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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서울 탈출을 꿈꾸며 읽는 타인의 삶

글쓴이: 깐의 블로그 | 201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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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살림에 대한 책을 읽은 것에 이어, 또 한 번 서울 탈출에 관한 책을 읽었다. 눈에 띄었다면 직접 집어들어 구매했을 책이지만, 출판사의 마케팅 업체로부터 소개받는 루트로 접하게 되었다. 제의를 받는 책은 읽고 싶은 것만 받기는 해도 아무래도 직접 고르는 것보다는 기대를 덜 하게 되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제목부터 나의 바람을 닮아 있어 예외적인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책을 엮고 펴낸 곳부터 남다르다. 소개받을 때부터 더욱 마음을 끌게 했던 요소이기도 한데, 이 책의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이라는 곳은 통영에 터를 잡아 지역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의 전체 컨셉과도 잘 어우러지는 출판사의 정체성인 셈인데, 아니나 다를까 책의 마지막 꼭지는 남해의 봄날을 설립한 정은영 대표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로 채웠다. 그녀는 현재 남편과 함께 4년째 통영에 거주하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일과 관련하여 변화를 시도해야 했고, 건축에 경력은 물론 일가견이 있던 남편과의 논의 끝에 서울과 거리를 둔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정은영 대표의 삶은 아름다워 보인다. 수익은 서울에서의 그것을 따라잡기 어렵지만, 서울에서 기대할 수 없던 여유와 웃음과 건강을 찾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이 원해오던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더욱 행복해 보인다. 그녀는 열심히 일해온 만큼 경력이 적지 않고, 그녀의 남편 또한 한국 해비타트에서 일하며 통영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능력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갖춰오고 있었다. 자신이 정착할 곳과 정착 후의 할 일에 따라 다양한 기본 소양이 필요하기는 할 테지만, 정은영 대표 내외의 사례는 역시 시골 생활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조금 들게 한다.

 

 

만약 정 대표의 글만 실려 있었다면, 이 책은 여전히 남의 이야기들로만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실린 아홉 명의 서울탈출기는 다양한 학력과 다채로운 직업, 여러 가지 동기, 그리고 그만큼의 꿈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고는 서울에서의 삶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소신, 서울 이외의 곳에서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확신뿐이다. 나는 서울을 떠나는 또 한 명의 사람이 되고 싶지만, 어떤 이의 글은 몇 번씩 되뇌며 읽을 만큼 공감이 된 반면 어떤 이의 글은 동의하기 어려워 시큰둥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난 아홉 명의 모습은 아홉 가지의 부러움을 자아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꿈꾼다, 나의 서울 탈출을.



길 위의 주차장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들.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 안에서 보낸 출퇴근 지옥. 어느 정치가의 슬픈 공약, 저녁이 있는 삶은 서울의 지식노동자들에게는 요원한 꿈일 뿐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맞바꿀 만큼 그렇게 서울의 삶은 가치 있는 것인가. (7쪽)


우리는 사실 그때 잘 몰랐었지만, 우리가 거주지를 옮긴다고 결정한 순간, 그동안 갖고 있던 인간관계와 내 삶에 얽혀 있던 거의 모든 부분들과 일정 정도 '이별'하게 된다는 꽤 대단한 변화가 시작된 거였다. 아마 알았더라면 시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를 그런 특별한 결심. 그래도 그 대단한 것을 감행했기 때문에, 우리는 뼈아픈 이별 이후 다가온 수많은 새로운 만남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23쪽, 오은주)


지금 많은 사람들이 도시 탈출을 꿈꾸지만, 대부분은 꿈을 꾸는 것에 머물러 있다. 그들 중 또 대부분이 끝내 떠나지 못할 것이다. 도시를 떠난 삶이란 그렇게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태어나 30년이 넘게 아스팔트를 고향 삼아 살면서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던 한 남자는 서울을 떠나고 나서야 그 일이 의외로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치병이라 여겨 몇 년 동안 달고 살았던 산소 호흡기를 떼고 보니 사실은 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걸 발견한 사람의 심정이랄까? (41쪽, 이담)


당연히 우리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에서 아옹다옹 사는 게 지겨워서 시골로 내려가 개나 키우며 살고 싶지만, 지금 당장은 여러 가지 여건이 받쳐주지 못한다면서, 마흔 살이 되거나 딱 1억만 모아놓고 나서, 아니면 자식들 대학까지 다 보내고 나면, 그 뒤에 한적한 곳으로 들어갈 거라고들 한다. 그러나 보통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할 때는 실력이 없어서나 형편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아니면 그 일을 정말로 원하는 게 아니던가. (69쪽, 사이)


서울을 떠나도 분명 우리가 할 일은 존재하고, 시간이 걸리고, 힘은 들어도 그 길은 어디든 열려 있다. 혹 길이 없으면 또 어떤가.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이 또 길이거늘. 분명 그 길에는 아름다운 꽃길도, 험한 산세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사는 인생,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유롭고, 넉넉하게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단, 항상 변화에는 대가가 따른다. (201쪽,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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