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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목소리로 들려줘_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글쓴이: 괜찮아, 청춘이야 |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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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절교한 친구가 있는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연락을 끊어버린 친구는?


난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를 다니던 동네 친구와 절교한 일이 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그 친구를 마주칠 때마다 이사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같은 공간 안에 그 친구와 함께 있다는 게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그 때가 아주 선명하게 기억난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절교를 하게 된 이유는 아주 사소하다. 단순한 말다툼이 이유였다. 다시는 얼굴보지 않겠다고 다짐해버리게 만들었던 이유.


 


그 친구와 다시 연락을 하게 된 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무렵이었다. 갑작스런 연락에 무지 당황했던 나였지만, 통화를 하는 내내 자연스레 그 친구와 즐거웠던 때를 회상했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떠올랐던 불편한 감정이 사라진 건 그 때였던 것 같다. 내게 먼저 연락해준 그 친구 덕분에 지금 그 친구와 나는 너무도 잘 지내고 있다. 왜 내가 먼저 연락하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용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다자키 쓰쿠루는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의 친구들로부터 일방적인 퇴출 통보를 받았다. 친구라는 그룹에서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한동안 퇴출로 인한 충격과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살아가던 쓰쿠루는 하이다라고 하는 청년과의 교류로 인해 생기를 되찾는다. 하이다가 두고 간 레코드판의 '순례의 해' 음악을 들으며 쓰쿠루는 이 음악이 시로(네 명의 친구들 중 한 명)가 즐겨 연주하던 피아노곡임을 알게 된다. 얇은 나뭇가지에 작은 열매 하나가 맺기 시작하면, 그 다음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이다는 어느 순간부터 쓰쿠루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처럼 방랑생활을 일 년간 하기로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이다는 쓰쿠루와 지내는 동안 자신의 아버지의 일화를 들려줬다. 하이다의 아버지가 젊었을 적 방랑생활을 하다 만났다는 재즈 피아니스트 미도리카와씨에 대한 이야기다. 미도리카와씨는 어느 한 남자한테 죽음의 티켓을 샀고 살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이다의 아버지에게 얘기를 했다고 한다. 죽음을 티켓 한 장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은 하이다의 아버지 가슴에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화살로 날아와 박혔다. 이 화살은 동시에 하이다와 쓰쿠루에게 날아와 박혔을 것이다. 삶을 살아야 하는, 살아내야 하는 기폭제 같은 화살로.


 


그 화살의 힘으로 쓰쿠루는 하이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버텨냈다고 생각한다. 사라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현재와 미래만 보고 살아가던 쓰쿠루는 과거 속 깊숙하게 묻어두었던 네 명의 친구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쓰쿠루는 자신이 왜 16년 전에 퇴출당해야 했는지 궁금증을 풀기 위해 나고야에 직접 가서 아카와 아오를 만나고 핀란드까지 날아가 구로를 만난다. 세상에 시로가 없는 이유, 퇴출당했던 이유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들은 후에서야 과거의 문을 빼꼼히 열어 들여다보는 데에만 만족했던 자신을 활짝 문을 열어 젖히는 모습으로 변화시킨다.


 


나라면 쓰쿠루처럼 과거를 다시 들춰내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런 마음조차 안 들었을 거다. 과거의 시간들이 내게 준 상처가 있다면 상처를 그냥 덮어두기만 했겠지. 잊어버리려 애썼을 거고. 쓰쿠루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했다. 나랑 똑같이 과거를 묻고 또 묻어버리기만 했더라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꽤 불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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