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반쪽짜리 이야기?
영화로 <프리다(2003)>를 처음 만났다. 분명한 선들과 색채, 독특한 구상의 그림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삶을 들여다 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프리다의 생에서 일어난 가장 큰 두 가지 사고는 ‘전차사고’ 그리고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이었다.
문학동네어린이의 그림책 목록에서 프리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만델라나 다른 누구를 본 것보다 조금 놀랐고 한편으로 가장 이끌렸다. 도서관에서도 유아열람실에 꽂혀 있는 이 책이 아이들에게 얼마큼이나 다가갈 수 있을까. 그림책에는 디에로 리베라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겪다 열여덟에 전차사고로 인해 온 몸에 철심을 박아 평생을 살아야 했던 그러나 ‘그림’을 놓지 않았던 삶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책은 ‘프리다’에 관한 반쪽짜리 이야기가 되고 말텐데......
그런데 이 그림책에는 어떤 영화나 자세한 전기에도 없는 묘한 매력이 하나 숨어 있었다.
바로 상징과 압축에 관한 것이다. 소아마비를 앓았던 어린 프리다는 상상의 친구 ‘프리다’를 만들어 함께 논다.
열 여덟의 프리다가 큰 전차 사고로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했던 그 끔찍한 사건은 붉게 타오르는 활화산 그림으로 묘사되어 있다. 사고 이후에 철심을 박고 목발에 깁스를 한 중이엇지만 그림만큼이나 희망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는 병실 침대가 아닌, 구름 위에 떠 있다.
전기에서는 ‘사실(fact)'에 집중하고 그녀가 맺었던 인간관계들 그로 인해 그녀가 겪었을 고통에 집중할 순 있었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진짜 마음을 ’상상‘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전차 사고를 당하고 온 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을 포근한 목화솜 이불이 아닌, 가시덤불에 싸인 그림을 보자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2. 프리다와 친구들
그림에는 프리다만 등장하지 않는다. 해골과 표범, 붉은 악마 등의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그림을 그린 ‘아나 후안’은 이들을 프리다의 나라 멕시코의 민속 예술품 속에서 찾아냈다고 했다.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깊게 직면했기 때문에 결코 울지 않았던 프리다 곁에서 그녀를 대신해 울어주었던 것도 이 친구들이다. 해와 달도 그림 속에 늘 등장하지만 그냥 떠 있는 법이 없다. 상황에 따라 프리다의 감정에 따라 함께 웃고, 운다.
치마폭의 곡선이나, 화판, 책의 모양처럼 이야기와 대사들이 처리되어 있는 것도 굉장히 독특하다.
3. 누구의 삶도 아닌, 프리다.
프리다는 그 누구와도 비슷한 삶을 살지 않았다. 동시에 스스로 누구의 흉내를 내려고 한 적도 없다. 다만, 남들이 ‘끔찍한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에 조금 더 관대하게 마주했을 뿐이다.
처음에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지 않을 것이라던 생각도 어느새 어쩌면 아이들의 상상력에 가장 잘 맞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 환상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상상할 거리가 많으니 아이와 함께 이야기 할 거리도 많겠다 싶었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본 대로 그렸다고 한 건 어떤 걸까?’
‘어린 프리다는 가족이 많은 데도 왜 외롭다고 느꼈을까?’
‘네가 몸이 아플 때는 어떤 것을 가장 먼저 하겠니?’
‘여기 해와 달, 그리고 해골과 표범은 왜 울고 있을까?’
‘아픈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려면 뭘 하면 좋을까?’
- (영화 ‘라 비앙 로즈’(2007) 중에서)여성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은? 사랑.
그럼 젊은 여성들에게는요? 사랑.
어린이에게는? 사랑.
그녀의 삶이 기적일 수 있었던 건 그녀가 그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 살았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림과 리베라라는 사건이자 가장 큰 사랑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