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반대다. 개봉하자마자 달려가 영화를 본 후, 바로 서점으로 내달려 원작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를 구입했으니 말이다. 범죄 스릴러에서 뭔가 빠진 느낌, 원작부터 잘못된 것은 아닐까? 확인하고 싶었다. 그 덕분에 리뷰가 하염없이 늦어졌고, 나는 결론을 어렵게 얻은 느낌이다.
대체적으로 범죄스릴러는 2가지 방법, 범인을 처음부터 알고 시작하는 경우와 마지막까지 범인을 추리하는 경우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예컨대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범인과 추격자 사이의 쫓고 쫓기는 과정 속에 긴박한 심리전이, 후자의 경우는 '누굴까?'란 의문에 꼬리를 무는 단서들이, 이렇게 둘 모두는 솟구치는 의문에 마지막까지 허를 찌르는 상황으로 우리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이다. 범인과 추격자 사이에 놓인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과 사건들.... 그게 포인트다.
그런데 이 영화와 원작은 처음부터 묘하게 그것이 빠졌다. 늑대개부터 시작된 질문에서 나름 반전도 있고 살인의 사연도 성립되건만, 추리 과정 속에서 긴박감이 전혀 느껴지질 않았단 말이다. 내가 꼽은 이유, 원작에선 다키자와(남)과 다카코(여)의 서로에 대한 성차별이 내재된 불만(속마음)과 영화에선 집단적으로 대놓고 하는 성차별이 사건과 별개로 집중력을 상당히 흐트려뜨린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특히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각색된 영화에선 남성 중심의 형사 집단이 분노의 표적이 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문제제기를 했으면 사건과 연결지어 확실히 끼어넣고 해결 과정과 맞물려서 통쾌한 결론을 맺어주던가, 그게 아니라면 사건과 무관한 곁다리는 과감히 없앴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감독의 의도에 실망을 맛보고, 이번엔 배우 송강호! 거친 남자들 속에서 욕심은 많으나 결국 승진하지 못하는 인간적인 약자 조상길은 그 모습이 어쩐지 영화 '의형제'에서 빈틈 투성이여서 더욱 정이 갔던 이한규랑 닮았다. 결국 조상길 속에 이한규가 있었다. 송강호가 선택한 최선이었겠지만, '의형제'가 자꾸 오버랩 되면서 솔직히 식상했다. 긴장감을 상쇄시키는 어설픈 코믹 대신 넉살은 좋지만 진중한 성격이었던 다키자와의 성격을 불어넣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땅딸막한 다키자와는 마흔대여섯쯤 됐을까. 다카코와 키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그가 앞에 서면 다카코의 눈앞에 숱이 적어지기 시작한 머리칼이 철썩 들러붙은 머리가 보인다. 기름기 줄줄 흐르는 피부는 울퉁불퉁하지, 이는 담배진으로 누렇게 변색되어 있지, 게다가 주먹코 위의 눈초리는 음험함 그 자체다. 시의심 강하고 사람이 끈덕질 것 같은, 어떻게 봐도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형사 타입이다. 그가 코트 앞자락을 열어 놓은 채 배를 쑥 내밀고 어깨로 바람을 가르듯 걷는 모습은 짧은 다리도 그렇고 꼭 황제 펭귄 같다. 아니, 뒷발로 선 바다 표범일지도. (p.66)' 원작에서 묘사된 다키자와의 이미지로 내가 배우를 선택했다면, 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아버지로 나온 배우 박수영을 꼽아본다. 음험한 눈초리를 특히나 잘 표현했을 것 같다. 파트너와의 관계도 극과 극의 비쥬얼 차이때문에, 둘은 '따로 또 같이' 서로를 빛냈을 것 같다. 솔직히 이 영화는 첨가되는 요소들마다 빵빵 터지는 이슈들이라 기대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었다. 원작 있겠다, 감수성 풍부한 유하 감독이 메가톤을 잡았겠다, 연기파 배우인 송강호와 여배우로서 입지를 굳힌 이나영이 합류했겠다, 그러니 당연했다. 그러나 그런 결합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내 기대엔 못미쳤고 원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과 밀착되어 쉼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범죄스릴러로써의 긴박감 있는 흡입력은 여러 요소들의 방해작용 덕에 결국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과감하게 여자에겐 척박한 땅 형사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여형사, 성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통쾌한 반박을 그들의 면전에 내뱉으며, 남자한테 몇 대 맞고 바닥에서 뒹굴기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고 돌맹이라도 집어 던지는 용기를 지닌 이미지로 만들었다면 그녀의 중요한 활약들이 눈에 더 띄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로 이나영 보다는 독기를 품고 씩씩하게 달려드는 것이 어울리는 하지원이 관객에게 시원할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줄 인물로 제격일 것 같다. 그러나 이중인격의 얼굴을 가볍게 소화해낸 질풍이의 절절한 눈빛 연기는 원작과 비교했을 때 손색 없었다고 생각된다. 어쨌든 질풍아!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