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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느끼는 삶의 이유

글쓴이: (初步)_내가 나를 만나는 곳 | 201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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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리만치 소설엔 별로 흥미가 없다. 그렇다고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은 선뜻 구입하여 읽는 편인데도 소설하면 일단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왜 그러는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소설은 거의가 누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책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가지고 있던 소설을 책 읽는 것에 싫증이 날 때, 아님 책 읽을 시간을 찾지 못해 안달이 날 때,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정유정 작가는 일전에 [7년의 밤]으로 만났다. 그 책도 내가 원해서 찾아 읽은 것이 아니라, 이웃 분의 선물로 받아 들고 미적거리다 읽었다는 기억이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서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그것이 내가 가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 소설을 읽는 불편함 속에서도 작가를 기억하게 해 주었다.


 


요즘 들어 책 읽기가 힘이 든다. 시간이 많은 것 같은데도 막상 책을 잡으면 무언가 초조함에 쫓긴다. 일단은 마음이 편해야 책도 읽을 수가 있는데, 일들이 겹치다 보니 막상 시간이 나더라도 선뜻 책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전작 [7년의 밤]에서 받은 작가에 대한 기억이 아직은 살아있었고, 숫자로 된 제목이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했다. 처음 읽을 때는 잘 몰랐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흡인력이 대단했다.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고서야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을 또 다시 느꼈다.


 


수도권 인근의 불볕이라는 뜻의 가상도시 화양에서 28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28]은 생존이라는 것이, 그리고 국가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뜬금없이 왠 국가가 나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화양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것이 삼십 몇 년 전, 이 나라 남쪽 땅에서 일어난 일들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5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의 시점에서 바라본 서사는 6개의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맛 물리면서 절망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가지는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국가란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끔 해 준다.


 


인구 30만이 조금 못 미치는 도시 화양에 전염병이 발생한다. 최초 개 번식업을 하던 중년남자에게서 시작된 이 병은 눈이 빨갛게 붓고, 폐를 비롯한 온 몸에서 피를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환자를 구조하려는 119구조대도, 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와 의사도 속절없이 이 전염병에 감염되어 죽어간다. 인수공통전염병인 이 병의 원인도 모른체 사람이 개에게, 개가 다시 사람에게 감염시키면서 화양은 거대한 환자수용소가 된다. 정부는 이 전염병이 서울을 비롯한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지 못하게 사실상 계엄상태를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화양을 봉쇄한다. 초반에 공수되던 의약품도, 구급품도 어느 순간 멈춰 버리고 화양은 서서히 이성을 잃은 인간지옥으로 변한다. 여기에 5명의 인간과 1마리의 개가 얽힌다.


 


알래스카에서 개썰매 레이스에 한국인 최초로 참여했지만, 눈 폭풍 속에서 길을 잃고 가족처럼 기르던 개를 굶주린 늑대 떼에게 희생시킨 대가로 살아남은 재형, 그는 이 일을 트라우마로 간직한 채 화양에서 유기견 구조센터를 운영한다. 재형이 기르던 개 쿠키와 스타를 매개로 이어지는 동해와 윤주, 그리고 늑대개 링고, 인간지옥 화양에서 개들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119 구조대원 기준, 그리고 응급실 간호사 수진이 엮어가는 서사는 인간이 절망 속에서 어떻게 희망을 가져야 하는지, 절망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끔 만들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하여 살처분되는 수많은 개들은 우리들이 전염병이 발병할 때, 현실에서 동물들에게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고,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목아래 봉쇄된 지역에서 그곳을 빠져나가려 한다는 이유로,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무차별 학살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수십년 전 이 땅에서 일어난 일과 오버랩 되며 마음속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되어 가는 자들의 외로운 외침과, 폭력과 광기 속에서 하나, 둘 꺼져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재난 앞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안고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이래저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세계와 대비되면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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