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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살리에르 스위트피의 거절하지 못할 제안

나이를 먹어도 ‘저 사람은 나이에 맞게 잘 하는구나.’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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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관객들을 사로잡는 강렬함, 음반에서 반짝거리는 그 음악적 재능과 감각을 가진 ‘김민규’는, 그의 음악을 듣고 매료된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아티스트 김민규는, 무대 위 혹은 녹음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면을 가진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무대나 작품에서 보이는 ‘자기’와 실제로 만났을 때 보이는 ‘자기’ 사이의 간격이 넓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물론 이 놀람은 기분 좋은 놀람이다. ‘델리스파이스’의 멤버이자, ‘스위트피’로 솔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민규의 첫인상은 동아리방에 앉아 있는 복학생 안경선배였다. 무대에서 관객들을 사로잡는 강렬함, 음반에서 반짝거리는 그 음악적 재능과 감각을 가진 ‘김민규’는, 그의 음악을 듣고 매료된 사람들이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아티스트 김민규는, 무대 위 혹은 녹음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95년에 델리스파이스를 결성했고, 98년에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 음악인으로 산 경력만 10년이 훌쩍 넘는다. 그동안 수많은 인터뷰를 당했고, 대중매체에 노출된 것도 수십 번일 터니 어쩌면 이 사람에게 인터뷰는 일상의 풍경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두 손을 꼭 맞잡았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표현하는 듯했다. 질문이 이어지고, 편한 분위기가 되자 손이 풀리고 얌전하나마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그는 조심스럽고 수줍었다.

“가수분들 연말에는 공연 때문에 바쁜데 어떠세요?”

“음반이 지금 나와서요. 활동 좀 하다가 2월쯤에 공연할 예정입니다.”

“오늘 이브인데 특별한 계획이라도 있으신가요?”

“별다른 계획은 없어요. 가족과 함께 지내겠죠. 담배 피워도 되죠?”

“예. 괜찮습니다.”

“내년에는 담배 끊을 생각인데.”

“왜 끊으시려고 하는데요?”

“세상이 비흡연자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커피숍이나 식당에 가도 흡연석은 어두컴컴한 구석 자리잖아요. 아니면 유리벽에 갇혀서 원숭이처럼 보이고요.(웃음) 저도 흡연자지만 담배 찌든 냄새는 싫어요. 기분 좋게 커피 마시러 갔는데 그런 데 갇혀서 마시면, 좀. 한 대를 피워도 여유를 즐기면서 피우고 싶은데, 환경이 안 좋아지니까. 담배 피우는 사람이 비문화인이 되가는 것 같아요. 끊어야겠어요.”

팬들이 궁금한 것은 역시 스위트피 2집 <하늘에 피는 꽃>과 3집 <거절하지 못할 제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가 아닐까. 권신아의 일러스트를 CD 재킷으로 썼던 2집이 5월의 공기처럼 투명하고 달콤했다면 3집은 강렬하고 퇴폐적인 느낌마저 든다. 모자이크처럼 빼곡히 박힌 사진 위로 담배를 피우는 김민규의 모습이 보인다. 뒤에 있는 사진들은 모두 그가 남미 여행을 하면서 찍은 것들. 혼자 다녀온 남미 여행에서 느낀 것들이 이번 앨범에 담겼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난 여행

“남미로 긴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앨범을 너무 많이 내는 건 아닌가 싶었어요. 델리스파이스도 하고, 솔로도 하고, 영화음악 감독도 하고, 이소라 씨 음반 작업도 하고, 작곡도 하고… 많이 했는데 허전한 뭔가가 있더라고요. 새로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재충전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음악 듣는 것도, 공연하는 것도 즐겁지가 않고.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할까요? 자극도 휴식도 필요하겠다. 그래서 서울에서 제일 먼 곳에 가자. 그러니까 반대쪽이더라고요. 혼자서 한달 반 정도 돌았어요. 생각도 많고, 혼자 다니다 보니까 극한의 외로움도 느끼고, 왠지 모르는 그리운 감정도 느끼고. 음악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뭔가 감정적으로 말랑말랑해져야 노래도 나오고, 노랫말도 쓸 수 있거든요. 딱딱하게 굳어지고, 일상이 편해지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별로 안 들어요. 여행을 하면서 쓰고 싶다, 뭔가 노래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여행하면서 쓴 메모나, 녹음기에 녹음한 것들,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돌아오니까 앨범을 만들 준비가 된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슬슬 준비해서 앨범을 냈어요. 올해 3월 달에 돌아와서 시작했죠.”

“남미는 우리와 계절도 반대니까 꽤 기묘한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겨울을 한 번 건너뛴 셈이니까. 그래서 올해 겨울이 더 추운 것 같아요.”

“남미는 어땠어요?”

“남미는 가기 쉽지 않잖아요. 비행기 시간도 길고. 막연하게 알고 상상했던… 저는 『백년동안의 고독』을 참 좋아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참 궁금했었어요. 남미 사람들은 동물적이고, 보사노바를 들어보면 감정적이고, 삼바나 그런 걸 보면 열정적이고. 그런 복합적인 느낌들이 담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어떤 부분은 굉장히 우울하고 다운되는 노래도 있고, 굉장히 신나는 노래도 있고.”


“여행 가서는 어떤 음악 들으셨어요?”

“저는 여행 갈 때 꼭 BGM을 준비해요. 여기서 들었던 음악도 거기서 들으면 완전히 다르니까. 남미니까 남미 쪽 음악을, 피아졸라 이런 거, 좀 유치하지만 ‘Don't Cry For Me Ar gentina’. 나중에 여기 와서 여행 때 들었던 음악을 들으면 그때 느꼈던 감정, 보았던 풍경들이 떠오르죠. 저는 사진이나 비디오 보는 것보다 여행하면서 들었던 음악을 들을 때 더 또렷하게 떠올라요.”

“여행을 좋아하세요?”

“무척. 시간이 나면 어디든 가요. 저한테 일종의 탈출구인 셈이니까, 마냥 편하고 그래요.”

“남미에 가서 춤도 추셨나요?”

“하하, 아니요. 피가 다르니까요. 우린 좀 뻣뻣하잖아요. 보는 건 재밌죠. 탱고 카페 같은 데 가면 무희들이 무대에서 춤을 춰요. 성격이 내성적이라, 혼자 차분히 즐기는 건 좋은데 그런 건. 외향적으로 드러내는 성격은 못 돼요.”

“그런데 노래할 때나 무대 위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이는데요.”

“공연할 때는 제가 다른 누군가가 된 느낌이 들어요. 평상시 제 모습하고 다른 자아라고 생각하거든요. 노래를 만들 때도 그렇고. 저라는 인간 자체와는 달라요. 나와는 다른 노래를 쓰기도 하고. 음악을 할 때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 자체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인간이고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그런데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할 때는 과격하고 용감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처음부터 무대에서 그런 느낌이었나요?”

“점점 증폭된다고 할까, 그런 쪽으로 변해간다고 할까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노래를 만들 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만들 때는 그렇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 요즘에는 음반을 컴퓨터로 작업하잖아요. 흔히 말하는 웨이브 파일이나 mp3 파일들을 한 번에 믹스에서 곡을 만드는 걸 익스포트한다고 하는데, 여기를 올렸다가 저기를 바꿔봤다가 계속 작업을 하다가 마지막으로 익스포트할 때 가장 행복하죠. 노래를 만드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런 힘든 게 노래에 담겨 있어야 듣는 사람들도 내가 느낀 것을 받을 수 있다고 느껴요. 음반이 나온 후의 달콤함을 위해 참고 그래요. 가급적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하지만.”

“노래에 대한 부분은 즐기려면 즐길 수 있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은 그렇게 하기 힘들잖아요. 분명 앨범을 내고 가수로 살아가는 일에는 그런 부분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창작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음악 외적인 것 때문에 힘들 때도 많죠. 더군다나 요즘엔 여기저기서 죽는 소리를 많이 하니까. 비즈니스는 2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물론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땅에 발을 딛고 살고, 밥을 먹고 사는 인간이니까.”

“그렇죠.(웃음) 음악을 오래 하다 보니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인 것 같아요. 저의 지난 앨범, 지난 연주, 이전에 만들었던 노래, 썼던 가사… 항상 이전의 ‘나’와 비교를 하게 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음악 외적인 걸로 너무 많이 자기 에너지를 뺏길 거 같았어요. 내 안에서 나의 음악적 발전을 즐기고, 보람을 찾는 게 그렇게 해야 음악을 할 수 있고, 내가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뮤지션으로 변화와 성장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두시나요?”

“저는 변화하는 것이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계속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면서, 그러니까 ‘이거 하면 그 사람’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저슴 그때그때 다른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내 식으로 엮어내는 게 즐거운 것 같아요. 이번 앨범만 봐도 삼바나, 스카, 보사노바의 느낌이 있거든요. 그런데 완전히 삼바, 보사노바도 아닌 것이. 그 정도만 해도 저는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완전히 남미음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할 이유도 없죠.”

“예. 그래서 이번에는 리듬적인 변화를 많이 줬어요. 스카 리듬이랄까 그런 것들.”

“이번 앨범도 그렇고, 지난 앨범들도 멜로디들이 참 좋은데요. 곡을 쓰시면서 멜로디에 신경을 많이 쓰시는 편인가요?”

“저는 멜로디에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진 않아요. 그냥 떠오르는 것들을 바로 기록하고 녹음을 하는 편이었는데, 폴 매카트니가 그랬어요. ‘일주일이 지나고 떠오르지 않는 멜로디는 좋은 멜로디가 아니다.’라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녹음할 필요가 없나, 싶었어요. 멜로디는 한 번에 써서 그게 좋지 않으면 버리는 편이에요. 거기에 비해 가사나, 편곡, 리듬은 여러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나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쿨한 살리에르다

“늘 꾸준히 앨범 내시고 활동하는 걸 보면 슬럼프라는 게 없어 보이시는데요.”

“하하하. 휴식을 하지 않으면 힘들어요. 저는 한 앨범 다음에 분명히 끊어주는 게 필요해요. 굳이 어느 앨범이라고 이야기는 못 하겠는데 연달아 작업을 하다 보면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이번에는 많이 쉬어서 나름대로 뜻한 대로 결과가 나왔어요. 그런데 뭐라고 해야 할까. 저는 앨범을 낼 때마다, 이번 앨범이 특히 그런데, 왠지 마지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범이 나오면, ‘더는 작업을 못할 것 같아.’ 그런 생각이 들어요. 힘이 너무 드니까.”

“뭐랄까, 앨범 만드는 작업은 에베레스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서 또 올라가는 그런 작업처럼 보이네요.”

“맞아요. 또 다시 어떻게 하나 싶죠. 이번엔 남미에 다녀와서 앨범 만들었는데 다음엔 어딜 가지? 아프리카에 가야 하나?(웃음) 그런 걱정이 들어요. 지금은 아직 편하게 즐겨야죠. 그러고 싶어요.”

“이번 앨범은 여러 분들과 공동 작업을 한 곡이 많은데요.”

“다 잘 아는 분들이긴 한데 음악 작업을 한 건 처음이었어요. 처음부터 계획이 됐던 건 아니고, 노래 녹음을 다 했는데 주변에서 ‘이건 언니네 이발관 석원이 형이랑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해봐요.’ 그러면 전화해서 ‘해줘,’ 그러고. 제가 녹음실에서 시간에 쫓겨 가며 녹음을 한 게 아니라 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죠. 솔로니까 할 수 있는 작업이기도 했고.”

“감성이랄까, 그런 부분은 변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제가 이번 앨범 제목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영화 <대부>에서 가져 왔거든요. 그런데 제가 20대 때는 보다가 졸았어요. ‘뭐야 저게, 갱 영화가 총도 안 쏘고 사람도 별로 안 죽고.’(웃음) 그런데 서른을 넘어서 DVD로 다시 보는데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있는 거예요. 가족애라고 할까 그런 부분이. 스무 살 때는 가족보다는 자기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직장이나 일이나 자기 장래 같은 것들. 저도 그랬고.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내가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건 변화다.’ 그런 식으로 어디를 꼭 꼬집어 달라졌다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가사나 멜로디에 그런 부분이 분명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인어의 꿈’ 같은 노래가 특히 그래요. 나이 든 사람의 시점에서 노래를 했어요. 4,50쯤 돼서 돌아보는 노래. 이런 노래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나이를 들어서겠죠.”

“사랑에 대한 감각도 변하지 않았을까요.”

“아무래도 무뎌지죠. 사랑을 매번 경험할 수 없잖아요. 감정적으로도 힘들고. 나이 들면 사랑에 빠지는 것도 힘들고, 헤어지면 더 힘들고. 가급적 나이 들어서는 그런 것들은 간접경험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죠.(웃음) 영화나 책, 그런 것들을 통해 느끼려고 노력해요.”

“최근에는 어떤 영화를 보셨어요?”

<어거스껆 러쉬>. 며칠 전 공연에서 기타 바디를 치면서 노래를 했는데 관객분이 ‘어 그거, <어거스트 러쉬>에 나오던데.’ 그래서 호기심이 생겨서 어제 봤어요. 음, 정말 천재긴 한데, 음악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너무 영화 같은 천재’ 같더군요. 그래도 있긴 있을 것 같아요. 백 년에 한 번쯤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모차르트 같은.”

“그렇게 고통 없이 음악을 하는 게 부럽지는 않으셨어요?”

“약간 그런 건 있었어요. 나는 역시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르구나. 난 역시 더 노력을 해야 돼.(웃음)”

“예술을 하시는 분들 중에선 나이가 들수록 남의 재능이 별로 부럽지 않다고 하시는 분이 많던데, 어떠신가요?”

“예전 같으면 마냥 부럽고, ‘나도 어떻게 해서든 저렇게 해야 돼.’ 하는 강박관념이 있었을 텐데, 어제 <어거스트 러쉬>를 보면서 ‘나는 (천재가) 아니니까, 나는 지금처럼 하면 돼.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돼.’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쿨한 살리에르가 되신 거네요.”

“그렇게 가야만 되죠. 저는 살리에르 같은 사람도 음악을 해야 되고, 그런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 모차르트 같으면 어떻겠어요. 살리에르가 적어도 제일 먼저 모차르트를 인정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모차르트 같은 사람도 세상에 나올 수 있죠.”

“이십 대 때에는 남의 노래를 듣고 질투한 적 있으셨어요?”

“있죠, 많죠. 물론, 그런 자극이 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찾아듣고, 곡도 많이 쓰고 그랬죠.”

“요즘은 어떤 음악 많이 들으세요?”

“지금은 영미 쪽 음악이 재미가 없어요. 오히려 60년대 우리나라 음악이 신선하게 들려요. 표현도 직접적이고 솔직하고 연주도 그렇고. 우리나라 음악 같지가 않아요. 그 당시 외국 음악과 싱크가 되어 있다고 할까.”


지금처럼 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

“델리스파이스는 새 앨범이 언제 나오나요?”

“음, 요즘 다들 바빠서 아직 계획은 안 잡힌 상태예요.”

“델리스파이스와 스위트피 작업, 한쪽은 밴드고 하나는 혼자 하는 건데, 앨범을 만들 때 차이가 있나요?”

“밴드 작업은 덜 외롭지만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어요. 나는 좋은데 싫다고 할 때도 있고, 나는 싫은 때 좋아할 때도 있고. 결과적으로 그런 싸움이 좋을 때도 있지만 소모적이죠. 혼자 하다 보면 빨리 결정이 되고 책임도 다 내가 뒤집어 써야 하니까 더 신중하죠. 그 편이 더 편하기도 하고. 하나하나에 예민해지고.”

“음악적으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라면 싸움도 불사하는 편인가요?”

“저는 합리적으로 하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아니면 빼.’ 이런 편이에요.(웃음) 싸움해서라도 쟁취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본능적으로 그런 데 에너지 소모하기 싫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런 편이에요. 싸움을 회피하는 스타일이라. 아마, 그래서 제가 솔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여기서(스위트피) 해소를 하면 거기(델리스파이스) 가서 양보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그게 제가 택한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밴드를 잘하기 위해 솔로 활동이 필요하고, 반대도 필요하고.”

“서로서로 발산을 하는 셈이네요.”

“(음악적인) 싸움을 하다 보면 정말 끝까지 갈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러니까 싸움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솔로는 편하죠. 내 안에서 내가 싸우는 거니까.”

“그만큼 델리스파이스가 소중하니까 솔로도 하시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어떻게 보면 부담이 되기도 해요. 사람들이 스위트피보다는 델리에 대한 기대치가 크니까. 솔로할 때는 ‘에이, 이렇게 해도 돼. 뭐, 어때, 내 건데.’ 하면서 13분짜리 노래를 넣기도 하고요. 팀에서는 누가 한마디만 해도 소심해져서 ‘안 돼나.’ 이러거든요.”

“문라이즈는 요즘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지금은 재주소년도 군대 가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음악 외적인 부분이 힘들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나가는 에너지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파스텔이라는 회사와 같이 하고 있어요. 그런 쪽으로는 도움을 받는 게, 나는 음악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가게 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막 발산했던 에너지들이 지금은 하나하나가 다 아까워요. 일적인 부분도 혹시라도 이것 때문에 내가 음악 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까, 해서 하나하나 차단하고 있는 중이에요. 음악에만 집중을 해야지. 이십 대에는 그렇게 막 해도 에너지가 넘친다고 생각했어요. 심지어는 델리스파이스 공연하고 돌아와서 바로 녹음하고 그래도 괜찮았거든요. 이제는 내가 가진 것을 아껴서 오래가야겠다는….(웃음)”

“왠지 서글프기까지 한데요.”

“슬프지만 현실이고, 그런 자신에게 적응하도록 노력해야죠. 어느 정도 관리가 있어야 해요. 내가 이만큼 있다고 해서 다 퍼내면 나중에 힘들 것 같아요. 요즘엔 그런 분위기 조성에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불필요한 감정적인 소모도 안하고,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피하고. 일순위는 음악이에요.”


“음악 이외에 다른 일을 꿈꿔본 적은 없나요?”

“다른 일도 해봤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음악이더라고요.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막연하게 동경을 했어요. 감히 내가 사람들 앞에 연주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스물일곱에 데뷔앨범을 냈으니까. 굉장히 늦은 거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더 나이 먹어서 필 떨어지기 전에 열심히 해야 돼.’ 그러면서. 그러다 보니까 더 소중하고 더 신중한 거 같아요.”

“음악가로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이 되는 걸 선호하세요, 아니면 삼십 년 사십 년 동안 내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길을 원하세요?”

“한 때는 한 획을 그어야 돼,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노력도 했던 것 같고. 지금은 기타 치고 노래하고 있을 때 행복을 느끼거든요. 이게 좋은데, 이 즐거움을 계속 하고 싶다, 계속 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 생각을 많이 해요. 음반을 낼 수 있으니까 뮤지션으로 이만하면 행복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겠죠. 꾸준히. 대신 저 자신이 나이가 먹어도 막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이를 먹어도 ‘저 사람은 나이에 맞게 잘 하는구나.’ 그런 평가를 받고 싶어요. 나이를 먹어 연주를 해도 어색하지 않게 하고, 새로운 노래를 했을 때 ‘좋구나.’ 하는 반응이 있어야 오래 음악을 하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운 숙제네요.”

“요즘에 하는 고민이에요. 이미 중반으로 넘어섰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엄격하게 관리하고 노력하지 않아도 노래도 만들고, 공연도 하고, 착착 일들이 진행되었는데 이제부터는 2차적인 노력을 하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관리라고 할까. 필요해요.”

“전성기 때, 그러니까 지금 하는 연주만큼 할 수 없게 되면 무대에 오르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음, 그럴 것 같아요. 그렇지만 항상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은 있다고 생각해요. 에릭 클랩튼처럼 젊을 때는 헤비한 음악 하다가도 지금은 통기타 하나 잡고 앉아서 편하게 연주하잖아요. 그건 분명히 자기 관리죠. 나름대로 자기 길을, 자기가 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서 노력을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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