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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 대중예술 현장에는 그가 있다]② 뮤지컬 칼럼니스트 원종원

영화는 글로벌하지만 뮤지컬은 로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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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책은 서양의 다양한 뮤지컬을 소개하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우리 창작 뮤지컬에 대한 고민에서 쓴 책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고나면 우리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을 출간한 원종원 씨는 처음에는 그저 뮤지컬이 좋은 뮤지컬 마니아였다. 다른 사람들과 뮤지컬의 즐거움을 나누려고 온라인상에 뮤지컬 동호회를 만들어 활동을 했다. 그 후 뮤지컬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고, 뮤지컬의 제작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유령’,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한국공연 번역과, ‘캐츠’와 ‘오페라의 유령’, ‘렌트’ 오리지널 내한공연 번역 작업을 했다. ‘미스 사이공’의 자문으로도 일했고, 현재는 한국뮤지컬대상 심사위원이자 뮤지컬 칼럼니스트도 활동 중이다. 그렇지만 그의 본업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신문방송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이왕이면 똑똑한 관객이 되자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을 출간한 원종원 씨
뮤지컬 팬으로 그가 바라는 것은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동호회 활동과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을 쓰는 일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책을 읽고 나서, 공연에 흥미를 느끼고 극장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어요.” 특히, 책에 실린 48편의 뮤지컬은 모두 직접 보고 좋았던 것만 고른 것이라 특별히 애정이 있는 작품들이다.

뮤지컬 산업을 지지하는 축은 모두 세 가지다. 뮤지컬 무대를 만드는 배우와 연출가, 그것을 보는 관객, 뮤지컬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는 사람이다. 그는 이 세 개의 지지대 중 관객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이왕이면 ‘똑똑한’ 관객이 되고자 노력했다.

온라인과의 인연은 PC 통신 동호회 ‘세계로 가는 기차’ 게시판에 배낭여행에서 본 뮤지컬 감상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연극동의 뮤지컬 분과를 맡으면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연출가와 배우들을 만나기도 했고, 뮤지컬 대본을 번역하는 일도 했고, 좋은 뮤지컬을 소개하는 일도 했다.

문화도 훌륭한 자원이다

처음 뮤지컬을 본 것은 89년 배낭여행길에서다. 런던에서 우연히 ‘오페라의 유령’을 관람한 후 얼마나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는지, 런던에서 머무르는 동안 다른 곳은 전혀 돌아다니지 않고, 뮤지컬만 7~8편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배낭여행을 하면서 만난 외국인들과 많이 싸웠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들에게는 ‘별 볼일 없는 나라’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가 배낭여행을 하던 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한국은 ‘판문점’으로 기억되는 가난한 분단국가였다.

“서양 애들이 한국인은 일본인과 똑같다, 너무 일만 한다, 한국 뭐 볼 것이 있냐고 하는 말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그 사람들에겐 경복궁은 자금성의 조잡한 카피에 불과하고, 설악산은 그랜드캐니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때는 젊었기 때문에 지기 싫어서 지구 반대편에는 다른 역사가 있다, 한국인들은 성취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이 되더군요.”

그런 그에게 뮤지컬은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런던은 파리에 비해서 볼거리가 없는 도시에요. 오죽하면 파리의 돌멩이를 주워서 런던에 가면 국보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런던에 뮤지컬을 보러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와요. 미국에 사는 사람도 뮤지컬을 보기 위해 런던을 찾아오죠. 그걸 보고, 관광자원이 유적이나 자연만이 아니구나, 문화상품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겠구?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으면 뭐든 괜찮은 뮤지컬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비싼 티켓 값 때문에 순수예술, 고급예술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만 뮤지컬은 태생적으로 대중적일 수밖에 없는 장르다. 그것은 뮤지컬의 전사(前史)만 살펴보아도 확연하다.

“산업혁명 후 도시에 노동자가 몰리면서 그들을 위한 극장식 식당이 생겼어요. 노동자들이 밥을 먹으면서 공연을 보는 곳이죠. 재미있으면 박수를 치고, 재미없으면 먹던 음식을 집어던지기도 하고요. 그런 극장식 식당의 공연은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까워요. 그 후 스토리가 있는 극 뮤지컬이 등장합니다. 원래 뮤지컬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예술이었거든요. 그렇게 처음부터 뮤지컬은 대중의 인기로 성장한 장르이기 때문에 재미있으면 뭐든 괜찮다, 이런 정신이 뮤지컬에는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관객의 시선을 잡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무대에서 과감하게 펼쳐진다. ‘미스 사이공’에 등장하는 헬기나 ‘오페라의 유령’의 샹들리에 추락 신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 “뮤지컬은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은 예술이에요. 형식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요소를 다양하게 극 속에 집어넣지요. 그런 것이 뮤지컬의 가능성입니다.”

뮤지컬 팬들은 같은 공연을 적게는 두 번에서 많게는 열 번 이상 반복해서 본다. 그 이유는 볼 때마다 새롭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느 극장에서 보든 동일한 영화를 보지만 뮤지컬은 무대마다 달라요. 배우들의 컨디션에 따라 전혀 다른 무대가 되기도 하고, 동일한 작품을 다른 배우나 연출가가 하게 될 경우 이전 무대와 완전히 다른 무대를 보여주죠. 어디에 앉아 보느냐에 따라서도 전혀 느낌이 달라요. 앞자리에 앉으면 배우들의 표정과 시선을 직접으로 느낄 수 있어 짜릿하죠. 뒷자리에서 무대를 보면 배우들과의 직접적인 교감은 할 수 없지만 좀더 전체적인 무대를 볼 수 있어요.”

무대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수없이 변한다. 아무리 여러 번 반복해서 본다고 해도 그것을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대는 매력적이다. 여러 번 반복해서 볼 경우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무대의 디테일한 무대와 연출을 즐길 수 있다.

“제가 뮤지컬 10편 정도는 가사를 다 외우고 있어요. 그런 상태에서는 또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와요. 외국의 인기 있는 뮤지컬의 경우 디테일한 완성도가 굉장히 높아요. 아주 작은 부분, 하다못해 몇 초 나오지 않는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계산된 연출입니다. 그래서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고, 볼 때마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우리 창작 뮤지컬에서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도 이 디테일한 완성도에 대한 것입니다.”

영화는 글로벌하지만 뮤지컬은 로컬하다

뮤지컬은 그것을 만들어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미를 반밖에 느끼지 못한다.

“뮤지컬을 국내에 수입하려는 분들과 함께 미국이나 영국으로 뮤지컬을 보러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쪽 사회나 문화를 제대로 모르니까 재미없어 하실 때가 많아요. 주변 관객들은 다 웃지만 왜 웃기는지 모르는 거죠. 런던의 뮤지컬에는 런던의 정서가 있고, 뉴욕의 뮤지컬에는 뉴욕의 정서가 있어요. 그래서 그 정서를 아는 토박이들에게 제일 재미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런 부분을 캐치하지 못하니까 비주얼적인 효과에만 끌려서 수입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점이 아쉬워요.”

영화가 글로벌한 것이라면 뮤지컬은 로컬한 것이다. 영화는 많은 스크린을 점령해 짧은 시간에 투자한 금액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를 겨냥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 영화의 경우 이른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할리우드 영화 공식에 따라 만들 수밖에 없다.

“‘스톰프’라는 뮤지컬이 있어요. 이 뮤지컬은 정말 디테일이 끝내주는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은 ‘so London’, 너무 런던스럽다고 말할 정도로, 런던의 모습을 담아냅니다. ‘스톰프’에 사용되는 소도구들은 영국 사람들의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이에요. 빗자루, 접는 의자, 설거지 물통 같은 것. 영국에서 6개월만 산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보죠. 그걸 모르면 뮤지컬의 재미가 아무래도 줄죠.”

뮤지컬은 이렇게 그것이 만들어진 풍토를 세세하게 반영한다. ?래서 미국의 뮤지컬 팬이 ‘스톰프’를 보기 위해 런던의 브로드웨이로 오는 것이고, ‘렌트’를 보기 위해 런던의 뮤지컬 팬이 뉴욕에 가는 것이다. 그가 보고 싶은 것도 이렇게 한국의 지역 색을, 한국인의 정체성을 디테일하게 반영하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우리 창작 뮤지컬이다.

“창작 뮤지컬을 공연하든, 외국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든 지역색에 대한 고민, 우리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얄팍하지 않나 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외국 뮤지컬들이 홍보를 할 때 번번이 ‘오리지널 무대와 똑같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왜 브로드웨이에서 올린 무대와 한국에서 상영할 무대가 똑같아야 할까요? 한국 배우가 한국 무대에서 한국 관객에게 보일 뮤지컬이라면 좀더 우리 것이, 우리의 시선이 가미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적 가치에 의한 재해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원종원 씨는 ‘위험한 관계’를 리메이크한 한국영화 ‘스캔들’을 예로 들었다.

그래서 그의 책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은 뮤지컬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아름다운 꽃만 꺾어와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라게 한 토양과 뿌리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나서 무대를 만들고 즐기자는 뜻에서다. “사실 이번 책은 서양의 다양한 뮤지컬을 소개하는 것도 목적이었지만 한편으로 우리 창작 뮤지컬에 대한 고민에서 쓴 책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고나면 우리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우리보다 뮤지컬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과 영국의 경우 이미 확고한 시스템이 있다. “일단 프로듀서(기획자)가 작품의 성장가능성을 캐치해 투자자를 찾고 무대에 올리고, 시스템을 통해 검증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뮤지컬이 장사가 좀 된다는 말만 듣고, 무조건 돈을 벌자, 우리도 창작 뮤지컬을 만들어 외국에 팔자,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일단 뮤지컬이 제대로 창작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스타트라인에 선 한국 뮤지컬

뮤지컬 팬으로 그가 바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손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뮤지컬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 그리고 훌륭한 우리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시장이 커지는 속도는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80년대에 처음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을 때 이 작품을 한국에서 볼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공연계의 잭팟이라고 불릴 만큼 뮤지컬이 성장했죠.”

관객의 수와 공연의 수를 보면 확실히 한국 뮤지컬 산업은 성장했다. 그렇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다. “뮤지컬이 산업이 되려면 소비자와 배우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투자자와 뮤지컬을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저의 이런 접근이 지극히 ‘시장 우선주의’가 아니냐고 비판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대중문화는 시장이 없이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뮤지컬을 만드는 구조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작품에 대한 비평과 함께 구조에 대한 평가 역시 꾸준히 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지금 가장 우려하는 것은 뮤지컬 산업이 돈이 된다는 주변의 시선이다. “애호가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뮤지컬은 이제 스타트라인에 겨우 서 있습니다. 우리가 아시아의 브로드웨이가 될 가능성도 분명 있겠죠. 우리는 후발주자니까 선발주자의 시행착오를 보고 실수를 줄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 반대의 가능성도 있어요. 뮤지컬을 만드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좀더 넓은 시야로 뮤지컬과 뮤지컬 산업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뮤지컬이 크는 데 가장 큰 방해가 되는 요소는 마스터플랜이 없다는 것. “뮤지컬이 돈이 된다니까, 국립극장에서도 대관료를 더 올려 받을 생각을 하지, 문화 정책 차원에서 뮤지컬에 어떤 지원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흥행이 되는 뮤지컬은 대부분 장기 공연으로 들어갑니다. 제작비 회수를 위해서라도 뮤지컬은 장기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전용극장도 없어요. 그게 우리 현실이죠. 관객수준을 공연 기획자가 못 따라가고, 성장하는 뮤지컬 산업을 정부의 문화 정책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안타깝죠.”

앞으로, 그는 이런 문??에 대해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이후의 집필 계획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앞으로 쓰려고 하는 책은 세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는 뮤지컬과 뮤지컬 산업에 대한 학문적인 책, 두 번째는 대중들에게 뮤지컬을 알리기 위한 책, 마지막은 개인적인 감상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해요.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뮤지컬 프로듀서를 꼭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앞에서 제가 말한 디테일이 살아있으면서 우리 정체성을 반영한 감동적인 뮤지컬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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