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같은 제목에 끌려 읽게, 아니 보게 된 책입니다. 글보다 사진에 담긴 저자의 글을 읽어보려 했다고 할까요? 서문에 해당하는 ‘여행자의 서’에 적은 저자의 여행관(?)은 이렇습니다.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확인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여행이다.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 본 사람은 안다. 길에서 만나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어떠한 여행도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행 아닌 것은 없다.” 저는 아직 이런 여행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충격이었습니다.
강제윤시인은 특히 섬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8년 동안 한국의 섬 약 300여개를 걸으며 바다의 풍경과 그 바다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에게서 삶을 찾는 여행자의 모습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에서는 섬여행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자연의 모습과 함께 여행에 비유되는 인간의 삶을 사는 지혜를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생적 여행자이며 길의 자녀들이다. 지구는 은하계를 여행하는 우주선, 이 순간에도 우리가 탑승한 지구는 시속 11만 킬로미터의 놀라운 속도로 우주를 항해한다.”(38쪽, 은하 여행자) “우리는 늘 삶에 서툴다. 그렇다고 삶이 실수투성이인 것을 책망하거나 탓할 이유는 없다.”(17쪽, 처음 살아보는 삶) 한번 밖에 살 수 없는 우리네 삶이기에 연습이라는 것을 할 틈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의 삶은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섬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폭풍이 거센 바다에서는 파도를 이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애써 중심을 잡으려 몸부림치지 말고 파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라 권합니다. 그리하면 마침내 평온을 되찾게 될 것이라구요. 섬에서는 느림의 미학을 절로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카페리가 다니지 않는 섬에서는 오로지 두 다리에 의지해야만 어딘가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섬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느릿느릿 걷고 또 걸어도 작은 섬에서는 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구요. 이렇게 걷다보면 걷기의 의미를 깨닫게 되나봅니다.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61쪽, 걷기는 정신의 운동)
사실 제가 운동 삼아 하는 걷기는 속도를 붙여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느림의 미학을 깨우칠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이렇게 꼬집고 있습니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서도 사람마다 그려내는 풍경이 제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고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 낸다.(60쪽, 걷기의 속도) 연전에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외국여행하면 비행기를 타고가서 유명한 관광지를 둘러보고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느껴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자동차로 이동을 해도 그곳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업기 마련이지요. 최선이 걸어서 여행하는 것이고, 자전거만 해도 그래도 낫더라는 것이지요.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저자는 “집을 떠나 자연의 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바쁘게 걷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다시 속도의 노예가 되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온갖 헤찰을 하면서 느리게 걸어야 한다구요. 목적지가 여행이기 때문에 걷다가 길을 잘 못드는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잘 못 든 길이 바로 여행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삶 자체가 여행이기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 삶이라는 누군가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늙음은 결코 죽어가는 일이 아니다. 삶을 완성해가는 일이다. 삶의 근원에 더 깊이 다가서는 일이다.”(156쪽, 늙음은 삶의 완성이다.) 삶을 완성해가다 보면 미래에 올 죽음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다.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서 비롯된다.”(100쪽,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랴)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삶이라는 여행을 통찰하고 나만의 여행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느리게 걸으면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