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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 고창석의 배우 인생이 전진한다, “레디~ 액쑌!”

내 이름은 봉 감독, 아니 고창석. 내 얘기 좀 들어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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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통해 어디까지 갈 수 있냐를 고민하는 것이 엔터테이너지. 그러고 보면 배우들은 다 몽상가 같아. 늘 그렇게 꿈을 꾸잖아. 꿈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 한번 좋은 콘텐츠를 고민해보고 각자의 영역에서 한번 만들어 보자고.

※ 고창석 씨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내 이름은 봉 감독, 아니 고창석.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레디~액쑌!”

사실 지금까지 연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 20여 년 전만 해도 내가 업으로 생각했던 것은, ‘국악’이었거든. 1989년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안 하고 발 디디고 마음을 둔 곳이 탈춤 동아리였어. 국악이나 타악, 재미있더라. 남원에 가서 풍물도 배우고, 거리공연도 하고, 작품도 많이 만들었어. 그냥 그렇게 시작한 것이고, 그땐 그게 취미가 아니고 업이었어. 그러니까 특별히 연극을 시작하겠다고 한 게 아냐.

알다시피, 생이란 게 원래 그렇잖아. 어쩌다 마디가 생기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생이 흘러가는 것. 1994년에 민중 가요 노래패인 ‘희망새’에 들어간 것도 그랬지. 그때 즈음 노래패가 노래극단으로 바뀌면서 연기를 하게 된 거야. 그러다 시간이 흘렀고. ‘희망새’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도 했지. 난 내가 ‘부산노동자예술단’ 같은 곳에 갈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래저래 사정이 있어서 연극을 때려치우려고 했었어. 1998년 서울에 올라왔어. 서울예전(지금의 서울예술대학) 국악과에 들어가려고 했어. 아내는 무용과에. 그래서 나중에 강습소 같은 것을 열어서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어. 허허, 다시 인생이 병적인 유머센스를 발휘하지. 당시 연극과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연극과 원서를 사주는 거야. 그리고 학교를 들어간 거지. 참, 내 첫 전공은 일본어였어. 일본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지만. 하하.

연극은 그렇게 내 생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지. 1999년에 임도완 선생님과 사다리움직임연구소라는 극단을 만들어 활동을 했어. 그 이전의 활동과 사실 크게 달라질 건 없었어. 부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지하연습실에서 연습하고 무대에도 오르고. 생활 패턴이 달라질 건 없었지. 활동장소만 바뀌었을 뿐. 돈? 연극하면서 아주 돈을 많이 벌겠다고 생각하는 연극인은 없을 거야. 돈 벌려면 다른 걸 해야지. 그저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계속 공연을 했지.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건 아니지만, 10년 정도 하니까, <보이첵>이 지난해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상도 받고, <휴먼코메디>가 소극장 공연으로 관심을 끌었고. 물론 생활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무대만 있어도 생활이 되겠다는 자신도 생겼어.


영화, 그리고 대중과 한층 가까워진 <영화는 영화다>의 봉 감독

아, 영화는 어떻게 하게 됐냐고? 좋아, 이것도 들어봐.

탈춤을 하고 노래극단에 들어간 것도 그렇고, 연극도 그렇지만, 영화 또한 마찬가지야. 2001년 단편 영화인 <이른 여름, 슈퍼맨>이라는 작품이 첫 영화 출연작이었어. 사실 이 작품은 아내가 주인공이었는데, 현장에 따라갔다가, 출연하게 된 작품이고. 그것으로 끝이었어. 연극을 계속 하다가, 영화를 본격 시작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 이유가 좀 있는데,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없진 않고. 연극을 계속 하다가, 영화는 어떻게 찍는지 궁금한 거야. 영화 장르에 대한 궁금함이랄까. 그리고 다른 극단을 보면 선배 한명이 영화에 출연하면 극단의 후배들도 작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러는 거야. 내가 우리 극단에서 제일 선배였거든. 그래서 영화 쪽에도 기웃거리면서 오디션을 보곤 했지. 후배들에게 디딤돌이 된다면 나도 좋겠고.


하다 보니, 영화와 연극은 좀 다른 것도 있더라고. 연극은 (연습 등을 거치다가) 관객과 제일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데, 영화는 편집 과정을 거치잖아. 연출 요구를 더 이해하고 발가벗고 뛰라면 하면 뛸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하겠더라고. 말하자면 (연극)무대는 배우예술인데, 영화는 감독예술이라는 특성이 있는 것 같아.

참, <영화는 영화다> 감독은 어떻게 봤어? 이 영화를 만든 장훈 감독이 날 염두에 두고 캐스팅했다고 해서 참 고마웠고,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야. 내 생각에 봉 감독이 사랑받는 이유는, 상황마다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가 아닐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도 매 상황 그럴듯하거든. 적당히 소심하고, 겁 많은 것 같아도 자기 할 말은 하면서. 주인공인 수타와 강패가 뻘에서 싸움하는 장면에서 “내 배우 끝까지 믿어야 된다는 것.” 하고 얘기하는데, 나도 이 대살 제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흘러가는 말처럼 말하지만, 관객에게 ‘저 감독 정말 저렇게 생각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아, 영화 속 내 모습은 평소 모습이냐고? 비슷해. 그렇게 설정이 돼 있기도 했고. 봉 감독의 말투는 그렇게 설정된 건 아니지만, 내 평소 말투와 비슷하긴 하지. 가장 비슷한 건, <바르게 살자>였고. 가끔 “표준말 못 써요?”라는 질문을 받는데, 무대에서는 자연스럽게 되는데, 처음 영화 찍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어. 다들 영화를 하고 있는데, 나만 연극을 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한 10여 년 서울에서 살다보니 혼재돼서 어설픈 말이 나오는 것 같긴 해. 그래서 생각했어. 영화 연기가 어떤 것이다 규정 내리기 전에 편한 말투를 쓰고, 영화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 캐릭터를 만들어가야겠다고. 아직은 카메라 연기에 적응하고 있는 단계라고 여기고 있어.

난 관객의 ‘공감’을 얻는 캐릭터로 다가서고 싶어. 봉 감독처럼 인물로 기억되고픈 역할을 하고 싶은데, 해당 인물은 정말로 특별히 의도된 것이 아니라면, 입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악인이라도 인간적인 공감은 얻을 수 있는. 만약 웃긴 캐릭터라고 해. 근데 웃기려고만 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행동 하나하나에 당위성이 있어야 하는 그런 인물이고 싶어. 출연 예정인 <인사동 스캔들>에서도 인물을 만들어가겠지만, 조급해 하지 않으려고 해. 내 모습에서 시작해서 발전할 수도 있을 테고, 어떤 때는 실패도 하겠지만, 조금씩 쌓다보면 잘 될 거야. 난 모르는 것을 묻는 게 부끄럽지 않아. 내겐 20여 년 동안의 경험이 큰 힘이야. 스무 살 무렵부터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다면 지금 쯤 달인이 돼 있을 수도 있겠지만, 4~5년 탈춤하고 또 4~5년 노래극하고, 비슷한 기간을 신체극을 하면서 쌓은 것들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프레임 안의 영화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80살 이상 산다고 보면 앞으로 40년을 더 해야 하는데, 조금씩 발전하면서 나갈 수 있을 거야.

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 3년 전, 영화를 처음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찍은 게 <친절한 금자씨>였고, <수> <괴물>과 같이 다들 한 번이라도 작업하고픈 감독님들과도 함께 일해 봤고 <바르게 살자><영화는 영화다>처럼 장진 감독님과 김기덕 감독님 휘하의 전도유망한 감독들과도 작업하고.

다만, 최근 시나리오가 많이 받고 같이 작업하자는 제의가 종종 있는데, 선약 때문에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곤 해. 크고 작은 걸 떠나, 개런티 때문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못하게 되는 경우인데도, 혹시 건방져 보이는 건 아닐까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해. 정말 난 바뀐 게 없거든. 오해하지 말아?으면 좋겠어.


부산, 그리고 가족

사적인 얘기도 좀 들려줄까?

말했다시피, 난 부산 출신이야. 고향에 대한 애정, 많지. 그렇게 열광적이진 않지만, 롯데 자이언츠 팬이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고 부산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야. 배우 입장에서는 그게 좀 제약이 있기도 하고. 늘 마음속에 품고 있긴 한데. 기회가 늘 주어지는 건 아니지. 혹시라도 부산에서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좋지. 무조건 하는 방향으로 해야지. 사실, 아직 결정 난 것은 아니지만, 잘하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에 출연하게 될 수도 있어.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인터뷰할 때 만난 기자가 송강호-김윤석-오달수 계보를 잇는 부산 연극인 출신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고 하는데, 워낙 대단하신 선배 분들이라 내가 감히… 그래도 그렇게 되면 좋겠지. 물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재미있으니까, 계속 연기를 할 거야. 앞으로 40년을 해야 하잖아. 하하.

아, 가족? 형과 누나가 이른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었어. 지금도 국제변호사와 교수를 하고 있는데 어릴 때 비교를 당하긴 해도 외려 그랬기에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도 있었어. 친구 좋아하고 운동 좋아하고 재미있게 놀았어. 꼭 공부 잘하는 사람이 반장하는 건 아니니까, 고등학교 때는 반장도 계속 했고. 연극하면서 친구나 가족들과 좀 멀어지긴 했었지. 지지리 궁상처럼 보이고 괴리감도 느끼고. 그래도 시간 지나면서 차츰 해결이 됐어. 사실 배우 기질도 누구한테 특별히 받은 건 아닌 것 같아. 어머니가 국문학도고 노래를 곧잘 하셨지만,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야 누구나 있잖아?


난 ‘가족’이라는 콘셉트를 좋아해. 우리 기획사에서 지난 6~7월에 공연에 올린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도 같은 맥락이었지. 김창완 선생님이 작곡을 맡아주신 공연이었는데, 흥행이 썩 잘 된 건 아니지만, 평도 좋고 콘셉트도 좋았어. 난 미술과 음악이 결합한 공연을 해보고 싶은 바람이 있어. 그래서 가족들이 그 작품을 보고,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공연 말이야. 정보와 지식이 있는 공연이기도 하지. 우리는 반 고흐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에겐 귀를 자른 것 말고도 다른 이야기도 많아. 많은 ‘가족극’이 실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출 뿐, 어른들은 아이에 얹혀가는 경우가 많잖아? 그래서 어른이 들러리가 아니고 진짜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만드는 것도 목표야. 사실 그 공연이 더 잘 됐으면 피카소, 다 빈치, 샤갈 등 미술가 시리즈를 하려고도 했었는데, 하하. 내 머리 속에는 시놉시스와 이미지로 정리한 2~3개 정도의 음악소재 공연 아이템도 있어. <반 고흐와 해바라기 소년>의 경우, 원작자 앤 홀트가 공연을 좋게 봐서, 캠브리지 대학에서 이 공연을 갖고 발표도 했다고 들었는데, 영국 공연이 잘 됐으면 네덜란드에 전용관도 짓고 싶었어. 왜 네덜란드냐고? 반 고흐가 네덜란드 사람이거든. 그런데 네덜란드엔 반 고흐에 대한 공연이 없어.

아~참, 이런 얘기는 좀 쑥스럽긴 한데, 내년이나 내후년께는 아내와 2인극도 할 계획이야. 잠시 언급했다시피, 아내도 배우인데, 아이 키우느라 활동을 제대로 못했거든. 내년에는 본격 활동을 할 예정인데, 나와 함께 미니시리즈부터 우선 할 것 같아. 2인극 같은 경우는, 예전에 <타이피스트>라고 우리 극단에서 내놓은 작품인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내가 하지 못했어. 그런데 극을 보니까, 내가 꼭 하고 싶더라고. 그때 아내랑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그러다 결혼기념일인지, 아내 생일인지, 선물은 해야겠는데, 돈은 없고, <타이피스트> 대본을 복사집에 가서 제본한 뒤 그걸 아내에게 건네 줬지.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꼭 한 번 아내와 함께 2인극을 해보고 싶어.


몽상가, 그래서 천상 배우

좀 길었지? 그래, 슬슬 마무리할 테니, 마저 들어봐.

듣고 보니, 내가 겁이 없는 것 같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좀 그래. 하하. 사실 지금 이렇게 주목받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도 있어.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 질 거라고 생각해. 내 패턴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사실 내가 엄청난 긍지를 갖고 노력하는 스타일은 아냐. 운이 좋은 거지만, 자연스럽게 행보를 디디고 싶어. 굴곡이 분명 있겠지. 칭찬도 받는 한편 오해나 욕도 받겠지만, 그건 본질이 아니니까, 괜찮아. 난 나의 길을 꾸준히 가고 싶어. 재미있으니까. 앞으로 40년을 해야 하니까.

내년에는 배우에 전념하려고, 사다리움직임연구소 부소장과 공연기획사 대표도 그만뒀어. 그것들을 하기엔 시간도 뒷받침을 못하고, 배우에 전념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아. 그래야 하는 시기도 된 것 같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난 그것으로 좋아. 이런 말도 있잖아. “불행한 인간은 있어도, 불행한 배우는 없다.” 누구나 배우를 할 수 있는 것몶 아니고.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말 연기를 잘하는 후배가 있는데, 이런 말도 하더라고. “비참하다. 그런데 재밌다.” 이건 배우만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비참한 현실이지만, 한 발 떨어져서 보니 그렇다는 건데, 그것이 밑거름이 되는 거지. 더 구체적으로 캐릭터로 구현되든, 감성이든 구축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


공연도 그래.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 생활도 묻어나고 가치를 창출하는,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 일본의 한 식당은 할아버지들이 운영하는데, 오므라이스를 시키면 기차가 철로를 따라 칙칙폭폭 와서는 음식물을 놓고 가. 문화 콘텐츠로서 활용하는 거지. 또 스페인의 ‘트라이서클’이라는 마임이 있는데, 오래 전 10분짜리 공연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방송국까지 세우셨대. 나도 봤는데, 대사나 음악 없이 몸짓만으로 하는 물체극인데, 정말 재밌어. 기립박수를 칠 수밖에 없어. 탈을 벗으니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시더라고. 조그맣게 시작해서 이렇게 갈 수 있는 보니까, 꿈을 가지는 것도 좋겠더라고. 엔터테이너가 TV에 나오는 예능인만 지칭하는 것 아냐. 콘텐츠를 통해 어디까지 갈 수 있냐를 고민하는 것이 엔터테이너지. 그러고 보면 배우들은 다 몽상가 같아. 늘 그렇게 꿈을 꾸잖아. 꿈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우리 한번 좋은 콘텐츠를 고민해보고 각자의 영역에서 한번 만들어 보자고.

불가능,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레디~ 액쑌!”

***

인터뷰 후기

인터뷰를 마친 그날 밤, 눈이 펑펑 내렸다. 조심조심 걸었으나, 훌러덩 미끄러졌다. 아~ 엉덩이가 미칠 듯이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먹을 꽉 쥐고 일어서야 했다. 눈을 잠시 원망했다. 그렇게 눈을 좋아하는데도. 그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문득, 고창석 씨의 말이 떠올랐다. 굴곡이 있다는 말. 칭찬과 욕이 교차할 테지만,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 문득 눈에 슬라이딩한 내 모습이 갑자기 웃겼다. 하얗게 웃어 제치니 눈도 함께 웃는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그리고선 웃기냐, 나도 웃기다.

오래 전, 액션 영화는 그랬다. 주먹으로 원한을 쌓으면 마음대로 그 거리를 떠나지 못했다. 어떤 대가든 지불해야 했다. 제 아무리 손을 씻었다손, 개과천선을 쉽게 용납지 않는 것이, 이 엄혹하고 냉정한 세상! 존재가 켜켜이 쌓은 퇴적물과 세상은 그렇게 교감하는 법이다. 내가 만나본 봉 감독, 아니 고창석 씨는 한 편의 영화로 갑자기 뜬 것이 아니다. 지금의 그는, 과거의 그가 쌓은 퇴적물이다.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거듭거듭 겸손해 했지만, 그는 그동안 갈고 닦은 내공과 대중이 소통할 순간을 자연스레 맞이했을 뿐이다. 이른바 대중과 소통하는 ‘시절인연’을 만난 셈이랄까. 사람을 탐구하고 세상을 공부한 일종의 중간 결산.

나는 <영화는 영화다>를 보면서, 봉 감독의 한 언저리는 고독이 도사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현장에선 저렇게 코믹하고 유머스러워도, 저 사람 아마, 집에 가면 고독과 친구하고 있을 거라고. 때론 싸우면서. 그도 영락없이, 어느 순간엔 봉 감독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 좋은 웃음과 덥수룩한 수염이 무척 잘 어울리는 어떤 호방함 뒤에 고독 한 자락을 묻고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가족이나 친구 등과 상관없는 거다. 혼자만의 착각일지 몰라도, 생각했다. 전진하는 그의 연기에 스크린과 무대는 숨을 죽이고, 관객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기억하시라. 그 이름. 고.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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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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