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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 by 유영규

글쓴이: Sin pausa, sin prisa!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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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로 보는 범죄의 흔적』이 쓰여진 배경은, 사건기자로 활동했던 저자가 다양한 과학수사의 사례를 통해 우리 과학수사의 현실을 되짚어보고, 더 나은 과학수사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은폐될 수 있는 죽음을 없애자는 취지다. CSI 미국 드라마나 영화처럼 모든 범죄자가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해피엔딩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범인이 누구인지 감조차 잡지 못하는 미해결 사건(콜드 케이스)도 많고, 법으로 정한 공소시효로 인해 범인을 잡는다 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는 사건도 비일비재다.


 


 본문에 소개된 내용은, 현장에서 활동하는 형사들의 기지와 국과수의 치밀한 노력으로 인해 사건의 전말과 진행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약물을 이용한 성폭행에서 약물 처벌에 지나치게 관대한 한국 사회의 그늘, 스스로 목맸지만 자살이 아닌 '자기색정사'라는 해괴한 죽음, 생명보험 관련 범죄로 증가세를 보이는 보험사기, 7년 만에 한을 푼 트렌스젠더의 죽음, 정관수술한 연쇄 성폭행범을 잡아낸 PCR 기법, 시체에 몹쓸 짓을 하는 네크로필리아 전과자, 급하게 마신 물이 부정맥에 뇌부종을 부르는 급성 수분중독, 생활반응(특정 충격에 대해 살아 있는 몸이 보이는 반작용)이 말해주는 사건의 진실, 불탄 노모의 호흡이 알려준 패륜범, 성형수술이 알려준 범인, 택시기사의 호그타이로 죽음에 이른 사회 초년생, 찢어진 장부 뒷장이 알려준 필흔 재생, 2004년 동남아 지진해일 참사 때 큰 위력을 발휘했던 한국의 지문감식 고온처리법, 자살로 위장한 전기의 흔적(전류반), 비언어적 행동을 읽어내는 거짓말탐지기, 수면 중 돌연사를 부르는 청장년 급사증후군, 대한민국 과학수사 분야 중 가장 낙후된 법의곤충학, 족적(신발 자국)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경찰청 과학수사 요원들의 숨은 노력, 결정적인 범인을 알려준 토양감정(흙 속에 섞여 있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된다), 트렌스젠더의 립스틱 자국, 살인현장에서 발견된 몇 올의 섬유가 알려준 범인(에드몽 로카르의 교환법칙), 법최면 수사가 알려준 범인(강호순, 정남규, 유영철 초강력 흉악범죄 수사에 모두 활용된 최면수사), 메세레르 골절(교통사고나 추락사고 등 신체가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생기는 손상)로 숨진 뒤 매장된 여인, 폰팅에 중독된 방화 살인범, 20개월 동안 아버지를 포함해 다섯 명의 목숨을 청산염으로 앗아간 최초로 검거된 여성 연쇄살인범 김선자, 필적감정에 의한 '결정적 증거 부족'으로 2년에 걸친 상고와 재상고로 국과수 문서감정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사형 확정, 14살 소녀들이 죽인 14살 소녀의 죽음, 시체의 얼룩이 일러준 토막 시신, 마약을 위해 희생된 세 명의 목숨과 다섯 명의 눈, 죽음을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이라 여긴 스너프 필름(폭력, 살인, 강간 등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에 미친 연쇄 살인자 이야기(추가 피해자만 21명, '해외토픽'으로 외신에 실리는 변수까지 있었지만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라 곧바로 수사본부가 해체되었다), 여전히 19세기에 머물고 있고 범죄에 악용되는 인우보증(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존재하는 전근대적인 악법) 등이 과학수사 과정과 함께 생생하게 실려 있다.


 


 



 


 


 드러나지 않은 범인도 많다지만, 완전범죄가 힘든 이유 역시 부지기수다. 범행현장에 불을 지르면 화재와 함께 완전연소가 일어나긴 힘들다. 모두 연소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시신이 부상하는 것은, 신체 조직을 이루는 기초물질들이 부패하면서 가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여러 변수로 인해, 물 위로 떠오르는 시기를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동일한 조건 전제하에 순서를 정하자면, 호수-강-바다 순이다. 고여 있는 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빠른 반면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서는 상대적으로 증식이 더디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수온이며 파열 등 훼손이 가해지면 시신은 다시 가라앉는다. 시신에 달아놓은 돌덩이는 부력을 이길 수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5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부산 교수 부인 살인사건'이다. 사건 초기 '시체 없는 살인사건'으로 판단한 경찰이 헬기 6대에 2800명의 인력과 수색견까지 동원했지만 '부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고, 강 교수는 되려 경찰 수사가 진전이 없다고 항의까지 했다. 그러나 이틀 후 실종 50일째 해안가에서 '부력의 물리학'을 간과한 시체가 발견됐다. 범인들이 시신을 토막 내는 이유는, 통째로 버리는 것보다 토막내서 버리는 것이 감추거나 숨기기 쉽기 때문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은닉을 위한 '시신 훼손'은 형량을 늘리는 족쇄로 돌아온다.


 희로뽕 복용 여부를 확인하려면 최소 50올 정도의 모발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같은 약의 마약을 복용했을 때 머리카락보다 겨드랑이털이나 음모의 농도가 높게 검출된다는 연구 결과 때문에 이를 채취하는 일도 많아졌다.


 우리나라 변사사건의 처리과정이 선진화가 되려면, 아니 민주화가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부검은 국과수에서 진행되지만, 의대 법의학 교실이나 지역병원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부검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에 법의학적 전문가가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다. 초기 현장에 나가는 형사와 마지막 부검 결정권을 쥔 검사는 베테랑일지언정 전문적인 법의학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검시 전문가도 턱없이 부족하다. 법의학계에서는 300명 정도의 검시 전문가가 필요하다지만 현실은 국과수와 대학을 통틀어 40여 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DNA 수사 기법은 세계적 수준과 반열에 올랐다지만 여전히 후진성을 못 벗어난 변사사건 처리과정과, 대한민국 과학수사 분야 중 가장 낙후되어 있다는 법의곤충학은 몹시 안타까운 범죄 수사의 현실을 반영한다. 국민을 지키기 위해, 범죄가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파트너십을 가지고 공동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죽음과 누명을 벗기기 위해, 10개월 전 증거를 호미로 뒤져가며 찾아낸 형사들. 현장의 형사들이 얼마나 몸을 바쳐 사건에 매진하는지, 며칠 밤을 새워가며 폐쇄회로 화면을 뚫어지게 살피는지, 그들의 열정과 노고가 없다면 우리들이 안심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새삼 공기같은 그들의 존재와 중요성을 치하하는 바이다. 범죄 현장의 진실을 찾기 위해, 시스템 구축도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이들의 땀과 노력이 없다면 누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되찾아 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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