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에 있어 19세기의 찰스 다윈과 같은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21세기 지성인은 누구일까?『왜 다윈이 중요한가』의 저자인 마이클 셔머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중요한가를 알게 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총, 균, 쇠』,『문명의 붕괴』그리고『어제까지의 세계』를 통해 문명대연구 3부작을 완결한 세계적 석학이다. 그의 최신작인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부제 그대로다. 바로 ‘전통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저자는 전통 사회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우리의 삶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고 있다.
우리는 전통 사회에서 문명화과정을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제까지의 세계가 모두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통 사회의 장점이 최대한으로 부각되는데 앞서 말했듯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사회에 대한 낭만을 생각하면서 단순하게 과거 지향적으로 사는 것은 모순이다. 이것은 문명의 공존이 아니라 단절이라고 할 수 있다. 문명의 공존하는 입장에서 전통 사회의 바람직한 삶으로부터 우리는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서구화된 생활에서 비롯된 온갖 비전염성 질병(당뇨병, 고혈압 등등)을 생각하면 전통 사회는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저자는 위험에 대처하는 어제와 오늘의 세계를 비교하고 있다. 우리 삶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여러 가지 위험 중에서도 환경적인 위험이 대부분이다. 전통 사회에서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활동에서 현대 사회에서는 자동차 사고 같은 도시적인 차이가 있을 뿐,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위험이 두려워서 거주지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먹을 것이 없게 된다. 이 때, 전통 사회에서는 ‘건설적인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이라는 반응을 한다. 건설적인 편집증이란 매사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전통 사회는 위험도가 높은 반면에 현대 사회는 위험도가 낮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위험도가 아니라 위험의 비율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더라도 매순간 즉, 위험의 비율이 높으면 그만큼 사고의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전통 사회 사람들은 나무가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위험 때문에 나무 밑에 텐트를 치며 야영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죽은 나무 아래에서 야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건설적인 편집증이 현대인들에게는 터무니없는 과민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긴 안목에서 보면 불의의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전기뱀장어와 종교의 진화를 논하는 부분은 사뭇 흥미롭다. 우리가 왜 종교적인지를 묻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문을 두 가지 관점에서 모색이 가능하다. 하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기능적 접근법이다. 기능적 접근법을 요약하면 종교는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순종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다. 또 하나는 생물학에서 파생된 진화론적 접근법이다. 진화론적 접근법에 따르면 종교는 인간의 두뇌가 지닌 어떤 특성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부산물이란 ‘처음에는 어떤 기능을 위해서 선택되지만 점차 발전해서 결국에는 다른 기능을 수행하도록 선택되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 문제에 있어 전자보다 후자의 견해를 역설하고 있다. 즉, 종교가 전기뱀장어처럼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자연선택으로는 전기가 없는 정상적인 뱀장어로부터 600볼트의 전압을 가진 전기뱀장어가 생겨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물고기들의 껍질에는 전기장에 민감한 감각기관을 지니고 있다. 이점을 고려한다면 정상적인 뱀장어는 단순히 주변 환경의 전기장을 탐지하는 ‘수동적 전기탐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일부 어종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낮은 전기장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고전압을 지닌 전기뱀장어는 정상적인 뱀장어에서 점차로 여섯 가지 기능을 아우르면서 자연선택된 것이다. 인간의 종교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어제까지의 세계』는 전통 사회에 대한 초심을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 전통사회라고 한다면 현대 사회의 반대말이라고 하는 게 다반사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서구화된 사회에서 바라보는 획일적인 사고에 불과하다. 전통 사회 없이 현대 사회는 생겨날 수 없다. 그러니까 현대 사회는 전통 사회의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 사회가 전통 사회의 단점만을 비판하면서 현대 사회의 장점을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전통 사회보다 삶이 풍요롭고 건강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우리는 만성적인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때보다 염분을 많이 섭취한 결과다. 또한, 단맛이 나는 소변이라는 당뇨병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 이럴 때『어제까지의 세계』는 현대 사회에 팽배한 염분 섭취를 줄이는 탁월한 처방전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