자인 前편집장 김신은 "디자인이 고맙"단다. 그가 고마워하는 디자인은 화려한...


디자인은 공기다


월간 디자인 前편집장 김신은 “디자인이 고맙”단다. 그가 고마워하는 디자인은 화려한 쇼윈도나 조명 아래 놓인 것들만 이르는 게 아니다. “디자인 하면 구겐하임 박물관,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같은 곳을 얘기하죠. 하지만 그런 건 내 생활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에요. 진짜 나랑 관련 있는 것은 연필, 의자, 노트북 디자인이거든요. 잘 디자인 된 것은 느끼지 못해요. 잘 눌러지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잘 디자인되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거든요.”

 


그가 월간 <디자인>에 쓴 에디토리얼, 비평, 우화, 수필 등을 묶어 『고마워, 디자인』을 냈다. ‘디자인이 왜 고마울까?’라는 서문으로 시작해 일상생활 속에 숨겨진 디자인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아낸다. 당신의 디자인 심미안을 깨워줄 다양한 글들을 잡문집으로 묶었다.

공공기관의 한 장짜리 서류 양식에서부터 책, 인터넷 사이트, 편의점 상품의 패키지, 스마트폰, 책상 위의 모니터, 식당의 의자와 테이블, 버스와 전철의 인테리어, 도로의 사인, 가로등, 고층 건물의 외관, 공중 화장실의 세면대, 아파트의 벽지와 전등 스위치에 이르기까지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는 제 구실을 하고 불편하지 않게 하는 기본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술 작품만큼이나 많은 공이 들어간다. 꽃처럼 화려하게 아름답지 않지만, 거기에도 분명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p.7)

그는 디자인을 공기라고 표현했다. “공기는 일반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오염되거나 나빠졌을 때야 문제가 있다고 느껴져요. 일상적인 디자인도 그런 거예요. 건축을 멋있게 해놨더라도 내부 동선이 좋지 않거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면 그런 문제점이 눈에 띄겠죠. 있는 듯 없는 듯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입니다. 우리는 대게 판타스틱하고 대담한 것들에만 감동을 잘 하잖아요. 전시나 잡지에 나온 디자인은 그저 쇼를 위한 거예요.”


디자인에 대한 오해들


한강 르네상스, 남산 르네상스 등 디자인 서울 정책으로 디자인이라는 말은 공공연히 쓰이고 있지만, 정말 우리 생활의 디자인적 감수성이 전보다 나아졌는지는 미지수다. 디자인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쓸렸고, 엉뚱한 건축물이 세워지기도 했다. “좋은 디자인은 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지는 거예요. 단시간에 계몽한다고 가능한 게 아니죠.”

저자는 디자인이란 무엇보다 편안하고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을 디자인 하려면 우선 서울 시민이 불편하지 않아야 해요. 시민이 봐서, ‘와, 저런 랜드마크가 생겼네’ 싶은 게 아니라, 시민들이 걸어 다닐 때 불편이 없고, 시각적으로 깨끗해야 하고, 어른들이 길을 잘 찾아가게끔 만들어야 하는 거죠. 잘못한 디자인이 문제가 되는 까닭은, 쇼나 이벤트처럼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애물단지가 되기 때문이에요. 유지하는 데 비용이 훨씬 많이 들거든요. 어떤 목적으로, 10년 20년 후에는 어떻게 사용될지 고민한 후에 만들어야 합니다.”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색채나 문양을 더하는 일을 떠올리지만, 그것은 디자인 영역 가운데 “아주 일부분의 디자인”일 뿐이다. 디자인이란 말이 거창하거나, 내 삶에서 멀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디자인에 대해 어떤 오해를 갖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독자가 스스로 자신의 일상을 둘러보며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디자인, 생각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


저자 김신은 이 책에서 지금의 디자인이 과시성만 부각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디자인은 장식적인 것도 맞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기도 해요. 디자인의 최종 결과는 감각적인 세계로 표현되지만, 그것이 나오기까지는 여러 분야가 복잡하게 얽혀서 완성되거든요.

가구를 하나 만들려면 여러 장인이 필요해요. 어떤 사람은 틀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제작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식이죠. 이 모든 행위가 디자인이에요. 항공모함에 전투기가 똑바로 서고, 비행기가 정확히 주차돼야 했어요. 자꾸 비행기가 비뚤게 세워져서 부딪치는 사고가 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그걸 보고 항공모함의 활주로를 틀자고 했어요. 문제를 해결한거죠. 이런 것도 디자인이라는 거예요.

자하디드가 했던 건축, 앙드레 김이 만든 옷, 알렉산드로 맨디니가 만든 가전제품 만이 디자인인 것마냥 언론에서 소개하고 있어요. 극히 일부분의 디자인만 과시하고 있는 거죠. 그런 것만 띄우다 보면, 제 구실을 해야 하는 디자인에는 돈이 많이 안가요. 지방에 가면 가로등이 아니라 괴물 같은 게 서 있어요. 조형물을 세워놨는데 눈뜨고 볼 수가 없는 것도 있고요.”


이런 디자인에 대한 인식 때문에 큰 돈을 들여야 하는 공공 디자인 영역은 영세한 상황이다.“발주에 비용을 인색하게 들이기 때문에, 좋은 디자이너들이 참여를 안 해요. 최저 입찰 위주이기 때문에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죠. 국회의원 회관 안에 국회의원 기념품 가게가 있어요. 법을 입안하고 결정하는 분들이 있는 곳에서 판매하고 있는 조악한 디자인 상품에 경악한 기억이 나네요.”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많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에 대한 훌륭한 정의를 남겨놓았다. ‘디자인은 창의적 표현과 이성적 목적의 유용한 조합이다’(스티븐 베일리) ‘디자인이란 98%의 상식과 2%의 신비한 요소, 즉 우리가 흔히 예술 또는 미학이라고 지칭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테렌스 콘란) 등. 그 중에서도 저자 김신은 ‘디자인이란 생각을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정의에 가장 공감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디자이너에게 집을 의뢰하거나, 옷을 의뢰할 때 사진을 가져오잖아요. 그 사진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면, 실력이 꽤 뛰어난 디자이너인 셈인데 일류라고는 할 수 없죠. 일류 디자이너는 사진을 보고,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알아내는 사람이에요. 그 사진 속에 의뢰자가 원하는 게 투영되어 있을 테니까요. 이런 식으로 어떤 생각을 물질화 하는 것이 디자인이죠.”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건 하나도 없다


16년 8개월 동안 월간 <디자인>의 에디터와 편집장으로 디자인에 대해 읽고 써온 저자 김신. 그의 디자인 이야기는 한번 풀린 두루마리 휴지처럼 술술 이어졌다. “디자인은 다른 분야에 비해 학문적으로 연구된 기간도 짧아요. 옛날에는 천재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엔 디자인이라는 게 한 천재의 작품이 아니라, 사회적 열망과 시장 환경에 영향을 받아 완성된다는 견해가 많아요.

레이먼드 로이가 1930년대 활약하던 스타 디자이너예요. 그 사람 대표작 가운데 럭키 스트라이크 담배가 있어요.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으로 럭키 스트라이크 로고가 들어가 있어요. 그 사람이 전부 디자인한 게 아니라, 그 전에 녹색바탕에 빨간색으로 칙칙하게 있던 것을, 하얀색 배경으로 바꾸어 세련되게 만든 거예요. 그 사람의 놀라운 감각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바뀌게 된 데에는 시대적으로 청결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레이먼드 로위의 럭키스트라이크 디자인(좌)과 조나단 아이브의 아이폰(우) 디자인은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가 만든 결과물이 아니다. 시대적 열망과 환경이 더해져 완성되었다.

바우하우스도 발터 그로피우스 한 건축가의 머리 속에서 실현된 것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단순히 ‘기술과 예술이 통합되는 게 낫지 않을까?’ 막연하게 시작했어요. 당시 전후 가난했던 독일이 ‘돈 들여서 학교를 만든 건 실용적인 걸 해보라는 거야. 실용적인 걸 해봐, 실용!’ 거기서 바우하우스의 기초 조형 이론이 완성되고, 발터 그로피우스가 모더니즘 디자인의 아버지가 된 거죠. 사실 그 사람이 초기에 했던 것은 표현주의적인 디자인이었어요. 만약 발터 그로피우스가 20세기에 태어났다면 번쩍번쩍하고 요란한 디자인을 만들어냈을지도 몰라요.”

아이폰 역시 사회적인 열망에서 탄생한 제품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리서치 조사로는 알 수 없어요. 그들이 원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는 걸 만들어줘야 하거든요. 시대의 기술력도 필요하고, 잡스라는 사람의 아이디어, 그것을 물질화하는 조나단 아이브와 그 팀의 팀원들 모두가 필요했던 거죠.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건 하나도 없어요. 슈퍼디자이너를 강조하는 건 일종의 프로모션 같은 거예요. 뜨게 하려고요.”


디자인 심미안을 키우는 법

(왼쪽부터) 전세계적 베스트셀러 파이든 『아트북』
영국출판사 ‘테임즈앤허드슨’에서 출간한 시리즈 『팝아트』
독일의 세계적인 예술전문서적 출판사 ‘타센’의 대표작 『GOAT』

 


일반인이 일상에서 디자인적 감각을 가지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는 “가장 좋은 것은 도록이나 잡지책을 자주 보는 것”이라고 답했다. “외국에는 아트북 시장이 따로 있잖아요. Art and Design ??에 큰 출판사들이 많거든요. 도록과 그림책을 보면서, 여러 디자인을 눈에 익히는 거예요. 멜로디가 아주 강한 음악처럼 사람들은 이탈리아 디자인에 매료되는데, 그것 말고도 좋은 게 많이 있거든요. 심미안이 높아진 다는 건 다양한 디자인 세계에서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에요.”

좀더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는 어떨까? “홈페이지 사이트는 디자인이 혼란스러워요. 질서가 잡혀져 있지 않고 정보만 많이 담겨 있거든요. 도록을 보는 게 좋은 점은, 작품도 좋지만 질서가 잡힌 레이아웃 상태가 훌륭하기 때문이에요. 사이트는 움직이잖아요. 딱 정지되어 있는 화면이 독자에게 주는 매혹감이 있어요. 정지된 것에서 신비감, 소유욕을 더 느끼게 되거든요. 그래서 잡지가 계속 발간되는 것 같아요.”

저자에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최근에 대림미술전에서 진행한 <디터람스의 디자인 10계명전>이 무척 좋았다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디자이너 개인보다 그 사람이 디자인 한 것들을 정말 좋아해요. 무게감 있고 나무가 주재료로 쓰이는 모던한 가구 디자인, 스칸디나비아식 디자인도 좋아합니다.”

월간 <디자인> 전 편집장이었던 김신은 현재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운영, 마케팅, 교육, 재정 등 업무 전반을 관여하고 있다. “대림 미술관은 사진 전시를 전문으로 시작했고 최근에 디자인 전시도 많이 기획하고 있어요. 콘텐츠 적인 면에서 예전에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죠. 잡지를 만들 때는 사진 데이터를 이용했다면, 여기서는 실물을 나르니 규모적으로는 크게 달라졌지만요.” 17년 만에 옮긴 직장이다. 행복하냐고 묻자 껄걸 웃는다. “여기서도 역시 좋아하는 디자인 일을 하고 있잖아요. 아주 해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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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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