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재즈 밴드 ‘푸딩’, 2003년 1집 『If I Could Meet Again』 이후, 2005년 『Pesadelo』를 끝으로 약 2년간 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물론 2006년 콘서트를 통해서 잠시 그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따져 봐도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항간에 간간이 들리는 이야기는, 리더인 김정범은 미국에서 공부 중이라는 것이고, 나머지 멤버의 소식은 아예 접할 수가 없는 상황. 말 그대로 두문불출이다. 이렇다 보니 한때 ‘푸딩’이 해체하는 것이 아닌가란 뜬소문까지 나돌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푸딩이 6월 16일 서울 나루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이별(離別)’이란 주제의 콘서트를 개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은은한 빛으로 남은 사랑의 기억’이란 설명이 흐릿한 열 손가락 위에 쓰인 포스터로 돌아온 그들, 아니 리더 김정범을 한달음에 만나러 갔다. 반가움과 서운함을 동시에 안고서.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아직 공부가 안 끝나서 저는 학교 다니고 있어요. (김정범은 지금 미국 보스턴 버클리음악대학교에서 음악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다른 멤버도 각자 음악 공부나 다른 뮤지션의 앨범 작업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소식 한 번 줄 만했는데, 너무 뜸했던 것 아닌가요? 앨범 나온 지도 2년이 넘어가고 말이죠. 푸딩 골수팬들의 원성이 말이 아닙니다.
앗, 그런가요? 저희에게도 골수팬이 있다고요? 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정말 있기는 있는 거예요?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웃음)
혹시 앨범 내는 것을 잊은 건 아니세요? 아니면 공부를 너무 좋아하신다거나. 그래도 2년 터울로 ‘푸딩’의 주옥같은 음악을 들려주셔야죠.
그 점이 요즘 고민하는 백만 가지 중에 한 가지예요. 예전에는 앨범을 많이 내는 것이 굳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요. 요새 생각이 바뀌고는 있습니다. 푸딩이 되든, 개인적이 되든 앨범을 많이 만드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능력이 안돼요. 예전에 우리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CD를 살 때, 1집 이후에 2집에서 큰 변화가 있으면 ‘왜 변했나’ 하며 실망하는 사람이 많고 그랬잖아요. 사실 똑같은 모습으로 가는 것이 어쩌면 팬들이 원하는 것인데, 제가 그러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원래 ‘푸딩’의 2집이 나오기 전에 1집과 맥을 같이한, 이미 만들어 놓은 10곡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는 무엇인가 느껴지는 것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10곡을 모두 없애고, 새로 만들었어요. 따지자면 푸딩의 2집은 3집이나 마찬가지죠.
그럼 그 깨달았다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확 깨달은, 인생에서 몇 번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였는데, 브라질리안 음악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예전부터 그런 것과 관련된 책도 사 모으고 음악도 많이 듣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왜 우리는 저런 느낌의 음악이 안 나올까, 우리와 태생이 달라서 그런 것인가’ 하면서 그랬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확 깨지면서 그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겠다는 자신이 드는 거예요. ‘아, 이게 이래서 되는 거였구나’ 하면서. 그때부터 음악도 다르게 들리고, 그래서 지금까지 만든 곡을 다 없앴던 거죠. 사실 2집은 실험을 많이 하려고 했는데, 안 된 것도 많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진보적으로 가려고 노력을 많이 했던 앨범입니다.
미공개된 10곡이 너무 아쉬운데요. 정말 그냥 버려지는 건가요?
미공개된 10곡은 아예 사장하려고요. 다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가끔 1집 분위기로 회귀를 할까, 하는 생각도 있기는 한데요. 좋은 생각인 것 같다는 느낌도 있고. 하지만 나름대로 1집과 2집은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을 해요. 다시 1집으로 돌아가면 저 자신이 굉장히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10곡은 조용히 묻어두려고요. 하지만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흘러서 공개될 수도 있겠죠.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앞으로 ‘푸딩’이 추구할 음악 세계가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모습의 ‘푸딩’ 음악을 만들고 싶으세요?
예전에는 푸딩이 저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랬지만, 최근에는 저의 솔로 앨범이나 푸딩을 분리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전까지 다 하나에 들어 있었죠. ‘푸딩’은 굉장히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밴드예요. ‘웃는 와중에 우울함에 중독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나도 우울하니까 너도 우울해져’ 같은 거죠. 그런 것을 전하고 싶었어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이 아주 트렌디한 정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푸딩’이 처음 시작한 5~6년 전만 해도 제3세계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지는 않았던 때였어요. 저희가 선택한 것은 쿠바, 브라질리안 음악이었잖아요. 진짜 브라질리안 음악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말하자면 이런 거죠. 길거리 공연도 하는 밴드가 양복 빼입고 클래식한 공연도 할 수 있는 그런 밴드가 되고 싶었던 겁니다. 밴드, 하면 실험적이라고 생각을 하죠. 무엇인가를 부수거나, ‘나는 사회가 싫어, 자본주의가 싫어~!’ 등을 외쳐야만 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는데, 그것만이 아닌 ‘색다른 실험적인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다만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상업적인 밴드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 부분이 ‘푸딩’에 확실히 녹여졌다고 생각하세요?
공연할 때마다 항상 전쟁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느껴본 적이 없다가 처음으로 2006년 정미소 공연 때 짜릿하게 느꼈어요. 그때 저희 공연을 보고 우는 관객들을 봤거든요. 눈물 흘리는 관객을 직접 저희 눈으로 본 것이죠.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대개 우리나라의 모든 장르를 초월한 공연은 관객이 기쁘게 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거꾸로 울면서 나갔으니….(웃음) 하지만 저희는 수많은 관객 중에 두 명이나 눈물을 흘렸다는 것에 무척이나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 1집 때 굉장히 우울하게 생각하며 곡을 만들었는데, 다들 발랄하다고 해서 ‘제가 음악을 잘 못 만들었구나’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관객에게 그런 반응이 오니까 무척 뿌듯하더라고요.
‘푸딩’의 음악, 하면 ‘고급스럽고 세련되고 이국적이다’라는 느낌을 이야기하는데, 혹시 의도했던 것인가요?
제가 바라던 바긴 했죠. 의도했던 것은 아닌데, 저는 그런 평이 좋아요.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지금 소주를 마시지만,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고급술과 함께 럭셔리하게 들었으면 좋겠다’라고요.(웃음) 곡을 쓸 때 판단하는 기준이 ‘촌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든요. 모든 것이 세련된 게 좋아요. 허례허식까지는 아니지만 이것은 분명히 개인적인 취향이에요. 음악에 고급과 저급은 없겠지만 고급음악이란 말을 듣고 싶어요. 하지만 저 자신은 ‘푸딩’ 음악이 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해요. 1집 마치고 보스턴으로 공부하러 가서 우연히 저희 음악을 듣는데, 정말 너무 촌스럽다는 느낌을 받아 못 들어주겠더라고요. 2집 만들고 나서도 1집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다시 그 ‘촌스럽다’병이 도졌어요.(웃음)
그럼 앞으로 만들 ‘푸딩 3집’ 또는 ‘김정범 솔로앨범’은 어떤 분위기로 가게 되나요?
사실 고민을 무척 많이 하고 있어요. 2집을 내고 공부하는데, 음악 듣는 취향이 바뀌었어요. 큰일이에요. 비슷하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영화
<클로저> 삽입곡을 만들었던 ‘데미안 라이스’나, 포크 듀오 ‘킹 오브 컨비니언스’의 음악이 정말 좋아요. 심장이 회색빛이 되어 가는 것 같고 그래요.(웃음) 그런데 이런 음악은 저 말고 잘하는 다른 뮤지션이 많고, 또 제 음악은 아닌 것 같아 헷갈리고 있습니다. ‘푸딩’을 한다면 좀 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지만 라이브에 초점을 맞춘 밴드가 될 것 같아요. 어느 공간, 장소에서건 공연할 수 있는 밴드가 될 것입니다. 너무 우울하게 가지는 않을 것이고요. 또 제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을 나눠서 하고 싶어요. 서너 개 정도를 연작 시리즈로, 주제는 같은데 완전히 다른 앨범으로 만들고 싶은데요. 우선 진정한 브라질리안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다른 하나는 팀을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로 구성해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요새는 음반도 음반이지만 음악과 공연을 함께 생각하게 돼요. 그런 팀은 마임이스트랑 같이 공연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솔로 피아노로만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이별’ ‘아듀’ 등의 헤어짐을 주제로 한 콘서트를 연달아 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1집 앨범의 주제가 몰디브, 이별에 대한 내용이었고, 저의 강박관념 중 하나는 ‘결코 되돌아오거나 돌아올 수 없다’라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런 영향이 좀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지난 콘서트 때의 ‘아듀’는 정말 ‘아듀’였어요. 제가 정말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갔잖아요.
이번 콘서트는 어떻게 진행이 되나요?
조용히 할 것입니다. 아주 조용히. 그래서 이번 콘서트는 힘든 콘서트가 될 것 같아요. 저나 ‘푸딩’의 음악 인생 2라운드의 시작이자 1라운드의 끝을 알리는 공연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번 공연에는 게스트가 누구야?’ 하고 물어보는데, 이번 공연에는 그런 것을 전부 없애고 푸딩 공연 사상 가장 적은 인원과 적은 악기로 진행을 할 것입니다. 푸딩 처음으로 돌아갈 거예요. 오히려 첫 번째 공연보다 더 간소화된 모습의, 옷이 다 벗겨진 푸딩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원초적으로 돌아가면 부담되지 않나요?
길거리 공연을 한 이후에 두려움이란 것이 없어졌어요. ‘푸딩’이 처음 나왔을 때, 고생한 이유가 ‘푸딩’ 같은 팀 포맷이 없어서였거든요. 재즈면 재즈지, 퍼커션에 어쿠스틱 기타에 첼로가 들어가고. 공연을 하면 항상 실패를 하는 게, 엔지니어들이 저희가 만들어낸 곡의 소리를 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워했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우리 스스로 음향에 너무 민감했는데요. 그랬던 고민이 길거리 공연을 하면서 사라졌죠.
그래도 떨림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요. 떨림은 여전하죠. 떨리게 하는 것은 실수도 있겠지만 ‘처음 입장할 때’가 가장 떨립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 기(氣)란 것이 있어요. 관객의 기(氣), 그 포스가 확~ 밀려옵니다. 그런 점에서 중독이 되고, 또 그런 것이 떨리게 하고 기분도 좋게 하더라고요.
5년 또는 10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요? 데뷔 초 인터뷰에서는 뉴질랜드에 가서 키위농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는데요.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음악 하는 사람들도 영화 하는 사람들처럼 작가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영화 쪽도 감독의 이름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음악에도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이 이 음악을 만들고 프로듀싱했으니까 꼭 들어야지 하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래야 저희가 기억될 테니까요.
참, 영화음악 작업도 몇 번 했잖아요. 앞으로도 진행형인가요?
영화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영화음악도 하고 있어요. 아마도 곧 새로운 영화의 음악작업을 한 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시켜만 주면 다 하고 싶어요.(웃음) 다만 이런 것은 있어요. 감독님과 같이 가는 영화음악 감독 있잖아요. 팀 버튼, 하면 대니 앨프만이 같이 가는 것처럼, 저도 최근에 이윤기 감독님이랑 같이하고 있는데, 그런 작업이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제일 궁금한 부분 중 하나인데요. ‘푸딩’의 김정범인가요, 김정범의 ‘푸딩’인가요?
제가 요새 하는 백만 가지 고민 중에 또 다른 한 가지를 질문해 주시네요. 김정범의 ‘푸딩’처럼 보이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 사실이기는 해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애초에 시작을 다섯 명이서 했고, 아무리 제가 강력히 주장한다고 해도 사람이 마음으로 하는 일 아니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이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2집 때 제가 목소리를 크게 내기는 했지만 1집에서 멤버와의 생활이 있었기에 생각을 한 것이 있었어요. 지금 ‘푸딩’의 모습은 저희 모두가 같이 만들어 온 것이라 생각해요.
‘푸딩’이 과연 계속 우리 곁에 남아있을까요?
멤버가 그대로 가고, 안 가고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라 생각해요. 물론 같이 가면 좋겠지만 회사에서도 이직하고 퇴직하고 하는 것처럼 앞일은 모르겠어요. 중요한 것은 ‘푸딩’의 앨범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고 싶은 브랜드 앨범이 나오느냐, 아니냐인 것 같은데, 내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정체되어 있는 것은 싫어요. 차라리 안 팔리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정체되어 있는 것은 못 견디겠더라고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는 몰디브 이야기는 안 한다는 겁니다. 이번 공연으로 마지막입니다.(웃음) 새 앨범은 곧 낼 것 같은데, 당장 올해는 아니고, 적어도 내년에는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믿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저희 음악은 세월에 구속받는 것은 아닐 거란 거예요. ‘푸딩’만의 명맥이 이어져가는 그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왜냐하면 ‘푸딩’ 음악을 하는 것만큼은 정말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했거든요. 각자 자신이 지닌 깜냥 안에서는 진솔하게 작업했습니다. 진솔함이 통한다면 유일한 빛 같은 것이 분명히 이어져 갈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