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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아강지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강지의 죽음은 아무도 살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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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륜아를 낳고 기른 어미는 최우선적인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아강지阿强知는 어지러운 잠 속에 있었다. 가슴이 서늘한 느낌이 자는 내내 들었다. 그러다 뭔가가 쿵하며 번쩍 정신이 들었다. 사위는 고요했다.

‘꿈인가?’

꿈에 아들이 보였다. 집 나간 아들이었다. 불효막심한 놈이 어미에게 언성을 높였다. 이제 집에 없어 볼 일도 없지만 집을 나가기 전 아강지는 아들과 심하게 다퉜다. 어릴 때는 그렇게 어미를 위하더니 커갈수록 삐뚤어지는 아들 때문에 그녀는 속병을 앓았다. 꿈속의 아들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어미에게 고함을 질렀다. 끔찍한 느낌이 든 아강지는 고개를 저으며 맞은편의 흰 바람벽을 쳐다봤다. 문득 방에 온기가 없음을 느꼈다.

‘이제 닭이 울겠군.’

남편을 임지에 보내고 혼자 큰 집을 지키는 아강지는 새벽에 잠을 잘 깼다. 갑자기 저녁에 홧김에 마신 동치미 국물이 역한 트림으로 올라왔다. 요즘은 소화도 잘 안됐다. 어느새 잠은 달아나버리고 아강지는 낮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전날 그녀는 아들 영산永山의 집을 작심하고 찾아갔다. 행상行商한다고 집을 나간 후 몇 달에 한 번 들르곤 하는 아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강지는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나가 험한 꼴을 겪다보면 영산도 천민의 피를 증오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영산이 예전 이웃집 여종 영비永非와 동거하는 걸 동네 방물장수가 보고 와서 알려준 것이다. 말하자면 영산은 영비와 도망가면서 어미에게는 행상 나간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아강지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배신감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들은 숨어서 나오지 않았고, 찾아서 들어간 어미와 아들은 집 안에서 떠나가라 싸움을 벌였다.

*

아들에 대한 아강지의 애착은 유별났다. 전남편은 영산을 낳자마자 배에 물이 차더니 일찍 죽었고 젊어서 혼자가 된 아강지는 삶이 막막했다. 그녀는 욕심이 있었다. 그냥 먹고사는 게 아니라, 아들을 출세시키고 싶었다. 글을 가르치고 과거 시험에도 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됐다. 재취 자리를 구하던 그녀는 동네 생원生員 김가완金可完과 중매로 만나 첩살이를 시작했다.

아강지가 김가완에게 시집간 것은 그가 문장을 잘했기 때문이다. 아들 영산을 출세시키는 것이 삶의 최대 목표였던 그녀는 김가완이 출로가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급 관리 김가완은 평생을 외지로 떠돌았고, 무엇보다 경제적 능력이나 수완이 없는 전형적인 딸깍발이였다. 남편의 임지를 따라다니며 궁색한 살림을 이어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들은 영 글 읽기에 소질이 없었다. 처음엔 교육에 적극적이던 남편도 점점 지쳐갔고 아강지 또한 팍팍한 살림 속에서 꿈을 잃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결코 포기 못 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아들만은 천민과 결혼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비로 살며 젊은 시절을 설움으로 보낸 아강지는 아들에게만은 천민의 피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영산이 열여섯이 됐을 때 남편 김가완이 남포 훈도藍蒲訓導(조선시대 전의감?관상감?사역원 및 500호 이상의 고을에 두었던 종9품의 관직)로 발령이 났다. 함께 따라간 아강지는 그곳에서 양가良家의 참한 색싯감을 구했다. 영산의 짝으로는 더 이상 없을 정도로 모든 조건이 적합한 상대였다. 그녀는 고향에 있는 아들에게 인편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노복이 전하는 말은 아들이 결혼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혼사가 어그러지고 난 후 아들과 어미는 틈만 나면 다투는 사이로 변질돼갔다. 그러다가 영산은 행상을 핑계로 집을 나가고야 말았다.

*

1489년(성종 20) 아침 조정에 한 건의 살인 사건이 보고됐다. 형조刑曹에 따르면 동부東部에 사는 김가완의 첩 아강지가 남편이 평산교수로 임소에 가 있는 동안 혼자 살다가 도적에게 해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도적들이 집의 북쪽 벽을 허물고 들어오려다 포기하고 직접 대문으로 침입했고, 잠을 자던 김가완의 첩은 칼에 목을 찔려 방 안에서 죽어있었다고 보고했다.

신고자는 아강지의 아들 영산이었다. 아침이 되어도 밥 짓는 기척이 없자 이웃이 들여다봤는데, 안방에서 아강지가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이웃들이 채 놀라기도 전에 어디선가 신고를 받은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옷가지와 집기들은 모두 제자리에 있었고 사람만 즉사한 걸로 봐서는 강도가 아닌 살인이 목적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보통 원한 살인은 칼로 난자하기 마련인데 시체는 잔인하게 살해되었다기보다는 상처가 오히려 너무 가지런했다. 즉, 피해자가 크게 반항한 흔적이 없었다. 최초의 발견자와 신고자가 피해자의 아들인데, 이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가 이 같은 참사를 목격했다는 사실이 왠지 수상했다.

범죄 수사에 잔뼈가 굵은 형조에서는 이 사건이 강상 범죄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웃을 탐문한 결과 아강지의 아들 영산이 평소 어미에게 패악한 짓을 많이 했다는 게 밝혀졌으며 많은 주민들이 아들의 짓이라고 의심하고 있었다. 영산이 반은 증인 자격으로 반은 용의자 신분으로 수감되었다.

5월 8일 대사헌 송영宋瑛이 이 사건을 의금부로 옮겨서 국문하도록 청했다. 보통 살인 사건이 아니라 자식이 부모를 죽인 심각한 사건이었다. 성종은 윤허를 내리는 대신 좌우를 돌아보며 “어찌 자식으로서 제 어미를 죽일 리가 있겠는가?” 하였다. 성종의 말은 범행을 자체를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이게 말이 되느냐는 자조 섞인 의문형이었다. 신하 윤필상 또한 “어찌 이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신도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하였다. 황계옥黃啓沃은 “형조에서는 일이 많아 번잡하니 이번 옥사는 의금부에 전적으로 맡겨 국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아뢰었다.

*

며칠 뒤 아강지 사건의 전모가 상세하게 드러났다. 전모라고 할 것도 없었다. 잡혀 들어간 영산이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아강지가 유난히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날 새벽, 몰래 잠입해서 칼로 찌른 사실, 그 후 옷을 벗겨내서 아내에게 줘 은닉한 사실,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관아에 신고를 한 사실 등이 실토되었다. 좌승지 한건韓健이 정리해서 보고했다.

“영산은 그 어미를 손수 찔러 죽였습니다. 그리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어미의 피 묻은 옷을 벗겨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그 옷을 받은 영산의 아내는 형부 석을동石乙同에게 주었습니다.”

석을동 부부는 처음에는 숨겼지만 두 번에 걸쳐 매질을 가하자 털어놓았다. 다만 그들은 아강지의 옷을 집에 숨기지 않고 길에 버렸다고 주장했다. 물증은 찾지 못했다.

의금부에서는 그가 아내 영비와 공모해 그 어미 아강지를 죽인 죄는 모두 능지처참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또한 노비 석을동이, 영산이 어미를 죽인 것을 알면서 관에 고하지 않은 죄는 장 100대와 유 3000리에 해당한다고 보고했다.

성종은 영돈녕 이상과 대간을 만나 “영산이 죄가 큰 것을 알지 못함이 아닌데 혹시 인복引服(없는 죄를 있다고 자복하고 형을 받음)한 것은 아닌지 그것이 의심스럽다”고 하였다. 성종은 영산이 한 번의 국문에 너무 쉽게 자백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재상들은 “영산이 평상시에 패역한 행실이 있었으니, 어미를 죽인 사실은 조금도 의심스러움이 없습니다”며 이 사건을 빨리 종결짓기를 아뢰었다. 성종이 윤허했다.

영산과 영비, 이 불행한 부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가지에서 팔다리가 찢기는 능지처참을 당했다. 찢겨진 육신은 전국 각지로 보내 반면교사를 삼도록 조치되었다.

김득신, <반상도>

한 여인의 고집스러운 신분 상승 욕구는 이렇듯 일가족 모두의 죽음을 불렀다. 아강지의 이야기는 노비들이 천한 신분에서 탈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은유다. 밖으로 나가는 벽이 너무 높고 두텁다보니 오히려 안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결국 자폭하게 되는 이치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유교적 덕목은 부모에 대한 효도였다. 그것이 확대된 형태가 국가에 대한 충성이었기에 효는 만행의 기본이었다. 패륜아를 배출한 지역은 마을 전체가 불이익을 받을 정도로 강한 벌이 가해졌기에 효는 조선의 민중들이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집단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데올로기이기도 했다. 1651년(효종 2) 4월 26일 전라도 함열현咸悅縣에서 유현일柳玄逸이란 자가 몽둥이로 제 어미를 때려죽인 일이 벌어졌을 때 정부에서 함열현 자체를 없애고 용안龍安에다 합쳐버린 사례가 그것이다. 따라서 지방 수령들은 이러한 강상 범죄가 일어날까봐 늘 노심초사했다. 파직당하는 것은 물론, 고을을 잘못 다스렸다고 평생 손가락질 받으면서 인사에 불이익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사건을 숨기고 축소하거나 범인을 바꿔치기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1531년(중종 26) 경산慶山에서 제 어미를 죽인 전범全凡에 대한 수사를 경상감사가 일부러 지연시켜 조정에서 탄핵당한 일이 있었다. 당시 조정의 대간들은 “제 어미를 죽인 사람이 이첹 죽었다 하니, 무고히 죽은 것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며 축소?은폐 시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강지의 죽음은 아무도 살피지 못했다. 패륜아를 낳고 기른 어미는 최우선적인 공공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착잡한 원망의 심정들이 푹푹 찌는 여름과 함께 익어갔다. 그해에는 유난히 매미가 징그러울 정도로 울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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