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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 사해동포주의로?

글쓴이: 자하님의 블로그 | 2012.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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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너무나 '착한 책'이다. 어떻게 하면 4인용 식탁의 협소한 가족이기주의를 넘어서 지구촌 사해동포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룩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 타인'의 이분법을 극복하자는 일종의 지구촌 선언문을 표방한 《공감의 진화》는 진보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상주의와 이타주의 정신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경험적 자료의 부족과 실증적 검증의 한계라는 전형적인 약점도 드러내고 있다.


 


저자들이 말하듯 오늘날은 공감부재의 시대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인정은 메말라가고 가족이기주의는 극에 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세상이 살기 어려울수록 배타적인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의 범주는 더 커지고 확대되기 마련이다. 살벌한 전쟁터에서 어떤 비인간적인 만행이 발생하고 있는가를 떠올린다면 이러한 공감부재가 가져오는 악영향과 폐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가령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본의 난징 대학살,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 미군의 베트남에서의 미라이 대학살, 르완다의 인종학살 등이 대표적이다.


 


"공감의 부족으로 인한 손실은 단지 감정적인 측면에서 친밀도가 감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가족 구성원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타인'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국가를, 지구촌에 모여 사는 모든 사람을, 그 외에 지구라는 별에 거주하는 모든 존재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10쪽)


 


이런 인종학살이나 정치적 대량학살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경험적 현상인데 이를 피할 길이 있을까? 폴 에얼릭과 로버트 온스타인은 계몽적인 교육에서 답을 찾고 있다. 가령 학교 교육과 대중매체에서 인간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을 강조하고 경쟁보다는 협동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경쟁보다 협동에 주력해야 하는 이유는 자선과 이타심의 상황적 조건이 바로 '여유'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착한 사마리아' 효과는 삶에 여유가 있어야 남을 돌볼 수 있는 여력과 마음이 생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네 속담에도 곳간이 넉넉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던가. 저자들은 문화인류학의 증거에도 기대고 있는데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우리의 조상들은 덜 소유하고 보다 많은 휴식을 취하는 삶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는 대부분의 인간집단이 대략 150명 정도로 구성되며 그정도의 숫자를 유지할 때 사람들은 충분히 잦은 교류를 통해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위 '던바의 숫자'라고 불리는 150몀은 유의미한 관계맺기의 최대 한계점을 지칭한다. 그런데 우리가 150명이란 배타적인 '우리'의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을까? 저자들은 던바의 소집단의 벽을 넘어서 진정한 지구촌 한가족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지구촌 문명을 윤리적으로 재편성하고 의식적으로 규범을 발전시켜서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감을 확대하고 변화를 촉진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174쪽)


 


우리는 아직 ‘우리 대 타인’이라는 석기시대식 논리에 갇혀 있는데 이를 벗어나 공감을 확대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고 강조한다. 공감을 축소하는 환경이 있는가 반면에 공감을 확대하는 환경도 있는 법이다. 공감의 정치학은 "능력이 없으면 공감과 연민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나 넛지 이론이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현상이다. 모두 사소한 환경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리기 때문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 반사회적 행동이나 범죄행위와 같은 규범 위반의 부정적인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넛지 이론은 긍정적인 영향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학교 교육과 대중매체에서 인간의 차이보다는 유사성을 강조하고 경쟁보다는 협동에 주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가령 사회심리학자 엘리엇 애런슨의 협동학습 기법인 직소퍼즐 프로그램이 그런 경우다. 공감의 진화를 위한 저자들의 실천적 노력은 '인간행동에 대한 밀레니엄 평가'(MAHB)라는 예비단계의 활동조직으로 드러난다. 맙(MAHB)은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그리고 인문학자들로 결성된 진보 성향의 조직으로 인류가 처한 위기의 근본문제와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공공교육에 주력하고자 한다. 저자들의 말대로 맙(MAHB)이 "꼭 필요한 생태윤리적인 토론과 행동변화를 이끌어낼 성공적인 쐐기임을 입증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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