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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서울

글쓴이: 冊을 읽어야 知 | 2013.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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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기억속 청계천의 모습은 196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렸을 적 살았던 약수동에서 청계천은 그리 먼거리가 아니었지요. 약수동과 청계천 중간 쯤에 위치한 국민학교를 다닌 나는 같은 반 친구가 집에 놀러가자고 하자 얼떨결에 따라나선 길이 청계천 판잣촌 동네였습니다. 생선을 담았던 나무 상자와 베니어판 그리고 다른 나무들이 듬성듬성 박혀있던 집이었습니다. 좀 크면서 동남아 지역의 수상가옥을 사진이나 화면으로 보며 그 판잣집이 연상되었지요. 수상가옥은 다소 낭만적인 분위기라도 풍기지만 청계천 판잣집은 어린 마음에도 '아, 이런집에서도 사람이 사는구나'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 때가 장마철로 기억되는데, 물을 피해 다소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집의 계단을 올라가며 바닥에 흐르는 물들과 집과 바닥을 지탱해주는 기둥 이곳 저곳에 오물과 쓰레기들이 걸려 있는 모습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더군요.


 


2.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내가 본 청계천의 모습에서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갑니다. 1938년 2월 초부터 다음 해 정월 말까지 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청게천변의 복잡다단한 삶을 50개의 절로 분절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30명을 웃도는 인물들이 등장해 식민지 도시 경성을 살아가는 조선인들의 삶의 행태와 도시의 음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이 책의 지은이 박태원(朴泰遠)은 1910년 서울 수중박골(지금의 종로구 수송동)에서 출생합니다. 필명으로 몽보(夢甫), 구보(九甫, 丘甫, 仇甫)등을 썼습니다. 10대 후반부터 작문, 시, 평론 등을 신문과 문학잡지에 발표합니다. 19세 때 춘원 이광수에게 문학 개인지도를 받습니다. 1929년에 일본 동경 법정대학 예과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는 중에 영화, 미술 등과 모더니즘 문학에 큰 관심을 갖습니다. 학교를 중퇴하고 귀국해서 '신생' 10월 호에 단편 [수염]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이 책 [천변풍경]과 함께 자전적 소설인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있습니다.


 


4. [천변풍경]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기법이 최고조로 발휘된 박태원의 대표작으로 소개됩니다. 이 소설이 출간된 당시 평단에서 세태소설 또는 리얼리즘 논쟁을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합니다. 이 중에서 몇 절만(목차에 각 이야기 꼭지가 '절'로 표시)간략하게 옮겨 봅니다.


 


5. - 청계천 빨래터 -
"정이월에 대독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따는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들어, 물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 않은 모양이다." 빨래터에 한 식경만 앉아서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온 동네 집집의 숫가락 숫자와 반찬의 종류까지도 알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집안에 사는 사람들의 면모까지도 그려질 것입니다.


 


6. - 시골서 온 아이 -
시골 '가평'에서 동경해 마지않던 서울로 올라온 소년의 이야깁니다. 청량리에 들어서서 전차
를 보고 한번 올라 타봤으면 하지만, 동행한 아비는 들은척 만척입니다. 시골 구석에서 단순한 모든 것에 익숙해 있던 눈과 귀가 정신을 못차리는군요. 전차도 전차지만, 웬 자동차가 그렇게 많은지, 어디에 '장'이 선 것 같지도 않은데, 사람은 어찌 이리도 많은지, 또 집들하며 간판하며 시골 아이의 혼을 쏙 빼놓는군요. 이 당시 서울의 명칭은 '한성'이었지요. 아비는 '마소 새끼는 시골로, 사람 새끼는 서울로'의 속담 하나만 믿고 아들을 한성에 두고 갈 작정입니다. 아비가 아들을 데리고 찾은 곳은 청계천변, 한약국입니다. 아비는 다시 고향으로 되잡아 내려가고, 소년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이야깁니다.


 


7. 한성에는 어찌어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할 수 없이 올라온 사람들이 많군요.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으로 때우는 일밖에는 주어지지 않는 현실. 작가는 이런 정경을 그저 무심 한 듯 그려가고 있습니다. 남의 집 고용살이를 하는 여인도 등장합니다. 같은 조선 사람의 생활이면서도, 시골에서 경영해 오던 살림과 한성의 그것은 다르기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무척 많습니다. 


 


8. "천변을 등 장사가 지난다. 등은 무던이나 색스럽고, 풍경은 그의 느린 한 걸음마다 고요


하고 또 질거운 음향을 발한다. 날도 좋은 오늘은 바로 사월 팔일 - "  다시 또 빨래터가 나옵니다. 작가의 이런 표현이 참 정겨우면서도 예리합니다. "얼마 동안 계속되는 개인 날씨에, 빨래터는 역시 언제나 한가지로 흥성거렸다. 아낙네들은 그곳에 빨래보다도 오히려 서로 자기네들의 그 독특한 지식을 교환하기 위하여 모여드는 것이나 같이. 언제고 그들 사이에는 화제의 결핍을 보는 일이 없다."


 


9. 책을 읽다보니 마치 1930,40년대의 한성(서울)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보는 듯 합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겐 가물가물 기억에 남아 있는 서울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젊은 세대들에겐 사료적인 면에서 볼 수 있는 글들입니다. 일본 동경이나 경성 내 일본인 거주 지역이 상징하는 근대 도시의 보편적 삶과 대비되는 식민지 도시 경성의 특수한 삶, 청계천변의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그려내면서 작가는 반성적 의식과 윤리적 자각을 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밝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담긴 소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읽는 재미를 느낍니다. 이 점이 박태원이라는 작가가 지닌 문장력의 특징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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