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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을 좋아하는 연출가 장유정의 도전적인 인터뷰

연출가 장유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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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관객들은 늘 더 좋은 작품을 접하면서 보는 눈이 올라가기 때문에, 저희도 계속 작품을 다듬고 수정하죠.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말도 못하게 떨렸죠. 저의 첫 번째 꿈이 대학로에 저를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는 거였어요. 제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대학로가 내 일터가 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일터가 되고, 제 작품들이 공연장에 걸려 있으니 정말 행복하죠.”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는 6년, <김종욱 찾기>는 5년째 대학로를 지키고 있다. 롱런 비결은?


“고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관객들은 늘 더 좋은 작품을 접하면서 보는 눈이 올라가기 때문에, 저희도 계속 작품을 다듬고 수정하죠. 실제로 <오당신..>의 경우 장르를 아예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바꾸면서 구조도 바꿨어요. 5차 공연 때는 노래 5곡을 새로 넣었고, 10차 때는 안무를 모조리 바꿨고, 지금 15차인데 14차에서 15분을 잘라냈어요. 무대에서 15분이면 굉장히 큽니다. 결국 1차 때나 15차 때나 연습량은 똑같아요. 롱런하는 작품들은 연출가로서 기쁨이면서 부담이에요. 하지만 큰 공부가 되죠, 항상 초심을 잃지 않게 하니까요.”



어떤 초심인가?

“처음에는 가진 게 없었어요. 돈도 없고 애인도 없고, 다만 공연을 올리고 싶다는 열정만 넘쳤죠. 관객이 많이 몰리는 작품이 아니라, 좋은 작품, 제 눈에 하나 걸리는 것 없이 정말 잘 만든 작품을 올리고 싶었어요. 가진 게 없으니까 잃을 것도 없고 무서울 것도 없고, 그때는 무조건 전진,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지금은 좀 여유가 생겼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카페에 앉아본 적이 없어요. 목숨이 달린 일들이었기 때문에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죠. 물론 선배 연출님들에 비하면 여전히 아기지만, 그래도 이제는 채찍질을 할 때와 기다려줄 때를 알게 되고, 완급조절도 가능해진 것 같아요.”

그녀의 작품은 ‘사람과의 관계’를 담아내고 있다.

“화두는 같아요, 휴머니티. 인간과 인간의 관계, 결국은 그 관계에서 휴머니티가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위에서 저더러 굉장히 정이 많다고 하는데, 그게 제가 아티스트로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 때문에 상처받죠. 돈 없어서 상처받지는 않아요, 돈 없다고 사람들이 무시해서 상처받죠. 일이 힘들어서 상처받지도 않아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나 더 스트레스 주는 상사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죠. 하지만 다시 타인이 보듬어줄 때, 사람의 힘으로 살아가잖아요. 인간의 에너지, 인간을 움직이는 모토는 결국 인간이고, 저에게는 변하지 않는 화두예요.”

연출가는 누구보다 다양한 직군의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공연만큼 사람 관계가 작품의 성패를 결정하는 작업도 없을 텐데.

“그렇죠, 연출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산악대의 산악대장 같은 사람이에요. 대본을 해석하고 많은 대원들을 데리고 하나의 행로를 뚫어야 하거든요. 저는 사람의 장점을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력해요. 배우든 스태프든 어떤 연출가와 하느냐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역량에는 큰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충분히 관찰하고 최대한 애정을 갖고, 공연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서 그래야 기분 좋게 잘 할 수 있거든요. 물론 못할 때는 지적도 하지만, 뒤끝은 없어요. 일사부재리의 원칙처럼 같은 일로 두 번 화내지는 않습니다(웃음).”


작품을 보면 유치찬란한 장면에서 엿보이는 개그본능과 어느덧 뜨거운 눈물을 쏙 빼내는 섬세함, 무엇보다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저는 발칙한 상상을 좋아해요. 예술가로서 상상하는 데는 옳고 그름이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상상이라도 해야죠. 그게 예술가의 특권이잖아요. 그렇게 상상한 것을 무대에 올리고 영화로 만들고, 예술가는 엄청난 기득권자인 것이죠.”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 바쁜 스케줄, 늘어나는 역할 속에서도 여전히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빠서 못 살겠다 정도는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 번씩 30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그 룰에 맞춰서 중요한 일부터 처리합니다. 저는 고여 있는 건 싫어요. 호기심이 많고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하겠다고 결심하면 앞뒤를 안 봐요(웃음).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추진합니다. 영화가 그랬어요.”

공연이 어찌 보면 매일 소멸하는 것과 달리, 영화는 한 번 찍으면 영원히 남는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영화 <김종욱 찾기>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안타까운 것이 많죠. 영화를 시작할 때는 기준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얼마만큼 해야 끝인지 몰랐어요. 이제는 기준이 쌓였고, 자기기준도 높아져서 부족한 것들이 보이죠. 그래서 영화는 첫 작품도 힘들지만, 두 번째 작품으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다행히 저는 <형제는 용감했다>로 두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종욱 찾기>는 원작과 비슷했지만 <형제는 용감했다>는 원작의 만화적인 요소가 제외되고 시대상황도 바뀔 예정이에요. <김종욱 찾기>가 리모델링이었다면 <형제는 용감했다>는 재건축인 셈이죠(웃음).”

스스로 꿈꾸고 있는 발칙한 상상들은?

“도전이요. 저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 저는 꿈꿨던 것들을 상당부분 이뤘어요. 지난해에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몸이 많이 안 좋았지만 안나푸르나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문 트레이너에게 안나푸르나에 가도록 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고, 결국 14일 동안 다녀왔습니다. 꿈을 또 이룬 거죠.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오페라 연출을 꼭 해보고 싶고,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저는 배우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하거든요. <오당신..>의 경우 대부분 신인들이 많은데, 오디션 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유명한 배우들과 <오당신..>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곧 유명해질 배우들과 합니다’라고요. 무대가 낯선 친구들은 아직 스스로를 기술적으로 예쁘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지, 실력이나 진정성은 충분해요. 그 빵빵한,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아이들을 제가 잡아와서(웃음), 톡 하고 건드렸을 때 ‘방방곡곡 콸콸콸’ 넘쳐흐르는 재능을 보는 재미가 정말 보람차거든요. 하고 싶은 게 여전히 참 많네요(웃음).”

그녀의 호방하고 자극적인(?) 웃음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무척 안타깝다. 그 웃음소리를 들으면 그녀의 작품들이 한 큐에 연결되며 더욱 정확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재미와 감동, 만화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상상력은 삶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살핀 깊은 통찰력과 더해져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 털털함과 섬세함의 오묘한 조화가 연출가 장유정, 그리고 그녀가 만든 작품들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를 전수받은 기자는 거침없이 도전하는 장유정 씨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며, 개인적으로 오래 멈춰 섰던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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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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