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당신이 꿈꾸는 여행의 로망은 무엇입니까? - 박사, 이명석

외모만 보아도 대조적!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약속 장소 앞에서 두 사람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와 그녀는 하늘색 스쿠터에 앞뒤로 사이좋게 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논쟁을 벌이다 시간을 잊어버렸다는 두 사람. 외모만 보아도 대조적이다.

약속 장소 앞에서 두 사람을 하릴없이 기다렸다.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와 그녀는 하늘색 스쿠터에 앞뒤로 사이좋게 타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논쟁을 벌이다 시간을 잊어버렸다는 두 사람. 외모만 보아도 대조적이다. 박사가 쓰다듬어 주고 싶은 벽난로 앞 고양이라면 이명석은 왠지 보는 순간 뒤로 한걸음 물러나고 싶은 두목 길고양이다운 면모가 있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이후 두 번째로 함께 작업한 책은 여행의 ‘로망’에 대한 것. 로망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아우라가 예스러우면서도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여권이 너덜너덜할 만큼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닌 두 사람이라면 각각 한 권의 여행기를 쓸만한 정보와 경험,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풍성할 터인데 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약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로망(슈퍼마켓의 로망 같은 것)에서 좀처럼 이루기 힘든 로망(완벽한 가이드북의 로망, 완벽한 짐꾸리기의 로망), 많이 이루기 힘든 로망(시간 여행의 로망, 우주 여행의 로망)까지 책은 여행의 행복을 ‘로망’이라는 선물상자 속에 포장해 놓았다.

“여행기는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기록이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특정 지역에 대한 여행기는 쏟아지고 있어서 굳이 쓰고 싶지 않았어요. 남들보다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아니고, 남들이 잘 모르는 특별한 몇몇 곳을 다녀온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역적인 문제 보다는 여행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이명석)

두 사람은 1997년 웹진 스폰지에서 8개월 정도 함께 일한 후, 각자 여행을 하고 각자 다른 직장을 다니다가 1998년 가을부터 사탕발림이라는 홈페이지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1년에 한 번은 함께 긴 여행을 다녀오고 있으며, 따로 여행하기도 한다. 박사가 감성적이라면 이명석은 구체적이고 이성적이다. 두 사람은 성격에서 여행취향까지 닮은 구석이 없다. 이명석이 서바이벌과라면 박사는 도시중독증이다. 꼼꼼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최저의 여행 경비를 뽑고, 완벽한 여행계획을 짜는 이명석에 비해 박사는 어딘지 헐렁하고 여유롭다. 이명석이 위기 탈출에서 희열을 느낀다면 박사는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의 기쁨을 맛본다. 모든 여행을 일정대로 하는 이명석의 부지런함을 박사는 ‘욕심’이라 말했고, 흐르는 대로 여행을 즐기는 박사의 유유자적을 이명석은 ‘게으름’이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꽤 마음이 잘 맞는 동행이기도 하다. 두 사람 다 관심사가 넓고 호기심이 많다. 취향이 다양하다 보니 겹치는 것이 많단다. 하지만 나름대로 다툼은 있었다. 박사는 평범한 것을 싫어하는 이명석 덕에 에펠탑을 보지 못했고, 이명석은 느릿느릿한 그녀 덕에 속을 태워야 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박사는 작은 박물관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이명석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방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어디를 가도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벼룩시장과 중고가게, 고양이와 관련된 곳. 특히 벼룩시장은 일정을 짤 때 꼭 고려한다고 한다. 그들의 여행에는 전쟁과 평화가 공존한다.

두 사람이 함께 글을 쓴 이유를 “일방통행적이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서로 다른 감성으로 여행을 즐기는 두 사람의 글이 합쳐진 순간 입체감이 생긴다. 그들은 지금까지 유럽, 특히 스페인만 따로 길게, 홍콩, 베트남, 오사카와 교토, 도쿄와 닛코를 함께 돌아보았고, 박사는 동유럽-지중해-터키, 태국을, 이명석은 네팔, 싱가폴, 그리스-터키, 히로시마, 가고시마를 각각 따로 돌아 보았다. 어디든 여행을 다녀온 것이면 살고 싶다고 말한 박사에게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질문해 보았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이 참 좋았어요. 유럽 속에 있는 이슬람의 분위기가 멋있거든요. 일본은 자주 가는 편이고, 유럽이 감수성에 맞는 편이에요. 이스탄불도 좋지요. 시끄러운 호객꾼들 사이에 있는 모스크 같은 옛날 모습들이 멋있죠. 아, 남부 베트남도 너무 좋았어요. 향초를 얹은 쌀국수랑 신선한 해산물이랑 길거리 음식들이 너무 맛있었어요. 인간의 역사가 많이 남아있는 런던 같은 도시도 좋아해요. 런던은 정말 팬케이크처럼 여러 시대가 쌓여있어요.”

여행은 끊임없이 그들을 긴장하게 하고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한다. 일상에서는 그냥 그쳐갈 낙서 한 줄도 여행자에게는 일생을 좌우할 금언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있고, 걸인도 현자로 보일 때가 있다. 일상에서는 점심형 인간이지만 여행을 할 때는 6시간도 안자면서 무릎이 망가질 만큼 열심히 돌아다닌다.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디어와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생긴다. 이 약발은 두 달 정도 계속된단다. “아마 여기서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일상에서는 여행을 꿈꾸고, 여행에서는 일상을 어떻게 바꿀지 고민한다.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한국에서라면 얼마 안되는 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땐 막막하고 속이 상했죠. 그날,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수첩에 적어보다가 엉엉 울었어요. 여행이 아니었으면 그런 열정과 의욕은 느끼지 못했겠죠.”(박사) “저는 방문한 동네의 역사를 찾아가면서 생활자의 느낌을 맛보는 것을 좋아해요. 유명한 유적지나 미술관 박물관 보다는 숙소가 있는 동네의 시장을 어슬렁거리면서 그 동네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구석구석을 찾아보지요. 대도시의 모습은 비슷한 편이에요. 그럼에도 다른 구석을 찾아보면서 새로움을 느끼고, 삶의 방식을 돌아보지요.”(이명석)

여행은 추리소설처럼 낭비가 없다. 그 당시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여행이 추억이 되는 순간 의미를 가진다. 준비하는 과정의 허둥거림, 여행지에 도착해 일어나는 일상적인 트러블들-예약 누락과 분실, 기차의 연착, 동행과의 불화, 지독한 육체적 피로, “왜 나는 이곳에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같은 회의, 엉터리 가이드북, 현지인의 불친절, 관광객들이 점령한 유적-은 여행의 훌륭한 향신료들이다. 이런 향신료들을 통해 여행은 달콤새콤하면서도 쌉쌀한 맛을 지니게 된다. 여행에서 최고와 최악은 항상 함께 간다. 남들이 볼 때는 최악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최고일 때도 있고, 최악이라는 고비를 넘기고 나면 최고가 찾아오기도 한다. 여행 내내 아무 것도 먹지 못했지만 기분만은 최고였다는 박사의 스페인 여행은 최악과 최고가 겹치는 그런 여행이었다. 이명석 역시 여행의 순간순간 찾아오는 최악의 순간들이 있지만 나중에는 추억이 된다고 했다.

『여행자의 로망백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명석이 쓴 ‘책의 로망’ 부분이다. “책이라는 위대한 지혜에 기대지 않으면 우리의 여행은 헛된 발품이 되기 일쑤이고, 여행이라는 몸의 독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세상의 한 조각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가 생각하는 ‘몸의 독서’는 무엇일까?

“여행은 몸을 자극해요. 평상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날씨나 풍경이 몸 어느 부분에 새겨지죠. 지금 이렇게 덥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기 때문에 햇빛의 따가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죠. 그렇지만 여행에서는 그런 햇빛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사진이나 도록을 보더라도 직접 느끼는 생생함에 비교할 수는 없지요. 세포들이 살아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행은 한 권의 책에 언급된 이국적인 풍경과 지명, 그리고 지도에서 우연히 발견한 작은 글씨에서도 시작한다.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여행기’는 아직 쓸 생각이 없는 이 두 사람은 어떤 여행기를 읽으면서 벌떡 일어나 가방을 쌌을까 궁금해진다.

“김혜순 선생님의 스페인 여행기 『들끓는 사랑』이요. 여자 돈키호테인 ‘도냐 끼호타’의 관점에서 접근한 여행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어디를 가서 좋았다가 아니라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느낌이 좋았어요.”(박사) “여행기 보다는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이국적인 풍광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죠. 예를 들면, 영화 ‘리플리’의 원작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태양은 가득히>에 묘사된 뉴욕과 지중해, 조셉 콘라드의 『암흑의 핵심』에 묘사된 콩고,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묘사된 동유럽과 샌프란시스코,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에 등장하는 피렌체 등은 여행기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이국적이고 생생한 풍경을 느끼게 합니다. 여행을 다니면 외국 문학을 풍성하게 이해하게 되고, 새롭게 다가오는 면이 있습니다. 만화 작품으로는 에르제의 ‘땡땡’ 시리즈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마스터 키튼』이 좋지요. 세계 어느 곳에도 땡땡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험이 있는 곳이면 땡땡이 있습니다.”(이명석)

대부분의 여행기는 표피적인 감상일 경우가 많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다. 많은 여행기를 읽으면서 ‘차라리 직접 가 보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사람은 이들 두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듣고 먹은 가벼운 이야기가 전부이다. 여행기 중에서도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수작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작품의 매력은 괴테와 하루키라는 개인의 매력과 그들의 독특한 시선에 기인한 것이지, 그들이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한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루키도 『먼 북소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간 몇 백만 명의 일본 사람이 외국에 나가는 이 시대에 새삼스레 유럽 여행기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습다고 생각한다.” 그 말처럼 두 사람은 새삼스런 여행 정보를 담기보다는 사람들이 여행에서 이루었으면 하는 ‘로망’을 책에 담았다. 그 로망을 동료 여행자들이 실현해 주기를, 그리고 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여행의 로망을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

------------------------------------------------------------

만화칼럼 연재(조선일보), 인터넷칼럼 연재(야후스타일, 심마니라이프), TV칼럼 연재(보그걸), 문화칼럼 연재(살아가는 이야기, 무비위크) 등 삶에서, 책에서, 영상에서, 보고 느낀 모든 것을 글로 풀어내는 박사는, 북칼럼니스트라는 본인이 주장하는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고양이 애호가 및 30대 싱글의 대표로 더 많은 애호를 받고 있다. 출입국 심사 때마다 “본명이냐”는 물음을 당연시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10년 연속 무작정 남 따라 남의 나라 가기’라는 본인만의 기록을 위해 애쓰고 있다. 어디를 갔다 오든 간에 “최고다” “거기서 살고 싶다”고 떠벌리는 바람에 이제는 여행에 관한 한 그녀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이매진> 기자와 웹진 <스폰지>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 『만화, 쾌락의 급소 찾기』등의 단행본을 낸 바 있는 만화평론가 이명석은, 가늠하기 힘든 잡문가로, 만화, 영화, 퓨처트렌드 등 다채로운 분야를 넘나들며, ‘100개 장르, 1,000개 매체 기고’가 머지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살 때 사촌형들의 자전거 여행에 따라가지 못해 옥상에서 빨랫줄로 목을 매었다가 살아났고, 그 15년 뒤부터 차근차근 남의 땅을 밟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하고 있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 가득한 여행사’와 ‘호텔 레이지 노마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복합문화 프로젝트 사탕발림 www.sugarspray.com을 함께 운영하며 독특한 감성을 지닌 수많은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으며, 공저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가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잘못된 세상에 맞선 위대한 순간들

지식 교양 구독 채널 '오터레터' 발행인 박상현이 쓴 책. 최근까지도 인류는 성별, 민족, 인종에 따른 차별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차별과 혐오를 지탱한 건 무지였다. 편견에 맞서 세상을 바꾼 사람도 있었다. 『친애하는 슐츠 씨』는 그 위대한 장면을 소개한다.

우리가 서로의 목격자가 되어 주기를

안희연 시인의 4년 만의 신작 시집. 이 세계에 관한 애정과 사랑을 잃지 않고, 어둠에서 빛 쪽으로 계속 걸어가는 시인의 발걸음이 시 곳곳에서 돋보인다. 이별과 죽음을 겪을지라도 기어코 사랑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시들을 다 읽고 나면, “비로소 시작되는 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도래할 것이다.

천선란 세계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

소설가 천선란의 첫 단독 에세이. 작가를 SF 세계로 이끌어준 만화 〈디지몬 어드벤처〉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디지몬'을 통해 모험에 설레고 용기에 위로받으며, 상상의 힘을 얻었던 어린 시절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작가. 지금의 천선란 세계를 만든 불씨가 되어준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책.

챗봇 시대 필수 가이드

마우스 클릭만으로 AI 서비스를 이용하는 본격 AI 시대. 일상부터 업무까지 폭넓게 사용되는 챗봇을 다룬다. GPT 챗봇의 최신 동향부터 내게 맞는 맞춤형 챗봇의 기획부터 활용까지. 다양한 사용법과 실습 예제를 통해 누구나 쉽게 활용하는 챗봇 네이티브 시대의 필수 가이드.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