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후기 중 제4대 세종과 제22대 정조 시대는 이른바 문화부흥기로서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이 두 왕은 정치적 안정(또는 안정된 것 같은) 속에서 자신들이 뜻한 바를 이루려고 하였고 상당 부분 이룰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세종은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사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 전하는 기록은 없으나, 훈민정음 서문의 “...비록 백성들로 하여금 다 율문을 알게 할 수는 없을지나, 따로 큰 죄의 조항만이라도 뽑아 적고, 이를 이두문으로 번역하여 민간에게 반포하여 우부우부들로 하여금 범죄를 피할 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이로써 글을 해석하면 그 뜻을 알 수가 있으며, 이로써 송사를 청단하면 그 실정을 알아낼 수가 있게 된다.”는 말로 짐작해볼 수 있다.
정조는 자타가 공인하는 개혁과 통합의 군주였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왕의 자리에 올라, 홍국영을 통해 정적들을 제거하고 난 후 각종 개혁 정책을 추진한다. 서얼 출신을 중요 직책에 기용하고, 지방인재 선발 확대와 지방 시장 확대를 통해 권력과 경제의 중앙 집중을 혁파하려 하였다. 또한 청류 세력, 남인 세력, 노론 벽파 세력까지 아우르는 탕평 정책을 시행하기도 하였다.
지금 이 시대에 두 성군의 ‘애민정신’과 ‘개혁과 통합 정책’을 두루 갖춘 인재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비슷한 이가 한 명 떠오른다. 현 ‘박원순’ 서울 시장. 시민을 위한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한 후 언제나 무얼 하든 ‘시민’을 생각하는 모습을 보인 그. 그동안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정책과 활동을 통해, 사회를 바꾸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던 그. 이런 그가 서울 시장 임기를 1년여 남긴 이 시점에서 책을 한 권 냈다. <정치의 즐거움>(오마이북). 그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박원순의 개혁 성향+통합적 마인드 정책
박원순 시장의 지난 행보를 보면, 그가 책에서 말하는 ‘설거지 철학’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어 보인다. 1994년부터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를 창립해 온갖 특이한 요리를 밥상에 올려놓은 ‘요리・밥상 철학’에 가깝다. 하지만 전 서울시장이 20조가 넘는 빚더미와 거대하지만 실속 없이 갈등만 유발하는 정책들을 남겼기에 이를 처리하는 게 우선이 된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기지를 발휘한다.
설거지하고 난 그릇에 어떤 요리를 올릴 것인지. 그의 특기가 발휘된 정책들이 많다. 보도블록 혁신, 뉴타운 출구전략, 정보공개 3.0 등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그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반값 등록금 실현, 서울시민복지기준선 발표 등의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기본적으로 강한 개혁 성향에다 통합적 마인드를 무장한 것이리라.
기존에 큰 프로젝트를 총괄했던 사람을 더욱 높은 직책으로 승진시켜 오히려 보도블록처럼 작은 프로젝트를 맡게 하거나, 기존 정책의 큰 틀은 유지한 채 방향을 다른 곳으로 선회하여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한 일. 나아가 그동안 고수해왔던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일. 마치 정조가 규장각이나 장용영을 새로 신설하고 수원성을 쌓는 등의 개혁 정책 등을 시행했지만, 영조의 탕평책을 유지・보수하여 계속적으로 시행해나간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박원순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하나, ‘시민’
박원순하면 생각나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시민’이다. 그가 지난 20년 동안 보였던 행보의 밑바탕에는 시민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장이 된 지금, 그의 시민 집착은 책에서 언급된 시민이라는 단어의 개수만큼 치열하다. 단순히 많거나 과도한 수준을 넘어 치열한 것이다.
그는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제일 먼저 전화를 건 사람이 넬슨 만델라라고 소개하며, 클린턴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어 만델라는 마틴 루터 킹의 영향을 받았고, 루터 킹은 윌리엄 윌버포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인권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인물들이다. 박원순은 이들을 인용하며, 오늘의 자신은 故 조영래 변호사가 만들었다고 말한다.
“조영래 변호사가 1970년에 <전태일 평전>을 쓸 때, 그의 눈에는 평화시장이 서울의 모든 문제점을 집약해놓은 곳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조영래의 후배 박원순이 '서울의 해결사' 역할을 하는 서울시장이 되어 있네요.”(본문 속에서)
일전에 오연호 기자가 "박 변호사님 같은 분이 정치를 하셔야죠"라고 했을 때, 박원순 시장은 “저는 시민사회와 더 맞아요.”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시민 때문에 정치를 택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수많은 정치권의 러브콜에도 움직이지 않던 그가,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되자 새로운 길을 갈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 고심의 길이 49일간의 백두대간 종주이다.
“끝없이 쏟아진 폭우로 동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그렇게 하루 종일 울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눈물을 그치게 하기 위한 내 자신의 역할과 운명에 대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했다. '이제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본문 속에서)
그에게 한반도의 눈물은 곧 시민의 눈물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며 보고 느꼈을 아비규환과 눈물의 삼천리강산. 외면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게 된 박원순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년 6개월여 전 서울시장에 취임을 하게 된다.
재미없어지면 바로 떠난다
박원순 시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드러난 것으로는 4~5가지 사업을 해왔다. 평균적으로 4~5년 정도씩인데, 책에서도 직접 말한다. 자신은 5년 정도 열심히 사업을 키워 놓으면 더 이상 재미가 없어진다고, 그래서 계속 새로운 걸 찾는다고. 서울시장직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즉, 재미없어지면 바로 떠난다는 말이다.
박원순 그 자신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미’라고 말한다. “어떤 일을 하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라.”와 같은 격언은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하기 쉽지만, 정작 행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박원순은 그걸 겉보기엔 너무도 가볍게 해내는 사람이다. 과로로 쓰러져 죽고 싶다는 사람이니 말 다했다.
그가 정치를 택한 건, 거기에서 어떤 재미적 요소를 찾았기 때문이 분명하다. 그는 말한다. “정치는 새로운 시대의 화두를 잡고 그것을 세밀한 정책으로 실천해내는 일입니다”라고. 그는 정치에서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들의 총체적 정의(定義)를 발견해낸 것이다. 그 핵심은 ‘소통, 참여, 거버넌스(공공경영)’에 있다.
그러며 정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정치도 즐겁고 재밌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를 ‘박원순 스타일’이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을까. 내년 2014년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한다고 하니 계속해서 통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긍정과 믿음이 감시와 견제의 방기로 작용하면 안 되겠습니다. 박원순 스타일의 새로운 일자리 만들기, 새로운 복지가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통하고 있는지를 서울 시민들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습니다”(본문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