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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에서 발생한 어느 학구적인 살인

글쓴이: Panis Angelicus | 2012.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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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에 사로잡혀 감상하고, 보고 난 후에도 깊은 인상으로 기억에 꽤 오래남는 영화가 물론 좋은 영화지만, 세상에 모든 좋은게 다 그렇듯 의외로 그런 영화는 그리 흔하지 않다. 어떤 영화는 볼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도 보고 난 후 잔상이 꽤 오래남기도 하고, 또 어떤 영화는 볼 때는 잔뜩 몰입이 되지만 돌아서고나면 기억에서 금새 휘발되어버리기도 한다. 때로는 보는 동안에는 꽤 의미있는 영화, 나름 깊이가 있는 영화란 느낌이었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설프고 엉성하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이 「옥스포드 머더」 라는 영화가 딱 그렇다.


 


딱히 영국식이라고 해야 할가는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딱딱한 억양과 빠른 말투, 무슨 철학 논쟁이라도 벌이는 듯한 어려운 학설과 용어의 난무로 인해, 그저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아마도 수학 과목인듯 싶은데, 오히려 철학강의 같은 느낌의 강의를 하는) 저명한 노교수와 젊은 천재 수학자 둘이서 펼치는 두뇌게임이니 어쩔 수 없지.. 하고 인정할 수도 있겠다. 다만, 그렇다면 관객의 감탄을 자아낼 기발한 추리나 반전이 있어야 할텐데, 그나마 딱히 꼬집어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할 만한게 없으니 그런 불편함에 대한 보상이 없다는 차원에서 관객에게 다소의 억울함을 줄 수도 있는 영화.


 



 


옥스포드로 유학을 온 마틴(일라이저 우드, 이 친구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원작에 힘입어 유명해진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주인공 호빗족 프로도였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해 젊은 천재 수학자역의 그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졌다)은  어딘지 고집스러워보이고 약간의 히스테리 증상도 감지되는 노부인과 젊은 딸 베스 둘이 살고있는 집에 하숙을 들게 된다. 연상의 이미지가 풍기는 베스는 동네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 그녀는 시종일관 어머니의 짜증을 받아내는데 지친 듯, 가끔 사소한 문제로도 어머니와 첨예하게 대립한다. 늘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베스에게 있어, 살풍경한 집안분위기에 끼여든 마틴의 존재는 그야말로 희망이요, 빛이요, 청량음료다. 그걸 사랑의 감정이라고 착각했던걸까.. 그녀는, 내겐 아무래도 프로도의 이미지를 채 벗어내지 못한 마틴에게 묘한 감정을 담은 눈빛을 쏘아댄다.


 


첫 강의에 참석해 저명한 교수 셀덤에게 질문을 했다가 거의 봉변에 상당하는 무안을 당한 마틴, 그를 존경해 옥스포드까지 왔건만, 자신을 무시하며 무안까지 준 셀덤이 마틴은 곱게 보일리 없다. 셀덤과의 마찰 후 학교를 계속 다닐지 말지까지 혼자 고민을 에스컬레이팅(Escalating)한 마틴의 속불을 꺼준건 어디선가 등장한 미모의 여인, 그런데 직업이 간호사인 이 여인과 한참 사귀다 보니 그녀 역시 과거 셀덤의 내연녀였던 것 같다. 도대체 이게 무슨 악연..


 



 


그러던 어느 날, 마틴은 셀덤을 자신의 집 앞에서 만나고, 히스테리의 노부인과 셀덤이 아주 오랜 지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지금은 고인이 된 노부인의 남편과 셀덤의 부인 이렇게 과거엔 매우 친했던 네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당시 운전을 하던 셀덤이 낸 사고로 서로의 배우자가 목숨을 잃었던 것. 그러니 노부인이나 베스 두 사람의 인생에 셀덤은 본의든 우연이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셈. 둘이 함께 노부인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던 흔들의자가 있는 거실에 들어서니, 이게 웬일.. 노부인은 누군가에 의해 이미 살해되어있다. 사망 원인은 질식사.


 


범인은 늘 어머니와의 불화에 시달렸던 베스일까.. 아니면, 어느날 갑자기 마틴의 하숙집 앞에서 서성이던 모습이 목격된 셀덤일까.. 아니면 제3의 인물..? 사건현상의 최초 목격자로서 용의자로서의 혐의까지 받게된 셀덤과 마틴 두 사람은 자신들의 천재적인 두뇌를 이용, 자칫 위험해보이는 협업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함께 풀어보기로 한다.  


 



 


철학과 수학, 의학과 기호학을 넘나드는 현란함을 품은 영화지만, 어쩐지 꽤 예쁜데 도통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여인을 볼 때 느끼는 것처럼 헛헛하게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영화다. 마지막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부분에서는 다소간의 허탈함마저 느껴진다. 꽤 낮익은 배우들 중 한 명의 팬이거나, 아카데믹(아카데미 시상식과는 전혀 상관 없음)한 영화나 추리물 등, 기한의 영화소개를 통해 느껴지는 무엇에 직관적 선호를 느끼는 분들에게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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