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와인, 아는 만큼 즐긴다 -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 펴낸 전상헌을 만나다

‘자기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는 방법’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와인을 즐기려는 마음과 와인 공부에 시간을 조금만 투자한다면 누구나 와인을 좋아하게 됩니다. 와인은 함께 마시기 좋은 술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술과 인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인생의 축복입니다.”

보험사와 재무컨설팅회사에서 근무하다 현재 개인재무컨설팅 일을 하고 있는 전상헌 씨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소주를 좋아하는 평범한 사회인이었다. “자존심이 강해서 남 앞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는 걸 죽도록 싫어해요. 접대 때 와인을 마실 일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꽤나 받았어요. 처음 와인을 마셔야 할 때면 일단 주문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하잖아요. 라벨에는 영어도 아니고, 불어에, 이태리어에, 스페인어가 씌어 있으니 제대로 읽을 수가 있나,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긴장하고 마시면 사실 맛도 모르겠고……. 오기로 와인을 안 마시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와인 애호가가 되기까지의 와인 공부를 책으로 내다

그런 그가 와인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을 쓸 정도로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것은 친구 덕분이다. “와인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옆에서 와인을 마시는 겁니다.” 전문가 수준의 와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와인 마시는 방법, 포도 품종, 빈티지, 각국 와인의 특징 등을 하나하나 배우고 나니, 처음에는 마시기에 불편한 술이라고 여겼던 와인 마시기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 후, 국내외의 와인 서적을 구해 읽고, 보르도 와인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지금도 계속 와인을 마시고, 와인에 대해 공부한다.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은 꽤 두툼한 책이다. ‘와인 한 잔 마시자고 이렇게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하나’ 한숨이 나오는 독자도 있겠다. 그렇지만 와인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술이다. 와인은 단순히 마셔서 취하는 술이 아니라 오감을 즐기는 술이며, 그 깊이 역시 한 인간이 평생을 바친다 해도 다 파헤치기 힘들 정도다. 탐험을 기다리는 대륙이며, 결코 다 씌어질 수 없는 역사다.

그래서 와인은 공부가 필요하다. “와인은 단순히 술이 아니고 문화니까요. 우리가 외국을 여행할 때는 그 나라의 풍습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와인은 몇 가지만 알아두면 생각보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술이에요. 와인은 고급술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와인을 즐기는 서양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시는 술은 2~3만 원대의 캐주얼한 와인이에요. 매일 프랑스 5대 샤토의 술을 마시는 건 아니죠.(웃음)”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 저자 전상헌

처음부터 책을 쓸 생각으로 자료를 모은 건 아니었다. “성격상 뭐든 철저히 하는 편이에요. 와인에 반하기 전에는 등산을 좋아했어요. 먼 데 있는 산은 시간이 없어서 못 가고 북한산을 주로 올랐는데, 북한산의 샛길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가봤어요. 일에서 은퇴하면 북한산 관리인 하며 살고 싶었죠.” 또, 선천적인 정리벽까지 있어, 초보자의 입장에서 와인에 대해 궁금한 것을 하나씩 공부하면서 정리한 것들이 책을 낼 만한 분량으로 쌓이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책까지 내게 되었다고.

“와인 마니아 클럽 ‘인 비노 베리타스’의 이순주 박사님이 그러셨어요. ‘솔직히 한국에 나온 대다수의 와인 책 중에 남에게 권할 만한 책이 없다. 나도 예전에 책을 한 권 썼는데, 지금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린다.’라고 하시며 당신 책을 보여주시는데, 책에 빽빽하게 포스트잇으로 고칠 부분 표시를 해두셨더라고요. 나중에라도 개정판을 내게 되면 수정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책을 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고민했죠. 저는 그냥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소믈리에도 아니고, 와인 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도 아니니까요.”

부담이 컸지만 처음 와인을 접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의 와인 애호가가 되기까지의 공부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정보로 가득한 책이다. “사실만 썼어요. 와인에 대한 감상적인 글을 쓸 실력도 아니고 쓸 생각도 없어요. 이 책은 제가 저자라기보다는 일종의 편집자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수많은 자료들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 둔 것이니까요. 얻을 수 있는 자료는 다 얻었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철저하게 검증을 했습니다.” 책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은 두 가지. 첫째는 ‘웬만한 것은 다 나오게 하자’, 둘째는 ‘필요한 깊이는 갖추자’였다.


와인, 이것만 알면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책을 쓰면서 ‘자기 취향에 맞는 와인을 고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신경을 썼다. “‘와인? 그냥 자기 입에 맞는 와인을 마시면 되지.’ 그러는데, 초보자 입장에서는 자기 입에 맞는 와인이 뭔지를 알기 힘들어요.”

와인의 최대 장점인 ‘다양함’은 초보자들에겐 넘기 힘든 장벽이다. 그래서 책에는 나라별 포도 품종에 대한 부분에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 레드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중 대표적인 것에 까베르네 쏘비뇽, 메를로, 삐노 누아, 쉬라즈, 말벡이 있고,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 중 대표적인 것에 샤르도네, 쏘비뇽 블랑, 리슬링, 쎄미용,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있다. “일단 라벨에서 쓰인 포도 품종만 알아도 대충 맛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까베르네 쏘비뇽은 묵직하고, 영화 <사이드 웨이>에 나와 유명해진 삐노 누아는 섬세하고 메를로는 편안한 대중적인 맛입니다.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샤르도네는 과일향이 풍부하고, 쏘비뇽 블랑은 깔끔한 맛이에요. 대충 이 정도만 알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고를 수 있고, 어떤 음식과 함께 마시는 게 좋은지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초보자라면 어색한 와인 에티켓에 대해서도 너무 겁먹지 말라고 충고한다. “처음 와인을 마실 때는 양식을 처음 먹을 때처럼 긴장이 됩니다.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는 것부터 어렵죠. 그럼 소믈리에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와인을 얼마만큼 따르고, 건배는 어떻게 하며, 와인잔의 어디를 잡을 것인가, 또, 스월링(잔을 가볍게 돌려 와인이 공기와 골고루 접하게 하는 것)을 하고, 잔이 비었을 때 와인을 다시 채워 달라고 할 때 어떤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가……. 처음 와인을 마실 때는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에티켓에는 모두 의미가 있고, 또 문화의 일부분입니다. 어렵게 받아들이지 말고, 각 에티켓의 의미를 파악한 후, 천천히 익숙해지면 됩니다. 에티켓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여유가 있어요. 꼭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식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와인잔은 대를 잡는 게 맞지만, 보울 부분을 잡고 마시는 서양 사람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술을 즐기는 겁니다. 에티켓 때문에 정작 중요한 와인 맛을 느낄 수 없다면 그거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와인 열풍이라면 만화 『신의 물방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전상헌 씨는 『신의 물방울』에 대해 초보자가 와인을 배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만화가 와인의 저변 확대에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와인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책에 등장하는 화려한 묘사와 환상적인 디캔팅을 보고 와인에 빠져들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와인 지식은 상당히 와인을 많이 마셔본 사람들 수준이에요. 기본 이상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죠.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같은 작가의 책 『와인의 기쁨』이나 『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권해주고 싶어요.”

『신의 물방울』 이야기가 나오니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생겼다. 『신의 물방울』은 무엇보다 와인에 대한 멋진 묘사가 유명하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마드리드의 무더운 밤에 검은 눈동자의 남자가 연주하는 정열의 플라멩고 기타’ ‘따뜻하지만 때로는 가혹한 사막의 석양’ ‘안개 속에 신비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문을 꼭 닫고 있는 완고하고 아름다운 성’.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은 없습니다.(웃음) 와인의 묘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에서 비롯된 것이 많죠. 와인을 마실 때, 빛깔을 보고, 향을 즐기고, 맛을 보고, 마신 후의 여운을 즐기는데, 그때 ‘아, 이 와인은 무슨 향, 무슨 맛이 나는구나’ 정도는 떠올라요.”

두 번째는 블라인딩 테스트에 대한 것. 와인이 나오는 영화나 소설, 만화에서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고 와인 이름, 포도 품종, 연도까지 가려낸다.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초보자라도 각기 다른 빈티지를 마시면 그 맛의 차이를 가려낼 수 있어요. 그만큼 와인은 복잡하면서도 방대한 술입니다. 어느 정도 마시면 빈티지까지는 힘들지만 포도의 종류와 와인 이름까지는 맞출 수 있습니다.”


와인을 배우는 방법, 동호회를 이용하라

전상헌 씨는 특별히 좋아하는 와인이 없다. “와인은 하늘에 떠 있는 별만큼 많아요. 어떤 와인이 좋아도 또 다른 와인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 와인만 좋아하기 힘들어요. 수많은 와인을 나름대로 즐기고 싶습니다.” 그는 와인의 다양성을 즐긴다. 특정한 와인을 좋아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와인은 함께 마시기 좋은 술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술과 인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인생의 축복입니다.”
책을 통해 와인의 기초 지식을 익혔으면 그 다음은 와인을 마셔봐야 한다. 책은 읽어야 맛이고, 인생은 살아야 맛을 알 듯, 와인 역시 마셔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와인 지식은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한 준비 단계이자, 도구일 뿐이다. 전상헌 씨는 동호회를 가입하거나, 스스로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해 볼 것을 권했다.

“동호회를 하면 좋은 건 일단 많은 와인을 마셔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혼자서는 한 병밖에 못 마시지만 열 명이 모이면 열 병의 와인을 마셔볼 수 있잖아요? 다양한 와인을 즐기기에는 동호회 활동이 제격입니다. 그리고 와인은 취하는 술이 아니라 즐기는 술입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술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 더욱 인생이 즐거워지죠. 좋아하는 사람과 마시는 술만큼 좋은 게 또 없잖아요? 그런 교류를 하려면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동호회보다는 적은 동호회가 좋습니다. 직접 동호회를 만들면 좀 더 부지런히 적극적으로 와인 공부를 하게 되는 동기가 되겠죠.”

그는 현재 두 개의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는 보르도아카데미 리더스 과정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하는 동호회이고, 다른 하나는 친한 친구 일고여덟 명과 함께하는 모임이다. “이 두 동호회 모두 제가 주관하고 있어요. 장소 섭외에서 와인 수배까지 할 일이 많죠.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공부가 많이 됐습니다.” 인터뷰가 있는 날도, 친구들과 와인을 마실 약속이 잡혀 있었다. 기장으로 일하는 친구가 뉴욕에서 사온 와인과 그가 준비한 호주의 화이트 와인이 그날 마실 와인.

와인을 처음 즐기려는 사람에게 그는 이런 조언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와인을 즐기려는 마음과 와인 공부에 시간을 조금만 투자한다면 누구나 와인을 좋아하게 됩니다. 와인은 함께 마시기 좋은 술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술과 인생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건 인생의 축복입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

<전상헌> 저/<이순주> 감수16,200원(10% + 5%)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바이블로 자리잡은 한 권으로 끝내는 와인특강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 선물 때문에 자주 스트레스를 받는다. 격식차릴 필요없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에서라면 모를까, 업무상 품위있게 와인을 마시며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에서는 와인을 고르는..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우리가 서로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천선란의 이 소설집처럼. SF의 경계를 뛰어넘어 천선란의 다정한 세계관이 무한하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신작.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끝내 누군가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넘실거린다.

글쟁이 유홍준, 인생을 말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의 산문집.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서의 글쓰기 비법과 함께, 복잡한 세상사 속 재치와 지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가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이 시대와 호흡한 지식인이 말하는, 예술과 시대와 인간에 대한 글들을 빼곡히 담은 아름다운 ‘잡문’에 빠져들 시간이다.

맥 바넷 x 시드니 스미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우리 시대 젊은 그림책 거장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두에게 선물을 주느라 정작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북극 친구들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맞이할 마법 같은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만나보자.

우리는 모두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 정보와 잘못된 믿음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지 분석한다. 또한,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