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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는 것, 피사체와 내가 나누는 교감의 흔적” - 『권영호의 카메라』 권영호

“당신의 카메라는 어떤 마음을 담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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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에게 카메라는, 생존의 수단이자 도구이며, 꿈을 실현하는 장치다. 그러면서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 감정을 알아주는 친구’이다. 그런 친구를 가진 권영호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현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카메라를 든 이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본원적인 질문이겠다. 바꿔서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당신의 카메라는 어떤 마음을 담고 있나?” 카메라가 대중화된, 사진 찍기가 대중적인 취미로 자리 잡은 시대. 피사체가 있는 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되지, 무슨 질문이고 마음이란 말인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사진작가 권영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 카메라를 든다는 것은 피사체를 사각의 프레임에 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즉, 이 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두 가지를 찍는 것이다. 하나는 당연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는 그 마음이 드러내는 것을 찍는 것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를 바라보는 나를 찍는 것이다.”(p.110)

사진작가에게 카메라는, 생존의 수단이자 도구이며, 꿈을 실현하는 장치다. 그러면서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내 감정을 알아주는 친구’이다. 그런 친구를 가진 권영호는, 사진을 찍는 행위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현한다. 카메라로 그것을 찍는다는 건, 피사체와의 교감의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세상에 없던 것이다.

그가 카메라에 대해, 사진에 대해 풀어놓았다. 하고 싶은 말과 사진을 담은 사진 에세이를 내놨다. 『권영호의 카메라』(권영호 글?사진 | 앨리스 펴냄) 이번에는 온전히 자신을 위해, 자신만의 위한 사진과 글로 풀어냈다. 그는 잘 알려진 상업 사진작가다. 원빈, 이효리, 권상우 등 셀러브리티 사진집을 출간했고, 필립스, 나이키, TTL 등 숱한 커머셜(상업광고사진)를 찍었다.

그의 사진에 대한 한 일화. 강동원, 김하늘 주연의 <그녀를 믿지 마세요>(2003)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곳곳에 붙은 메인 포스터가 없어지곤 했다.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는 듯한 상황을 연출한 이 포스터의 사진이 좋아서 사람들이 떼어간 것이다. 이 사진은 권영호가 포착했고 찍었다. 한때 신드롬처럼 퍼진 TTL 광고. 메인 모델이었던 임은경은 한때 권영호 외에는 작업을 않겠다고 얘기하기도 했단다.

그게 어쨌다고? 피사체와의 합일이자 대화다. 통(通)하지 않으면 그는 사진을 말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나 대상도 그렇지만, 자신과의 대화에는 더욱 신경을 쓴다. 그래서 뭔가가 무척 좋을 때, 즐거울 때, 아무튼 틈만 나면 나 자신을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권영호에겐 사진찍기의 가장 큰 이유이자, 자세다.

나의 대표 이미지는 나와 관계를 맺는 바로 그것이어야 한다. 나에게 오브제는 그런 것이다. 바로 그곳, 바로 그날, 바로 그 자리 등 수많은 조합의 결과물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던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 그것이 나만의 오브제가 된다.(p.179)

사진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권영호가 얘기하고자 한 것은 아녔을까. 지난달 28일, 폭염이 내리쬐던 어느 날, 권영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리고 책과 여행,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과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당신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권영호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영호의 사진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자신과 사진이 나누는 은밀한 교감을 기대해도 좋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것과 만나게 될까. 어디에 숨어 있을까. 앞으로 나는 사진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틈의 구멍 같은, 권영호의 첫 사진 에세이

첫 번째 사진 에세이인데, 감회나 소회가 어떤가.

“뭐랄까, 막연하게 (사진 에세이 낼 것을) 생각은 했다. 커머셜(광고사진)을 많이 찍지만, 그런 내용보다 출발점은 사진 그 자체다. 상품이든 배우든 일반 사람이든. 그것을 커머셜이니 뭐니 분류한건 사용에 의한 것이지, 마음가짐은 다르지 않다. 사진을 오랫동안 촬영하면서 느꼈다. 작은 부분이 중요한 것일 수 있는데, 결과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것이 있어서, (사진 에세이에 대한)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이렇게 편집이 돼서 책으로 나와서 감회가 새롭다.”

이번 책, 저자로서 자랑을 해 보라면.

“사진 찍는 것이 보편화되고 대중화됐다. 예전에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메모를 했는데, 지금은 사진을 찍는 게 더 쉬워지고 증빙하기가 쉬워지는, 메모 기능까지 가능한 시대가 됐다. 사진은 지금 일상에서 쉬운, 또 하나의 표현방법으로 사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책에서 말하고 싶은 건, 조금 더 개인화?개성화할 수 있는 사진들, 다시 말하자면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 이외에 촬영했을 때, 주변 정황이나 5분 전 혹은 1시간 후의 상황까지 상상할 수 있는 조그만 키워드를 제시했다. 옛날 문으로 친다면, 문틈의 구멍 같은 것이랄까. 그런 방법적인 부분을 나름의 스타일로 재현하면서 보여줬다.”


셀러브리티 사진집 낼 때와는 어떻게 달랐나.

“사실, 똑같다. 찍는 사람 입장에선, 셀러브리티나 내 앞에 있는 커피잔을 찍을 때나 똑같다. 다만, 셀러브리티를 찍을 때는, 찍기 싫다거나 힘들어도 꾹 참고 찍어야 하는 점이 있지.(웃음) 타이르고 다독거리면서. 그 순간의 카메라는 해야 할 숙제인 셈이지. 만약 커피잔을 찍는다고 할 때는 커피가 맛있거나 좋은 대화, 좋은 음악이 흐르는 등 좋아하는 것과 매치가 돼서 이 기분을 남기고 싶다고 할 때 찍는다.

배우들과 일할 때는 일이고 내가 우선은 아니다. 잘하기 위해서 나를 정리하고, 어떤 상황이든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사진을 찍을 때, 책에 나온 사진은 거의 다 찍고 싶을 때 찍었다. 한편으로 아주 다른 출발점일 수도 있다.”


대한항공과 CJ MEDIA가 기획?제작하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권영호의 중원의 초상>에서 비롯된 책이다. 애초 책도 함께 생각하고 시작된 프로젝트였나.

“처음부터. 기획할 때부터 책도 염두에 뒀는데, 대신 무조건 내야 한다는 의무는 아니었다. 무조건 책을 내야겠다는 조건이었으면 또 일이 되는 건데, 다행히 내 입장을 배려해줬다. 책을 낼 수 있는 얘기나 사진이 준비되면 내라고 하더라. 중국 가서도 책을 내기 위해 몇 장씩 찍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없었다. 다큐를 찍기 위한 기획이어서 사진을 찍고 안 찍고는, 내 마음이었다.”

책 발간이 예상보다 다소 늦춰진 것으로 알고 있다. 당초 얘기됐던 출판사도 바뀌고.

“지난 연말에 준비를 했다. 사진이다 보니 페이지를 넘겨가는 과정과 글과 글 사이에 어떤 사진이 들어가면 좋을지에 대해 망설였다. 디자인이 나올 때마다 망설였고. 또 하나는 편집자에게도 개인 문제가 생겨서 집중을 못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다 보니 미뤄졌다. 원래 나오기로 한 것은 2월이었다. 어쨌든 마무리가 됐고, 파일로 받아 모니터로 본 것과 인쇄된 것이 다르던데, 인쇄된 것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 깨끗한 느낌이었다.”

중국 중원, 다녀온 지 1년이 넘었다. 책을 보면 그 1년 전이 떠오를 텐데, 어떤 마음인가.

“사진만의 장점이랄까. 사진의 매력은, 촬영하면서 진지했다면 그 사각형의 프레임 속에 그 뒤도 보인다는 거다. 뒤나 바깥이 보인다. 지금도 이 책을 보면, 뒤에 있던 피사체가 보이고, 신기한 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도 보인다. 이런 매체가 또 있을까 싶다. 글로도 표현되지 않을, 그러니까 사진은 정제되면서도 차분하게 흐르는 공기의 느낌까지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솔직히 말하면, 광고사진 같은 것을 찍을 때는, 나는 안 보인다. 일종의 만든 거다. 모든 스태프가 모여서 한 가지 목적을 갖고 만들고 다듬어서 보는 사람에게 그것만 주입하는 목적을 가진 사진이지. 반면 책에 있는 사진은, 내가 느낀 것을 마음대로 펼쳐놓은 것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도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 읽거나 보느냐에 따라서 (사진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관계 속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를 잘 조절하며 살아야 하는 게 삶의 밸런스? 아닐까, 생각해본다.(p.16)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 권영호의 중국 여행

저들의 분주함과 삶의 무게는 나와는 완전히 상관이 없는 저들만의 것이다. 그들이 잔뜩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과 스케줄에서 나는 이방인인 것이다.(p.20)

여행자 권영호, 이방인, 권영호가 누리는 자유가 곳곳에 흠뻑 묻어난다. 일 부담이 크지 않은, 자유를 만끽하는 여행이었다는 느낌도 들더라. 책에서 말한 두 가지 자유,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 가운데, 어느 것이 컸나.

“대개의 여행이나 촬영을 가면 무엇 하나는 해야 하는 임무였다. 이번 여행은 아무 것도 안 해도 되는 자유가 더 느껴졌다. 한 도시에서 횡단보도에 서 있을 때 있었다. 책에는 그 사진을 넣지 않았는데,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줄 몰랐다.

서울에 있으면서, 차를 타고 빨간불일 때와 보행자로서 파란불일 때를 잘 맞출 수 있는 과학기술이 나오면 사람들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차를 탈 때는 횡단보도가 짧고 내가 걸을 때는 기다리고 않고 빨리빨리 건널 수 있는.(웃음) 그렇게 마음을 조절하는 과학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는데, 자기가 속한 시간이 정신없다 보니, 그것 하나 밖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카이펑에서 횡단보도를 만나면서, 생각보다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은 한국보다 (시간이) 짧은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그때 또 들었던 생각이 있다. 대개는 삶에서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잖나. 다른 사람을 만나도 기억도 잘 안 나고. 아는 사람 외에 다른 직업과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기억을 안 하잖나.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는구나, 생각을 했다. 간호사가 건너는 것을 보고, 간호사도 횡단보도를 건너는구나, 처음 생각했다.(웃음) 누군가는 출퇴근을 위해, 밥 먹으러,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등 여러 사람이 있을 터인데, 그런 다양성도 여행자 입장에서 재밌었다.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책에는 넣지 않았지만. 그 사진들은 특이한 직업의 세계를 찍은 것이 아니고 횡단보도에 대한 다른 관점을 느낀 나를 기록하고 기억한 것이다.

여행은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빨리 건너갈 필요가 없다는 순간에 시야도 변하고 나도 모르게 시스템화됐던 삶에서 약간 벗어날 수 있는 거다. 컴퓨터로 치면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이 되겠지.(웃음)”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간. 나에게만 충실하면 되는 시간. 누구와의 관계도, 일을 통한 보람과 성취도, 그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고 그저 나에게만 충실하면 되는 바로 그런 온전한 자유.(p.26)

찍어야 하는 사진이 아닌, 찍고 싶은 사람과 모습만 담았다. 카메라를 들게 되는, 마음이 감응하던 혹은 공명이 일어나던 순간은, 주로 어떤 순간이었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안 보인다. 카메라로 보려고 하면 뭐라도 찍긴 하지만, 누구나 다 보이는 것 외에는 찍을 수가 없다. 평범한 것들이지. 사람들이 많이 찍는, 해질 무렵 노을이나 해 뜨는 모습은 다 아름답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순간이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고 찍어야겠지만, 그것보다는 자기만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것이면 더 좋겠다.

뭔가 그런 여유나 다른 해석을 하고 싶다면 카메라는 평상시 안 들고 가는 게 중요하다. 모든 걸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게 좋다. 자신의 삶에서 그런 것을 갖는 게 쉽지는 않다. 대신 그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여행을 떠날 것이고 여행을 떠났다면 급한 일정보다 느긋하게 가야 한다. 그러면 재밌게 즐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여행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도 과거사가 종종 나오는데, 중국의 중원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땠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이 중국이거나 중원이어야 될 필요는 없었다. 그전에 차곡차곡 생각한 것이 있었는데, 중국여행을 할 기회가 됐고, 자유로운 기회와 마음으로 떠날 수 있어서 그런 생각을 꺼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중국의 중원은 색다른 인연이다. 여러 일로 많은 세계를 돌아다니는 경험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중국 중원에서 과거를 얘기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런 면에서 고맙다. 만약 파리나 런던이었다면 그렇게 안 됐을 테고, 거기에 간 것보다 더 좋았다. 생각하는 것이 좋았다.”

여행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공유하기 위함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담는 행위임에 무게를 뒀다. 그래서 프라하에서의 자판기 에피소드도 인상 깊었는데, 중국을 여행한 책이지만, 그 사진이 실리지 않아 좀 아쉬웠다.

“흠, 그 프라하 자판기 얘길 많이 하더라. 중국과는 딱히 관계가 없는데 말이다.(웃음) 마침 중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 마침 이 사무실에 프라하 자판기 사진 찍어 놓은 것도 걸려 있었는데, 정리를 하면서 앨범에 넣어뒀다. 나도 그 사진을 좋아한다.”

기술적으로 좀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또는 경험을 이미지로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많은 경우 카메라 건너편의 대상이 나의 시선과 일으키는 개별적인 교감에 무뎌지기 쉽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개별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라기보다 공유를 전제로 하는 객관적인 정보 전달을 위한 숙제가 되어버리곤 한다.(p.50)

책에 실린 사진 가운데 가장 많이 회자되는 사진이, 정저우(鄭州)에서 공연을 보면서 눈에 들어온, 하얀 원피스와 분홍색 슬리퍼의 소녀가 아닐까 싶다. 이 소녀의 사진, 어떤가.

“어제도 추천사 써준 친구(원빈)와 책 얘길 했는데, 그 아이가 예쁘다면서 배우해도 되겠다고 얘기하더라. 그렇게 인형처럼 예쁜 아이는 아닌데 말이다. 그때 나는 광장을 쏘다니면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첫 사랑 여자를 만나면 빛이 나고 슬로비디오처럼 세상이 움직이잖나. 사랑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아이는 당시 그 공간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프라하 자판기도 말했지만, 사진에서 개인적인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바로 그거다. 자판기 사진에 얽힌 얘기를 안 했다면, 자판기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사진을 찍을 때, 대개는 앞뒤옆에서 찍는다면 나는 딱 한 장만 찍는다. 왜냐면, 잘 찍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소중해서 생각해서 그 기분을 남기고 싶은 나의 행위가 중요한 거지. 그러면 이런 스토리 없이 보여줘도 자판기를 왜 찍었는지, 안 묻는다. 어느 정도 그것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있더라.

사진에서 개인적인 진지함이나 솔직함, 스토리가 왜 중요한지가 드러난다. 그걸 잘 보이려고 애쓰면 개인적인 내용이 사라질 수 있다. 잘 찍어야 한다는 목적을 두면, 대부분 머릿속에 상상되는 이미지에 맞추거든. 외려 그런데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생각의 중요성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독자들을 위해 찍는다면 나를 배제하게 된다. 객관성을 끌어내도 강하게 감성적으로 어필하거나 왜 찍었는지에 대해 공유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은 줄어든다.

블로그 등을 보면, 옳다 그르다는 아니지만, 보이는 쪽에 더 많이 무게감이 실리는 것 같다. 방금 내가 말한 방법으로 사진을 즐길 수도 있다. 보이는 것보다 그 저변의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것, 그것도 사진을 즐기는 한 방법이다.”


손을 흔드니 활짝 웃어준다. 몇 살일까, 어디서 왔을까. 그 소녀를 카메라에 담으며 나는 상상을 자유롭게 펼친다. 사진 속 소녀는 지금 봐도 참 어여쁘다. 아마도 그건 내가 소녀를 어여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이제부터 내게 정저우는 그 소녀를 만난 곳이다.(p.96)

이 책에 실린 사진 가운데, 특히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사진이 있나.

“딱히, 있지는 않다. 재밌게 찍은 것도 있고, 덜 재밌거나 아쉽게 찍은 것도 있고.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방금 그 아이도 생각나고, 싼먼샤(三門峽)에서의 부녀도 생각난다. 정저우에서의 아이가 내게 웃음과 행복을 줬다면, 싼먼샤의 부녀는, 대화는 많이 못 했지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줬다.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고 쇼트커트를 한, 부끄러움이 많던 사춘기 무렵의 소녀가 기억에 난다.”

예비된 행운을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여행이 있는지.

“뭔가 지금 계획하고 있는 여행은 없다. 다만, 다음은 뭔가를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있다. 여행은 아니고, 조금 더 다른 방법에 대한.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는데, 사물이나 사람을 대하는 일반적인 기준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디테일하게 정리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방법에 대한 얘기들이다.”

여행자의 시간은 다가오는 순간을 그냥 그대로 즐기면 되는 시간이다. 우연히 들어간 밥집이 유난히 입에 맞는다? 그것도 행운이요, 잠시 길을 잃었을 때 친절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갈 길을 제대로 찾는 것도 나만을 위해 예비된 행운처럼 느껴진다.(p.23)


권영호, 마음을 담아내는 사진을 말하다

자연스러움을 담지한 사진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건 곧 피사체에 마음을 투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에 쓴, 단순히 피사체만 담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담아내는 작업이 사진이라는 것, 말씀을 좀 더 해준다면.

“사람을 찍을 때 궁금했던 게, 누군가를 사랑할 때다. 갑자기 만나 사랑하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고 차츰 알면서 사랑이 깊어지는데, 사랑받는 대상은 왜 갑자기 사랑스러워졌을까. 그걸 바라본 사람의 보는 방법이 달라졌겠지. 변한 것은 상대방이 아니고, 그 사람이다. 나부터 출발한 거지. 그러면서 그 사람이 더 예뻐 보이고.

사랑할 무렵,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대상을 제일 예쁘게 찍을 거다. 객관적으로 안 예뻐도 그 사람을 사랑했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거고. 2D로 보이는 선과 면은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뒤에 숨겨진 출발점이 중요하다. 찍는 사람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하고, 찍히는 사람은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다.

배우를 찍을 때도 그런 것이 잘 보인다. 컨디션이나 기분도 보이는데, 만약 좋지 않은데도, 그것을 잘 컨트롤해서 일을 잘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예뻐 보인다. 사진에도 그것이 느껴지고 대중도 느낄 수 있다. 아주 조금이라도. 훌륭한 연기, 음악, 미술, 사진 등은 그런 작은 차이가 모여서 하나의 역할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찍는다면 나도 그저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일 뿐이다. 자주 찍게 되지는 않을 것 같지만 내 눈에 사랑하는 사람이 정말 사랑스러울 때 그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들고 싶다. 시간이 흘러 그 사진을 다시 볼 때 나는 당시의 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말해주는 사진은 원하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그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느꼈는가를 말해주는 사진이면 좋겠다.(p.205)

피사체가 아닌 피사체를 통해 드러나는 자신을 찍는 것이 사진이라고 했다. 또 뭔가가 무척 좋을 때, 즐거울 때, 틈만 나면 자신을 위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고 했다. 사진은 한편으로 권영호에게 자존감의 실체인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일기 쓰는 걸 좋아한다. 자기 전에 짧게 메모처럼 쓰는데, 낮에 사진 찍은 것을 기초로 쓰는 경우가 많다. 사진 하나를 갖고, 앞뒤 얘기를 기억하기 위해서 적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는 좋은 음악이 나오면 라디오를 찍은 적도 있다. 가사를 적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그런 식으로 찍은 사진이 많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는데, 기분도 좋았으나 사진 찍을 생각을 못하다가 좋은 기억이었다 싶어서 앞차를 찍은 적도 있다. 굳이 멋있는 악수를 하는 사진을 찍는 것보다, 그 좋은 시간에 끼어들고 간섭하는 건 좋지 않다. 자꾸 그런 것을 늘리려고 애를 쓰는 거고.

삶에 대한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해보면 그렇게 된다. 마술 같다. 이런 경험도 했다. 10여 년 전 일인데, 인터넷상에 팬카페가 있었다. 회원으로 가입해서 가끔 사진도 올리고 했는데, 제일 좋게 생각한 사진이 있었다. 톱스타나 외국을 가서 찍은 것이 아니었다. 희한하게도 한가할 때 찍은 한 장인데, 대다수가 좋아해 줬다. 소름도 끼치더라.

뭐였냐면, 한 잡지의 창간호를 준비하면서 교토에 갔다. 화보도 준비하고 인터뷰를 하고 다녔는데, 어느 날 눈이 많이 왔다. 함박눈이 펑펑 와서, 일찍 출발해서 약속 장소에 10분 먼저 도착했다. 일찍 들어가는 것도 약간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집 앞의 처마에 서 있었다. 처음으로 함박눈이 보이더라. 일로 가서 그 눈이 귀찮았는데, 10분 여유가 생기자, 갑자기 펼쳐진 그 눈이 참 좋더라. 소리 없이 소복소복 내리는 눈을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그래서 그 자리, 처마 밑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고 앞집을 찍었다. 마침 흑백필름이 들어간 카메라였는데, 일을 마치고 서울에 와서 현상해 보니 눈을 찍고 있던 내가 보이더라. 정말 좋았다. 인터넷 카페에 교토에 눈이 내렸다고 올렸는데, 굉장히 큰 ?응을 보였다. 많이 놀랐다. 일본의 유명한 사람이나 명소도 함께 올려서, 이 사진은 스쳐 지나듯 볼 줄 알았는데, 이 사진에 대한 호응이 더 좋았다. 그때부터 그런 것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 순간,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이, 내가 찾는 것이 진짜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내가 보였으면 좋겠다. 그저 잘 찍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을 넘어서 내 생각, 내 기분이 드러나는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사진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으 좋겠다. 나에게 사진은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를 통해 나를 찍는 것이다.(p.31)

정지의 순간은, 영감이 쌓이는 시간 같다. 그 순간은 권영호만의 촬영이 나오기 위한 과정으로 묘사되는데, 사진을 처음 찍을 때부터의 습관 같은 건가.

“습관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노력 중의 하나다. 뭔가 다른 얘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재미가 없잖나. 내 마음대로 상상하면서, 내 자유를 누리며 해석하는 그런 습관 같은 건 있다.

여기 종이컵 두 개를 예로 들면, 이것만 가지고 사진을 찍어도 얘기가 있을 수 있다. 생각을 안 하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건데, 이것을 찍으면서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 같은 것을 하면서 즐긴다. 그러다가 순간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고, 재밌겠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기초로 상상의 나래를 편다. 상상하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그건 일종의 훈련이다. 많이 하는 버릇하면 나중에 사진을 찍고 싶을 때 도움이 많이 된다.”


정지의 순간이 겹겹이 쌓이다 어느 순간 반짝, 불이 켜진다. 상상은 끝나고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p.46)

많이 찍어 봐야 잘 찍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많이 찍는 것보다는 찍을 것을 상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물과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사진을 찍겠다고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해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본능적으로 세상을 뷰파인더에 담아서 보고 있는 나를 만나게 된다. 셔터는 그때부터 누르면 된다. 더 즐기게 된다.(p.197)


사진보다 앞서 영화가 꿈이었다. 영화 사진도 찍고 있지만, 언젠가 영화를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 아직 품고 있지 않나?

“(영화) 하고 싶다. 가까운 미래에는 사진, 영화, 동영상 등의 개념 차이가 있을 뿐, 테크니컬한 부분에선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까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많다. 영화도 많이 보고. (가장 최근에 본 건?) 원빈이 주연한 <아저씨>를 어제 시사회를 통해 봤다. 상당히 인상적이고 재미있었고, 원빈과 함께 주연한 김새론이라는 아이의 연기도 무척 좋았다. 그 아이를 보면서 아주 잠깐, 정저우에서 만난 아이도 떠올랐다.”

이번 사진 에세이에서 못 다한, 혹은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사진을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진지하게 읽을 텐데, 나는 일을 할 때를 빼고는 개인적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거라면, 이 책을 읽고 정말 더 사진을, 개인적이면서 솔직한, 더 진지하게 사진에 대한 마음을 가져달라는 거다. 흐르는 시간과 함께 기억도 사라지는데, 그런 마음을 갖고 어느 사진을 꺼내 회상하면, 단편적으로 ‘그땐 그랬었지’가 아니고 그때의 마음까지 설명할 수 있을 거다. 내가 1년 전의 중국을 여전히 기억하듯이. 중요한 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사진이 좀 더 삶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런 사진을 보면 감동적이고 짠하거든.”

멋있는 사진을 찍겠다는 찍어야 한다는 의지로부터 벗어나, 누구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내게 다가온 우연, 행운, 심지어는 불행까지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여행에서 돌아와 그 사진을 보면서 그 시간, 그 장소에 서 있던 나 자신을 떠올리풰 해주는 것. 그 피사체 건너에 있을, 즐거워하고 있는 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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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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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호의 카메라

<권영호> 저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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