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먹은 남자의 뒷모습은 애잔하다. 저녁 무렵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서글픔과도 비슷한 감정이다. 술기운을 빌린 허세로 큰소리를 치긴 하지만 나이 먹어가는 아내, 점점 커가는 자식, 점점 주름살이 깊어지는 부모님, 불안한 고용 환경과 몇 억은 있어야 한다는 노후는 언제나 마흔 살 먹은 남자를 쪼그라들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40대 남자로 산다는 것
『마흔으로 산다는 것』, 『남자, 마흔 이후』를 쓰며 대한민국 40대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전경일 씨도 그렇게 나이 먹어 가는 사십 대의 남성이다. 전경일 씨가 다른 40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글을 쓴다는 것이다. 꾸준히 자기계발서와 경영서 분야의 책을 써온 그는 시로 정식 등단한 문인이기도 하다.
“6시 50분쯤 일어나면 전쟁처럼 아침이 시작됩니다. 아침밥은 넘어가지 않으니 시리얼로 대충 때우고 부랴부랴 출근하죠. 회사에 오면 제일 먼저 이메일을 체크하고 그 다음은 회의다 업체 미팅이다 오전 오후가 후딱 지나갑니다. 그렇게 퇴근해서 집에 오면 11시가 되어야 겨우 저 혼자만의 시간이 생깁니다. 그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죠. 그렇게 날마다 쓴 글들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도 글을 썼다. “주말 내내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으면서 자기계발이 될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저는 항상 자기주도적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저에게 삶은 항상 ‘전력질주’지요.” 그렇게 전력질주를 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적 성취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가 늘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가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책으로 냈다.
“글은 일 대 n으로 동시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잖아요.” 그가 책을 통해 바란 것은 동시대 40대들과의 교감이었다. “제 글이 많은 40대에게 읽혔다면 그건 제가 그들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불안해하고, 오르는 집값에 속 쓰려 하고, 아내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하고, 커가는 아이들을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날마다 고민하는 평범함이 글 속에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삶에는 해답이 없다. 나와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가벼워지고 좀 더 용기를 내게 마련이다. 전경일 씨의 책은 이 땅의 40대들에게 그런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늙어가기보단, 포도주처럼 익어가고 싶다
“20대는 자기 열정에 겨워서 사는 폭염의 계절입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 따윈 없는 나이죠. 그렇게 여름을 지나면 가을이 옵니다. 인생의 가을이 40대죠.”
그 역시 20대 때에는 열정에 휘둘려서 30대에 되어선 서 있을 기운도 없을 만큼 기진맥진했단다. “40대가 되니까 무엇인가에 빠지고 싶어요. 20대처럼 무모하게 뛰어드는 것은 아니지만요. 아름다움이나 사회적인 비전이나, 자연과 같은 것에 빠지고 싶고,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싶어져요. 고급 주단처럼 윤기나는 주름을 잡으면서 매력적인 남자가 되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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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각할 때 마흔은 지금까지 사회에서 받았던 것을 갚기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30대까지는 아직 배우는 나이라고 다들 이해해 주지만 40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갚는 역할을 해야 하죠. 40대가 제대로 못 하면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40대는 어느 세대보다 더 성숙해져야 한다. “인생을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죠.”
어느 세대건 자신의 세대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겠지만 지금의 40대는 유난히도 시대의 부침이 심했다. 학창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맛보아야 했고, 스무 살 즈음에는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박아야 하는 시대의 부름에 응해야 했다. 그리고 30대 때에는 IMF 외환위기라는 국가 파산을 겪어야 했다. “고통이라는 것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고통과 고난이 없다면 결코 성숙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몇 번의 고난을 딛고 일어섰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몇 번의 고난을 쉽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고 있는 ‘잘 될 거야’라는 근거 없는 희망이었다고 말하고 웃었다. “제가 막내라서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뭐든 잘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을 먹으면 실제로 상황이 그렇게 벌어져요.”
육체의 아름다움은 시간이 갈수록 시들지 몰라도 정신의 아름다움과 연륜에서 오는 여유는 마흔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저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을수록 정서적으로 더 섬세해집니다. 원숙한 젊음이라고 할까요.” 세상을 보는 눈도 확실히 여유가 생겨 좀 더 넓은 안목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모나지 않게, 각지지 않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내, 나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동반자
마흔을 넘기면서 아내와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결혼을 하고 십 년 동안은 사소한 문제로 아내와 싸웠습니다.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 하는 싸움이었죠. 지금은 제가 항복을 해서 조용하게 살아요.(웃음) 한 십 년을 싸우고 나니까 부부라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세대는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가정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다 아내에게 주세요. 그렇게 주도권을 놓아버리는 것이 현명한 것입니다. 뭐, 물론 저도 가끔 아내에게 줘버린 주도권을 쥐고 싶을 때가 있어서 ‘반항’을 할 때도 있긴 하지만요.”
아내는 전경일 씨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후원자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부부는 십 년 동안 열심히 싸우고, 사랑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내와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사실 내용은 별것 아니지만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편안한 기분이 들어요.”
마흔을 넘기고 나서 ‘사랑’이 20대 때와는 또 다른 매혹으로 다가온다. “사랑은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먹어서 할 수 있는 사랑이 또 있어요. 제가 사랑을 하고 싶다고 하면 주변에서 ‘바람’이니 ‘불륜’이니 하는 것만 떠올리는데, 그런 것과는 다른, 아주 깊게 우러난 차와 같은 사랑이죠. 그리고 사랑의 대상 자체도 넓어지죠.”
그리고 부모 역할에 대해서도 역시 고민이 많다. 구슬같이 예쁜 두 딸을 둔 전경일 씨는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과 슬기롭게 결별하도록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전경일 씨의 생각이다. “저는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학비의 상당 부분을 아이에게 부담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지금부터 이야기해줘요. 그렇게 결별을 준비하는 거죠.”
아이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고등학교 때까지의 교육이 전부다. “아이가 공부하기 싫다고 그러면 전 이렇게 말해 줍니다. ‘아빠가 너한테 물려줄 거라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공부시켜줄 것밖에 없다. 그러니 그때까지 부모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으면 너만 손해다.’ 그렇게 명확하게 부모가 해줄 부분을 밝혀주는 거죠.”
인생에는 결코 ‘은퇴’라는 것이 없다
다른 40대와 마찬가지고 전경일 씨도 노후가 불안하다. “
『마흔으로 산다는 것』을 쓴 이후부터 노후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노후를 보내려면 13억이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 교육비를 대기에도 한 달 한 달이 빠듯해요. 돈 모을 틈이 없어요.”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적인 안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적 안정이 행복한 노후의 필수 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사실 저도 경제적으로 여전히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제일 불안한 부분이긴 합니다.” ‘이모작’이라는 표현을 쓸 만큼 평균 수명이 길어진 지금, 그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직장에서 은퇴를 했다고 인생에서까지 은퇴를 해서는 안 되죠. 저는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도 계속 현역으로 뛸 생각입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했다. “필생의 걸작도 써보고 싶고, 영화도 찍고 싶고, 계속 책도 쓰고 싶어요. 무엇보다 사회의 든든한 뿌리로 남고 싶어요. 경쟁력 있는 경제 기반을 후대에 남겨주기 위해 계속 비지땀을 흘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그는 사회에 여전히 ‘목소리’를 내길 바랐다. “우리 사회에는 목소리가 큰 사람은 많지만 그것에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책임감 있게 사회에 발언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노년의 모습은 오드리 헵번, 김혜자 씨처럼 타인을 위한 봉사로 노년을 보낸 사람들. 그리고 ‘체 게바라’도 무척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체 게바라를 특히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 전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체 게바라는 의사이면서 혁명가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남아메리카 대륙 횡단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죠. 그러한 전환이 없었다면, 그는 그렇게 짧은 생애를 뜨겁고 멋지게 살 수 없었을 겁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열정’이다. 자신의 인생을 ‘전력질주’라고 표현한 전경일 씨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30대를 위한 조언 - 자기를 알고, 배우자를 알아가라
그는 한 세대 아래인 30대에게 재테크보다는 관계에 더 집중하라고 충고했다. “30대는 젊음이 밑천인 시대죠. 저는 지금 30대인 사람들에게 돈을 열심히 모아 집을 사기보다는 부부 관계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거나 함께 여행을 하거나 하는 거죠.”
그렇게 함께 할 취미를 찾거나 여행을 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하지만 상대방에 대해 아는 것은 의외로 없죠. 결혼을 한 후 자신의 고민, 과거의 상처, 과거의 희망에 대해 보듬지 않으면 40대에 위기가 닥칩니다. 서로의 맨얼굴을 알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결혼 이후, 배우자의 진짜 모습과 관계 맺지 않으면 진정한 부부로 거듭날 수 없다. 그저 같은 집에 사는 동거인이나 하숙생의 관계가 될 뿐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부부는 결국 40대 이후 따로따로 살아갑니다. 아내는 자식에게 집착하고, 남편은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건에 집착하죠. 그리고 아이가 집을 떠나가면 황혼 이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돈을 모아 집을 사는 것이 진짜 목표로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기적 목표일 뿐입니다. 30대에는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30대에는 연간 수입의 20%를 부부의 자기계발을 위해 쓰라. 그것이 전경일 씨의 조언이다. “자기계발이라고 해서 꼭 외국어나 일에 관련된 부분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알아가고 배우자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자기계발입니다. 남자들은 특히 40대가 되면 고민거리가 있어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고, 말이 통하는 사람도 없어져서 정말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통감하죠.” 그러면서 전경일 씨는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IMF 때 사업을 하다가 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내는 힘들었을 텐데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제 사업 자금을 대주고, 집안을 책임졌죠. 그래서 언젠가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인생 뭐 있나’ 그렇게 말하더군요. 저에게 아내는 그렇게 힘이 되는 존재입니다. 설사 제가 저 자신을 포기해도 아내는 저를 포기하지 않아요.”
마흔, 여전히 인생은 도전할 만한 희망이 있다
40대는 희망을 품고 산다. “인생의 문제들은 스쳐 지나갑니다. 뭐든 겪어봐야 하고, 겪는 과정에서 뭔가 얻는 것이 있습니다. 뭐 하나 정해진 것도, 뚜렷한 것도 없지만 몸을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 희망은 뚜렷이 실체화되어 인생에 나타나더군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지혜가 생긴다는 것, 정말입니다. 저 역시 실감합니다. 똑같은 지혜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그 지혜의 순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되어도 여전히 인생에는 도전해야 할 것이 많다. 전경일 씨 역시 10대 이후 꾸준히 관심을 둬온 글쓰기에 계속 도전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글쓰기에는 계속 도전할 것입니다.” 글쓰기는 그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해주고, 정신근력을 강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인류가 문자를 발명한 이후 계속해 온 기록의 대장정에 참여하는 것이 그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도서관은 생명이 있는 무덤이자 정신의 납골당입니다. 그곳에 제 책에 꽂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죠. 저는 글을 통해 뚜렷한 지층을 남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