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누군가는 인생이 선택이라고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을 편집이라고 했다. 세상을 편집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기획자 출신인 일본 학자 마쓰오카 세이고의 얘기를 들어보자.
“편집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신문?잡지?서적?텔레비전?영화 등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술 용어지만, 나는 그 의미와 용법을 더욱 확장해보았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이나 대상에서 정보를 얻을 때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두 편집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일기를 쓰는 것도, 하이쿠를 읊는 것도, 붓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것도, 막부 시스템을 만들어 관직을 배분하는 것도,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는 것도, 저녁 식단을 짜는 것도, 축구나 럭비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창작 무용을 안무하는 것도 모두가 ‘편집’인 것이다.”(
『만들어진 나라 일본』(마쓰오카 세이고 지음|이언숙 옮김/프로네시스 펴냄) 중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이 2007년 연출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판한 영화, <리댁티드(redacted)>(국내 미개봉). 영화의 제목은 ‘편집된’이라는 뜻인데, <씨네21>은 이 영화의 소개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2006년 이라크 사마라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그러니까 미군이 14살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한 사건에 기반 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의 내용이 진짜인가 가짜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 누군가가 ‘직접’ 찍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진짜’라고 믿는 그 짧은 순간조차 찍는 이의 편견과 왜곡된 관점은 그대로 들어가 있음을 드 팔마는 노련하게 설교한다.”
위의 얘기들에 따르자면, 우리는 늘 편집된 무엇을 접한다. 혹은 무언가를 편집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편집한다. 운동이 그렇고 성형도 그렇다. 마음의 편집은 또 어떤가. 신문과 방송 등 언론이 있는 그대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것 자체도 편집의 결과물이다. 그들의 시선을 통한. <리댁티드>는 그래서 지고지순한 사실, 온전하게 있었던 그대로를 보여줄 것이란 믿음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아, 앞선 말, 오해는 마시라. 편집된 것의 악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편집하는 행위가 우리가 어떤 세계를 받아들일 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하고자 위함이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보는 것도 편집이다. 일상의 편집 행위.
“내 삶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한 것을 가려내고, 중요한 것을 선택해 기획하여 실천하는 일. 삶은 그러한 편집의 반복이다.”(p.20)
고경태 <씨네21> 편집장이 20여 년의 매체 편집을 하며 쌓은 노하우를 엮었다.
『유혹하는 에디터 : 고경태 기자의 색깔 있는 편집노하우』(고경태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12년 8개월을 보낸 <한겨레21>에서의 경험을 주축으로, 주간 단위로 1,000번이나 마감의 강을 필사적으로 건넌 편집자의 기록이 옹골차게 담겼다. 그는 스스로 불완전한 편집자였음을 실토하면서, 잘한 것은 잘한 대로, 반성할 것은 반성한다. 그 모든 것은, 고유의 스타일을 가진 창조적인 편집자, ‘아류’가 되기를 거부하는 편집자를 위한 선배 편집자가 건네는 이야기다.
스스로를 심심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재미를 추구한다. 잘 뜯어보면 심심하지 않다는 말이렷다. 재미는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이면서, 재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깰 것을 요구한다. ‘진짜’ 재미가 책에 있다. 알고 싶으면 읽어라. 그리고 지난 8일, 서울 공덕동 만리재(한겨레 사옥)에서 그를 만나 편집과 재미, 매체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의 달인을 만나고 난 뒤, 막막 당기는 뒷골. 이 인터뷰를 어떻게 편집하지. 고갱이를 제대로 건져서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제목이라도 뽑아달라고 할 걸 그랬나. 이 인터뷰 편집이라도 부탁해볼까. 소심한 인터뷰어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 에잇, 모르겠다. 읽는 분들이 알아서 ‘편집’해서 읽어주시라.
참, 저자의 편집자에 대한 생각을 훑어보고 들어가자.
“편집자에겐 멋진 제목을 뽑고 지면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역량뿐만 아니라, 글 쓰는 능력도 요구된다. 덧붙여 기획 역량이 보태질 때 창의적인 편집자의 종합적인 포스는 완성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편집, 글쓰기, 기획, 이 세 가지는 편집자의 능력을 구성하는 ‘트라이앵글’이다. 물론 제목 뽑기와 지면 관리라는 편집자의 전통적인 역할에만 머물러도 좋다. 좀 더 나아가 적당한 글쓰기에 자족하며 안주해도 된다. 단, 매체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p.311)
편집, 스타일을 구현하는 창의의 장
책을 낸 소회가 어떤가.
일단 첫 책이다. 예전에 기획서나, 공저 비슷한 것은 낸 적은 있지만.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는데, 만만치 않다. (웃음) 또 하나, 책에 나온 내용들은 삼십 대 중?후반 때 했던 일이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했던 일을 중심으로 다뤘는데, 좀 지났다. 과거를 팔아먹는 셈인데, 이렇게 팔아먹어도 되는 건가. 그럼에도 시원함 같은 게 있다. 평소 책상 정리를 별로 안 하는데, (책을 낸 뒤) 20년 동안 어질러놓은 책상 정리를 한 느낌이다. 제대로 한 것 같다. 인생에서의 한 매듭을 끝낸 느낌이고 더 이상 이런 일을 안 해도 미련이 남아 있지 않을 듯한 느낌이다.
책에서 스타일을 강조했다. 편집이든, 글쓰기든, 고경태 ‘고유의 스타일’을 들라면.
스타일……. 고민을 좀 해봤는데, 글쎄. 말은 쉬운데 낯 뜨거운 일이기도 하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그냥 내 스타일이라고만 해두자.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 왔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그런 얘기를 했다. ‘부자가 되고 싶지도 않고,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다. 그냥 나였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닮지 않은 방식이 내 스타일이랄까. 아……. 뭐라고 얘기하지?
그는 무엇보다 ‘아류’가 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자신만의 편집 스타일을 찾기 위한 첫 번째 태도.
“편집자마다 ‘고유의 스타일’은 필수다. 이는 ‘아류’가 되지 않으려는 정신과 닿는다. ‘일류’가 되기 위한 몸부림은 허영처럼 보인다. ‘이류’ ‘삼류’의 콤플렉스가 묻은 자학은 소모적이다. 이류, 삼류보다 치명적으로 낮은 등급은 ‘아류’다.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는 과정은 바로 ‘아류’를 극복하는 태도와 궤를 같이한다.”(p.9)
편집 개념에 있어 두 가지 메뉴를 제시했다. 수동과 창의. ‘좋은 게 좋지!’(수동)가 아닌 ‘더 좋은 거 없어?’(창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지 싶다. ‘새로운 그 무엇’을 평소 어떻게 길어 올리나.
갑자기 어떤 좋은 생각이 뒤통수 때리면서 섬광처럼 스치면 좋겠지. 물론 그러기도 하지만, 어쩌다 있는 일이고. 중요한 것은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정성을 쏟느냐다. 그러니까, 생각의 분량. 그 문제에 대한 생각의 비중, 사랑의 강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 같다. 그러다보면 밥 먹다가도, 잠자다가도, 술 먹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 문제를 얼마나, 정말 사랑하느냐가 관건이다. (술 먹다가도 자주?)
뭐, 술기운도 도움이 되고, 결국은 사람과의 만남에서 건지는 거지.
재미, 장난이 아닌 의미를 살찌우는 것
편집에 대한 철학으로 ‘재미’를 들었다. ‘고경태의 재미론’을 좀 더 펼쳐 달라.
재미론. 음, 거창한데. 내가 ‘재미론자’도 아니고. <한겨레21> 편집장이 됐을 때,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했더니, 재미에 강조를 해 놨더라. <esc>(한겨레의 생활문화매거진) 창간호를 만들 때, 첫 아이템을 고민하다가 잡은 게 재미였다. 재미있게 산다는 게 무엇이고, 어떤 것에 재미를 느끼나. 또, 그동안 나온 <esc>로 책을 낼 때, 그동안 쓴 것으로 부족하니까 팀원들이 ‘재미론’을 써보자. 그러다 보니 재미가 뭐냐를 생각했다. 재미가 뭐냐고 묻는다면, 의미를 증폭시키는 것들, 살찌우는 것들이 아닌가 싶다. 개성, 완성도, 이런 것들. 분명한 것은, (재미가) 장난은 아니다.
현실의 풍경을 쓰러뜨리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메가톤급 재미’를 경험한 것도 듣고 싶다.
편집자나 기자나 공포감을 느끼고 두려운 것, 가장 끔찍한 것은 무관심이다. 한마디로, 아무리 떠들어도 아무 반응이 없는 거지. 무시를 당하는 것. 광야에서 홀로 짖는 느낌이 드는 것. 아무 반응이 없는 것보다 악플이 낫다. 결국은 기사를 쓰고 난 뒤, 편집하고 난 뒤에 아우성이 있다면, 포지티브든 네거티브든 편집자들에게는 일정한 보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걸 떠나서, <한겨레21>은 시사지여서 현실의 제도, 시스템을 바꾸는 데, 독자나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거나 인식을 업그레이드 하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지난 일이지만 베트남전 문제나 우토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제로 꺼내 메가톤급 재미를 경험했다, 물론 현장 기자가 취재를 잘해서 그렇지만, <한겨레21> 덕분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바뀌지 않았나.
매체를 만드는 일 외에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찾나.
음……. 기본적으로 나는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심심하고. 재미가 있으면,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중독. (어떤 것에 중독되나?)
많지는 않은데, 예전에는 일중독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고.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매체들 외에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매체를 꼽는다면.
(직접 이름을 대고) 꼽기는 그렇다. 재미있는 매체는 많다. 라이선스 잡지 중에도, 일간지 섹션 중에서도 있고. 지금 존재하는 매체들 중에서는 대답하기가 좀 그렇고. 질문과는 좀 다르지만, 좋은 매체는 좋아서 만드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가령, 동네 지역 신문들 같은 거. 만드는 사람도 좋고, 상업적 속박에 끌려 다니지도 않고, 만들어서 즐겁고 행복하고.
일상에서 말하는 재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이 말을 한번 곱씹어도 좋겠다. 재미에 대한 편견도, 어쩌면 우리의 재미있는 삶에 방해 공작을 가하는 것일지도.
“우리는 흔히 무심코 말한다. ‘뭐 재밌는 거 없어?’ ‘사는 게 재미가 없단 말이야.’ 여기서의 재미란 무엇인가. ‘끌리는 그 무엇’의 총체다. 유머나 오락, 개그만이 재미라는 발상은 단세포적이다. 돈이 생기면 재미있다. 건강하면 재미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면 재미있다. 일에 보람을 느껴도 재미있다. 재미란 기쁨을 느끼고, 엔돌핀이 솟게 하는 바로 그 지점이다. 우리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모든 것이다.”(p.32)
부드러운 소통을 위한 선정주의를 옹호함
책에 불쾌하고 저열하고 염치없는 선정적 폭로주의를 배격한다는 전제 아래, 선정주의를 찬양했다.
선정주의. 억지로 예쁘게 하려는, 과장 포장하는 거다. 안간힘, 안달, 노력이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콘텐츠가 채워지지 않으니까. 확실하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거든. 또 언론매체로서의 영향력이나 힘이 없고, 강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없으니, 얄팍한 제목이나 꾀에 의존한다. 그런 것도 약자의 무기인 것 같다. 그런 것이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면을 만들 때, 나쁜 것은 버리는 과정에서 좋게 포장하려는 안간힘 같은 긍정적인 면은 취해도 되지 않겠나. 대부분 엄숙한 우리나라 주류 매체들에게도 그런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엄숙하고 지루하고 내용 없는 매체를 볼 바에는 삼류 찌라시를 보는 게 낫다고 썼다. 낚시질도 가끔 하자는 거지, 만날 하자는 건 아니다. 부드러운 소통이, 따분하지 않은 소통이 필요하다.
선정주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덧붙이자.
“돌을 맞아야 할 것은 오히려 아무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지면과 헤드라인이다.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다.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지면들은 중간은 가는 덕분에 욕을 안 먹는 셈이다. 나는 아무런 임팩트도 주지 못하는 기사를 쓰거나 지면을 꾸릴 바에는 선정적인 편집 자세를 갖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쪽이다. 편집자는 가끔 뻥도 쳐야 한다. 사기 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뻥과 사기를 치느냐가 문제다. 밉지 않게, 얼굴 찌푸려지지 않게 치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p.36)
매체 편집의 파격과 오버 사이, 어떻게 조율하면 좋을까요?
파격과 오버라는 게, 다른 말로 도발이다. 도발이 왜 도발이냐.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거잖나. 미풍양속을 해친다와 같은 것들. 미풍양속이라는 게 워낙 보수적이라 조금씩 해칠 필요도 있다. 그러나 어떤 개인의 인격이나 명예를 짓밟는 건 도발이라고 보기 힘들다.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 기사 같은 걸 파격으로 볼 수 있나? 그건 다른 것 같다. 그런 기준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선정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 감각은 필요하다. 편집자가 가져야 할 윤리 의식과 상도의.
“지금도 매체 편집자들에게 ‘시대적 사명감’을 강조하는 논리들이 많다. 물론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일정한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매체의 편집자라면 윤리 의식은 필수다. 잘못 행사되는 언론의 자유는 흉기이며, 공공의 적이다. 따라서 모든 편집자들은 공공선을 절대적으로 여기지는 않더라도, 사회정의에 관한 최소한의 상식과 감각을 갖추어야 한다. 아니다. 어쩌면 ‘사명감’이라는 말보다는 ‘상도의’라는 말이 적합할지도 모른다. ‘사명감’은 너무 무겁다.”(p.21)
반성문 쓰신 것과 애증의 표지 열전, 광고, 인상 깊었다. 특히 무산된 실험, <esc> 창간호 1면은 아쉽던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실험이 있다면.
사실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뭔가를 새로 한다는 건, 도전이기도 하고 심판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매체를 새로 만드는 것 하고 싶지 않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전혀 다른 매체를 한다면 모를까. (전혀 다른 매체라면?)
여러 가지 조건이 주어진다면, 글쎄…….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매체인데. 엄청난 걸 하겠다는 게 아니고 기존에 있는 것을 바꿀 수도 있고, 새로운 것을 할 수도 있고……. 술 먹으면서 한 얘기는 많다. (웃음)
매체를 만든다는 것
<한겨레21> 창간호부터 11년 2개월 동안 표지와 신문광고를 책임지고 만든 일이 가장 고통스러웠던 체험이라고 했다. 한 잡지의 표지를 600개 이상 관리했다는 것, 자부심과 아쉬움을 말한다면.
자부심이라면,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드물 거다. 나도 그렇게 오래할 줄 몰랐으니까.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매너리즘이 없을 수는 없었겠지만, 신문광고는 마감한 뒤 제일 마지막에 하는 일이고, 어떻게 보면 바이라인이나 크레딧도 안 들어가는데 그냥 열심히 했다. 최선을 다해서. 대충대충 안 했다.
아쉬움이라면 그렇게 오래할 줄 몰라서 자료를 많이 버렸다는 거다. 하나의 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표지를 서너 개씩 만들었다가 버리고, 취재랑 사진이랑 안 맞을 수도 있고. 그것이 어떻게 합의되고 지면화가 되는지 자료를 일일이 모아놓고 일기식으로 기록했으면 훌륭한 자료적 가치가 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많이 버려서) 표지를 찾는 데 힘들었다. 자료실에도 철이 돼 있어서 전체를 다 찍을 수 없는 애로가 있었다.
책에서 못 하거나 안 한 얘기 중에 이 인터뷰를 통해 ‘지금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참, <한겨레21> 333호의 개인적인 광고 카피였던 ‘나 다시는 술 안 마셔!’라고 하고 책에선 비밀이라고 했는데, 술 마시나.
음……. 글쎄, 생각이 안 난다. 분명히 있을 텐데……. ‘나 다시는 술 안 마셔!’는 개인적인 광고 카피라기보다 심정이 투영된 카피였다. 그 전주, <한겨레21>을 마감하는 날에 술을 많이 마셨다. 광고 카피를 써야 하는데 엉터리로 쓰는 바람에 후배가 다시 썼다. 다음 주의 신문광고는 그런 것들이 투영됐다. 내가 술 안 마신다는 게 아니고, 당시 술 때문에 사고를 친 김병관 회장을 빗대 쓴 거다. 지금 술은 많이 안 마신다. (웃음)
‘사람 복’을 절감할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면?
1994년에 한겨레에 입사했다. 막 입사해서 <한겨레21>이 창간했고, 백지상태였다. 같이 일한 사람들이 사람 복이었다. 당시 막내였는데 틀 같은 것을 강요한 적도 없었고, 틀에 벗어난 것을 해도 정리해줬다. 그런 것이 사람 복 아니었겠나. 누구와 일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는 <한겨레21> 창간 때 일한 게 복이었다. 그 이후에도 기획 코너나 칼럼이 기대치 이상으로 성과를 드높일 때, 편집자로서 사람 복을 실감했다.
책에서 그렇게 말했다. 필자와의 유착 관계에서 좋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던 경우가 있었다고.
구체적으로는 좀 그렇다.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는 때로는 귀찮게 하는 구조가 되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귀찮게 하는 악순환도 있었고, 좋았던 적도 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나 기획이 아닐까. 하나의 매체를 만들기 위한 기획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을 조언한다면.
굳이 해야 한다면, 당연한 얘기겠지만, 남과 다르게 하는 것. 아이디어를 낸다는 건 다르게 하는 거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하지 않았던 방식대로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시도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런 것들. 시켜서 일하는 건 다들 싫잖나. 그야말로 (남과) 다른 것을 하는 것이, 편집자로서는 보람이 될 수 있다. 또한 그것이 기획의 본질일 수도 있다.
편집자에게 상상은 필수적이다. 그것이 몽상이나 환상에 끝날지라도, 과격하게 말하자면 상상하지 않는 편집자는 자격 박탈이며 레드카드. “편집자는 역모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꿈꾸고 실현을 모의해보자. 그런 도전의 과정은 쾌감과 스릴을 안겨준다.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려고 하지 말자. 얼마나 재미없는가. 당신이 일거리를 만들어 딴 사람을 일하게 하자, 이왕, 일하는 거 생동감 있게 하자. 그러기 위해선 남들보다 쓸데없는 상상을 자주 해야 한다. ‘필요한 생각’만 해선 안 된다. 남들이 유치하고 쓸모없다며 무시하더라도 괘념치 말고 앞뒤 가리지 말고 마구 상상하라. 그 무한한 아이디어 사냥이 기어코 물건을 만들어 내리라.”(pp.346~347)
인쇄 매체가 아닌 인터넷 매체에서의 편집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인터넷 매체를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단행본 편집을 해본 적이 있다. 주간지에 실린 기사를 모아서 책으로 편집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라고. 폼이 다르고 매체가 달라서, (주간지 기사의) 제목을 다 바꿨다. 인터넷도 환경이 다르고, 호흡이 다르고, 제목 뽑을 때도 다르고, 디자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쨌든 한 번도 인터넷 매체는 편집한 적이 없어서 해보고 나서 얘기해보자.
책에서 쓴 대로, 글이 생존의 무기가 된 시대다. 어디에 글을 쓰든, 글쓰기의 기본은 변함이 없겠지만, 인터넷에서 글을 쓸 때 기본 외에 또 필요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저널, 즉 인터넷 뉴스가 있고, 블로그와 같이 사적인 에세이가 있다. 인터넷뉴스는, 물론 인쇄 매체도 결함이 있지만, 확인하지 않고 쓰는 글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인쇄는 게이트키핑, 데스크 교열 등 확인하는 절차가 많은데, 인터넷 매체는 상대적으로 그런 절차가 적다. 풍문일 뿐인데, 사실(팩트)로 둔갑하고, 당사자 확인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고. 그런 점이 개선돼야 하지 않겠나.
온라인에,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은 없나.
없다. 앞으로 온라인에 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어떤?)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다.
현재 편집장을 맡고 있는 <씨네21>도 계속 실험을 하고 있다. 편집장으로 있는 동안 어떤 매체로 독자들에게 각인되고, 독자들과 이야기할 수 있길 바라는가.
도도하지만 친절한 매체. 무슨 말이냐면, 상당히 권위가 있으면서도 대중들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할 수 있는. 형용모순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창조적인 편집자가 되고 싶은 독자를 위해 한 마디.
편집은, 무법천지다. 헌법이나 법률에는 편집에 관한 몇 조 몇 항이 없다. 기존에 통용되는 모든 원칙이나 관행은 누군가가 그런 생각을 해서 고착된 형태가 된 것이다. 모든 걸 파괴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고칠 만한 게 없는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다면 좋겠다. 선배들이 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나가는 게, 이른바 ‘창의적인 편집자’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다시 책을 낸다면, 어떤 책을.
앞으로도 편집자로서 살아가겠지만, 모르지. 어쨌든 책을 낸 것은, 오랫동안 편집을 하다 보니 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것 같아서 정리하는 의미였다. 나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번 책이 실무에 대한 가이드를 하는 것이었다면, 다음 책은, 확실한 건 없는데, 쓴다면 에세이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