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욕망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겠다.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사전적 정의만 놓고 보자면 ‘본능’과 다를 것 없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알고보니 이 단어는 라캉이라는 정신분석학자에 의해 부상하게 된 정신분석학의 핵심 용어란다. 프로이트는 이 개념을 더욱 확장시켜서 성적인 욕망뿐만 아니라, 음식물에 대한 욕망까지도 포함시켰다고 하니, 본능과 참으로 맞닿아 있는 단어라고 볼 수 있겠다.
조금 더 정리를 해보자. 그렇다면 본능이 ‘나쁜’것인가? 아니다. 본능이 없다면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본능을 기반으로 존재를 유지시키고 번식할 뿐만 아니라 만족을 얻기도 한다. 다만, 본능을 충족시킬 적절한 수준의 만족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적절한 수준’. 생각해 보니 이 문제다.
<욕망해도 괜찮아>의 저자 김두식 교수는 주로 남자들의 ‘성적인 욕망’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규율의 사회에서 인간이 품고 있는 본능을 있는 그대로 모두 발출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지금까지 매스컴에서 다루어졌던 ‘스캔들’ 사건들을 언급하며 ‘색(色 )’의 인간에 대해 조명한다. 특별히 책의 내용을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 솔직하다.’ 굳이 자신의 ‘욕망’을 이다지 낱낱이 풀어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얼마는 더 감추었을지도 모르지만)상세히 글로 써내려 간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욕망의 자연스러운 발출’이 ‘인간의 참다운 자유’, ‘원하는데로 행동할 자유’라는 의미와 동일하게 생각되는 것은 아닐까? ‘욕망해도 괜찮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는 ‘욕망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평등과 자유가 불공정과 차별에 항거해서 나타낫듯이, 그렇게 저자는 규율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특별히 어떤 논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욕망은 누구의 마음속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남자들의 관계에서는 ‘출신학교’위주로 정리가 되는 학벌의 욕망. 소득 중산층에게는 상류층처럼 되고 싶고, 특별히 ‘그렇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 성적으로 자유하고 싶다는 욕망. 이 모든 욕망이 규율 앞에 멈칫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법이 될 수도 있고, 도덕적 양심이 될 수도 있다.
김두식 교수는 이 모든 욕망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없다면, ‘경계를 넓혀가라’고 말한다. 너무 앞서 나가서 사회의 지탄이 되는 길을 택하지 말고, 경계선을 한발짝씩 넘나들며 그 영역을 넓혀가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어디까지 추구해야 한다는 말일까? 어디까지가 ‘적정한’ 범위의 욕망인 걸일까? 이마저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니 개인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말일까?
어떤면에서는 인간의 부패한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용기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사회적 위치(대학교수)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담당해야 할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는 너무 멀어지지 않았나 생각이든다(이마저도 규율이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욕망해도 괜찮다는 저자의 말에 통쾌함을 느끼는 이들도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에게 너무 큰 권한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개인의 판단이 세상의 모든 가치를 분별하는 시대이다. 시대에 따라 판단한다면 저자의 말이 옳다. 하지만 인간이 언제나 시대안에 갇혀 살 수 있는 존재란 말인가? 누구나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기 마련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더라도 더 나은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를 다른 책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