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야말로, 시간을 견뎌낸 음악. 유행가와 클래식의 차이는 그렇다. 시간을 견디느냐, 그렇지 않느냐. 유행가가 클래식의 반열에 오를 수 없는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힘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버티고 견뎌낸 모든 것들이 예술 아닐까. 시대를 건너 면면히 사랑받는 건, 어느 시대든 관통할 수 있는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즉, 시대 맞춤형 해석이 가능하기에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클래식.
클래식의 대중화. 구호 같은 이 말은, 어쩐지 버티고 견디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에 은근히 잘 어울린다. 국가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엉성한 변주에 빈정 상한 사람들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도록 찾아낸 방법 중의 하나? 물론, 웃자고 한 농담이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오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님(로빈 윌리암스)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변호사, 의사와 같은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하지만 시나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은 인생의 목적 그 자체다.” 지금의 우리, 목적과 수단을 헷갈려 하는 것은 아닐까. 한 곡의 클래식이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거냐고. 암, 그럴 수 있다.
여기 음악의 힘이 발휘된 경우도 보자. 영화
<피아니스트>. 이 영화 명장면 중의 하나. 독일군에 쫓겨 폐허에 숨어 사는 유태인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는 먹을 것을 찾다가, 재수 없게도 독일 장교와 맞닥뜨린다. 정체를 묻는 장교. 피아니스트라고 답하는 그. 장교는 연주를 요구한다.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이 이어진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쇼팽의 「발라드 1번」이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에 맞물려 그 선율은 관객의 심장에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장교라고 다를쏜가. 피아니스트는 목숨을 건진다. 장교는 그를 안전하게 보호도 해 준다.
영화일 뿐이라고? 좋다. 이런 경우는 어떤가. 물론 실제다. 베네수엘라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년. 입에 넣을 음식도 턱도 없이 부족한 마당에, 음악은 그저 머나먼 세계의 전유물. 음악에 유난히 귀와 몸이 밝았던 소년, 우리라면 그저 집안 환경을 탓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떤 나라는 우리와 달리, 가난한 아이들의 마음에도 신경을 쓴다. 그것도 시스템적으로.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예술 교육프로그램 ‘엘 시스테마’. 소년은 음악과 헤어지지 않아도 됐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가 됐다.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구스타보 두다멜의 이야기다. 2004년 독일 밤베르크에서 열린 말러지휘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리면서 단박에 차세대 지휘자로서 이름을 올린 두다멜이다.
한 곡의 클래식이, 한 음악이 한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 클래식이 어렵다거나, 지루하다는 건 흔하고 얕은 인상 비평에 가깝다. 클래식이 그 오랜 세월을 거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숱한 연주자와 지휘자에 의해 연주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클래식이 일견 대중과 유리된 것에 클래식 종사자들의 책임도 있겠지만.
현악 사중주단 콰르텟엑스의 리더, 조윤범. 그는 클래식과 대중 사이를 잇는 전령, 혹은 전달자다. 클래식은 다른 세계의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 곳곳에 스며들고 밀접한 음악임을 알려준다. 작곡가들은 천상의 사람이 아닌,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그것이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Vol.2』다. 앞선 1권에 이어, 그는 클래식과 연주자들을 악기가 아닌 펜으로 연주한다. 흥미롭다. 재미있다.
신부였던 비발디가 합창단원인 안나와 사랑에 빠진 덕에
<사계>가 탄생했다거나, 헨델이 왕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수상음악>을 작곡하는 등 좀 더 클래식 음악을 친근하게 만든다. 시간을 이겨낸 클래식을 만든 이들답게, 그들의 이야기도 생생하다. 조윤범은 이 책을 통해 받아들이고, 예찬하며, 전달하기를 동시에 한다. “예술가의 창조적인 작업은 다음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받아들이기, 둘째 예찬하기, 셋째 전달하기.”(프랑스의 철학가 엠마뉘엘 레비나스)
지난 11일 연주와 강연 등으로 바쁜 조윤범을 잠깐 빼냈다. 과거에 탄생했고, 현재 진행 중이고, 미래에도 숨 쉴 클래식을, 조윤범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 올해, 1월 24일 ‘콰르텟엑스와 함께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시즌2’ 공연을 시작으로, 책 출간과 더불어 여러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그를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도 올해만 컴퓨터와 음악에 대해 네 권을 펴낼 예정이란다. 그는 말하자면, 에너자이저다. 조윤범 혹은 콰르텟엑스가 더 궁금하다면, 만나고 싶다면, 콰르텟엑스 공식 홈페이지(
//quartet-x.com)에 들어가 보시라.
자유롭고 클래식하게
이번 책, 2008년 나온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의 후속편이다. 전편에 이어 이번 책도 잘 나가고 있다. 책을 냈고, 뜨거운 호응에 대한 소회가 어떤가.
사실 2권을 쓸 때 힘들었다. 1권은 (신문에) 쓰고 있을 때,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쓰고 있던 방향을 관철만 하면 됐다. 이번에는 데드라인이 정해졌고 강의와 동시에 진행하는 바람에 굉장히 시간적으로 촉박했다. 또 지방 연주나 공연이 많아서 차 안에서 집필하거나 쉬지도 못한 터라,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많은 분이 좋아해 주고 계셔서 안도하고 있다. 이번에도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했다.
1권에서는 현악곡, 특히 현악 사중주의 작곡 비중이 높은 작곡가를 중심으로 실내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했다. 2권 음악가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우선 1권에서 다루지 않은 작곡가 위주로 했다. 1권을 보신 분들 중에 자신이 아는 작곡가가 없어서 아쉽다는 분도 계셨고. 사실 나는 현악 사중주 전문가라 2권의 작곡가들 중에는 생소한 작곡가도 많았다. 오페라나 관현악과 같이 많이 연주하지 못한 분야도 있어서 공부하는 마음으로 썼다. 새로운 음악을 전파하자는 생각도 하면서 공부하면서 책을 썼다.
태어난 연대별로 음악가들이 정리가 돼 있고, 악장마다 소제목이 붙어 있다. 소제목은 어떻게 묶인 건가.
음악책이라 소제목을 악장별 제목같이 달았지만, 대개 살아가는 방식이 그렇지 않나. 어떤 일을 해도 무대에서 보여주는 쇼라고 생각한다. 시작이 있고 종결이 있는데, 그런 방식으로 챕터의 제목을 붙였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악장 제목이 직접적으로 아이디어를 줬다.
식상한 질문이다. 이번 책에 소개된 음악가들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그리고 영감을 주는 음악가가 있다면.
이번 책을 쓰면서 바그너(「신이 내린 천재, 바그너」)를 좋아하게 됐다. 그는 기악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바그너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오페라를 많이 보면서 작업했다. 오페라의 흐름도 알게 됐고. 특히 나와 닮은 모습을 많이 봤다. 고집도 강하고 여러 분야에 관심도 많은.(웃음) 인간적인 관심을 많이 느꼈다. 정말 대단한 사람 같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바그너를 토대로 강의도 많이 했다. 호응도 좋았다.
또 말러(「마니아들의 우상, 말러」)를 많이 듣게 됐다. 원래 1권에 넣으려고 했는데, 당시 공부가 부족해서 1권에서 제외했었다. 악보를 보고 다 연주해 가면서 공부를 했다. 연주자라서 장단점이 있는데, 단점은 연주를 하기 전까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거다. 많은 애호가들은 듣는 데 익숙해서 귀가 발달한다. 반면 연주자는 연주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최선의 방법이지만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소요됐다. 브루크너(「비운의 음악가, 브루크너」)를 연주하면서는 팔이 끊어질 것 같고,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웃음) 그런 경험이 소중하고 이 책에 반영됐다.
음악가와 음악에 대한 다양한 비사가 흥미로웠다. 클래식을 다시 듣게 하는 효과랄까.
내가 본 자료들은 남들이 보는 것과 똑같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보느냐다. 어떤 이야기는 사생활로 볼 수 있는데, 그 안에 들어가 내 친구라고 생각해보자. 바람을 피우면 나쁜 놈인데, 그럼에도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뭔가. 그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느끼고 전달하니까, 독자들이 재미있게 봐준 것이 아닐까.
사실 나는 남들보다 이해력이 늦다. 빨리 알아듣지 못해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깊게 알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쓴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작곡가와 친구가 되는 거다. 동시대에 있다면 (작곡가는) 이런 평가를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위인들도 위인이기 전에 일반 사람들 아닌가. 평가 기준에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부숴주고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선, 네가 지어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다.(웃음)
자료는 주로 어떻게 찾고 조사했나.
무작위로 찾았다.(웃음) 기본적으로는 도서관에서 (작곡가와 관련된) 모든 책을 찾았다. 인터넷 블로그나 백과사전 등 모두를 찾아봤다. 인터넷 카페에서도 찾았다. 소화하는 게 힘들어서 오래 걸렸다.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 할 수 없었으니까.
즐기면서 풍요롭게
비발디가 소녀원에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 경험을 하게 해서 산만한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키워줬다는 얘기를 들으니,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예술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가 떠올랐다. 엘 시스테마는 차세대 지휘의 대가인 구스타보 두다멜을 탄생시키기도 했잖나.
진정한 과정이다. 음악은 고귀한 것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추한 것에서 출발해서 신성한 것으로 귀결하는 과정이 음악이기도 하다. 음악은 누군가 엄청나게 연습해서 결과만 취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이뤄내기 위해 음악을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편하게 음악을 배우거나 재능을 타고나서 위인이라고 할 수 없다. 두다멜도 음악을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했다고 하지만 다른 명지휘자도 마찬가지다.
당시 소녀원에는 수녀교육을 받은 아이, 음악교육을 받은 아이, 일반 교육을 받은 아이 등 세 부류의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과 함께 생활했기 때문에 소녀원의 분위기는 좀처럼 통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비발디는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연주회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아이들을 집중시켰다. 통제하기 힘든 단체 생활을 음악을 통해 극복한 예는 요즈음에도 많이 볼 수 있다. 비발디도 당시에 이런 방법을 썼고, 그것은 자신에게도 커다란 득이 되었다.(p.19)
콰르텟엑스도 지방 분교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가지고 있는데…….
진정한 감동을 느끼려면 그렇게 가야 한다. 음악을 들으려고 준비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음악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지방 분교를 찾아다니며 느낀 감동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이렇게 순수한 사람들,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연주를 보고 감동을 받아서 음악을 친근하게 느낀다. 이것이 대중화다. 요즘도 계속하고 있는데, 한 달에 두세 번 가서 연주한다. 장애인 복지관에도 많이 가는데, 그분들에게 고맙다고 얘기하고 싶다.
비발디의 Op.3-6은 지하철 환승할 때, Op.4는 라디오 시그널 등 클래식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포진해 있다. 화석이 아닌 현재진행형인 우리 안의 클래식이 되기 위해서는?
‘관심’이다. 지하철에서 듣고 별도의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클래식이라고 생각 못하고 말이다. 게임에도, 영화에도 멋진 클래식이 나오는데, 왜 따로 생각하는가 말이다. 그걸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통화 연결음은 어떤 음악인가.
쓰지 않는다. 전화를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음악을 추천하는 것 같아서 (통화 연결음을) 안 한다. 시야를 좁힐 것 같아서 가급적이면 피한다.
영화 이야기가 참 많다. 영화도 실제로 꽤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호로비츠를 위하여>에도 참여했고. 영화에 활용된 클래식을 안다면, 영화 보기가 더 풍성해질 것 같다. 조윤범만의 영화 보기가 있다면.
영화는 오늘날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한 대중 예술이다.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는 동시에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유추하면 더 잘 볼 수 있다. 영화에서 정말 명장면이 나오면 어떻게 찍었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음악 들을 때도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그것이 가장 훌륭하다. 건물도 설계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면 더 좋고.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맛있다, 맛없다’를 넘어 어떻게 만들고 다른 집과 어떻게 다를까를 생각하면 미식가가 될 수 있다. 미식가가 돼야 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먹으면서 즐길 수 있느냐, 그냥 채우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모든 것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이다.
존 윌리엄스 얘기를 하면서 부러움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음악과 영화의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 윌리엄스가 당대의 최고 감독들인 스필버그, 루카스 등과 작업한 데 대한. 그처럼 함께 작업하고픈 영화감독이 있다면.
아직까지는 영화감독과 함께 작업할 레벨은 아닌 듯싶다. 대신 존경하는 감독님은 있다. 봉준호, 박찬욱, 최동훈 등 이런 분들의 영화를 무척 사랑한다. 외국 감독 중에는 웨스 앤더슨, M. 나이트 샤말란이 그렇다. 그런 분들과 동시대 살고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나치 공조 혐의나 파가니니가 나폴레옹을 위해 <나폴레옹 소나타>를 작곡하는 등 음악도 권력의 선전이나 통치 수단으로 활용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권력이든, 기업이든, 음악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맞다. 정말 위대한 예술이니까. 문제는 도움을 받아놓고 그걸 깔보는 것이 문제다. 히틀러는 바그너를 이용했지만 존경했다. 역사에서 이용을 당했다니까 문제가 되지만. (음악을) 적절한 곳에 사용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게 권력의 통치나 선전 도구로 사용된 경우도 많다.
조윤범, 나만의 스텝으로
조윤범을 일컫는 레떼르가 있다. ‘클래식계의 뉴 아이콘’ ‘음악계의 괴물’. 그만큼 음악계뿐 아니라 문화?사회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얘긴데, 그 관심 어떤가.
좋기도 하고 부담스럽다. 점점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나니까 아무것이나 입지도 못하고, 아무렇게 행동할 수도 없다.(웃음) 가게를 들어가서 서비스가 왜 이러냐고 했다가도, 내 팬이고 이러면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진짜 그런 경우도 있었다.(웃음)
파가니니는 젊은 여인들을 실신시키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 혹시 없나?
실신해 주면 좋지.(웃음) 사실 많은 예술가들이 스캔들 속에서 살아간다. 예술가들 전기를 보면 그렇다. 그래도 누구나 그랬던 것도 아니고, 그건 (예술 활동에) 많은 방해가 된다. 가급적이면 올바르게 살아가면 좋지 않겠나.
진짜 이 책을 봐도 위대한 음악가들은 스캔들도 좀 일으키고, 사랑도 뜨겁게 해야 할 것 같다. 대신 인간적이기도 하다. 조윤범의 사랑 스타일은 어떤가.
한때, 결혼 반대주의자였다. 왜냐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전기를 읽다보면 그런 느낌이 든다. 결혼하면 안 되는구나.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많지 않구나.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작곡가들을 만나고 보니 공통점이 있더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몇 명 있는데, 공통점이 있다. 뭔지 아나? (모르겠다.) 유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이게 정답이구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이 보이는구나.(웃음)
베토벤이 헨델에 바친 헌사처럼, 조윤범이 헌사를 바치고 싶은 음악가가 있다면.
워낙 많다. 책을 쓰고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 존경한다. 강의를 준비하고 계획할 때, 포기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인생도 짧고 알려진 얘기도 없고. 그럴 경우, 두 사람을 한꺼번에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가도, 그 사람 일생을 읽고 찾아보면 하나같이 파란만장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한 편의 드라마다.
바흐가 아니었다면 비발디는 역사에 묻혔을지 모르고, 바흐도 멘델스존이 아니었다면 잊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만큼 후배 작곡가들의 역할이 새삼 중요한데, 대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콰르텟엑스가 꼭 언급하고픈 음악가가 있나.
많다. 1권에서 코르볼트는 클래식 전문가는 많이 알지만, 어릴 땐 나도 몰랐다. 연주해보고 나서 정말 대단했구나 싶더라. 그러나 그렇게 알리는 것도 시기?유행을 타야 한다. 클래식은 서양이 원조라고 생각하면서 우린 변두리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에서 유행한 뒤 우리나라로 들어온 경우가 많은데, 꼭 그래야 하나 싶다. 우리가 발굴해서 되팔면 어떨까. 그래야 선진국이다.
굳이 그런 사람을 꼽자면, 대중화되지 않은 작곡가라고 하면 되겠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나 바그너의 후기 음악들. 유명 작곡가라고 해도 다 알려지지는 않았다. 인물임에도 쉽게 대중에게 다가오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은 좋은 작업이었다. 책 쓰고 강의하는 것도 직업이 됐지만,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게 보람이 있었다.
에필로그를 통해 ‘전달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루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한 음악을 전달하기 위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다른 매체에서 많이 배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그야말로 전달자다. 아이팟 등을 통해 음악을 전달시킨 사람이다. 세상에 창조는 없다. 무에서 유로 만드는 것은 신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창조를 한 역사가 없다. 전달 도구를 썼을 뿐이다. 음악도 다른 매체에서 많이 배워야 한다. 왜 사람들의 필수품이 됐나를 확인한다면 클래식도 더 발전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이 나오면 의무라고 생각한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왜 관계가 없겠나. 예전만 해도 음악 하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관련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정치인?기업인?기술자들만 취해야 하는 것 아니고, (음악 하는 사람들도) 새 기술을 빨리 활용해야 한다.
콰르텟엑스가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대중화하기 위해, 클래식 음악에 제목을 붙였다. 논란도 있지만,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음악에 제목 붙이기, 좀 더 설명해 달라.
처음 반감을 가진 사람도 많았다. 그래도 연주가나 애호가들이 자신만의 느낌을 받아서 (클래식 음악) 제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목을 붙이면 역으로 순수하게 접근할 수 있다. 누구나 생각하는 머리가 있다면, 제목을 붙이는 것은 그 클래식 음악을 위한 매개체를 주는 것과 같다.
모든 음악에 제목을 붙여주기 바란다. 그런 제목을 전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듣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한 곡은 더 자주 듣게 되고 또 쉽게 즐길 수 있지만, 처음 듣는 곡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음악적인 지식이 없어서가 절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음악 전공자나 애호가들도 자주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소한 곡은, 말 그대로 생소하다. 그럴 때 음악의 제목을 붙일 생각을 하고 음악을 들으면 효과가 탁월하다.(pp.306~307)
관심 영역이 꽤 넓다. 조윤범의 목표는 뭔가.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 하고 싶다. 관심 분야를 끝없이 넓혀가는 거지. 몸이 하나라서 참 힘들긴 하다. 새롭게 쏟아지는 기술도 한두 개가 아닌데 다, 다 하려고 하니까.(웃음) 직업이고 의무감이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누가 하라고 해서 그리된 게 아니고 관심 분야가 많다보니 그렇게 된 거다.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은 호기심이다. (요즘 꽂힌 건 뭔가?) 최근에 꽂힌 건 아이폰이다. 손에서 놓질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팔이 저리고, 누워서 만지작거리다 놓쳐서 얼굴을 다치기도 했고.(웃음)
악기를 배우고 다루는 일. 음악이라는 멋진 예술을 경험하기 위한, 삶의 즐거움 하나를 덧붙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이에게 악기를 쥐여주는 것,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닐까 싶은데, 악기를 배우는 것에 대해.
악기는 결국은 중급으로 가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중급으로 가기 위해 기본 교육에서 충분히 제공한다면 마냥 어렵진 않다.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그것을 취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고급 난이도라고 홍보하면 안 된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는 벽이 생긴다. 전문가들도 처음에는 무작정 시작했을 것이고. 나는 악기가 엄청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 필요도 없고. 지금이라도, 누구나, 충분히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악기다.
콰르텟엑스의 올해 목표와 계획이 있다면.
올해는 팀을 재정비하는 시기다. 이른바 ‘빅3’에 도전해보려고.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슈만을 연주할 계획이다. 파워클래식도 보강하고. 아이폰과 관련된 초특급 프로젝트도 있다. 어쨌든 팀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연습 시간을 늘리고 연주자로서 해야 될 기본보강 작업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할 예정이다.
그리고……
클래식에 문외한이었던, 한때 잠 오는 음악이라고 치부했던 나는, 언제부터인가 달라졌다. 버티고 견디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 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함일까. 어떤 곡인지, 누구의 것인지 몰라도, 클래식으로 종종 몸과 마음을 감싼다. 마음이 왠지 놓인다. 시간을 버티고 견뎌낸 음악으로부터 배우기? 그저 흘려들어도 좋을 만큼의 농담이고, 이젠 클래식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들으면 된다. 만나면 된다. 직접 행한 임상시험의 결과다. 그렇게, 클래식으로 살아남기는 계속된다. 가끔은 함께 듣고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