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정유정 작가 답게 숨을 멈추고 읽어야 할것처럼 긴박하게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다. 사실 처음엔 등장인물들이 좀 많은데다 이야기도 여러갈래라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각자 개성 넘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하나하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어 점 점 몰입해서 읽다보니 중반쯤 접어들 즈음 대충 감을 잡게 된다. 인간뿐 아니라 늑대 같은 개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사력을 다해 복수를 감행하는 끈질김이 좀 질리기도 한다. 그리고 언뜻 인간이 극한 상황에 몰리게 되면 그야말로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동물이 되어가는 이 비스무리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와 책이 떠오르게 되는데 어느 한사람 주인공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북극 설원을 썰매개들과 경주를 하며 달리던 서재형이라는 인물이 죽음에 맞닥드린 이야기로 시작의 문을 연다. 화양으로 장소가 이동되어 서재형은 예전과 달리 유기견이나 폭력에 시달리던 개들을 구출하고 돌보는 전혀 새로운 일을 하고 있다. 정말 황당한 기사 덕분에 지금 있는 곳을 떠나려 하지만 빨간눈 전염병과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링고와 엉뚱한 기사를 쓴 김윤주라는 인물로 인해 화양에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준 스타를 죽이려 드는 동해로 인해 시시각각 늘 긴장속에 살아가는 서재형은 왠지 외롭고 쓸쓸하고 힘겨운 캐릭터다. 하지만 개를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듯, 어쩌면 북극에서 죽은 썰매개들에 대한 미안함을 개를 돌보는 일로 용서받으려 하는건지도, 그래서 어쩌면 링고에 대한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집안에 혼자 있는 노인을 구하기 위해 119 구조대가 출동하고 그곳에서 개 한마리가 뛰어 나온다. 그 개가 바로 이 책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링고다. 링고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배경과 이 소설의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는 빨간눈 전염병 발병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거의 죽어가고 있는 스타를 구해내고 사랑에 빠지는가 하면 빨간눈 전염병이 화양시를 완전히 장악한 상황에서 개를 생매장 시키는 인간들의 만행을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개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소방관 기준에 의해 스타를 잃게 된 링고는 스타를 죽게 한 기준에 대한 복수의 일념을 굽히지 않고 결국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처음 빨간눈이 발병되어 죽은 노인을 구해주고도 빨간눈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기준은 각종 응급상황에 대처해 나가면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를 지키려 무진 애를 쓰게 된다. 도시 전체가 격리되기에까지 이른 상황에서 개때들에게 습격을 당해 아내와 아이가 죽임을 당하자 이성적인 판단이 아닌 동물적인 본능으로 온갖 개들에게 복수를 행하는 기준. 그러다 결국 스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링고와 대적하게 되는 둘은 정말 악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쌍둥이 남동생과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는 간호사 수진, 화양의 실상을 생생하게 기사로 써야하는 윤주, 싸이코패스의 전형을 보여주는 동해등 참 여러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그와 관련된 또다른 인물이 주인고이 되어 각각의 이야기가 맞물리듯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가상의 도시 화양이 빨간눈 전염병으로 인해 외부와 차단되고 완전히 고립되어 지면서 아직까지 전염병에 걸리지 않은 서재형, 김윤주, 기준, 수진, 동해등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점 점 그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같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전염병의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는가 하면 온갖 폭행과 약탈이 서슴없이 행해지는 등 그야말로 인간이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재난 스릴러 소설이다. 빨간눈 전염병이 미궁에 빠진 상태에서 인간을 믿지 못하게 된 개를 구하려 애쓰는 서재형이라는 인물은 도무지 이해불가한 캐릭터다. 극한 상황에서 서로 의지가 되어주고 사랑에 빠지게 된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는 없었던걸까?
28일간 한 도시가 어떻게 몰락해 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소설은 현실의 구제역과 연관지어 전염병으로 인해 인간 또한 동물들을 생매장시키듯 생매장 당할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야만적인 인간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가지 아쉬운건 인간과 동물간의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시 정유정 다운 소설이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건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