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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무엇이 변하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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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했다면 변했다지만, 그 한켠에는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존재했습니다. 70년대의 낙원구 행복동과 21세기의 용산 철거사태는 모두 동일한 맥락 선상에 서 있습니다. 재개발을 통한 거대한 이권이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탐욕의 덩어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한반도에서 1970년대란 여러모로 의미가 깊습니다. 모든 것이 빨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그전까지 적막에 가깝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별칭이던 한국은 급속한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합니다. 공장 굴뚝의 연기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어올랐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공장은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공장을 키우고 또 일손들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수요를 채우기 위해 시골에서 농사짓던 수많은 처녀 총각들이 구름처럼 서울로 밀려들었고, 복작복작한 달동네를 이루어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폭발적 경제성장, 근대국가로의 발돋움, 산업사회로의 진입 거시경제지표로 설명되는 이런 70년대의 변화 뒤에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개개인의 미시적 일상에서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억력과 인지에 한계를 가진 인간은 주로 그 시간의 흔적을 거시적 지표로만 기억하는 습성이 있어 자칫 세세한 개인들이 만들어 온 역사는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렇게 경제학과 사회학이 미처 기록하지 못한 구석을 그려내고 역사로 전하는 것이 문학의 또 다른 역할일 것입니다. 1975년도에 처음 발표된 소설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적어도 개발 시대의 한국 70년대를 증언하는 중요한 텍스트로 자리 잡습니다. 화려한 성장의 외양 뒷면에 존재하는 그림자 같은 우리의 70년대를 『난쏘공』 은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도 않고, 얼굴에 노기를 띠며 열변을 토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하고 조용하고, 때로는 무슨 환상에 빠진 듯한 몽롱한 목소리로 70년대의 실상을 증언합니다. 마치 견디기 어려운 큰 고문을 겪은 뒤 청문회 자리에 다시 선 증언자처럼, 그 몽롱한 목소리에는 온통 고통과 시련이 묻어나고 있고, 그 맥락을 알기에 독자들의 눈은 그만큼 씁쓸한 기운을 받습니다.

소설은 서울 어느 재개발 대상지역에 사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어느 날 구청에서 날아온 철거 통지를 받으면서 달동네의 가족은 위기를 맞습니다. 옛 건물을 때려 부수고 새로 올릴 아파트 입주권 딱지는 받았지만, 입주비를 도저히 낼 수가 없는 현실 속의 도시빈민인 주인공 가족은 결국 딱지를 사러 오는 외지인들에게 딱지를 팔고 떠나야만 하는 운명을 맞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인 아버지는 난장이입니다. 백십칠 센티미터라는 키를 가진 아버지는 그 키만으로도 이미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위치이고, 그렇기에 남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이 아닌 허드렛일로 간신히 달동네에서의 가족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입니다. 철거라는, 주거권 자체가 위협받는 최악의 상황에 닥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말 그대로 도시 하층민의 삶조차 위협받는 궁지에 몰리며, 그나마도 몸이 아파 일을 못 나가는 환경에 놓이면서 그의 아들딸들이 주변 공장에 나가 생업을 이어가기 시작합니다.

남들 학교 다닐 나이에 공장 일을 시작하게 된 난장이의 아들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차갑습니다. 늘 친한 친구였던 주인집 명희네 어머니는 이제 철거라는 상황 앞에 돈을 재촉하는 주인집 아줌마일 뿐이었고, 동네 딱지를 몽땅 사들이는 재벌 2세 남자는 그저 태생부터 자신들과 다른 세상에서 시작한, 같은 인간 부류가 아닌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어제까지 살던 집이 헐리고 가족을 먹여 살리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들은 분노와 체념 가운데서 갈팡질팡하며, 그나마의 감정조차도 다 드러내지 않은 채 소설은 여운만을 가득 담은 채 말을 줄여 버립니다.

『난쏘공』 은 개발도상국의 수도에서 ‘슬럼’ 으로 분류될 수 있는 재개발지구에 사는 도시빈민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어느 정도는 체감으로 알고 계시겠지만, 그 도시 슬럼의 철거에 관련된 이야기는 험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실제로 철거 용역반들은 철거대상 지역에 해괴한 낙서와 파괴 등의 반달리즘을 통해 남은 주민들의 퇴거를 종용하며, 각목과 쇠 파이프, 손도끼 등으로 무장한 채 협박과 위협을 일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난쏘공』 의 화자들은 특별한 분노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소설 속 화자들의 서술은 무척 담담합니다. 게다가 화자들의 상상은 현실을 넘어 저 어느 강둑이나 달나라까지 넘어가 버리는 모습 또한 종종 보여 줍니다. 생존이 걸린 철거라는 주제를 두고도 소설은 문제의 핵심을 콱 물어뜯는 것보다 주위를 빙빙 돌며 정황을 뿌옇게 스케치하는 방식을 통해 주제의식을 드러냅니다.

이는 실제 철거대상이 된 세입자들의 상황이 분노만으로 가득하기도 어렵기 때문임을 암시합니다. 자신들의 삶을 강제하고 규정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압도적인 힘과 권력은 막상 맞부딪으며 싸워 보기엔 너무나도 거대하고 강력한 힘이며, 그나마 붙잡고 싸울 만한 샅바나 멱살조차도 보이지 않는 암담함입니다. 구청에 가서 항의해도, 건설사 사장실에 쳐들어가도, 아니 어디 그냥 청와대에 쳐들어가도 답이 안나오는 철거촌의 암담함은 분노마저도 쉽게 터뜨릴 수 없는 사회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됨을 소설은 그 화법을 통해 전달합니다.

그 구조적 모순조차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난쏘공』 은 끊임없이 난장이 가족의 가족사를 조명합니다. 증조부 때부터 대대로 종의 자식으로 이어 내려져 온 난장이 가문은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이 역사 속을 살아온 전형적인 사회 최하층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 한 번도 최하층을 벗어나지 못했던 가족의 역사는 가족 구성원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 전반에 걸친 체념의 뉘앙스에 근거가 됩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봉건사회부터 누적되어 왔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던 최하층이라는 사회적 계급은 당사자 스스로를 끊임없이 체념의 늪으로 끌어당기는 또 다른 족쇄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희망은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도, 더 큰돈을 모아 성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당장의 삶을 이어 나가고 공장 점심 반찬의 무말랭이가 어제보단 간이 잘 맞기를 바라는 정도입니다. 이미 그 이상의 꿈과 희망은 구조적으로 차단된 상태이고, 끊임없이 자신들을 소외자로 몰아가는 세상에 더 큰 기대를 걸기를 거부합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우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공원들도 줄었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공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갔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공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 『난쏘공』 본문 중에서

실제 소설에 나오는 저 원문을 읽다 보면 흥미로우면서도 공포스러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저 문장이 당장 21세기의 요즘에도 그리 동떨어진 말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지금은 무말랭이보다는 높은 수준의 욕망이 들어찬 세상이지만, 적어도 수당은 줄고 노동강도는 심해지며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줄어드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부당한 처사는 예나 지금이나 함부로 말하면 밀려나고, 그러면서 기업들은 점점 더 새로운 기계들을 들여옵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사장들은 회사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이 모든 것들에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조세희 (1942~ )
‘무엇이 달라졌습니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난쏘공』 을 읽고 난 뒤 수많은 이들이 갖는 첫 번째 의문점이 됩니다. 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끊임없이 저 지평선 끝에 만나는 듯한 기찻길의 꼭짓점 같은 욕망으로 치닫고 있고, 개개인을 넘어선 자본과 국가는 그 욕망을 보다 거시적 차원에서 추진합니다. 닿고 나면 더 큰 것을 갈망하게 되는 욕망과 그 욕망에 기반해서 세워진 사회 질서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인 가치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기에, 우리는 70년대의 현실을 스케치한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 기저에 깔린 동일한 논리에 숨 막혀 합니다.

변했다면 변했다지만, 그 한켠에는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존재했습니다. 70년대의 낙원구 행복동과 21세기의 용산 철거사태는 모두 동일한 맥락 선상에 서 있습니다. 재개발을 통한 거대한 이권이라는 욕망을 자극하는 탐욕의 덩어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21세기의 철거 현장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이제는 그 현장에 개입하는 이권세력들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건설사와 공권력뿐 아니라 요즘의 철거촌에는 재개발 조합들, 조합원과 조합원, 세입자와 땅주인, 심지어는 철거민연합 같은 단체까지 끼어들면서 말 그대로 이권의 이전투구를 보이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어야 할지, 30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이 끝없는 모순의 굴레를 생각하다 보면 혼자 화가 나기도 합니다. 당장 또다시 불거진 철거현장의 대형 참사를 보면서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나를 생각하게 합니다. 난장이는 작은 공을 쏘아 올렸다지만, 도대체 그 공의 실체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요? 정말 우리 모두가 가슴에 품을 만한 아름다운 공 하나를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찾아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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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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