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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다툼에서 매 맞아 죽은 첩 서가이

조선시대 양반들은 첩을 들일 때 “후사를 잇기 위해서”라는 말을 버릇처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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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성적 욕망을 합리화하는 말일 때가 많았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약간의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머릿속 비녀가 풀릴 듯 매달려 있고, 머리카락은 엉겨붙어 있었다. 옷고름은 땅에 끌리고 눈동자도 풀려 무엇을 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부가이孚加伊는 소리 내어 울고 있었지만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비에 젖은 거적을 부여잡고 딸아이를 부르다 실신했다. 거적에 싸여 있는 시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앙상한 발가락만 삐죽 나와 있었다. 발가락도 성한 것이 하나 없이 검게 변해 있었다.

서가이徐加伊는 마지막 숨을 내쉬며 남편과 보냈던 시간들, 네 딸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녀의 시신을 붙들고 오열하던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주인 여자에게 “왜 내 딸을 죽였냐”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곧 주변에 서 있던 다른 노비들에 의해 끌려나갔다. 여자는 다름 아닌 남편의 본처인 이씨였다. 그녀는 원래 시집올 때 서가이를 계집종으로 데리고 온 주인이었다.

서가이는 어머니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 조선시대 노비는 개별적으로 소유주가 정해지기 때문에 외형상 한 가족이라도 실제로는 각각 주인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았다. 노비의 절대다수를 소유했던 양반층은 노비를 상속?매매?기증할 때 그 가족을 한두 명씩 분할하는 게 대체적 경향이었다. 혼인은 주인집에서 노비 노동력을 그대로 이용하기 위해 동내혼洞內婚, 가내혼家內婚을 선호했다.

*

서가이는 빼어난 미모는 아니지만 귀여운 여자였다. 부령部令 박구朴苟는 서가이의 싹싹함에 끌려 그녀를 첩으로 삼았다. 박구가 여종을 첩으로 삼은 것은 당시 양반 남성들의 보편적인 행위에 속했다. 자신의 혼인 여부나 부인의 현숙함과는 관련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박구는 서가이를 첩으로 삼아 딸 넷을 낳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서가이에게도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양반의 첩이 된다는 것은 곧 신분 상승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본처인 이씨는 서가이가 아이를 가질 때마다 남편에 대한 미움에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은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서가이가 아들이라도 낳는 날이면 그녀의 앞날은 순탄할 수가 없다. 첩의 아들이라도 거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서가이는 딸만 계속 낳았다. 이씨는 서가이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자 질투심에 평소에도 자주 괴롭혔다. 그러던 중 남편 박구가 병으로 먼저 죽게 되었다. 재산의 대부분은 이씨가 가져갔다.

이씨는 남편이 죽자 서가이를 다시 노비로 부리려 했다. 시집올 때 데리고 왔던 계집이 첩이 된 경우로 이씨 입장에서는 노비로 삼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당시 사노비의 경우 대부분 부모?조부모?외조부모?장인 장모?부?처첩 및 동생이 서로 협의해 나눠 가졌다. 이때 관공서에서 발급한 문서나 증서를 사용했는데, 그 문서를 고치고자 할 경우 사유를 갖춰 신고하면 관청에서 개정해주었다. 노비분재 문서나 증서를 받을 자가 사망하면 그 이후에는 다시 고치지 못했다. 그렇기에 박구는 죽기 전에 문권을 이씨에게 맡겼다. 죽기 전 그가 없어도 서가이가 편안히 살아갈 수 있도록 종에서 양인이 되는 문권을 주고 노역에서 방면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사노비에 대한 방역放役은 노동 부담을 좀 덜어준다는 의미이지 신분 해방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본처인 이씨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남편과의 약속을 어겼다.

신윤복, <주사거배>

박구가 죽자 이씨는 자기가 낳은 딸 셋과 함께 서가이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별채에서 쫓아내고 그동안 사용하던 집기들을 모두 빼앗았다. 서가이를 행랑채로 옮겨 살게 하고는 노비와 마찬가지로 집안일을 마구 시켰다. 서가이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 비록 남편이 죽었지만 딸 넷을 키우기 위해서는 강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서가이는 용감하게도 이씨의 명령에 반항하고 대들다가 급기야 매질을 당해 죽고 말았다.

당시는 주인이 노비에 대해 사사로이 가하는 벌, 즉 사형私刑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남살濫殺과 혹형酷刑 같은 극단적인 사형은 국가에서 금지해, 발각될 경우 제재가 가해졌다.

본처인 이씨가 서가이를 죽일 만큼 매질한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여기엔 재산 분배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개입돼 훀었다. 서가이가 낳은 딸 넷이 첩의 자식으로 박구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국대전 ‘사천私賤’ 조에는 천첩 자녀의 경우 부모의 재산 중에서 십분의 일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것이 서가이를 포함한 자녀들을 노비로 돌려놓으려는 진짜 이유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추가된다. 당시 서출이나 음직의 양반이 여종을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딸은 아버지가 장례원에 신고해 사실을 조사한 다음 대장에 올리도록 돼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16세가 넘도록 신고하지 않거나 대장을 제출한 뒤 3년이 지나도록 확인을 받지 않은 경우, 혹은 대장에 올린 뒤에도 역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고발할 수 있었다. 이씨로서는 세금을 내기가 싫었던 것이다.

서가이의 어미 부가이도 본처인 이씨의 아비 이자문이 노역을 방면시킨 여종이었는데 딸이 맞아 죽자 이씨를 관아에 고소했다. 이 사건은 묘하게도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단순한 폭행?살인죄가 아니라 종과 주인과의 관계, 본처와 첩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

형조에서도 고민에 빠졌다. 사건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여종이 주인을 고발한 것이다. 이에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발할 수 없으니 접수하지 말고 부가이를 중죄로 다스리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두번째는 본처인 이씨가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그 뜻에 순응해 노역을 방면시켰다가 남편이 죽자 첩을 매질해 목숨이 끊어지게 했으니 이것은 부도婦道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었다. 또 이씨의 딸이 아버지의 첩을 노비로 부리고자 하며 때려죽인 것은 강상에 관계된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이씨의 딸에게도 죄를 주어야 한다고 세종에게 보고했다.

우선 서가이의 어미 부가이가 본처인 이씨를 고발한 죄는 장 100대와 도형 3년에 해당됐다. 속전등록續典謄錄에는 노역에서 방면된 노비가 옛 주인을 고발할 경우 접수하지 말고 장 100대, 도 3년에 처하도록 나와 있었다. 백성이 근본이라고 외치던 조선이었지만 천인이었던 부가이의 슬픔을 헤아리지 못했다. 노비는 인간이 아니었다.

한편 본처인 이씨가 서가이를 때려죽인 경우, 죄도 없는데 가혹하게 때렸기 때문에 이씨에게는 장 60대와 도 1년이 선고됐다. 또한 이씨 딸들은 아버지가 노역을 방면시킨 문권을 빼앗은 죄에 해당됐다. 이들은 부모의 가르침을 어겼다 해서 장 100대를 맞았다.

당시 세종은 이 사건이 강상과 관계되는 중요 문제로 파악하고, 의정부와 여러 조에서 함께 의논하도록 했다. 참찬 조계생趙啓生이 내놓은 의견은 이러했다.

“부가이는 비록 이씨가 방면한 여종이나, 서가이는 이씨의 종이니 본 주인으로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속전등록에 옛 주인을 고발한 조목에 의거해 죄를 다스림이 마땅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어 찬성 이맹균李孟畇의 의견도 올려졌다.

“부가이는 옛 가장을 고발한 법에 의해 죄를 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모자의 정리로는 불쌍함이 있습니다. 또 이씨는 남편의 명을 따르지 않았고, 그 딸들은 아비의 첩이 낳은 딸을 노역시키고자 했습니다. 이씨와 그 딸의 죄를 논하지 않고 홀로 부가이의 죄만 논한다면 옳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아울러 논하지 말고 다만 서가이가 낳은 딸만을 육전에 의거해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듯 입장이 갈렸지만, 대부분은 본처인 이씨와 그녀의 딸들이 아버지의 명을 제대로 받들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우선 이조판서 하연河演은 “남편의 첩이 낳은 자식은 그의 아내가 종으로 쓸 수 없다”고 보았다. 이씨가 남편의 첩을 괴롭혀 죽이려고 했을 때 노비였던 부가이가 관가에 이씨를 고발한 것은 당연하다고도 했다. 그렇기에 이씨에게 죄를 묻고 서가이의 소생을 보충군補充軍(전쟁과 사변에 대비해 현역의 보충을 목적으로 둔 병사. 천민들을 속량시켜 활용했다)에 딸린 계집종으로 보내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세종도 당시 양반들이 노비를 살해하는 죄에 대해 묻곤 했다. 노비도 사람인즉 비록 죄가 있더라도 법에 따라 결정하지 않고 사사로이 죽인 것은 주인으로서 자애慈愛?무육撫育하는 인덕에 어긋나니, 그 죄를 다스리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좌찬성 신개申槪도 서가이를 박구의 첩으로 인정하고 사건을 처리하고자 했다.

“부가이는 이자문이 이미 노역을 방면시킨 종인즉, 이자문의 딸이 사역시킬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노비가 주인을 고발한 죄로 논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오히려 본처인 이씨와 딸이 아버지의 명을 거역한 죄를 물어야 합니다. 또한 박구가 서가이를 방면시키고자 한 문권을 제대로 밝히기를 요청드립니다.”

세종은 신개의 논의대로 사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노비를 살해한 주인에 대해서는 논리를 보이기도 했다. 신분적 상하 분별 논리에 입각해 무죄로 보면서 사람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관점에서 유죄를 고려했다. 유교적 통치 이념인 인정의 원리와 법치를 통해 보호하고자 하는 신분질서 사이의 대립이 드러났던 것이다. 하지만 죽고 살리는 문제는 왕의 대권에 속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즉 왕권 침해로 보았다. 정리되어 형조로 내려온 세종은 명은 다음과 같다.

“박구의 처 이씨가 그 여종 서가이를 구타 살해했으니 율에 의하면 장 60과 도형 1년에 해당한다. 서가이의 어미 부가이는 주인 이씨를 고발하고, 이씨의 딸들도 같이 구타해 살해했다고 무고했다. 이는 율에 의하면 장 90과 도 2년 반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가이는 나이가 이미 70이 넘었으니 속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서가이는 박구와의 사이에서 딸 넷을 두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기 위해 박구를 밤마다 방으로 끌어들였다. 본처와의 아들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설사 서가이가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대를 이을 장손이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첩을 들일 때 “후사를 잇기 위해서”라는 말을 버릇처럼 사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적 욕망을 합리화하는 말일 때가 많았다. 조선후기 이시발이라는 한 양반은 첩이 죽고 그 제문에 “지난날 후사를 이어줄 사람을 구하다가 자네의 성품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거의 반년을 애태워 자네 부모님께 겨우 승낙을 받았네”라고 적고 있지만 당시 이시발은 4남 4녀의 아버지였다. 이만부라는 사람 또한 첩이 죽고 제문에 “정해년에 자식을 잃은 뒤, 후사를 이을 희망이 끊어지니 첩을 골라 들였다”라고 적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만부는 첩에게서 5명의 아들을 낳았으나, 결국 동생 이만유의 아들 지백을 양자로 들여 가계를 계승했다.

박구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어떠했을까. 비록 그가 서가이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깊고 부드러웠다 할지라도 장자를 정하는 것은 박구 단독의 결단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집안과 문중의 문제였다. 서가이의 죽음도 애처롭지만, 그녀가 아들을 낳았더라도 펼쳐질 삶의 풍경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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