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 박지원'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열하일기>이다. 내가 읽었던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 박지원 저 ㅣ 고미숙, 길진숙 등역 ㅣ 그린비> 상, 하 권으로 되어 있었다.
연암의 여정에 따라서 청나라를 찾아 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이 그림이나 사진들과 함께 실려 있어서 읽기에 편한 책이었다.
그런데 비하여 연암의 해학적 풍자가 담겨 있는 <양반전>과 <호질>등은 청소년들을 위한 고전 시리즈로 읽었으니, 연암의 소설을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밖에 내가 알고 있는 연암 박지원은 이용후생과 실사구시를 주장한 실학을 실천한 북학파의 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의 상식이다.
그런 나에게 소설 <연암, 박지원>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은 소설로나마 한 인물을 접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임채영은 약 20 년간 글쓰기를 했고, 그동안 소설과 동화를 여러 작품 발표했다.
그러나, 독자들에게 그리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작가는 <연암 박지원>이란 소설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부분인 실사구시를 실천한 실학자, 호방한 문장과 통렬한 풍자로 문학사에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인물이라는 것 보다는 백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에 옮긴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박지원의 인간적인 면모를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 소설에는 박지원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안의 현감으로 재직했던 5년간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박지원은 백성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몸소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그 어떤 제후보다도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시작은 박지원이 이 세상을 떠나가게 되는 장면에서 시작이 되는데, 그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행복했더 안의 현감으로 부임하던 날부터 그곳을 떠나는 날까지를 회상하게 된다.
안의는 경상남도 함양의 북동부에 속한 곳으로 지리산, 덕유산, 가야산에서 가까운곳이기에 산수가 빼어난 곳이다.
연암이 안의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느 고을에나 있는 포흠을 다스리는 일이었다. 창고에 쌓여 있어야 할 곡식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 아전들과 통인들이 일일이 헤아려 보고한 곡식은 총 이만 구천 휘였다. 이만 일천 휘가 사라진 것이다. 예상은 했다. 어느 고을이나 포흠이 극성을 부린다고 했다. (...) 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결과는생각했던 것이상으로 참담했다. " (p. 104)
서청 옆 관창에서만 이런 상황인, 모든 관창을 조사하니 총 육만 휘가 모자란다.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는 백성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만드는 요인이니, 연암은 그 수습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아전이나 지방 부호, 백성들이 연암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이외에도 보리찧기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물레방아를 만들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여느 현감들은 생각도 못하는 일들을 하게 된다.
권력을 남용하지도 않고, 부정을 일삼지도 않고, 가렴주구를 일삼던 앞의 현감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행동이 백성들의 마음에 새로운 목민관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 관아의 아전과 통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지내면서 지방 향리로서 어떻게 처신하고,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터득해 나갔다. " (p.245)
연암은 파당을 만드는 것을 싫어하여 과거 시험을 포기하기도 했고, 연암골에서 직접 농토를 일구기도 하였다.
연암이 쓴 소설 9편은 20대에 세상에 내놓았던 것들인데, 그것은 세상을 계도해 보려는 생각에서 쓴 소설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연암에게는 터무니 없는 꿈처럼 생각이 된다.
지금으로부터 200 여년도 더 이전의 인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이 연암이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간 사람이었다. 당시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반상의 계층을 뛰어 넘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정치를 꿈꾸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이다.
연암을 그것을 향해 갔기에 안의현감으로 있던,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새기면 숨을 거두는 것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의 사상과 업적, 그가 쓴 책들을 중심으로 소설로 엮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연암의 진면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구성이 단순하고, 단편적인 면만을 다루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다는 생각보다는 위인전을 읽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쫒아가는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연암의 이야기는 백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생각을 몸소 실천으로 옮긴 새로운 모습의 목민관의 모습을 접한다는 신선함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들이 꿈꾸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