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문학작품을 읽을 때에는, 특히 그것이 좋은 고전이라 평해진 것인 경우, 깊은 감동을 느끼거나 작품을 통해 접한 새로운 정서와 작가의 상상력에 눈이 뚱그레질 정도로 놀라움을 느끼는 적은 많지만, 정작 그 작품이 가진 메세지를 정확하게 캐치해내고 표상화(또는 의미화, Representation, Symbolization)해내는 데는 많은 역부족을 느껴왔다. 감동적인 작품이긴 한데,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핵심적 메세지는 무엇일까에 대해 잘 감을 잡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편하게 혼자 '문학이 꼭 무슨 메세지를 담아야해..? 그냥 감동적이거나 재미있으면 그만 아닐까..?'라고 편하게 믿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도 참 많이 했다.
이 책은 위에 기술한 나의 경우와 비슷한 경험을 해 온 본 분들에게 아주 유용하고 고마운 책이다. 별다른 철학적 지식이나, 문학적 소견 없이도 저자의 편안한 구어체 말투를 술술 따라가다보면 아무런 어려움 없이 문학과 철학의 범주를 넘나드는 여행을 높은 만족감 하에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 번 읽어본 작품이라면 스스로가 읽으며 미처 느껴내지 못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맛보며 기한의 독서 기억에 풍요로움을 더할 수 있고, 만일 읽은 경험이 없는 작품이라면, 그 작품의 얼개를 구조적으로 먼저 파악하고, 그 작품을 통해 저자가 표출하고자 한 핵심 메세지를 사전에 파악함으로써, 마치 논문의 <Abstract>를 읽는 것과 유사한 효용을 맛볼 수 있다.
다만, 김용규라는 전문 철학자의 논지에 일방적으로 이끌릴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철학이 그 안에 가지고 있는 사상적 논리와 가치관을 논하는 경우야 비교적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해석을 따를테니 그 일방적인 이끌림에 큰 거부감을 느끼거나 부작용을 염려할 필요는 없지 싶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의 교집합의 크기를 설정해가는 부분과, 문학에 대한 철학적 해석 및 의미부여에 대하여는, 무비판적으로 끌려가기보다는 가끔씩 스스로의 입장에서 저자의 논리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는 주관이 필요할 듯 싶다.
또 미처 읽어보지 못한 문학작품을 논하고 있다면, 그 핵심 줄거리를 책을 읽어가는 동안 대체로 다 파악할 수 밖에 없기에 새롭게 그 오리지널 문학을 접하는 맛을 다소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듯 싶다. 만일 그런 부분에 조금은 예민한 저항감이 생긴다면, 아직 읽지 않은 책에 대한 단원을 건너 뛰어 읽어도 무방하다. 웹에 연재된 글이니만큼 단원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 개별적으로 흐르며, 이전 부분을 읽고 안읽고의 영향이 거의(또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책의 맨 앞에 친절하게 목차가 나와 있지만, 행여 읽어본 고전에 대해서만 이 책을 참고하시고자 하는 분들의 구매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목차를 여기에 써보면 다음과 같다.
괴테의 <파우스트> 1,2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사르트르의 <구토>
사뮤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저자 김용규에 대해서는 이 책을 읽어보기 전에는 잘 몰랐는데, 검색을 해보니 꽤 많은 작품활동을 한 전문작가분이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 공부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도 집필, 국내 '지식소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철학의 대중화 및 철학과 다른 문화(문학/신학 등)의 크로스 오버에 많은 관심을 가지신 듯, 그런 분야의 책들이 많고, 상당부분이 잘 알려진 인기 저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