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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뜨는 월출봉 아래 어느 시골 아낙의 책 읽기 - ‘월출산 아래 책 읽다’ 블로그의 바위솔 님

‘월출산 아래 책 읽다’블로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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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우의 『월든』이 아무리 감동적이었다고 해도 어른들이 그토록 벗어나려고 애를 썼던 농사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팍팍한 도시생활에 쫓기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전원생활을 꿈꾸게 된다. 그렇지만 실제로 전원생활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거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우리 조부모님, 또는 부모님 세대의 가장 절실한 목표는 ‘자식만은 이 일을 시키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소로우의 『월든』이 아무리 감동적이었다고 해도 어른들이 그토록 벗어나려고 애를 썼던 농사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월출산 아래 책 읽다’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바위솔 님은 도시인들이 머릿속으로만 꿈꾸는, 그 녹록하지 않은 귀향을 실천한 분이다.

그분의 블로그에 들어가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라는 도종환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전원생활이라는 것이 결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낭만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씨를 뿌리고 모종을 키우고 열매를 따는 일에서 진실한 기쁨을 얻는 바위솔 님의 일상이 콩꽃 팥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영암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바쁜 틈틈이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있는 바위솔 님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바위솔 님 블로그 이름이 ‘월출산 아래 책 읽다’이니까 월출산 부근이신 모양인데 지금 사시는 곳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는 곳은 전남 영암입니다. 서울에서 오려면 6시간 정도 걸리죠. 제가 사는 마을은 동쪽으로 월출산이 보이고 남서쪽으로 은적산이 보여요. 그러니까 월출산 바로 아래 사는 것은 아니죠. 월출산에서 뜨는 해와 은적산으로 지는 노을을 사계절 내내 볼 수 있어서,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경치를 자랑합니다. 월출산은 국립공원이고 소금강이라 할 정도로 크고 우람한 산이에요. 설악산의 뾰족함과 지리산의 넉넉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산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특히 월출산 구름다리가 유명합니다.

등산을 하고 싶은 분들은 강진 무위사를 구경하고 태종대에서 출발해서(녹차밭도 볼 수 있지요) 천황봉을 거쳐 영암 구림에 있는 도갑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하고 싶어요. 8~9시간 정도 산행해야 하고 구름다리를 통과하는 코스는 아니지만 월출산을 진짜로 느끼고 싶다면 이 코스가 최고예요. 영암군에서는 ‘한 마을에 한 가지 특산품 가지기’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 마을은 메주를 만들어서 농한기에 소득을 올리고 있지요. 한창 메주를 만드는 시기에는 타지에서 들어오시는 분들을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우리 마을의 메주 냄새입니다.

고향은 영암이라고 해도 서울 생활을 오래 하셨다고 블로그를 통해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귀향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주세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 남편이 기이하게도 늘 마음속에 시골을 품고 있었어요. 입버릇처럼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지요. 직장에 매여 있는 걸 너무 힘들어해서 비빌 언덕이라도 있는 친정에 오게 된 거죠. 남편에겐 농부로서 참 적합한 자질이 있어요. 1년 동안 혼자서 온돌방도 만들었고 비닐하우스도 만들었어요. 책만 보고도 척척 만들어 내요. 땅 파고 씨 뿌리고 채소나 나무, 꽃 가꾸는 걸 좋아해요. 근데 그걸로 두 사람은 먹고살겠는데 아이는 못 키우겠더라고요. 농사 1년 해 보고 도저히 타산이 안 맞아 남편은 다시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남편 직장의 휴무가 한 달에 두 번 밖에 안 돼서 무척 피곤한데도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싶어 하네요. 천성이 농사꾼인 사람입니다.

바위솔 님 글을 읽으면 한없이 푸근하고 따사로운 전원풍경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경험 없이 시작한 농사일이며 시골생활이 결코 쉽지 않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그렇지만 주변을 보는 시선에 불평보다는 애정이 넘치시는데요, 바위솔 님이 일상에서 느끼는 그 기쁨의 원천은 어디에 있나요?

만약 저희가 전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면 어려운 점을 A4 스무 장까지 작성할 수 있을 거예요. 처음 1년 동안 면사무소, 군청, 농업기술센터 등 여러 관청에 도움을 구해봤지만 실제로 젊은이들이 농촌에 정착하는 데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친정으로 들어온 거니 주변 분들의 동정 어린 시선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도 않았던 사업에 실패해서 알거지가 되어 처가살이하러 왔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요. 젊은 사람이 시골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도시 생활의 실패자로만 봐줘도 고마울 텐데 인생의 실패자로 봅니다. 참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요? 조그만 비닐하우스에 상추, 열무, 딸기가 자라고 있고 고추, 파프리카, 오이, 토마토, 옥수수 모종을 키우고 있어요. 어제는 열무를 뽑아 김치를 담갔지요. 밭에는 시금치랑 봄동이 있고 밭둑에는 쑥이랑 쇠별꽃나물이 있어요. 저녁마다 들에 나가 찬거리를 준비하죠. 시금치나 상추 같은 것은 한번 씨 뿌리면 3개월 정도 힘 안 들이고 수확해요. 조합에서 표고버섯 종균을 사 왔어요. 참나무에 구멍 뚫고 심으면 3년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버섯을 딸 수 있답니다. 전 이런 게 무엇보다 좋아요. 거의 자급자족 수준이지만 신선하고 안전한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도 비 오고 꽃 피고 바람 불고 눈 오는 걸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아요.

바쁜 농사일 속에서도 리뷰 올리시는 거 보면 책을 열심히 읽고 계십니다. 어느 틈에 그렇게 책을 읽으세요?

한 달에 최소 4권, 많으면 10권 정도 읽어요. 남들이 드라마 볼 때 전 책을 본다고 할 수 있어요. 친구들도 “언제 그렇게 책을 읽니?” 그러거든요. “네가 드라마 볼 시간에 난 책 본다. 왜냐하면 난 드라마보다 책이 더 재밌으니까” 그래요. (그렇다고 제가 드라마를 안 보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하층민에게 책보다 더 재미있는 문화생활은 없는 것 같아요. 뮤지컬이나 영화, 연극을 보려면 돈 진짜 많이 들어가잖아요. TV로 중계해 준다고 해도 현장의 감동을 어떻게 느끼겠어요. 음악을 들으려고 해도 질 좋은 음향시설과 그렇지 않은 스피커랑은 천지차이고요. 하지만 책은 최고급 가죽소파에 앉아 읽으나 평상에 앉아 읽으나 똑같단 말이죠. 도서관에서 빌려오면 돈도 전혀 안 들고요.

서울서 생활하실 때부터 책 읽기를 즐기셨나요? 아니면 지금 사시는 곳으로 들어오면서 다른 문화생활거리가 줄어든 탓에 책을 더욱 가까이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직접 돈을 벌기 시작한 스무 살 때부터 책을 사서 읽었어요. 그때부터 20년이 다 된 지금까지 최소 일주일에 한 권 정도 읽었죠. 시골에 왔다고 해서 달라진 건 없어요. 필요에 의해서 과수 키우기나 야생화, 벤처 농업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보긴 했지만 기본적인 독서 취향이나 양, 질 모든 면에서 변화는 없네요.

책에는 두 가지 소통이 있다고 봅니다. 책을 쓴 저자와의 소통, 그리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끼리의 소통이지요. 전자의 경우는 재미있게 읽으면 그걸로 끝이지만 후자의 경우 혹시 읽고 나서도 같이 나눌 사람이 없어서 갈증을 느끼진 않으세요?

‘출판된 책은 이미 저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다’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건 읽는 사람 마음이죠. 소통의 부재에 대해 별로 갈증을 느끼지 않는 편이네요. 그래도 블로그를 통해 좋은 책을 소개받고 제가 읽은 책에 대한 다른 느낌을 접하는 것은 신선하고 재밌어요.

책이라고 뭉뚱그려 놓으면 단순한 것 같지만 사실 분야별로 다양한 종류의 책 읽기가 존재합니다. 문학, 인문과학, 예술 등 다양한데 어떤 분야의 책 읽기에 제일 흥미를 갖고 계세요?

전 역사소설과 전기물을 좋아합니다. 제가 소심해서인지 요동치는 시대의 물결 속에서 힘차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감동하곤 하죠. 조정래의 대하장편소설 중 『한강』 빼곤 다 읽었어요. 『토지』, 『임꺽정』, 『장길산』, 『삼국지』, 『로마인 이야기』 등등 역사 소설이라 할 만한 것은 빼놓지 않고 보고 있어요. 미술 책도 많이 봐요. 명화 이야기나 화가들의 전기를 좋아하죠. 특히 화가들의 전기는 드라마틱하고 내용도 짧고 그림도 많아서 쉽고 재미있어요.

정말 책 읽기를 좋아하시는군요. 이렇게 호흡이 긴 책들은 어지간해서 끝을 내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요. 엄마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가요? 또 엄마로서 따님들이 자라서 나중에 꼭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책이 있나요? (바위솔 님에게는 ‘짱이’와 ‘뚱이’라는 애칭을 붙여준 두 따님이 있다.)

아이의 돌 전후부터 잠자기 전엔 꼭 책을 읽어줬어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줬죠.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책을 읽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할 정도로 버릇이 되었어요. 부모는 모든 면에서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봐야죠. 당연히 책 읽는 엄마를 보면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TV 보는 애들 옆에서 책 읽고 있으면 자기들도 슬그머니 책을 꺼내다 읽어달라고 하거든요. 집에 과학전집이 네 질 정도 있어서 그런지 짱이는 『신기한 스쿨버스 시리즈』를 좋아하고 뚱이는 『달팽이 과학동화』를 좋아해요.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찾는 책으로 짱이는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뚱이는 『여우가 오리를 낳았어요』가 있어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네요. 어떤 책을 읽으면서 ‘아, 이 책은 나중에 우리 애들도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요. 우리 짱이 이름은 돌림자로 지었고, 뚱이 이름은 제가 지었는데 ‘한비’예요. 한비는 한비야의 이름을 따서 지은 거예요. 전 한비야를 최고로 존경해요. 우리 딸들이 한비야처럼 씩씩하고 마음이 넓게 컸으면 좋겠어요. 한비야의 모든 책과 힐러리의 『살아있는 역사 Living History』를 사춘기 시절에 읽게 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바위솔 님이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이런 책은 남들도 같이 읽고 공감했으면 좋겠다 싶은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을 제일 먼저 들고 싶습니다. 20대 초반에 읽은 책인데 지금까지 배워왔던 학교 교육에 대한 회의와 국사학자들에 대한 불신을 키운 책입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역사를 보는가도 중요하지만 자료를 통해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학자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죠.

정민의 『비슷한 것은 가짜다』는 박지원의 글과 사상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박지원의 천재성에 깜짝 놀라게 된답니다. 올 초에 이덕무의 『책만 보는 바보』를 읽으면서 박지원의 이기적인 면을 느꼈어요. 이덕무가 백성과 임금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과 머리를 다했다면 박지원은 비판만 하는 언론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이 책은 제게 무척 좋은 책이었습니다.

‘정신세계사’에서 나오고 손종섭 님이 편저한 『옛 詩情을 더듬어』도 좋은 책입니다. 저는 현대시는 거의 안 읽어요. 어쩐지 옛 시가 좋더라고요. 주옥같은 옛 시를 모아 놓은 책이죠. 틈틈이 시를 읽고 싶을 때 읽어요.

출판사 ‘강’에서 펴내고 전신재 님이 편저한 『김유정 전집』은 김유정이 쓴 모든 소설과 잡다한 글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세심한 편집이 돋보이는 책인데 절판이라네요. 그래서 더 애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김유정의 글은 몹시 리듬감이 빼어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외에 성석제와 김영하의 단편집에 실린 소설과 베르나르 베르베르, 폴 오스터의 모든 소설들이 좋아요.


스스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시골 아낙일 뿐이라는 바위솔 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림이 그려진다. 한 소쿠리 가득 열무를 뽑아든 아낙. 그 아낙의 옆구리에 살며시 꽂혀있는 책 한 권. 아무래도 그림이 너무 예뻐 조심스럽다. 생활인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바위솔 님의 일상을 포장해서 보는 것은 아닐까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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