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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현대적으로 변환시킨 무서운 이야기들

글쓴이: 사과는 왜 | 201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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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재미에 의한 점수8점


한 여고생이 문득 정신을 차린다. 김지원이라는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자신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곳,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 당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는 지원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피가 거꾸로 솟거나 피맛을 보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면서... 


이야기 하나, <해와 달>

이거는요... 제 동생하고 같이 영어학원 다닐때 얘긴데요...


밤 늦은 시간 영어학원이 끝나고 학원버스를 타고 어린 남매는 집으로 귀가한다. 남매의 집이 마지막 집이다. 원장선생님은 아이들을 집까지 배웅한다. 아파트의 1층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혹여라도 원장선생님이 볼까봐 손으로 가리고 번호 하나 누르고 살펴보고 번호 하나 누르고 쳐다보는 동생이 누나는 짜증스럽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도착했지만 원장선생님은 무사히 집에 들어가는 것까지 보겠다며 가지 않은채 엘리베이터에서 남매를 지켜본다. 그날 따라 현관문이 잘 열리지 않고 누나가 번호를 재입력하느라 도어락과 씨름하는 동안 동생이 이상한 느낌에 돌아본 원장선생님의 눈빛이 섬칫하다. 이윽고 남매는 집안으로 들어서고 집안에는 아무도 없다. 


아빠는 없고 엄마와 셋이 산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오늘도 늦는다. 남매끼리 피자로 저녁을 때우고 엄마방에서 가발과 옷들을 가져다가 논다.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고 아이들은

  "엄마 어디야? 무서워 빨리와." 라고 묻지만 엄마는 지금 가고 있다며, 택배가 도착할거니까 아이들만 있다고 하면 위험하니 집에 아빠가 있는 것처럼 말하며 문 앞에 놓고 가라고 하라고 한다. 엄마말대로 택배가 도착하고 누나는 엄마가 시킨대로 택배를 받고 엄마와 다시 통화를 한다. 엄마는 문이 제대로 잠긴 것을 확인했는지 묻고 누나는 엄마의 말대로 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러 간다.

그런데 아까 왔던 택배기사가 복도 아래층에 몰래 숨어있다.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러 간 누나는 문이 채 잠기지 않은채 있는 것을 본다. 손잡이에 손을 뻗치려는 찰나, 기괴한 얼굴의 남자가 얼굴을 들이민다. 누나는 문을 닫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역부족이다. 동생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지만 어린 동생은 누나가 소리치는 의미를 알아채지 못한다. 결국, 누나는 괴한을 피해 집안으로 도망치고 괴한에게 잡히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다. 동생도 거실에서 잠들어 있고 엄마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안도하며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문득 어두운 베란다에 누군가가 몰래 숨어있는 발견한다. 누나는 일부러 동생을 깨우며 들리라는 듯이 지금 엄마가 아빠랑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중이라며 방으로 가서 자자고 한다. 몰래 엄마방의 옷장에 숨는데, 괴한은 점점 다가오고...


어두운 문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던 누나는 범인의 섬뜩한 눈과 마주친다. 기겁하며 옷장 안쪽으로 숨는 누나의 어깨위로 가발을 씌운 마네킹머리가 떨어지는데... 동생이 가리킨 그것은...


남매는 집밖으로 빠져나가 복도를 내려가는데... 아파트 현관문의 센서가 고장이 났는지 열리지 않는다. 남매는 아파트 유리문을 두드리며 비명을 지르지만 늦은 밤이어서인지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다. 괴한은 한 층, 한 층 남매를 향해 다가온다. 그러다 누나의 눈에 띈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 누나는 동생과 함께 필사적으로 그곳으로 몸을 피하는데... 어두운 그 곳에서 무언가가...


이야기를 듣던 남자의 고개가 떨구어져 있다. 지원은 남자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즈막히 불러본다. 잠이 든것 같았던 남자가 고개를 스윽 든다. 지원은 깜짝 놀라 딸국질을 한다. 남자는 지원의 딸국질을 멈추게 해주고, 조금이나마 친숙한 분위기를 틈타 지원은 다리를 묶고 있는 줄을 풀어달라며 남자를 구슬려보는데, 남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작은 트렁크를 가져온다. 남자가 피묻은 옷가지들 틈에서 파우치 하나를 찾아 지원에게 내민다. 지원이 파우치 안을 열어보자 사람의 이가 잔뜩 들어있다. 금방이라도 남자에게 펜치로 이를 뽑힐 것 같은 상황이다. 지원은 급히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야기 둘, <공포 비행기>

택시기사로 위장해 여자들을 죽이던 연쇄살인범이 잡혀서 비행기로 이송된다. 단 50분이면 되고 형사들도 동승한다고는 하지만 승무원 소정은 살인범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다. 무서워하는 소정과는 달리 개의치 않는 다른 동료승무원이 소정대신 살인범이 탄 비행칸에 있기로 한다. 살인범은 작은 기회를 놓치지않고 수갑을 푼뒤 형사들과 승무원과 기장을 모두 처리한다. 고공을 비행중인 비행기안, 살인범 마지막으로 죽였던 여자인 승무원이 자꾸만 그 앞에 나타난다. 살인범은 두려움에 더더욱 소정을 죽이러 찾아다니는데......


지원은 열심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자에게 배가 고프다며 길들여보려는 시도를 하지만, 남자가 벌떡 일어나 장독에서 꺼내 써는 것은 바로 사람의 간이었다. 남자가 간을 써는 칼질 소리가 썩썩거리고...  갑자기 지원의 휴대폰이 울린다.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남자가 지켜보고 있고 지원은 엄마에게 아무런 내색도 할 수 없다. 지원은 부러 자신의 이름과 같은 친구이름을 들먹거리며 친구집에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못알아 듣는 눈치고, 남자가 그런 지원을 노려보며 주시한다. 위기감을 느낀 지원은 서둘러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 셋, <콩쥐, 팥쥐>

공지는  민회장과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민회장은 엄청난 재산과 나이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동안인 얼굴을 가졌다. 두 자매는 노골적으로 민회장을 향한 욕망을 드러낸다. 민회장은 민지의 노골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공지를 선택한다. 공지의 비위를 맞추는 척 하지만, 새엄마와 박지는 공지 몰래 민회장에게 대신 시집갈 음모를 꾸민다. 결혼 전날, 공지는 의식을 잃은채 방안에 갇힌다. 민회장의 집을 찾아간 박지와 새엄마는 계획대로 공지 대신 민회장과 결혼에 성공한다.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공지가 깨어난 곳은 낡은 오두막, 밖으로 나가보니 민회장의 비서가 사슴으로 젓갈을 담그고 있었다. 공지는 연유를 묻지만 비서는 결혼드레스와 함께 전하려던 반지를 깜박 잊었다가 발견했다며 민회장과의 결혼식에 가지 못한 공지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공지는 민회장과의 결혼을 포기하지 못하고 민회장의 집으로 간다. 민회장을 찾아 나선 공지이 목격한 것은......


생간으로 차린 밥상을 마주하고 마주하고 있던 남자는 조는 듯이 보이지만 이내 고개를 들고 남자에게 태연한척 해 보이려는 지원은 스스럼없이 생간을 입속으로 꾸역꾸역 넣어보지만 이내 토해버리고, 지원의 입가를 닦아주던 남자는 지원의 귓불의 상처를 발견하자 귓불을 짓이기는데... 지원은 남자의 팔에 난 흉터자국을 발견하고 또 다시 다른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야기 넷, <앰블런스>

외딴곳, 사고가 난다. 엄마는 경미하지만 아이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많이 다쳤다. 앰블런스 안, 간호사가 아이에게서 물린 자국을 발견한다. 의사와 간호사는 좀비에게 물린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하고, 엄마는 절대 물리지않았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상태는 의심스러워진다. 엄마는 자꾸만 초조해하고 몰래 백신을 찾으려다가 의사에게 걸리고 만다. 엄마는 의사의 추궁에 사고가 난 직후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나보니 아이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의사는 아이가 물렸을것이라 단정하고 간호사는 만약의 경우를 배제하지 않는다. 엄마와 간호사, 운전사의 간곡한 만류에도 의사는 아이가 좀비에게 물린것이라 믿어의심치않고 아이를 앰블런스 밖으로 내보내려고 한다. 아이를 살리려는 엄마와 만류하는 간호사는 의사에게 역부족이고 아이는 앰블런스밖으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앰블런스는 좀비떼들의 습격을 받는다. 사투 끝에 엄마는 아이를 의사에게서 지켜내지만......


드디어 남자가 잠이 들었다. 지원은 다리를 묶고 있던 주를 잘라내고 몰래 밖으로 나서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누워있던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가 지원을 움켜잡고 말한다. 

  "왜? 잠이 안와? 이젠 내 차례인가... 들어볼래 내 무서운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는 한 여고생이 자신도 모르게 연쇄살인범이 분명한 남자에게 잡혀 죽지 않기위해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야기다. 원래 이야기, 특히 무서운 이야기란게 밑도 끝도 없이 ...있잖아, 옛날 옛날에 말이야... 라는 식으로 시작되는 것처럼 무서운 이야기속의 이야기들도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에겐 익숙한 동화가 현대적인 이야기로 변주되어 또 다른 괴담들과 번갈아가며 들려진다. 


사물의 불분명한 것에 공포심을 갖는 불안에 대한 의심이 적절히 배합된 <해와 달>은 아이들만 남겨진 집이란 배경을 공포스럽게 그려냈다. 이야기는 삼단으로 변환되는데 원장과 엄마의 반복적인 '어디만큼 왔다.와 원장의 호피무늬 코트가 의미심장하다. 보다 사실에 근거한 뒤의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무섭고 슬프다.


<콩쥐, 팥쥐>를 변환한 공지와 박지의 이야기는 '푸른 수염' 이야기와 고을원님이 자신을 속인 팥쥐를 젓갈로 담아 새엄마에게 보냈다는 이야기를 적절히 배합해 착하기만 한 콩지와 나쁜 팥쥐의 대결이 아닌, 인간의 욕망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공포 비행기>

 연쇄살인맘와 오도가도 못하는 밀폐된 공간안에서 대치하게 되는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공포스럽다. <공포 비행기>에서는 두 가지의 공포가 존재한다. 살인마 박두호의 공포와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정의 공포다. 


<앰블런스> 역시  밀폐된 공간이 등장하는데 이 밀폐된 공간은 안팎으로 두려운 존재에게 쫓긴다. 좀비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 좀비로 변할지 모를 위험을 안고 달린다.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지켜내야하고 간호사는 사리에 맞는 처신을 원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힌 의사는 맹목적인 결단을 내리려고만 한다. 두려움에 대한 결과는 순식간에 앰블런스를 덮치고 모두의 의지는 배신당한다.


동화와 괴담을 적절히 배합한 옴니버스 이야기들을 적절히 힘있게 이끌어가는 방식은 새롭고, 이야기들도 재밌지만 이야기를 이끄는 상황 역시 무서우며 흥미롭다. 여느 여학생과 달리 대담함을 보이는데 목숨을 위협당하는 무시무시함이 천일이나 계속된다고 생각했어도 어느 정도는 괜찮은 날도 있지 않았겠나 싶었는데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가 아마도 이런 상황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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