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도시 이야기를 관람했습니다. 6월 23일, 6월 29일, 7월 7일 이렇게 세 번 관람을 했지요. 캐스팅 순서는 사진과 같습니다. 사진을 올리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저는 글을 이쁘게 꾸미는 데에는 소질이 없음을 실감합니다.
작년에 인상깊게 본 뮤지컬 중 하나가 두도시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뮤지컬을 무대에 올린 기획사 대표의 패기에 감동했습니다. 찰스 디킨즈의 '두 도시 이야기'는 영미권에서는 유명한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완역본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고 별 조명을 받지 못한 작품인데다가 브로드웨이에서도 흥행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면 중 연출은 매우 세심하게 된 편이었으나 이게 요즘 시대에 공감을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좀 지루할 수 있는 소지가 많기도 하고 약간 고리타분한 느낌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처럼 고전 소설을 좋아하는 계층 외에 곱씹을 거리가 많은 이 작품이 어느 만큼 먹혀들 수 있을까도 관건입니다.
게다가 캐스팅은 심하게 뮤지컬 마니아 층에 맞춰져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캐스팅이 없었죠. 문제는 넘버의 소화를 비롯해서 여러 면에서 쉬운 캐스팅을 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두 주인공은 말할 것 없고 작년 임혜영만 해도 넘버 하나로 인해 안 좋은 소리를 들었었지요. 물론 임혜영이 넘버 소화를 아주 잘한다고는 할 수 없는 배우이긴 합니다만 넘버 하나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요.
앙상블까지 세심하게 뽑았고 상당한 작품의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작년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나아보이지만 흥행이라고까지는 말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재연이 이렇게 빨리 올라온 것에 대해 놀랐습니다. 작품은 좋지만 한국의 특성상 작품의 질보다는 광고와 유명인의 출연이 더 흥행에 도움이 되는 현실을 보았을 때 정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흥행이 어느 정도 되어야 지속적인 공연이 성사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극을 보고 나오면서 확실히 원작에 대한 무지가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객들이 대화를 나누는 데 당혹스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왜 제목이 '두 도시 이야기'일까?라는 것은 그나마 양호한 대화입니다. 찰스 디킨즈의 원작 소설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같은 극을 보고 마지막 장면을 시드니 칼튼과 재봉사 사이에 사랑이 싹터서 해피엔딩이고 남자의 마음은 갈대다라는 대화까지 듣고 있자면 어떻게 하면 확실한 상징이 드러나는 설정을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만 들어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는데 말입니다.
전 원작에서 부터 파생되는 2차 창작물의 경우는 무조건 원작을 읽고 접하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그것이 무대예술이거나 영상일 경우는 더 합니다. 무대가 영상보다는 덜 하지만 머릿속에 각인된 이미지가 나중에 원작의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원작을 읽고 나서 무대나 영상을 보게 되면 연출자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더 잘보입니다. 물론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연출일 경우는 좀 불편하거나 안 좋은 느낌을 받을 수 있긴 하지만 원작에 저는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올 해 재연으로 돌아온 '두 도시 이야기'는 작년에 비해 지루한 감을 많이 덜어냈습니다. 제가 뺐으면 좋겠다 생각한 무덤 장면도 빠졌고 전체적으로 속도감있게 곡을 손봤기 때문에 그 점에서도 좋았습니다. 여러 장면에서 자잘하게 손을 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1막을 끝내는 시점부터 일단 관객을 무대에 몰입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가스파드의 아들이 마네뜨 박사가 풀려났을 때 했던 대사를 뺌으로 인해 불로소년으로 인한 아쉬움을 덜어낸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심하게 1780년이라고 결혼식 때 무대 꼭대기에 들어온 조명도 좋았고 조명 자체도 작년 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찰스 디킨즈의 대작을 옮겼다 보니 긴 공연시간은 어떻게 하지 못했고 그것이 평일 관람 관객의 저조함을 불러오긴 했습니다. 작년보다 몇 분을 줄이긴 했는데 어차피 줄여도 그 시간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3시간에 가까운 공연시간으로 인해 평일 공연 관람이 힘든 매니아층은 한숨만 쉬게 되었지요.
올 해의 캐스팅은 어느날 가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다 할 정도의 캐스팅이었습니다. 물론 배우들도 기복이 있긴 하지만 기본 실력이 되는 배우들로 캐스팅이 되었기 때문에 그 점은 정말 만족입니다. 요즘 들어 어중간한 연예인이나 가수들이 가끔 들어오는데 조연이면 모를까 주연까지 할 경우 공연을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날벼락같은 공연을 접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노래처럼 보여도 연기가 들어가야 하는 뮤지컬의 곡 소화는 일반 가요의 곡 소화와는 다르고 또 대사의 억양, 분위기, 감정 조절, 행동 연기가 쉬워 보여도 그리 쉽지만은 않은 것이 무대입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백민정 마담 드파르지 였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백민정 마담 드파르지의 한과 너무 어려보이고 여려보이는 면이 부각되면서 성숙한 드파르지를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이정화 마담 드파르지의 경우 너무 노쇠한 마담 드파르지란 평을 들었지만 저는 이정화 드파르지도 좋게 감상했습니다. 다만 신영숙 마담 드파르지와 다른 노선과 자신의 슬픔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점은 특이한 음색과 더불어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임현수 드파르지의 경우는 균형감을 잘 잡았고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는 남평을 잘 표현했다고 봅니다.
이 작품이 시대를 좀 차갑고 냉정한 관찰자의 시점에서 보기 때문에 그것이 뮤지컬에서도 오롯이 되살아났습니다. 굳이 선악으로 구분하려 하지 않습니다. 귀족들의 악행과 혁명 이후의 광기가 마주하는 점은 사람의 등골을 시리게 하고 그걸 잘 연출해냈습니다. 그 속에 개인을 부각시킨 것이 바로 영미 소설의 특색이긴 합니다. 개인이라는 것을 살려낸 작품을 읽으면서 요즘 읽고 있는 혁명의 시대를 떠올렸습니다. 혁명의 시대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왜 디킨즈가 이런 소설을 썼는 지 조금 더 잘 다가왔다고 봅니다. 시드니 칼튼은 소설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고 그것은 다네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에게 각색한 뮤지컬에서 시드니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의 울컥함을 선사하고 그것이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로 이어집니다. 소설 속 마지막 장면의 평온하고 성자와 같은 모습과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카타르시스는 동일합니다.
올 해의 '두 도시 이야기'에서 윤형열과 카이의 연기가 작년보다 매우 깊어졌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작년에는 조금 겉도는 그 무언가가 있었는데 올 해는 연이어 하는 탓인지 작품 속으로 녹아들더군요. 류정한과 서범석은 이제 무대 관록이 있어서 성장하는 면을 볼 수 없고 그저 어느 정도 믿고 보는 배우니까요. 최수형의 경우는 아이다의 잔재가 보이긴 합니다만 카이와 다른 다네이를 선사합니다. 다네이의 곡은 어떻게 보면 카이와 같은 창법이 더 잘 어울리긴 하지만 색다른 맛을 선사하면서 최수형 또한 자신의 매력을 뽑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폭군의 죽음' 부분과 'Let her be a child'입니다. '폭군의 죽음'은 가사를 음미하면서 들으면 이 뮤지컬에서 말하고자 하는 한 단면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얼마나 깊은 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고 'Let her be a child'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시드니와 다네이의 듀엣으로 흘러가는 이 곡을 들으면 찰스 디킨즈가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잠기게 되곤 하지요.
이제 얼마 후면 이 공연이 막을 내리게 되는 군요. 이 공연은 현재 공연하고 있는 공연장의 어느 좌석에서 보든 만족할 만한 공연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아마 몇 번의 나들이를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조명과 무대를 즐기기 위해 2층을 갈 수도 있고 때로는 배우들의 표정연기를 감상하기 위해 앞자리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올 해는 작년보다 나아진 흥행이 그나마 위안이긴 합니다. 자극적인 면도 없고 눈을 호강시켜주는 화려함은 없이 모든 것이 꼼꼼하게 잘 포장된 단단함을 보여주는 극이라서 삼연이 성사되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