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말. 생각만 해도 마음이 물컹해진다. 떨어져 산 후부터는 엄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맺힌다. 엄마의 체구가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보이고 억척스러운 엄마가 소녀 감성이 물씬 나는 한없이 여린 여자로 보인다. 나는 엄마를 왜 나와 같은 여자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해결해줄 수 있는 나만의 해결사라고만 생각했다. 눈을 뜨면 '엄마!'라고 부르고 잠들기 전에도 '엄마!'라고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엄마와 내가 처음으로 단 둘이 영화를 보러 갔던 때가 3년 전이다. 내가 엄마와 떨어져 살기 전, 가게를 꾸리느라 개인 시간을 전혀 낼 수 없었던 엄마가 가게의 휴무로 인해 시간이 생겼더랬다. 엄마와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믹스 커피만 마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게 기억난다. 커피값이 4, 5천원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랬던 엄마. 둘이서 각각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며 '써니'를 봤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엄마는 내게 오늘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더랬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태원준 작가의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책 정보를 읽게 되었다. 부제만 읽어도 가슴이 뛰었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300일간 세계를 누비다! '
어떻게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을 할 수 있지? 그것도 60세인 엄마와 함께. 이 남자, 정말 대단한데?
엄마와 여행한다는 내 상상 속에선 출발 전부터 엄마와 싸우는 모습이다. 왠지 엄마와 이러쿵 저러쿵 말다툼하고 있을 것 같은데. 흠. 키만 큰 30세 아들이 환갑을 맞은 60세 엄마와 세계여행을 도대체 어떻게 하는지, 여행이 성공은 했는지, 서로 싸우진 않았는지 무지 궁금했다.
한 장, 두 장, 세 장...
컥. 재미있다. 미친듯이 재밌다. 지하철 안에서 책 읽다가 내릴 역을 놓칠 뻔 했던 게 여러번이었다. 이 모자,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해서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필리핀, 스리랑카,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까지. 비행기 타고 걸어서 국경을 넘고 2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바가지 요금 뒤집어쓰며 미니 버스를 타고 등등, 셀 수 없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출발하고 도착해서 여행하고 출발하고 도착해서 여행하는 걸 반복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 사고들을 해결하는 모습, 살인적인 더위에 지쳐 열사병 난 아들, 호객행위에 뿔난 아들과 엄마, 엄격해도 너무 엄격하고 억울하기까지 했던 입국 심사 등. 이 모자의 여행 이야기는 한치 앞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뒷 장의 이야기를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들의 세계여행 이야기는 요르단에서 멈추지 않는다. 비록 이 책은 요르단에서 페이지가 끝났지만 10월에 요르단 이후의 여행기가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라는 책으로 출간한단다. 어머, 기대된다. 어서 만나보고 싶다.
바로 이 순간이다. 내가 엄마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 거창할 필요가 있나? 그저 엄마가 '노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좀 더 정중히 표현하자면 엄마가 아무런 걱정 없이 어린아이처럼 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40p
"엄마는 살면서 처음으로 내일이 막 궁금해져."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당신에게도 소망하는 내일과 기대하는 미래가 있었을 텐데. 엄마가 된 이후로는 자신을 내려놓은 채 온전히 누나와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사실을.
-78p
정확히 30년 전 오늘, 우리는 엄마와 아들로 첫 만남을 시작했고 다시 정확히 30년 뒤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서 함께 별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288p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엔 미처 몰랐던 게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철드는 시간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 엄마는 네가 인생의 모든 지혜를 가지고 있을 거라 가늠하는 나이 많은 어른이지. 올해로 예순살을 넘어섰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길 위에서 더욱 '성숙'해졌다는 사실을 인정해. 이전의 인생이 보잘것없다는 말은 아니란다.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며 나를 나로 바라봤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순간순간 떠올린 회고의 시간을 보내며 다시 한 번 마음의 키가 '쑤욱' 자랐다는 말이란다.
-339~34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