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만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중고서점 순례를 즐기던 동생에게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다섯권을 선물 받은게 벌써 10여년 전이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이 음식을 삼키듯 허겁지겁 책을 읽고 나서 책속에 소개된 몇몇 장소를 틈날때마다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다보니 어느덧 혼자 여행다니는 알짜배기 취미도 갖게 되었다.
또 한가지 반가웠던 건 우연히도 지난주 읽었던 '총,균,쇠'와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의 농업이 일본에 전래되었다는 얘기도 처음이었고, 왜 일본인들이 고구려말을 쓰고 있는 건지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싶다 생각했었는데 그 궁금증이 이어지는 책에서 바로 풀릴 줄이야.
다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한가지 시선이 있는데 그건 누군가가 감히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화해라는 단어를 언급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 아무리 유홍준 교수라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 참으로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어쩜 무모하다 싶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총,균,쇠'로 인해 거부감 보다는 한국과 일본의 고대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는 상태인지라 거부감을 느낄 틈도 없었지만..
이 책에서 놀라운 주제는 크게 세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한국 고대문명이 일본에 또는 서로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이고, 두번째는 특히 도자기를 중심으로 일본만의 화려한 문화를 꽃 피웠다는 점이며, 마지막은 아름다운 일본의 자연환경이었다.
'총,균,쇠'에서는 1,500년전 어떤 이유로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당시 일본의 조몬인들을 대체하고 야요이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1,500년 전이면 백제가 멸망한 시기와 일치하는데 그 전설같은 이야기가 과학적 증거와 만나 역사의 사실이 되었다니.. 물론 유홍준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들을 한국인의 아류쯤으로 치부하는 건 매우 경계하고 있다. 그들을 일본인으로 봐야지 한국인으로 봐선 안된다는 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식으로 따지면 모든 제사는 아프리카를 향해야 한다. 다만 고대 사회의 교류가 신기할 따름이다.
두번째는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 고유의 문화다. 비록 조선의 도공들을 데려다가 이룩한 성과이긴 하지만 - 에디슨보다 전구를 먼저 발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전구하면 에디슨을 먼저 떠올리 듯 - 조선의 도공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그들이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으며, 또한 서양과의 교류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유통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역량이 대단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고 느꼈다. 식당에서 스테인레스 밥그릇에 식사하는게 당연한 우리에 비해 지금까지도 일본은 그 문화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지 않은가?
마지막으로는 자연환경이다. 우리 같은 문외한이 책 한두권 읽고 박물관에서 도자기를 아무리 쳐다본들 깊은 감동이 느껴지겠는가? 산속 낡은 비문에 씌인 읽지도 못하는 한문을 보며 큰 감흥이 있을까? 결국 우리같은 이들에게 감동은 낯선 곳 낯선 환경이 선사하는 새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우리 조상들의 흔적, 차한잔을 마실 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찻잔의 감촉 등 이런 모든 것이 합쳐질 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