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나름 유명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친구랑 친하지 않아서 소문으로만 들었던 이야기. 얼굴도 별로 예쁘지 않고, 그렇다고 말을 잘하느냐, 그렇지 않고, 쭉쭉 빵빵 몸매가 좋은가? 그렇지 않은 친구. 하지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그 친구에게는 남자가 끊이지 않았고, 사귀는 남자마다 얼굴 잘 생겼다라 뭐라나... 얼굴이 예뻤다면 수긍했을 지도 모르고, 뭔가 매력이 철철 흘러넘치는 알지 못하는 촉이 있었다면 이해했을지 모를 한방이 있었다면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을 텐데... ^^ 암튼 여학교에서의 남자 친구는 여러모로 화두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 ‘카더라’통신의 소문(?)으로 이뤄진 여자가 있다. “그 여자, 틀림없이 남자 엄청 밝힐 걸? ”, “개가 남자 앞에만 가면 페로몬이 줄줄 흘러서 단박에 홀리는 타입인 거 같아.” 등 그녀는 남자를 홀리는 재주가 국가 대표 급이다. 대도시라면 다시 만날 일이 없을 여자이지만, 이곳은 작은 소도시. 최대 관심사는 바로 그녀다. 젊은 나이에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를 통해 돈을 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남자는 죽고 만다. 저마다 쑥덕이는 소문은 조금씩 보태지고, 부풀려져서 더욱 그녀를 신비롭게 만든다. 홀딱 만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지만 풍만한 가슴과 요염한 눈웃음, 묘한 마성을 가진 그녀에게 홀딱 넘어 간다. 그녀를 차지(?) 못한 찌질한 남자들은 그녀를 험담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녀에게 남자를 빼앗긴 여자는 향기롭지 못한 소문을 부풀린다.
이 책은 모두 ‘10편의 그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이끌어간다. 그녀와 연관된 사건과 사고. 그녀에게 당한(?) 남자들과 그녀를 더욱 그녀이게 만드는 소문의 근거지들이 10편의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 남자들을 제 손안에 넣고 주무르는 그녀, 그녀는 자신이 가진 색기를 이용해 남자들의 욕망을 가지고 논다. 이 소문의 여자는 일본에서 실제로 일어난 연속살인사건의 범인을 모티브 삼아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사실 무섭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여자가 가진 욕심이 어디에서 끝을 맺을지 몰라 무섭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남자들도 안타깝다.
나는 면장 선거 이후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엉뚱한 유머 코드에서 벗어난 그의 글이 재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묘한 책 표지와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만났지만 글쌔.. 책 표지에서처럼 “응원해주고 싶은 팜므파탈”은 아니라고 본다. 여자를 사랑보다는 색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불편했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남자들도 바보 같다.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며 떼로 몰려가 진상 떠는 직장 선후배, 여자를 보면 성적인 상상만 하는 찌질한 젊은 남자, 저질 재료를 납품받아 요리를 가르치는 요리 교실, 더 많은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 배다른 형제자매들, 취직하지 않고 파친코 점에서 일하는 젊은 여자들, 그 젊은 여자를 꼬드겨 잠자고 싶은 중년의 남자, 하우스 푸어에 내몰린 부모를 위해 일하는 젊은 여성, 담합이 당연한 지역 건설 업체 사장단, 집단 단체로 전략한 종교와 신자들, 수훈을 놓고 대형 사건을 묵혀두려는 형사, 비리와 이권이 판치는 시의회 의원들.. 사실 좋은 눈으로 바라 볼 수 없는 남자들이다. 그래서 응원해 주고 싶은 소문의 여자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다.
실제 그런 여자가 있다면.. 우린 어떤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게 될까? 우리 사회. 실제로도 많은 카더라 통신으로 마음 아픈 사람들이 있다. 그 소문의 진위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사실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오랜만에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었는데 역시.. 그만의 유머가 있고 유쾌함이 있다. 오늘... 소문의 그 여자 한 번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평가 내릴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