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슬픔이 시대의 배경음악이 된다면
다비드 포앙키노스 『레논』(열린책들, 2013)
“그 여름에서는 혁명의 맛이 났어.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고, 다르게 입었어.
말하자면,
우린 그 시대의 배경 음악을 제공했던 거야.”
『레논』, 165쪽
2011년, Hey Jude와 Imagine
2011년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는 시위(Occupy Wall Street)가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68혁명’을 성급하게 떠올리며 혁명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해 겨울까지 시위는 계속 되었지만 거기에는 어떤 에너지가 결여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012년에도, 그리고 2013년에도 세계적인 불황은 타개되지 않았고 빈부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2011년 봄에는 일본의 후쿠시마에서 원전사고가 일어났고, 한국에서는 여름에 부산으로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곳곳에 균열이 생겨서 곧 붕괴가 예상되는 건물에서 아무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그런 느낌이 엄습했다. 2011년 겨울, 월가의 시위는 추위와 함께 잦아들었고 학기는 종강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대학에서 힘없는 비정규직 강사였던 나는 종강하던 날, 학생들과 존 레논의 <Imagine>을 들었다. 개강하던 9월초에는 한진중공업에서 고공시위를 벌이는 김진숙을 응원하는 심보선 시인의 패러디 시 <Hey, Jude>를 소개하면서 동명의 노래를 들었으니, 학기의 시작과 끝에 들은 노래가 짝패(존 레논과 비틀즈)처럼 들어맞은 셈이다. 허나 그것은 나의 의지(I will)가 아니었다. 두 곡의 노래를 불러온 것은 개강과 종강 무렵 바로 우리가 겪고, 통과하던 현실이었다.
TV토론이나 학술대회에서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뉴욕 시위의 의미와 한계를 거론하며 심각한 표정으로 토론을 벌였지만 자신들의 기득권이나 무력함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대선이 다가오자 2011년 뉴욕의 항의와 비슷한 요구나 구호라도 외치는 자들은 어김없이 ‘좌빨’로 낙인찍혔다.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밥벌이에만 몰입하며 ‘질서’를 선호했고, 그 질서 안에서 자신이 낙오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 고공시위는 여전히 곳곳에서 이어졌다. 불안과 공포로 인하여 상상력이 차단된 사회에 떠도는 언어는 빈약하고 남루하기만 했다. 그 세계 안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거나 체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면 나는 헤드폰을 쓰고 비틀즈의 노래를 들었다. 볼륨을 한껏 높인 채. Let it be. Let it be.
올해 여름 뉴욕의 시위와 저항문화에 대한 글을 기획하면서 그 도시 어느 구석에서 광팬인 마크 채프먼에게 살해(1980.12.8)당한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을 떠올리곤 했다. 만일 2011년까지 존 레논이 살아있었다면, 백발이 된 그가 <Imagine>을 부르고 모두가 합창했더라면 얼마나 멋졌을까. 비틀즈의 매혹적인 노래 <Something>을 작곡한 멤버 조지 해리슨도 살아 있었더라면, 지금도 건재한 폴 메카트니, 링고스타도 가세하여 시위대의 텐트가 가득한 뉴욕의 센트럴파크 한복판에서 비틀즈의 공연이 이뤄졌더라면. 그래서 그 해 뉴욕 시위에 배경음악을 깔았더라면. 그러한 뜬금없는 상상을, 나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시대의 저항운동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어느 학자는 이렇게 대답했으니까. “혁명이 불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거기에는 음악이 없기 때문이다.(There is no Music)” 그래, 음악이 없으면 혁명도 시위도, 어떠한 변화도 불가능하다. 프랑스의 생소한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의 소설 『레논』(열린책들, 2013)을 펼친 것은 부질없는 상상을 달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
2. 어느 환자의 독백
소설은 1975년부터 1980년 12월까지 존 레논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열여덟 차례에 걸친 상담을 하면서 레논은 자신의 불우했던 유년기와 두려움을 몰랐던 무명시절, 신시아와의 만남, 열광으로 가득했던 비틀즈의 전성기, 폴과의 다툼과 화해, 오노 요코와의 운명적인 만남 등 자신의 삶(In my life)에 대하여 하나씩 털어놓는다.
내 노래는 모두 자전적이야. 거의 모두. 난 개인적인 게 아니면 전혀 예술적인 표현을 할 수 없어.
-35쪽
독일군의 폭격이 한창이었던 1940년, 리버풀에서 태어난 레논은 자신의 시끄러운 출생을 털어놓으면서 “내 첫 비명. 그런데 그것만 있으면 지금 단단히 한몫 잡을 수 있을텐데”(24쪽) 라고 익살을 부린다. 선원이었던 아버지와 자신의 끼를 주체하지 못했던 어머니 사이를 오가면서 버림을 받다가 이모에게 얹혀살아야 했던 유년 시절, 그를 지배한 것은 분리에 대한 공포였다.
난 마음 깊은 곳에서 엄마의 부재를 느껴. 나 혼자라고 느껴. 바로 그 외로움에서 모든 게 나왔어. 비틀스가 성공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그룹의 주춧돌은 내 외로움이야. -26쪽
아버지가 항해를 떠나면 다른 남자를 찾았던 무책임한 어머니를 그는 원망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오히려 춤을 가르쳐 주고, 기타를 들고 방황하던 사춘기의 레논을 지지한다. 레논은 우울한 유년기를 털어 놓으면서 시종일관 덤덤하다. 그것은 그의 삶을 지배했던 근거 없는 긍정성의 일부였다. 멤버들을 영입하고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음울한 스웨덴 영화와 비슷한 1950년대의 영국을 벗어나 함부르크로 향한 그와 멤버들은 “엿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생각뿐이었다. 그 시절을 레논은 이렇게 회상한다.
“거리로 나가면 모든 사람이 우릴 힐끔힐끔 쳐다봤어. 그런데 우린 그러고 싶었어.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어. 우린 돈을 왕창 벌고, 계집들을 후리고 다니고 싶었어. 난 말끔하게 차려 입고 다니는 그 모든 좀팽이들, 그들 부모의 삶 같은 안정된 삶을 꿈꾸는 그 모든 난쟁이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어. 어떻게 젊음을 그렇게 보낼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할 수가 없었지. 나에겐 그들이 주변인이었어. 그들은 청년인 동시에 노인이었어. 청년인 동시에 영국인이었지” -91쪽
유럽의 1950년대는 전후의 음울함이 짙게 깔려 있었고, 냉전과 불황은 젊은이들을 억압했다. 비틀즈의 어린 멤버들은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노래하는 것, 정제된 질서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개인적이며 단호한 거부감만이 가득했을 뿐. 리버풀의 레코드사 사장인 브라이언, 프로듀서 조지 마틴을 만난 이후 그들의 음악은 1960년 초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낯선 나라의 공항에 내리자마자 그들을 맞이한 건 환호하는 수천 명의 팬들이었고,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식당에 가면 부랑아 취급을 받았던 레논은 점차 세계인들의 신화가 되어간다. 광기 어린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레논은 “공기 방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142쪽) 외로웠다고 술회한다. 레논은 엄청난 인기와 그에 비례하는 공허감 속에서 (자신이 버림받았듯이) 아내 신시아를 버려두고 숱한 여자들과 섹스를 즐겼고, 위악으로 가득한 행동을 남발했다. 케네디와 마틴 루터 킹이 암살당했던 나라 미국에서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이 가해지기도 했지만 공허감으로 인한 그의 위악은 점점 심해졌다. 서서히 탈진해가던 레논은 1966년 11월 9일, 운명적인 여인 오노 요코를 만난다. 점차 오노 요코에게 빠져들던 레논은 신시아를 버리고 팬들의 지탄을 외면한 채 유부녀였던 요코와 결합한다. 존 레논은 그 사랑을 통해서 처음으로 자신의 결핍을 발견한다.
이전에는 난 여자들을 보지 않았어. 그들을 학대했지. 다른 모든 남자들처럼 나를 섬기게 했어. 대중이 경배하는 스타일 경우에는 그게 더 심해. 여자가 내 앞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겐 너무나 놀라워 보였어. 그건 문득 떠오른 하나의 예에 불과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어. 그래서 난 미쳐 버리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지.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 때문에 죽어 가. 요코가 날 교육했어.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닮았는지,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 193쪽
오노 요코와 사랑에 빠진 와중에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와 심각한 불화에 빠진다. (폴 매카트니가 레논의 아들 줄리앙에게 선사한 노래 <Hey, jude>를 비롯한 숱한 명곡들이 그 시기에 쏟아졌다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시작하면서 레논은 음악의 정치적인 힘에 눈을 뜬다. <All You Need Is Love>와 <Give peace a chance>, <Imagine>이 그 결정체였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의 여행을 기자들에게 공개하고 그녀와 침대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들은 ‘Bed-In’이라고 명명한 그 퍼포먼스를 통해서 반전의 메시지를 전했고 베트남전을 끝내겠다며 당선된 닉슨 대통령의 거짓말을 규탄하면서 반전과 평화운동의 메신저가 되어갔다. 그러나 ‘비틀즈를 깨뜨린 마녀’로 낙인찍힌 오노 요코에 살해협박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은 레논에게 비틀즈의 재결합을 요구하면서 궁지로 몰았다. 존 레논이 비서 메이와 바람을 피우고, 오노 요코의 유산으로 위기는 극에 달했지만 아들 숀을 얻은 후로 레논은 평화를 되찾는다. 그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결말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3. 노래하며 사랑하고 치유하라.
상담일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레논에게 처방을 내리는 의사는 존재감이 없다. 다만 존 레논의 긴 독백이 있을 뿐. 이 독백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서서히 ‘넓어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레논은 처음에는 자신만을 위해 노래를 시작한다. 유명해지고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흔한 욕망으로. 그 욕망은 쉽게 실현되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레논은 개인의 상처와 결핍을 인기나 돈으로 치유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억압을 거부했던 그가 자신을 사랑했던 신시아를 억압했고, 자신이 받은 학대를 그녀에게 되돌려줬다. 존 레논은, 인간이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적실한 증인이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위악으로 삶을 견디던 그를 변화시킨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에 빠진 자는 기어이 자신의 결핍과 마주하게 된다. 레논은 그 사실을 깨닫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이 사실이야말로 결핍과 위악, 모순과 치기로 얼룩진 그의 삶이 위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내 삶은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한 시도의 연속이었어. 왜냐하면 난 늘 나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였으니까. 동성애, 인도, 마약, 요코, 다 똑같아. 그건 난파당한 내가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들이었어. (135)
자신의 결핍을 사랑으로 치유했던 경험을 한 사람은 결코 개인의 영역에 안주하지 않는다. 상처를 앓는 타인의 다급한 비명을, 사랑을 억압하는 상황을 외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랑은 자위에 불과하다. 예술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틀즈의 노래를 비롯한 많은 음악들은 개인이 겪은 슬픔 속에서 탄생했다. 문학 역시 마찬가지. 개인의 슬픔이 타인을 위로하게 되는 역설로, 예술은 유지되고 확산된다.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이 확산되던 60-70년대에 비틀즈의 노래가 배경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치유할 상처에 대한, 사랑을 억압하는 세계를 향한 저항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에 가능했다. 그 시기에 우리는 빈곤과 독재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그 대가를 요구하는 청구서가 우리에게는 너무 늦게 도달한 것은 아닐까.
지금-여기의 세계에서 사랑에 대한 갈망은 넘쳐나지만 그것은 치유가 아닌 자위의 영역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을 방해하는, 이 세계의 질서를 굳이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넘쳐난다. 문학과 미술, 음악을 열심히 소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타인의 슬픔은 외면한다. 고공과 거리의 절박한 외침과 거리를 두면서 애써 안도감을 느끼는 자들에게, 사랑은 삶을 바꾸는 혁명이 되지 못한다. 존 레논의 슬픔과 사랑이 우리에게 전하는 바는 하나다. “개인의 슬픔을 노래하며 사랑하고 치유하라.” 그 노래가 시대의 배경음악이 된다면 지금과는 분명히 다른 세계가 열릴 것이니까.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온전히 하나다. 이것이야말로 오노 요코를 만난 이후에야 존 레논이 <Imagine>을 만들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부기) 『레논』을 읽고 난 뒤 영화로도 제작된 『파이 이야기』를 쓴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책을 읽었다. 얀 마텔은 상상력과 언어가 빈약한 사회는 퇴행할 수밖에 없다면서 수상에게 자신이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편지를 쓴다. 그 편지들은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2013)라는 책으로 묶여서 번역되었다. 번역된 책의 서두에는 한국의 대통령에게 적은 얀 마텔의 편지가 실려 있다. 얀 마텔은 말한다. “픽션을 읽으십시오. 그것이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원하는 것이 새로운 세계, 더 나은 세계를 이룩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얀 마텔의 편지 말미에다가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그리고, 비틀즈를 들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