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뒷면은 어떻게 생겼을까? 달은 자전 주기와 지구의 주변을 도는 공전 주기가 똑같기에 지구에서 바라본 달의 얼굴은 언제나 같을 수 밖에 없다.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돌고 달은 또 지구의 주변을 돌기에 우리는 하루를 셀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는 동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는 태양과 언제나 같은 얼굴을 내비치며 웃고 있는 달을 보며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토끼가 떡방아를 찧고 있지는 않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테지.
결국 달 위에 사람이 발자국도 찍었는데 달의 뒷면 보는 것 정도야 이제 별 일 아닌지, 단지 내 눈으로 하늘 위에 뜬 달의 뒷면은 바라볼 수는 없다한들 사진으로나마 존재하지만 볼 수 없었던 세계를 떡하니 볼 수도 있는 시절이다. 달의 뒷면은, 지구에 떨어질 수도 있었을 운석들을 뒷면으로 막아낸 흔적들이 새겨져 있다. 토끼가 아니라.
여기에 달이 앞면만 보이고, 기타 등등, 과학적인 설명을 조금 더 해낼 수 있다면 이런 이야기도 꽤나 멋지게 들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나의 한계는 그냥 여기까지다.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세계를 멋지게 주조해 내고 있는 '노스탤지어의 마법사' 온다 리쿠가 들려주는 <달의 뒷면>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세계의 묘한 분위기를 한껏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도시 면적의 10%가 수로로 뒤덮인, 어디에서나 잔잔하게 물이 흘러가는 것을 볼 수 있는 옛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야나쿠라'에 다몬이라는 남자가 도착한다. 그를 맞아준 것은 옛날 그의 스승이었던 교이치로로, 묘한 통찰력이 있는 다몬에게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초대한 것이다. 언제나 흘러가는대로 몸을 맡기는 다몬은 덥석 야나쿠라의 땅 위에 발을 디딘다.
교이치로가 다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마을에서 의문의 연쇄 실종 사건에 관한 수수께끼다. 도저히 혼자 사라질 수 없을 법한 노인들이 사라지고, 그에 대한 유괴범의 협상 따위는 없다. 게다가 정작 실종되었던 본인은 사라진 줄도 모른 채 그 시간 동안의 기억을 잃은 채 되돌아온 것이다.
야나쿠라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다몬과 교이치로 그리고 사라졌다 되돌아온 노인들을 인터뷰했던 기자 다카야스와 교이치로의 딸 아이코까지, 네 명의 개성 강한 인물들은 야나쿠라에서 벌어진 수수께끼를 뒤쫓기 시작한다─.
실제 일본의 베네치아라 불린다는 도시 '야나가와'를 모티브로 '야나쿠라'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달의 뒷면>은 제목 그대로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수수께끼를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다.
덕분에 '물'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지배한다. 물의 도시에 걸맞게 고요히 흐르고 있는 수로 속의 물과, 마침 장마철이라는 시기에 발맞추어 눅눅한 공기가 떠도는 도시 그리고 그 속에 머무르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은 계절감이 상당히 돋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수면에 맞닿은 집이라는 지리적인 요건은 그 집에 살고 있던 할머니의 실종에 무슨 연관이 있었을까, 교이치로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 '하쿠우'가 물고 돌아오곤 하는 너무나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체 모형의 일부는 과연 누가 만든 것일까, 실종된 노인의 목소리 속에 섞여 있는 귀에 익은 듯 낯선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흐르는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고고하게 흐르고 있는 강은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며 조용히 숨어 있을까.
온다 리쿠의 SF는 굉장히 일상적인 상황 속에 이질적인 요소를 툭 던져두고는 그것을 보며 '이게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는 독자들을 서서히 설득시켜나간다. 그냥 평범한 무대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어느 샌가 알 수 없는 너무나도 낯선 세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저 수로가 있어 물이 흐르고 배를 타고 수로를 따라갈 수도 있고, 고즈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용한 마을을 다몬과 함께 방문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게임을 하는 듯 슬쩍슬쩍 이야기를 교이치로의 입을 통해 풀어내더니 결국은 무서운 무언가의 존재를 슬쩍 내비치며 그 진실을 오묘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공포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 진실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주요한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거니와 독자의 눈에조차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과 같다. 그리고 온다 리쿠는 그렇게 독자들과 나란히 서서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자기에게도 보이지 않는다는 듯 슬쩍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이다!
명확한 설명은 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가 있긴 하다. 소설의 분위기는 내내 일관되어 이 따뜻한 봄날씨 속에 있는 나를 끈적끈적하고 눅눅하기 짝이 없는 장마철의 날씨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 속에 나 혼자 내던져져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대하며 뱉어내는 외침의 허망함을, 그 순간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무력함을, 그럼에도 용기 있는 발바닥을 내보여야 하는 결단을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서서히 책을 들고 있는 주변을 출렁이는 물로 감싸는 듯한 묘한 솜씨는 역시 온다 리쿠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래, 이 <달의 뒷면>은 '온다 리쿠스럽다'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장마철을 맞아 앞으로 더욱 색채가 선명해질 시기다. 수로 속의 물풀도, 물가에 흐드러지게 핀 꽃도, 버들가지도, 어딘지 모르게 흉포한 빛을 띠고 있다. 조금 더 있으면 폭발할 것 같고 소리를 내지를 것 같다. 얼마 전까지 비가 왔던 모양이다. 젖어서 반들반들한 잎사귀 하나하나의 윤곽이 뚜렷하고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도무지 똑바로 볼 수 없으리만큼 음란하게 다가든다._p.11
뭐랄까요,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 설명 안 해도 되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_p.71
그렇겠지. 하지만 사실 밤은 별거 있단 말이지. 밤 덕분에 태곳적부터 인류는 수없는 망상을 길러왔으니까._p.93
문득, 공포와 애정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공포는 애정을 낳는 게 정석이다. 공포를 같이 체험함으로써 사랑 에너지가 증강된다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면 그 반동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사람들은 공포를 이야기함으로써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다._p.148
우리는 '하나'가 되고 싶어하는 중인지도 몰라. 아니면 무의식 중에 인간이란 생물의 전략이 도저히 수습 불가능한 상태에 이른 걸 깨닫고 다시 한 번 '하나'로 되돌아가려고 하는지도 몰라._p.217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많이 있다._p.239
세계는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생명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는다. 끈덕지고 강인하게, 온갖 수를 동원해서, 쓸데없고 무모해 보이는 막대한 행위를 되풀이해 아득한 시간을 쌓아올리며 인생은 계속된다._p.356
하지만 경계는 늘 있었던 셈 아닙니까? 처음에 누가 일어나서 직립보행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누가 말을 했어요. 최초의 순간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거기에 익숙해져 가는 겁니다. 아무 의문 없이._p.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