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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이라도 당신께 당신의 이야기를 청해 봐도 될까요?

글쓴이: 내 영혼의 글밭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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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금이라도 당신께 당신의 이야기를 청해 봐도 될까요?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


 


 한 번도 궁금했던 적이 없다.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 한 번도 들어본 적조차 없다. 수십 년 간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으셨던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께서 살아오신 인생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치열했을 바다 위에서의 싸움. 잔인한 인내를 요구했을 자신과의 싸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끊어버릴 수 없는 생의 끈, 놓아버릴 수 없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눌렀을 것인가. 그럼에도 시나브로 중독처럼 스며들었을 환희의 순간 또한 적지 않았으리라. 바다위에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나에게 바쳐졌을진대, 몰랐다. 어쩌면 모른 척 살아온 것인지도. 서른 하고도 다섯 해에 접어들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걸작 『노인과 바다』를 다시 펼쳐 읽는다. 한 번도 품어본 적 없는 궁금증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눈물이 미안함이 고마움이 속절없이 밀려든다. 나, 지금이라도 당신께 당신의 이야기를 청해 봐도 될는지요.


 


 책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가. 같은 책이라도 언제 어느 상황에서 읽느냐에 따라 다른 말을 걸어오는 것이 마치 요술이라도 부리는 듯 신비롭다. 특히 고전의 반열에 오른 명작이 주는 감흥은 실로 깊고도 강하다. 남들에게는 명작이라 추앙받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만은 낯선 작품이 꽤 있다. 읽고 또 읽어도 공감하기 힘든 고전의 세계. 다행히 『노인과 바다』는 내가 꼽는 몇 안 되는 고전이자 명작 중 한 권이다. 언제 읽어도 어렵지 않은 책, 어떤 상황에서 읽어도 감동을 주는 책. 한 마디로 몰입이 잘 되는 잘 쓰여 진 책인 셈이다.


 


 무지개보다 더 다양한 격정의 색을 지닌 이 책에서 이번엔 슬픔을 읽었다. 5.5미터 700킬로그램에 달하는 인생 최고의 대어를 낚은 산티아고 할아버지. 꼬박 이틀 동안의 사투 끝에 쟁취한 승리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패배의 그림자가 엄습해 온다. 몸도 마음도 누더기 신세. 추스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만신창이가 되어 오두막집으로 스러지듯 들어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문득 아버지가 오버랩 되었다. 아버지는 꼬박 2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지셨다. 일찌감치 몸 여기저기서 잔고장의 흔적이 영력했지만 병원 문턱 넘는 것조차 한사코 거절해 오셨다. 그러다 덜컥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시기가 찾아오고야 만 것이다. 어느 때보다 곁을 지켜드려야 했을 그때 나는 함께 있어드리지 못했다. 내 아이를 낳던 날, 아버지는 수술대에 오르셨다. 그리고 내리 2년간 병원을 집처럼 오가셔야 했다.


 


 내가 보지 못한 아버지의 인생을 『노인과 바다』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려본다면 그건 억측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낚시가 더 이상 낭만적 취미가 아닌 생계일 때의 고단함이 산티아고 노인의 손에 굳은살이 되어 박혀있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에도 그것과 같은 고난의 세월이 새겨져 있다. 상처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는 화석같이 굳어져 버린 상태. 그 단단하던 손이 연약한 노인의 손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아버지는 좀처럼 배에서 내려오지 못하셨다. 휘황한 집어등 한 번 매달지 않고 휙휙 감아올리면 되는 자동조획기 하나 들여 놓지 않으시고 오로지 손으로만 망망대해를 낚아 올리신 아버지. 어쩌면 산티아고 노인처럼 아버지의 등과 어깨에도 내가 모르는 상처가 깊게 패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잘하게 생겼다 없어지는 상처들을 바닷물로 닦아내며 오로지 몸으로만 버텼을 인고의 세월. 그 고단함을 그 수고스러움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다행히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매우 긍정적인 인물이다. 무려 84일 동안이나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하지만 어김없이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 마침내 건져 올리게 될 한 마리의 물고기를 위해 누가 뭐라 해도 매순간 정확한 계산 하에 완벽한 기술을 구사할 만반의 준비를 해둔다. 감이나 운 따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오로지 오랜 세월에 걸쳐 체득한 숙련된 요령을 선보일 요량으로 말이다. 드디어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엄청나게 큰 물고기가 걸려든다.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섣불리 힘자랑을 하는 대신 물고기의 흐름에 따라 찰나의 기회를 노리는 것. 꼬박 사흘 밤낮에 걸친 거대 물고기와의 사투에서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곧바로 엄청난 포획자들에게 이제 동지나 마찬가지인 그 물고기를 내어주게 된다. 그럼에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지키려 노력한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급기야 형제애까지 불러 일으켰던 물고기에 대한 애정만은 아닐 것이다. 어부로서의 자존심, 인생을 건 마지막 승부라 판단하지 않았을까. 할아버지가 보여준 열정 자부심 강단은 낚시가 생계를 위한 수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가늠하게 한다.


 


 아버지에게 어부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저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한 대체할 수 없는 생계의 수단일 뿐이었을까. 아니길 바란다. 그랬다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달픈 인생이었겠는가. 얼마나 도망치고 싶은 인생이었겠는가. 아버지에게도 푸른 바다와 맞서 싸우는 넘치는 기개가 있었을 것이다. 생활의 터전이 되어준 바다와 생계의 씨앗이 되어준 물고기와 그 모든 것을 품은 거대 자연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를 마음에 품고 사셨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연은 그 무엇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티아고 할아버지만큼의 유머와 재치를 지니시진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다위에서 혼잣말을 되뇌셨을까. 혼자만의 계획, 혼자만의 다짐, 혼자만의 결심, 혼자만의 쟁취 승리 그리고 좌절까지…….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보여준 모든 것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아버지의 바다에 대해 여쭤보려 한다. 그 누구도 위대하다 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줄 기회를 마련해보려 한다. 이제는 무릎조차 내려앉아 걷는 것도 여의치 않은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가 떠올릴 바다 위 자신의 모습은 절대자를 호령할 듯 기골이 장대한 강인한 사내였으면 좋겠다. 작디작은 통통배 한 척에 의지해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바다를 길어 올리셨던 아버지. 그 정도 배짱이면 된 것 아닌가. 아버지의 지금 모습이 무기력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될 만큼 이미 몸과 마음의 마지막 에너지를 바다에 쏟아 부으신 것이니까. 사자를 떠올리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도 아버지만의 ‘사자’를 가슴에 품고 사시길 바란다. 나약하고 초라한 노인의 모습이라 자신을 책망하지 않고, 지나온 세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자긍심을 품으시길 바란다.


 


 산티아고 할아버지에게 보여주는 소년의 애정과 우정이 가슴시리도록 애잔하다. 소년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마음 또한 다르지 않음을 안다. 자연에 대한 경외, 겸손함을 잃지 않은 태도, 소년과 세상 만물에 대한 애정이 담긴 따듯한 책. 한 밤중에 울리는 전화벨에 반가운 마음보다 가슴 철렁함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가 걸어오신 인생, 산티아고 할아버지가 짊어지고 온 너덜너덜한 물고기의 잔해가 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들만의 값진 훈장이라는 사실을. 감내하기 어려운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의지는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자신이 가진 무엇도 내세우지 않은 채 오로지 순리를 따르는 겸손함, 인간의 오만함을 빙자해 자연의 위대함을 거스르지 않는 지혜가 돋보이는 소설 『노인과 바다』.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나는 아버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 만큼 가슴 저미는 존재가 또 있을까 했는데, ‘아버지’ 역시 예외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가서기가 이해하기가 힘들어 애써 외면해왔던 아버지의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한 느낌이다. 『노인과 바다』가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이야기를 넘어 자연과 고난에 대처하는 인간의 대서사시를 표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고전이 주는 감동을 새삼 마음에 새기게 하는 명작 중의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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