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평범한 직딩 9330 님의 겨울이 따뜻해지는 책읽기
책을 연례행사로 읽는 사람들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일년 치의 감동을 원한다. 자신이 책을 읽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고, 특별한 일을 한만큼 특별한 감동을 원하지만 그 기대를 채워줄 만한 책은 흔하지 않은 법이다.
책을 연례행사로 읽는 사람들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일년 치의 감동을 원한다. 자신이 책을 읽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고, 특별한 일을 한만큼 특별한 감동을 원하지만 그 기대를 채워줄 만한 책은 흔하지 않은 법이다. 뻔한 이야기를 읽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며 투덜거리고 다시 온라인 게임이나 티브이 오락프로에 눈을 돌린다. 그렇지만 한 달에 이십여 권의 책을 읽는 사람은 한권의 책 속에서 한 줄의 감동만 얻어도 책을 덮는 손이 뿌듯하기 마련이다. 그는 특별한 이벤트를 한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기쁨 중에 제일 큰 기쁨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스 리뷰 코너에 461개의 리뷰를 승인 받은 9330 님은 (‘여진이랑 찬식이랑’ 블로그 운영자) 삼십대의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남성이다. 일 많기로 소문난 S주식회사를 다니는 '삼십대' 직장인이 한 달에 이십여 권의 책을 읽으려면, 읽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읽는 족족 리뷰를 쓰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화려한 성탄장식이 도시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세밑의 차가운 날씨 속에 만난 9330 님은 약간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본인이 무언가 주목받을 만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갑작스런 인터뷰 제의가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필자가 "한 달에 평균 18편의 리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하고 물었을 때 9330 님은 "제가 읽는 책은 모두 가벼운 내용에 글씨도 큰 책들인 걸요"라며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모두 어릴 적부터 책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9330 님도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는 그다지 책에 관심이 없었었다고 한다. 우연히 접하게 된 직장 내의 도서관에서 한두 권 친하게 된 책들이 이제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떼놓을 수 없는 벗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왕 읽는 것 정리도 한번 해보고 싶어 쓰기 시작한 리뷰는 책읽기에 버금가는 즐거움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리뷰를 쓰기 위해 도서제목을 검색, 상세화면에 들어갔을 때 아직 아무도 리뷰를 올리지 않은 책의 리뷰를 쓸 때면 마치 깨끗한 눈 위에 첫발자국을 남기는 듯한 기쁨을 느낀다고 하니 리뷰 쓰기에도 중독적인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공감의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저자와의 공감인데, 책을 읽으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책을 통해 저자가 하려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게 되는 즐거움이다. 덕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는 지식의 포만감을 누리게 된다. 두 번째는 같은 책을 읽은 사람끼리의 공감인데, 내가 읽은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끼리는 관계의 포만감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된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상의 리뷰를 쓰시는 분들은 욕심이 많은 분들이다. 이 두 가지 공감의 즐거움을 모두 누리고자 하는 분들이니까 말이다. 9330 님 또한 저자에게서 얻은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과 같이 누리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자판 앞에 앉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다.
지하철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집중을 요하는 책은 읽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9330 님의 12월 독서 목록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음식에 관한 47가지 진실』,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 시키는 비결 2』,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점심시간의 재발견』, 『아기&자기&이야기』, 『노빈손 으랏차차 중국 대장정』,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두 아이를 키우는 아빠답게 육아 서적을 비롯해서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해진 이후 110년간의 커피 역사에 대해 다룬 책까지 종횡무진 장르를 넘나들며 섭렵하고 있지만 그가 겸손하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렇게 얄팍하기만 한 독서는 절대 아니다.
최근 들어 9330 님을 가장 감동시킨 책은 인간의 육체가 갈 수 있는 가장 무력한 지점까지 떨어져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딛고 일어선 인물들의 이야기다. 이승복의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와 이지선의 『오늘도 행복합니다』 두 권은 모두 가족들 앞에서 체통을 지키고 싶지만 멜로드라마 앞에서 무너져 버리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 9330 님의 심장을 강타한 책이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대한민국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던 당찬 소년 이승복의 좌절과 재활의 스토리는 무엇보다 논픽션이 주는 진실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 속에서 이승복 씨의 용기는 9330 님에게 어떤 난방기구 보다도 뜨거움을 선사 했다고 한다. 한때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이지선양의 두 번째 책 『오늘도 행복합니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이 필요 없지 않겠냐는 것이 9330 님의 의견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어도 감사할 줄 몰랐던 시절이 있었는데 사고를 통해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고 나서야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행복감을 느낀다는 지선양의 이야기에 부끄러워 몸들 바를 몰랐다고 전하는 9330 님의 눈빛에서는 첫인상에서 느꼈던 섬세함이 확인되었다.
두 아이의 아빠인 9330님은 겸이 맘의 육아 일기『아기&자기&이야기』의 리뷰를 쓰면서 제목을 ‘부를수록 가슴 떨리는 내 마지막 사랑의 세레나데’라고 붙였다. 9330 님의 블로그이름은 두 아이의 이름을 딴 ‘여진이랑 찬식이랑’ 이며 블로그 설명 란에는 ‘책 읽는 아빠 좋은 아빠’라고 써있다. 지금까지 나열한 사항들로 미루어 짐작할 때 젊은 아빠 9330 님의 자식사랑은 대한민국 젊은 아빠들의 평균치를 훨씬 웃도는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리 자상한 아빠라고 선뜻 내세우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 9330 님의 좋은 아빠 기대치는 상당히 높은 것이 틀림없다. 9330 님은 아이를 키워 본 사람은 다 알거라면서 겸이를 키우는 과정에 지발이 아빠와 승발이 엄마의 고투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했다. 읽을수록 심장 박동 수가 빨라지기 때문에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는데 안성맞춤이 아닐까 권하고 있다.
경제학이라는 말만 나와도 머리가 마비되는 것만 같은 문외한들에게 한 발 다가가기 쉽게 나온 책이라며 소개하는 9330님의 입에서 재미있다는 말이 연거푸 나왔다.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은 일본의 니혼 게이자이 신문에 연재됐던 경제학 칼럼이라고 한다. 9330 님은 이 책을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인간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경제도 비합리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비합리적인 인간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연재된 칼럼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느 나라 사람이건 경제 심리 앞에서는 동일한 것인지 사람들의 행태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몹시 유사해 끊임없이 맞아, 맞아! 를 연발하며 읽었다고 한다. 혹시 지하철 안에서 훤칠한 미남형의(사진으로 확인하시다시피) 남자가 책을 읽다 말고 무릎을 치고 있는 것을 보신적이 있다면 아마도 틀림없이 9330님이 『마음을 유혹하는 경제의 심리학』읽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9330님에게 있어 독서는 이벤트가 아니다. 따라서 인생을 뒤바꿀만한 커다란 감동 따위를 얻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는 책을 덮고 근무를 시작하면 책 제목마저 잊어버릴지언정 읽는 동안에는 저자의 말 한마디에 눈물도 짜고 콧물도 짜며 박장대소를 하기도 한다. 메마른 도시의 삶 속에서도 감수성을 잃지 않고 한마디 글귀에 마음이 짠해 진다는 9330 님의 책읽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참하고 싶은 유혹을 불러일으킨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한 달에 스무 권을 읽는 9330 님을 보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없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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