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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거 재미있지 않나요? - 백혁현

“책을 읽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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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싶어”(!) 서너해 전 쯤 직장을 관둔 백혁현 씨는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보고, 그렇다고 마냥 하고 싶은 것만을 할 수는 없어 가끔 프리랜서로 일도 하며 유유자적 재미나게 살고 있는 자칭...

“책을 읽고 싶어”(!) 서너해 전 쯤 직장을 관둔 백혁현 씨는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보고, 그렇다고 마냥 하고 싶은 것만을 할 수는 없어 가끔 프리랜서로 일도 하며 유유자적 재미나게 살고 있는 자칭 타칭 글 쓰는 사람이다.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면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소년” 같은 외모가 인상적인, 이제 서른 살 중반으로 접어드는 열혈 독서가이다.

이제 버릇이 된 책 리뷰를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된 것은 캐나다로 유학가는 친구의 말 때문이었다. 유학가기 전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왔는데, 집에 있는 많은 책들을 보고 "여기 있는 책 전부 다 읽은 건 아닐 거야."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이후 친구가 귀국하여 또 다시 이 말을 할 때 " 이 책 다 읽은거야" 하고 짠, 하고 보여줄 증거가 필요해서 책 읽고 리뷰 쓰는 것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를 보고 "이렇게 하면 정말 재미있겠다" 생각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인다. 책을 읽고 꼭 기록을 남기는 결코 쉽지 않은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는 백혁현 씨의 독서 이력은 대학 신입생 때 문학반 활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전에도 책을 좋아했다. 수업 시간에 책 읽다가 선생님에게 책을 뺏기기도 했고, 동네 서점 누나와 친해져 책을 빌려 볼 만큼.

시대가 시대였으니만큼 대학 신입생 때 읽었던 책은 맑스와 레닌의 저작을 필두로 한 사회과학 서적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것이 불어 넣어준 삶의 형식(사람을 신뢰하거나 또는 사랑할 때)은 여전히 큰 도움이 된다고.

그후 프랑스 현대 철학 서적들을 읽기 시작하다가 역시 글을 쓰고 싶어하는 아내가 서울 예대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는 것을 계기로 거의 소설만 읽기 시작했다. 아내를 통해 문학 지망생들이 보는 커리큘럼을 알음알음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국내 작품뿐 아니라 러시아, 미국, 유럽 등지의 소설을 두루 읽기 시작했다.

윤대녕, 신경숙, 박상우, 구효서 등 우리 나라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습관처럼” 계속 읽지만 백혁현 씨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는 박상륭이라고 한다. 그가 아는 어떤 선배는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눈 앞에 거대한 벽이 생긴 것 같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는데, 그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단다. 그렇게 『죽음의 한 연구』에 두어 달 빠져 있다가 『칠조어론』 전권을 구해 가슴 뿌듯해 했지만 오십 페이지 정도 읽고 포기했다. “나한테 그 책을 권한 선배가 아는 한 사람의 책장 한 가운데에는 『칠조어론』 네 권이 꽂혀 있고 그 책을 중심으로 방대한 철학 서적이 메워져 있대요. 그 책들이 모두 『칠조어론』을 제대로 읽기 위한 참고서였던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그 책을 다 못 읽었대요. 『칠조어론』은 도저히 보통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에요.” 물론『칠조어론』은 백현현 씨의 위시 리스트(wish list)에 있는 첫번째 책이다.

일단은 책 읽는 것이 재미있고, 소설 속의 다양한 인물을 섭렵하면 좀더 재미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읽는, 게다가 소설 습작을 하면서 소설 읽는 것이 더 재미훀어졌다는 백혁현 씨가 근래 즐겁게 읽은 소설은 성석제의 『순정』, 이만교의 『머꼬네 집에 놀러 올래』, 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 등등. 특히 성석제는 최근 “아주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 주제나 소재면에서 거의 똑같은 우리 나라 작가의 작품들 중에서 읽으면서 즐거울 수 있는 유일한 작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이외에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니 김영하는 “급소를 찌르는 건조한 날카로움”이 있어 좋고, 이응준은 감상적인 면모가 자신과 많이 닮은 것 같아 좋다고 한다. 1994년 계간지 <상상>에 실린 데뷔작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를 읽고 무척 좋아하던 기억이 난단다.

책을 많이 읽고 싶은데 돈도 벌어야 하니까 소설을 쓰고, 그 소설로 번 돈으로 또 책을 사보는 완벽한 삶의 스타일을 갖추려고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백혁현 씨가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소설은 조르주 페렉의 『인생 사용법』 같은 거대한 소설이다. 그는 “내 인생을 퍼즐 조각처럼 나누어 놓고, 하나 하나를 각각 독립되게 만드는” 퍼즐 맞추기 게임 같은 인생을 그리고 싶어한다.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써온 일기가 있고, 또 책 리뷰도 있으니까 그것들을 토대로 나이 든 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한다.

백혁현 씨는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죽음의 한 연구』를, 현대적인 해학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순정』을, 그리고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었을까” 생각이 들 만큼 모던하면서도 나이 먹은 사람이 풍길 수 있는 운치와 여운이 “가슴을 스르르 녹여주는 느낌”을 주어 좋아하는 허만하의 『낙타는 십리 밖 물냄새를 맡는다』를 자신의 베스트 도서로 꼽는다.

“아직은 자신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우왕좌왕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이 시기가 자신에게 진정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백혁현 씨의 요즘 바람은 이렇게 영화 마음대로 보고, 보고 싶은 책 보는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집을 나서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기 위해 신발을 챙겨 신는다.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지만 당연하다는 듯 따라나서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흐뭇해서 그냥 가만히 있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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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알립니다] 본 인터뷰는 2002년 4월 15일에 YES24에 게재된 것을 재수록한 것임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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