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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위로]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글쓴이: 깐의 블로그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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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그만 두고 거의 집에서만 1주일을 보냈다. 종로에도 두어 번 나갔다 오고 친한 친구도 만나긴 했지만 봄비도 내려주니 집에서만 뒹구는 중이다. 몇 년 전, 학교 선배가 수업이 일찍 끝난 날 어딘가 급하게 가기에 "오빠, 어디 가요?" 하고 물으니 "어? 집. 난 집이 제일 좋아." 하며 총총 사라졌다. 선배가 떠난 자리에 남은 나와 친구들은 '집에 혼자 있는 것'에 대한 호불호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만 선배의 바람같은 귀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나 역시 집이 좋다. 그 선배도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홀로 있는 집이 좋다는 의미였는데, 나 역시 아무도 없는 집이 좋다. 그 선배는 여전히 방에서 집으로 업그레이드 된 자기만의 공간을 좋아한다.


 


 


이 책은 고독의 위로라는 제목이 달려 있기는 하지만, 고독이 내면을 위로해주는 건 독자들 각각의 능력일 것 같다. 책에 실린 내용은 고독이 지닌 장점, 혼자 있을 때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다. 저자 앤서니 스토는 구체적으로 검증된 심리학 내용을 말해주는 것보다 실제로 고독의 장점을 잘 활용했거나 고독해도 행복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성공의 발판에 좋은 평판과 넓은 인맥이 꼭 놓여야 한다고 보는 사회 분위기,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정신상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좋아하지 않기도 한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되므로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좀더 가치있는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나의 단점을 드러내지 않도록 주의해야만 한다. 나는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에 쉽게 상처 받는 편이어서, 내가 그들에게 똑같이 굴지는 않을까 늘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극도로 피곤해진다. 가까운 사람과는 비교적 덜 예민할 수 있지만 혼자 있을 때 보다는 훨씬 피로를 느낀다. 사람들과 자주 만날 때엔 그만큼 혼자 있는 시간이 적어지기 때문에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은 홀로 지내기를 좋아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적어두는 것을 좋아하고, 이를 통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외로움이 느껴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질 때면 그동안 나를 찾던 이를 만나거나,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 이러한 만남은 내가 홀로 생각했던 것들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거리를 제공받는 기회가 된다. 결국 타인과의 교류 또한 나의 고독을 위한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평소 외로움을 느끼는 빈도가 적은 편은 아닌데, 페이스북이나 문자메시지, 전화 통화 등으로 해소되는 정도의 외로움이어서 간헐적인 만남으로도 버텨내는 것 같다.


 


 


이런 내게 이 책은 대부분 당연한 얘기로 채워져 있다. 인간관계가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꽤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절대적인 행복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저자 앤서니 스토는 좀 강도가 세다. 그는 인간관계가 거의 없어도, 그러니까 완전히 피상적인 관계로만 유지되어도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이 정도로 고독을 예찬하지는 않는다. 내 생각에 나의 고독은 나의 기질 상 받아들인, 더 친밀한 관계의 형성의 대가로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과 좀 더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불행한 건 아니지만, 내가 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앤서니 스토의 설명을 믿고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내 고독을 더 감사히 즐길 필요가 있겠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인간관계와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매우 허약하다.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는다면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고,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 인간관계는 분명 뭔가 잘못된 거라는 우리의 생각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17쪽)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끼리 맺는 관계의 깊이는 다양하다. 모든 인간은 관계뿐만 아니라 관심사도 필요로 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관심사도 필요로 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이외의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사건, 타고난 재능과 능력, 기질 차이 등 여러 요소에 따라, 한 개인이 인생의 의미를 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찾는가 아니면 고독에서 찾는가가 결정된다. (48쪽)


 


 


새로운 통찰이 생기는 부화의 과정에는 오랜 기간의 숙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이 인간 지성의 특징으로 지목한 한 가지 요소와도 관련된다. 지적인 행동은 "한 사람이 일생 동안 살면서 상황에 적응하여 다양하게 하는 행동"으로 정의되었다. (89쪽)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런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는 운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아주 친밀한 관계라 해도 분명 결점과 약점이 있게 마련이며,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불행해하고 서로를 포기하려 하는 것이다. 어떤 관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이 인간관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충족감을 얻으려 하는 이유가 쉽게 이해된다. (129쪽)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 연인, 아주 가까운 친구나 친척들과 있을 때도 진짜 자신이 되기를 어려워한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진짜 자아를 완전히 감추고 거짓 자아를 만드는 정도까지는 아니라 해도 지나치리만치 혼자 있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낀다.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있을 법한 가능성 한 가지는, 어린 시절에 경험한 불안한 애착이 성인이 되었을 때 혼자 있을 필요를 유독 많이 느끼는 한 가지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147쪽)


 


 


창조 활동은 대응기제, 즉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통제력을 발휘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실 창작에 별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어떤 일로 고통 받을 때 정서를 표현하면 어느 정도는 상황을 통제하는 느낌을 얻는다. (201쪽)


 


 


대상관계 이론가들이 인생의 의미와 만족감의 주된 요소라고 주장하는 친밀한 애착관계를 맺거나 지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서, 꼭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단절되어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일터에서 비교적 피상적인 관계만을 맺고도 안정되고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도 많이 있다. (343~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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